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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문화부 평가를 통해서 본 사립박물관 미술관의 발전전략

하계훈

1. 서론

박물관과 미술관은 근대 이후 설립된 대표적인 비영리 문화기관으로서 군주와 제후, 귀족 등의 후원으로 운영되어오다가 시민사회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정부의 지원을 받는 형태로 운영방식이 전환되었다. 군주와 귀족이 박물관 운영의 주체였을 때에는 운영예산의 흑자나 적자와 같은 개념이 별로 의미가 없었으며 박물관 운영의 초점은 소장품 주인의 취향과 미의식에 집중되어 예산도 불균형적이고 집중적으로 과다하게 지출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박물관의 운영에서 재정의 압박이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시민사회의 박물관이 상당한 숫자로 불어나고 정부가 그 관리책임을 맡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으며 이때부터 박물관의 전시방식을 포함한 여러 가지의 운영방식이 공공의 요구에 부응하고 그들의 이익에 기초를 두는 방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오늘날의 박물관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하는 문제와 소장품과 관련된 학문연구의 전문성을 유지하는 문제다. 재정의 문제에 있어서 단순히 경영학적 관점에서 볼 때 스스로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박물관과 같은 사업기관이 사업을 중단하지 않고 외부의 지원에 의존하며 사업을 지속시키는 것은 영리추구를 중심으로 하는 경영논리는 맞지 않지만 박물관의 운영은 단순한 경제적 원칙에 의해서만 운영될 수 없는 또 다른 요소들이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적자운영을 하는 박물관에 정부재정이 투입되는 이유는 박물관 운영의 공공성 때문이다. 박물관은 운영목표 자체가 이익의 창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익적 문화기관으로서 국가문화유산의 보존과 전승, 국민문화 복지의 향상과 학문 및 여가의 증진에 기여하고, 관광자원으로서 혹은 국가의 국위선양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박물관의 운영 목표는 국공립박물관뿐 아니라 사립 박물관에도 비슷하게 적용될 수 있다.

사립 박물관은 규모나 운영 체계에서 국공립박물관들과 다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익창출을 위하여 박물관을 운영하지 않으며 국가나 지역사회의 문화발전과 국가적 문화재의 보존과 활용에 기여하며 일부분에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행하기 어려운 문화적 공공기여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에 공공재원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립 박물관과 미술관들도 이러한 배경에서 한국박물관협회를 통하여 2004년부터 정부재정의 일종인 복권기금을 지원받아 왔다. 이렇게 지원받은 기금의 사용에 대해서는 자체평가뿐 아니라 관련법에 의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예술진흥기금사업평가단의 평가를 받게 되어있다. 발표자는 2006년과 2007년 두 해 동안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화예술진흥기금사업평가단의 평가위원으로서 한국박물관협회를 포함한 문화예술기관들의 사업을 평가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으며 이와 함께 2007년도 한 해 동안 한국박물관협회의 복권기금사업 평가단장을 맡아 우리나라 전국의 사립박물관과 미술관들을 돌아볼 기회를 가졌었다.

한 박물관을 몇 시간 동안 들여다보고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여러 관장들과 학예사들을 면담하고 심층적인 대화를 나누다 보면 우리나라의 사립박물관들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고,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어느 정도까지는 파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 글에서는 우리나라 사립박물관과 미술관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살펴보고 그 곳에 내재된 문제점을 파악하여 그 해결방법과 발전방안을 제안해보고자 한다.

2. 우리나라 사립박물관의 현황

우리나라에서 박물관이 처음 탄생한 것은 1909년 이왕가박물관이었다. 그러나 이 박물관은 왕립 혹은 국립적 성격이었으며 사립박물관으로서 최초의 박물관은 1936년 간송 전형필이 성북동에 세운 서양식 건물인 보화각으로부터 그 역사를 추적할 수 있다. 그 밖에는 종합대학 설치령에 의해 사립대학에 설치되었던 대학박물관들을 제외한다면 1981년 용인의 호암미술관과 서울 구기동의 서울미술관이 설립되기까지 본격적인 사립박물관의 설립과 운영은 별로 활성화되어 있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사립박물관이 상대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에 들어서이며 이에 따라 1984년에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박물관법>이 제정되었다. 사립박물관과 미술관에 대한 관심은 1990년에 들어서 이전보다 더욱 고조되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기업과 연결된 사립 미술관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자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여 1991년에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 기존의 <박물관법>을 대체하는 형식으로 새롭게 제정되었다. 이 기간동안 사립대학이 세운 박물관을 제외하고 개인을 포함하여 문화재단이나 기업에서 세운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하나 둘 탄생하여 오늘날에는 400개 가까운 사립미술관과 박물관이 전국에 소재하고 있다.

