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미술문화공간 개선방안에 관하여

하계훈

1. 서론
미술작품을 문화상품의 개념에서 파악할 때, 일반 상품이 생산, 유통, 소비의 3가지 영역에 관련되는 것처럼 미술작품을 중심으로 한 창작과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몇 가지 영역별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우리는 미술문화 발전의 중심이 되는 미술품이 창작되는 공간과 그 작품들이 감상, 평가되고 유통되는 공간, 그리고 최종적으로 구매되어 보존되는 공간 등을 구분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가운데 우리는 흔히 두 번째와 세 번째 공간으로서 미술관이나 이와 유사한 전시공간에 주로 초점을 맞추어 미술문화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미술품 창작 공간이나 보존 공간에 대한 동등한 배려 없이 미술관 전시장 등에만 관심을 집중하는 것은 전체 미술문화의 균형있는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공공 재정적인 측면에서 볼 때 현실적으로 제한된 재정을 여러 곳으로 분산시킬 수 없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으나, 이러한 원론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하면서 현실적 제약 때문에 일부 미술공간이 중점적으로 지원되는 것과 처음부터 이러한 고려 없이 특정부분만 집중적으로 지원되는 것은 그 의미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이러한 공간들은 상호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어서 어느 한 공간의 부실화가 다른 공간의 운영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운영에 있어서 재정의 문제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으며 바람직한 미술문화의 발전을 위해서는 재정적인 문제나 미술공간의 물리적 부분뿐 아니라 그러한 틀 안에서 활동하는 인적자원에 대한 지원과 육성의 중요성과 그로부터 무형적으로 창출되는 부가가치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미술문화를 생산, 유통, 소비하는 과정에서 거치게 되는 모든 문화공간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아 간략하게 우리 미술문화공간의 현황과 문제점을 파악해보고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개선점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2. 미술문화의 창작공간

미술품은 작가의 정신에 의해 잉태되고 기술에 의해 창조된다. 미술품 역시 유형의 재료들을 바탕으로 창조된다는 점에서는 일반 상품생산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르지만 창작의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과정과 창조된 작품에 부여하는 상품성 이외의 가치 면에서는 일반 상품 생산과 그 의미가 판이하게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미술품의 창작은 일반 상품생산의 원리와 다른 시각에서의 접근과 창작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며 미술창작 공간은 작가의 창조적 정신이 최대한으로 보호받고 격려받을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예로부터 작가는 예술품 생산을 위하여 자신의 창작공간에서 단독으로 또는 집단으로 작업해왔다. 그리고 그의 공간은 창작공간이자 전시공간이기도 했다. 근대의 절대군주의 영향 아래서 작가는 군주나 귀족의 재정적 후원을 받으며 후원자의 취향에 부합하는 작품생산에 자신의 재능을 쏟아 부었다. 절대적 후원자가 사라지고 시민사회가 도래하였을 때에는 불특정 다수의 다양한 취향에 맞춰 주문이 없어도 우선 생산하는 창작방식을 취하였으며 오늘날까지도 이러한 창작활동의 맥락이 이어져 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반 상품생산이 노동집약적인 초기 생산과정을 거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과정을 거치면서 시장의 볼륨이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고 국경을 넘어선 초대형 시장을 형성하며 로봇의 작업에 의한 생산, 시뮬레이션에 의한 맞춤 생산 방식 등으로 발전해 온 것에 비하여 오늘날의 미술품 생산(혹은 창작)은 대부분 수백 년 전의 생산과 소비방식이 크게 변하지 않은 채 작가의 노동력에 크게 의존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따라서 일반 상품에 대한 미술품의 시장경쟁력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오늘날 예술가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사회의 기술적, 경제적 변화가 가져온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시장경제의 원리에 의하면 극히 일부의 작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작가들은 시장에서 도태되어 전업을 하거나 현재보다 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작업으로의 방향 수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술가들에 의해 창출되는 예술품에 담긴, 시장원리를 뛰어넘는 형이상학적 가치와 공공적 효용성을 알기 때문에 정부라는 국민의 대리기관을 통해 작가들의 예술적 생산을 지원하고 격려한다.