이들 사립박물관과 미술관들의 설립과정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경우 설립자의 개인적인 취향과 수집 행위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축적된 결과물을 바탕으로 박물관과 미술관을 설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설립을 목표로 모든 일이 진행되었을 뿐 설립 이후의 운영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은 부재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현재 운영되는 대부분의 사립박물관들이 운영상의 재정난에 부딪치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박물관으로서의 기본적인 연구기능이나 대중을 위한 활발한 봉사기능 등이 부실하게 진행되고 있는 편이다.

이러한 설립 과정 때문에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사립박물관과 미술관들은 설립 직후부터 소장품의 관리와 해당 소장품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재정적인 면에서는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재정의 문제를 설립자나 그 주변인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나 의지가 불투명하여 역설적이게도 공익적 기여를 위하여 설립하는 박물관이 오히려 공공의 부담으로 남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3. 우리나라 사립박물관의 문제점

개인이 막대한 사재와 오랜 시간을 투자하여 수집해 온 소장품을 사회와 공유하고자 박물관을 세운 결정은 사회적으로 칭송받을 만하다. 이런 의미에서 사립박물관을 설립한 설립자들은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립박물관의 경우 그 규모나 소장품의 양과 질, 설립자의 경험과 학문적 깊이 등은 천차만별이다. 국공립박물관의 경우에는 관장이나 학예관 등 박물관 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력에 대한 임명과정에서 어느 정도 해당 인물의 자격이 검증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으나 사립박물관의 경우에는 박물관및미술관진흥법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의 조건(공간, 소장품 수, 학예사 자격증 소지자)이 갖춰지면 박물관은 큰 어려움 없이 설립되고 누가 관장직을 맡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검증장치나 정해진 규정이 없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사립박물관은 외국의 사립박물관들과 다른 설립과 운영의 양상을 보인다. 물론 박물관 설립을 둘러싼 환경이 다르고 시기적으로도 차이가 있으므로 두 지역 사이에 박물관 설립과정이나 운영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은 인정된다. 하지만 박물관 운영에 있어서 기본적인 태도나 목적, 사회를 향한 의무감 등은 동서양이나 시간의 고금에 관계없이 공통적으로 강조되어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18세기 이후의 유럽에서 사립박물관이 탄생하는 과정에서는 사회에 대한 계몽주의적 지식인들의 기여와 봉사의식이 강하게 나타났으며 이러한 의지를 가시화하는 박물관의 설립과정에서도 개인의 소장품과 재산을 망설임 없이 공공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특히 한 개인이 평생을 거쳐 소장품을 수집해왔더라도 일단 박물관이 설립되었을 때에는 자신이나 자신 주변의 가족과 친지들이 관장이나 그 밖의 운영상의 중요한 직책을 맡는 경우는 드물었다. 오히려 그들은 이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박물관 설립 후에도 배후에서 박물관 운영에 물심양면으로 기여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적극적으로 박물관 운영의 전면에 나서는 경우는 드물었다. 대부분의 경우 이들이 설립한 박물관에는 관련분야에서 연구경험과 학문적 성과가 뛰어난 인사를 영입하여 관장으로 임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박물관학자 스테판 웨일(Stephan Weil)이 주장한 것처럼 소장품을 모으는 것과 이것을 공공의 박물관으로 전환하여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별개의 것인 것이다. 이러한 구분이 정확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상당수의 사립박물관과 미술관들은 단순히 옛것을 모아두는 장소에 불과하게 될 것이며 소장품의 학문적, 미학적 가치를 탐구하기보다는 아마추어적인 취향과 호기심을 대중에게 강요하는 수준에서 머무르며 점차 문화예술 기관들 사이에서도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박물관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서양 박물관의 전문성이나 박물관 설립에 기여한 수집가들의 공공적 의무감과 진정성에 비하여 우리나라의 사립박물관과 미술관의 경우는 설립과정에서 소장자의 자격과 소장자료의 학술적, 미학적 가치를 검증하는 제도가 상대적으로 허술하며 현재의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의한 등록제도를 거치더라도 등록 이후의 운영상황이 정기적으로 점검되지 않고 있어서 해당법의 실질적인 영향력이 의심스러운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상당수의 사립박물관들이 어떻게든 설립이 되면 그 뒤로 합법적이든 편법적이든 등록과정을 거친 후 공익적 의무에 전념하기보다는 자신들의 기관의 문제점을 외부에 의존하여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이며 정부나 지방자치 단체의 지원에 적극적으로 기대려고 할 뿐 외국의 모범적인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설립자의 물질적, 정신적 기여가 지속되는 경우는 좀처럼 확인할 수가 없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외국의 경우에는 개인이 세운 박물관일지라도 비영리법인화하여 공익성을 천명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사립박물관과 미술관들은 비영리 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몇몇 박물관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개인 소유의 사립박물관과 미술관으로 존재하면서 정부의 공공재정에 의존한다. 하지만 어느 박물관 하나도 연례보고서를 통해 공공재원을 사용한 기관으로서 투명하게 회계를 공개하는 경우가 없다. 그뿐 아니라 회계는 고시하더라도 일반적인 운영에 관한 제대로 된 연례보고서도 발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아직까지 사립박물관이 공공적 의무감을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며 이러한 점은 재정지원의 당사자인 정부 주무부서에 의해 분명하게 지적되어야 한다.