작가의 예술창작을 지원하는 대표적인 공간은 창작 스튜디오일 것이다. 물론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문화예술진흥기금을 통해 개별적인 작가의 창작활동을 지원해오긴 했으나 정식으로 본격적인 창작스튜디오를 제공하여 운영해온 적은 없었다. 한때 정부는 지방의 폐교를 이용하여 작가들의 집단 창작 공간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를 해본 적이 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로 끝났는데 그 원인 가운데 하나는 작가들의 창작에 필요한 여건을 물리적인 차원에서만 고려하였으며 작가의 입장보다는 운영주체의 입장에서 계수상의 증가를 실적과 연결시킨다든지 공간관리에 치중하여 작가들의 활동을 제한하는 등의 문제점이 발생되었고 작가들과 긴밀하게 협력할 수 있는 예술적, 기획자적 사고를 갖춘 전문인력의 필요성을 무시하는 지극히 관료주의적인 발상 때문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우리나라에서 작가들 사이에서 1990년대에 수도권 일대에 자생적으로 형성된 일종의 집단창작 공간들 이외에 공공적으로 창작스튜디오가 형성된 것은 문화관광부가 2002년 6월에 서울의 도봉구 창동에 세운 창동 미술스튜디오가 최초일 것이다. 그 후 정부는 2004년에 고양에 제 2의 창작스튜디오를 설립하여 현재 두 곳에서 37개의 창작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이보다 앞서서 경기도 광주의 영은 미술관이 2000년부터 작가들을 위한 창작 스튜디오를 운영해왔으며 가나 아트에서도 작가들을 위한 스튜디오를 운영해오고 있다.

정부는 창작여건이 열악하지만 장래성이 있는 유망 신진작가들에게 안정적인 창작 공간을 마련해줌으로써 양질의 예술품이 창조되고 그것을 지역주민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향유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즉 창작스튜디오의 근본 목적이 양질의 예술품 창조와 효율적인 향유에 있으며 이 사업은 공간운영을 통한 수익사업이 아닌 지원사업의 성격인 것이다. 하지만 양질의 예술품 창조가 단순히 공간제공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은 누구나 주지하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창동과 고양의 창작스튜디오는 아직까지 작가들에게 공간을 제공하고 나머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는 기본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게다가 운영주체가 사단법인 국립현대미술관회로 되어있는 점도 재고되어야 한다.

이에 비하여 영은미술관의 경우에는 사립미술관임에도 불구하고 일찍이 2000년부터 창작스튜디오 프로그램을 시작하여 작가들에게 공간을 제공할 뿐 아니라 매년 창작의 결과물을 전시장에서 본격적인 기획전시로 연결시키고 있으며 평론가들을 초청하여 입주작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하는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비교적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갖추어 가며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가나아트의 경우에는 작가들의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일반인이나 미술학도들의 실습교육장으로 개방하여 작가와 관람객이 직접적인 만남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 국립기관에서 운영하는 창작스튜디오를 중심으로 한 미술문화의 창작공간이 안고 있는 문제는 전문인력의 부재와 조직적인 프로그램의 부재를 들 수 있다.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 국내의 유망작가를 국내 뿐 아니라 국외로 적극적인 홍보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의 부재와 작가들 간의 국제적인 교류의 부재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국립 창작공간의 문제점은 이 공간을 관할하는 행정관료들의 의식에 있는데, 미술창작공간에 대한 세심한 이해 없이 공간을 조성하는 일이 곧 사업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비문화적인 사고와 철저한 준비 없이 일단 일을 저질러 놓고 보자는 막무가내식의 태도가 이에 수반되는 문제점을 일으키는 것으로 지적될 수 있다.

공공 미술창작공간은 작가들에게 단순히 물리적 작업공간을 제공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창작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의 기획과 입주 작가들의 상호소통을 통한 예술적 영감의 교환과 타인의 작품을 통한 자기관조의 기회를 갖게 하는데 있다. 그리고 참여 작가들은 공공재정의 도움을 받는 만큼 자신들의 창작행위를 통해 지역주민이나 보다 나아가 국민 다수가 문화적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


3. 미술문화 소통의 공간

미술문화 소통의 대표적인 공간으로 미술관과 화랑을 들 수 있다. 보기에 따라서 미술관은 마지막 수집과 보존의 공간으로 분류될 수도 있으나 오늘날의 전시방식은 미술품에 대한 수집과 보존이 없는 상태에서 미술관을 통해 미술품이 관객과 상호 소통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미술관과 화랑의 역할분담은 영리성과 비영리성, 상품성과 작품성 등의 몇 가지 기준에 의해서 구분될 수도 있지만 미술관과 화랑 모두가 미술문화의 유통과 교류의 중요한 장치임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가운데 상업화랑에 대한 논의는 차후의 적절한 기회에 자세히 하도록 하고 이번 기회에는 미술관과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등장한 소위 대안공간을 중심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시민사회가 도래하고 공공미술관이 탄생하면서 미술문화를 중심으로 작가와 관람객이 소통하는 방식은 대중적 계몽과 엘리트주의적 감상이라는 이분법적 기능 속에서 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초기의 미술공간은 다분히 상류층과 지식인 중심이었고 일반 대중은 정치적 변화의 시혜로 미술전시 공간에의 접근이 허용되었지만 자신들 진정으로 원하여 쟁취한 권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스스로의 권리를 행사하는데 소극적이었으며 전시공간에서의 관람객의 역할은 다분히 말초적인 호기심이나 유행에 의존하는 정도에서 이루어졌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시민사회의 문화의식이 전반적으로 확대되고 대중들의 노동시간 감소와 소득의 증가, 그리고 이에 따른 자이실현 욕구의 증가 등에 의해 점차 사라져가게 된다.

사회의 상류계급 중심적인 미술문화 공간은 미술관 건축의 양식에서도 드러난다. 미술관 건립이 활발히 이루어지던 근대에는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들이 미술관 건축의 대표적인 양식을 차지함으로써 일반 관람객들은 이미 미술관에 진입하기 전부터 그 위압적 외관에 의해 정신적으로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서양의 수많은 미술관들이 고대 그리스의 신전형태를 띠고 있는 것은 건축사적인 맥락을 벗어나 생각하면 미술관 문화에 함축된 이러한 정신성을 시각적으로 반영하는 명백한 증거로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술문화의 향수층이 확대되고 예술품을 대하는 태도가 변화함에 따라 미술문화 공간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따라서 오늘날의 미술관 건축은 더 이상 관람객이 입구에서부터 주눅이 들도록 장엄한 외관을 강조하지 않으며 마치 신전에 들어서는 듯한 엄숙한 자세를 강요하지 않도록 심리적인 배려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 파리의 퐁피두센터나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등은 더 이상 신전의 외관을 고집하지 않으며 입구를 도로와 수평적인 높이로 유지하거나 하향경사로로 설치하고 대형 유리창 등을 통해 실내의 공간과 정보를 외부에 개방함으로써 접근하는 관람객의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이쯤에서 우리는 우리나라의 국공립 미술관이나 일부 사립미술관이 스스로의 건축양식을 통해 관람객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를 읽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유일한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멀리서 박물관으로 접근하면서 이중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구조와 좌우대칭의 웅장한 입구, 화강암으로 둘러싸인 외관을 통해 관람객은 이 공간이 그들을 환영하기보다는 정신적으로 복종시키고자 하는 위협을 느낀다. 그리고 이러한 형태의 건축은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가 세운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비슷한 형태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심지어 현재 용산에 건립중인 국립중앙박물관도 관람객의 정신적 접근성에 대한 배려가 적은 상태에서 여전히 그 규모와 형태에서 위압적인 위용을 의식적으로 드러내려는 전근대적인 모습을 고집하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같은 시대의 미술문화를 소통시키는 공간의 대표적인 형태로서 화랑들의 경우에는 미술관에서 보이는 이러한 위압적인 외관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화랑 공간은 관람객이 쉽게 유입될 수 있도록 가능하면 높은 곳에서부터 낮은 곳으로 내려오려고 하며, 스스로를 감춤으로써 신비감을 강조하려 하기보다는 상점의 진열장처럼 내부를 공개함으로써 관람객의 심리적 접근을 보다 용이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미술관의 외관에 함축된 정신성은 실내 공간의 운영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경우 실내 공간의 운영과 심지어 근무자들의 태도도 외관의 폐쇄성이나 개방성의 정도와 비례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1990년대부터 우리 미술계에 등장한 소위 대안공간이라는 미술문화 공간은 몇몇 공간을 제외하고는 대안의 개념을 분명히 제시해주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상업화랑의 상업성에 의해 소외되는, 소위 비인기 작가들을 위한 공간의 운영이라는 대안공간 목표 가운데 일부는 우리나라의 상업화랑이 빈번하고 어렵지 않게 아무 작가에게나 대관을 해주는 운영방식을 취함으로써 그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게다가 기업의 마케팅 차원에서 운영하는 공간이나 심지어 정부 유관기관에서 운영하는 기관을 대안공간의 카테고리에 포함시키는 것은 미술관이나 화랑과 같은 기존의 미술문화 공간에 대한 이러한 공간들의 차별성을 더욱 모호하게 하며, 그 경향에 있어서 해외 유학이나 체류 경험이 있는 작가들이 규합되고 결과적으로 자기들만의 잔치를 벌이거나 일종의 새로운 미술권력으로 등장하는 듯한 현상을 낳기도 한다.

몇 해 전부터 정부에서는 대안공간에 대한 재정지원을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지원이 대안성을 표방하는 공간의 난립을 부추기는 결과가 되지 않도록 대안공간의 진정한 의미와 역할에 대한 정의를 명백히 하고, 지원정책의 투명성을 강조하여야 할 것이다. 대안공간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도 대안공간이 국민의 세금으로부터 조성된 자금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정당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활동의 공공성이나 사회적 효용성 등을 명백히 증명할 필요가 있다.