개인소유의 사립박물관과 미술관에 대한 공공재정의 지원의 정당성은 해당 박물관과 미술관이 명실상부하게 개인의 소유에서 공공의 소유로 전환되었다는 점이 명백하여야 한다. 특히 회계 부문에서 이 점은 명확하게 드러나고 설명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사립박물관과 미술관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 공공의 의무를 다하고 있지 않으며 편법적으로 사단법인이나 영리법인을 설립하여 정부의 재정지원을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 사단법인의 경우에는 재정과 관련이 없는 인적 구성원 중심의 법인격을 가진 단체일 뿐이다. 따라서 전세계 어디에도 박물관이 사단법인 성격으로 설립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공공재정을 지원받는 경우는 없다. 대부분의 학회나 협회처럼 사람 중심의 지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박물관과 같이 재정 운영에 관하여 정부의 지원을 받는 법인격을 가진 기관으로서는 사단법인이라는 법인격을 갖는 것이 결코 적절하지 않다. 물론 영리법인으로 운영되는 박물관의 경우에는 결국 정부가 국민의 재산인 공공재정을 지원함으로써 영리법인의 영리 취득행위에 일조를 하는 셈인 것이므로 더욱 적절치 않다.

필자가 파악한 우리나라 사립박물관의 문제점은 첫째, 설립의 절차가 비교적 용이하여 설립까지는 별로 어려움이 없지만 설립 단계에서 향후의 안정적인 운영을 보장하는 장치가 없어서 설립 후의 부실운영이 쉽게 예견되는 점이다. 이 점은 우선적으로 설립자의 박물관 운영에 대한 인식부족에 기인하는 것이지만 설립과정에서 등록업무를 맡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책임도 적지 않다. 지방자치 제도가 실시되고 선출직 기관장이 중앙정부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사립박물관의 등록을 맡게 되면서 자치단체의 관내에 설립된 박물관의 수가 지방자치단체장의 업적과 연결될 가능성이 있게 되었으며 이 때문에 박물관의 설립이 이전보다 용이해지게 되는 것이다. 2007년 필자가 현장을 다녀온 박물관 중에는 박물관 입구에서 전시장으로 가는 도중에 박물관장 가족의 살림 공간을 지나치게 되는 우스꽝스런 공간이 지방의 박물관으로 버젓이 등록된 경우도 있었다. 물론 이러한 공간 배치가 등록 당시와 다른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해당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무단으로 실시된 공간변경에 대한 감독부실의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지금처럼 사립박물관의 설립을 시,도로 이관한 박물관및미술관진흥법의 규정 아래서는 앞으로도 다시 발생할 수 있는 것이며 특히 지방자치단체장이 관내의 사립박물관을 자신의 업적 쌓기의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맞물린다면 지금보다 점점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미 등록된 박물관이라도 등록 당시의 조건을 유지하고 있는가에 대한 꾸준한 관찰이 이루어져야 하며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 본래의 설립 목표에서 크게 벗어나거나 운영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질 경우 재심의를 통해 박물관 등록 자격을 계속 유지할 것인가를 새롭게 판단하는 절차가 중앙 정부적 차원에서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사립박물관이 안고 있는 두 번째의 문제점은 박물관의 고유 업무이자 중요한 업무인 학예연구 기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점이다. 작년부터 학예인력 지원사업을 통해 상당수의 박물관들이 학예인력을 지원받고 있지만, 이 사업이 지속적이지 않은 것도 문제이고 이러한 인력이 지원되었는데도 개별 박물관에서 소장품과 관련된 수준 높은 연구업적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박물관의 소장품을 열심히 수집해 온 설립자의 열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이 곧 학문적인 연구기능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나라 사립박물관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세 번째 문제점은 오늘날과 같은 경쟁의 시대에도 대부분의 박물관들이 경영이나 마케팅에 대한 감각이 현저하게 떨어지며 관람객들의 시각에서 박물관을 설립하고 운영하기보다는 설립자 자신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해왔다는 점이다. 우리가 조그만 식당 하나를 열어도 몫 좋은 곳을 찾는데 하물며 박물관을 세우는데 이러한 고려가 무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립박물관의 설립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연고지나 지방의 폐교시설 등을 활용하여 자신의 소장품을 공개하는 박물관을 설립함으로써 많은 수의 사립박물관들이 대중교통수단으로 접근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관람객의 접근편의성을 외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사립박물관들의 위치선정은 박물관의 공공성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면이 있다.