다른 미술문화 공간에서와 마찬가지로 대안공간의 문제에서도 지원의 초점을 물리적 공간의 운영과 일회성 행사에 집중하는데 그치지 말고 장기적 비전을 세울 수 있도록 체계적인 지원계획이 수립되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그 공간을 이끌어갈 전문인력이 소신껏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의 조성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 등이 더 시급한 편이라고 생각된다.


4. 미술문화의 보존 공간으로서의 수장시설

일반인들에게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미술문화 공간의 대표적인 사례가 전시장이라면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공간이면서도 쉽게 눈에 뜨이지 않음으로써 제대로 문제점을 드러내지 못하는 공간이 미술품의 수장공간이다. 필자는 최근에 경기문화재단의 의뢰로 경기도 내의 박물관과 미술관의 운영실태를 돌아보고 평가하는 기회를 가지고 있다.

해당 박물관과 미술관들을 방문하기 전에 이미 짐작은 했으나 실제로 이들 기관을 방문하면서 필자가 느낀 심각성은 전시장이나 그밖에 우리에게 비교적 잘 드러난 공간보다도 작품 수장공간과 같은 숨겨진 공간에서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중소규모 박물관과 미술관들은 기본적인 운영에 있어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해야 하는 일들 가운데 당장 시급한 일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것은 뒤로 미루어지거나 쉽게 생략되고 있다. 그러나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기본적으로 수행되어야 할 일 들은 전시나 교육 뿐 아니라 자료의 체계적인 수집과 관리 등을 들 수 있는데, 그 가운데 각 박물관과 미술관의 미술문화 보존공간으로 분류되는 수장고 상태는 놀라울 정도로 열악하다.

필자가 방문했던 대부분의 미술관들은 기본적인 온습도 조절장치 마저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았으며 도난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시설이나 장치도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얼마 전 영국 런던의 미술품 보관소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상당한 미술품들이 소각되었던 사실이 해외소식을 통해 전해진 일이 있었다. 비교적 시설이 양호한 수장기관에서도 이러한 사건이 발생할 수 있음을 생각할 때 우리나라의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지금 당장 화재나 도난 사건이 발생하였다는 소식을 접해도 해당 시설의 열악함을 알고 있다면 그것은 별로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수장시설을 목격한 사람이라면 이러한 재해는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시한폭탄과 같은 것이라는 사실에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들 수장공간이 시설면에서 열악한 데 그치지 않고 자료의 분류 및 보존과 복원을 위한 전문인력이 거의 전무하여 수장시설 내에서의 소장품들은 그야말로 아무렇게나 내팽겨진 채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사실 일반인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수장공간을 아무리 깨끗하고 질서있게 정돈하여도 그러한 노력에 대한 찬사는 전시공간에서 제공되는 전시 프로그램으로부터 발생하는 관람객들의 찬사에 비하면 그 정도나 빈도에 있어서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미약할 것이다. 그러나 미술관 공간의 운영이 균형잡힌 것이 되기 위해서는 전시공간이나 교육공간 뿐 아니라 이러한 후방에서의 지원공간들에 대한 관리도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러한 공간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5. 결론을 대신하여-미술문화공간의 개선방안

앞에서 간단히 살펴본 것처럼 우리의 미술문화를 생산, 유통, 소비하는 과정에서 동원되는 공간들은 어느 하나만 중요하다 할 수 없이 모두가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므로 균등한 지원과 배려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재정지원 능력의 한정성 때문에 우리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미술 공간에 대하여 관리를 소홀히 하고 당장 눈에 드러나는 문제점이 분명하지 않을 경우 어느 정도 방심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공간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을 경우에는 미술관의 전시공간이나 교육공간과 같은 기본적인 공간 역시 정상적인 운영이 쉽지 않을 것이며 나아가 여러 가지 문제점과 부작용의 도미노 현상을 맞게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우리는 미술문화 공간의 정상적이고 활성화된 운영을 위하여 미술문화의 생산 공간으로서의 작가의 스튜디오, 미술문화의 소통공간으로서의 전시공간이나 교육공간, 그리고 미술문화의 보존 공간으로서의 수장공간에 대한 균등한 관심과 적절한 지원을 통한 정상기능 확보 및 발전을 위해 정부와 미술관, 그리고 이를 둘러싼 미술인들 모두가 상호 협력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점의 해결방안 역시 무엇보다도 문화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이들의 의식이 개선되어야 할 것이며 문제가 발생한 다음 미봉책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이 꾸준히 집행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미술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한 작업의 핵심적인 역할은 미술행정가, 미술가, 관람객과 미술상 가운데 어느 하나에 의해 수행되기보다는 서로가 자기의 적절한 역할을 바르게 인식하고 자기 분야에서 성실하게 노력할 때 미술문화 전체의 건강하고 균형잡힌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며 여기서 우리는 한국미술의 전성기를 목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