박물관 사업의 내용을 홍보하는 면에서도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사립박물관들은 신문이나 잡지, 그리고 방송을 통한 적극적인 홍보활동이 부족한 편이다. 이런 상태에서 현실적으로 접근성도 용이하지 않은 위치의 박물관에서 실시하는 사업을 일반인들이 알아서 찾아오게 만드는 것은 다른 문화활동 영역의 사업과 비교할 때 경쟁력이 현저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문제에 대하여 해당 박물관의 관장과 직원들은 예산부족과 담당인력 부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물관 사업과 관련된 적극적인 홍보는 그 필요성이 더욱 요구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수 천만 원의 사업비를 들여서 실시한 사업이 홍보부족과 접근성의 어려움 때문에 불과 수 백 명의 관람객에게 노출되는데 그침으로써 관람객 1인당 향수 비용이 수 만원이나 심지어 수 십 만원으로 계산된다면 과연 사립박물관의 문화기관으로서의 경쟁력이나 사립박물관에 대한 공공재정 투여의 효율성이 있는지 재고해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사립박물관의 근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문제점은 박물관 설립자들이 자신의 박물관을 공공의 재산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자신이 사적으로 관리하거나 향후에 자녀들에게 넘겨줄 사적 재산으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박물관이란 근본적으로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기관이고 그렇기 때문에 공공 재정이 투입되는 것이다. 따라서 비록 개인의 소유물과 재산이지만 일단 공공의 박물관으로 개관한 이후에는 박물관을 사고팔거나 자녀에게 물려주는 개인의 사적 재산으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이며 이 박물관이 앞으로 어떻게 해서 보다 공공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가치 있는 박물관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여야 할 것이다.

4. 결론을 대신하여--사립박물관/미술관의 활성화를 위한 제언

현재 우리나라에는 전국적으로 400개 정도의 사립박물관과 미술관이 설립되어 있다. 그리고 그 규모나 소장품의 다양성, 운영 방식 등에서 국공립박물관과는 달리 다양하고 특색 있으며 나름대로의 경쟁력을 가지고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것처럼 재정의 열악성이나 관장과 학예인력의 전문성, 박물관 운영에 있어서 관람객의 입장을 고려하는 열린 사고나 자신의 박물관이지만 그것을 공공의 자산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기여의식의 필요성 등에서는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가 적지 않은 편이다.

특히 재정의 문제에 있어서 대부분의 사립박물관들이 정부로부터의 재정지원을 마치 당연한 것처럼 요구하는 경향이 있지만 현재와 같은 사립박물관들의 설립과 운영의 상태에서는 이러한 요구의 정당성을 찾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우선 세계의 어느 박물관을 보더라도 비영리 공익법인화되어 있지 않고 개인의 재산으로 머물러 있는 상태에서 사립박물관에 공공 재정이 우리나라처럼 대규모로 투입되는 경우는 그 사례를 찾아볼 수가 없다. 앞으로 사립박물관들이 정부로부터의 공공재정 지원을 계속 받으려 한다면 사립박물관 측에서도 박물관을 공익적 기관으로 전환하겠다는 명백한 의사 표현을 하여야 할 것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 박물관들이 개별적으로 공익법인화하는 것이 어려울 경우에는 한국박물관협회가 사립박물관들의 공공화 의지를 수렴하고 사립박물관들을 대신하여 정부와 MOU를 체결하여 지원사업을 지속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처럼 1개 박물관 당 많게는 1억 원 이상에서 적게는 몇 천 만원의 지원이 지난 4년간 이루어졌음에도 그 성과가 구체적으로 측정될 수 있는 정확한 자료가 산출되지 않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한국박물관협회를 통하여 지난 4년 동안 지원된 지원금의 총액이 100억을 훨씬 넘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의 사립박물관과 미술관들은 다시 한 번 해당 기관들의 공공적 의무와 사회적 기여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우리나라 사립박물관과 미술관의 발전을 위해서는 박물관의 설립과 등록의 단계에서 설립 후의 운영의 자생적 능력이 검증되는 등록절차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과 이 단계에서 설립자와 전문적 운영자의 역할이 분명하게 나뉘어져야 한다는 점을 우선 지적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 등록의 절차를 지금보다 강화하고, 특히 박물관을 이끌어갈 관장에 대한 전문성과 리더쉽, 경영과 마케팅에 대한 감각과 아울러 공익적 기여에 대한 의식과 한 기관을 이끌어갈 지도자로서의 높은 수준의 도덕성 등이 검증되거나 이 부분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현재 등록된 박물관의 과감한 폐쇄나 통합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만성적 적자가 불보듯 뻔하게 내다보이고 학문적 성과도 미진하며 운영이 부실한 박물관들을 국가의 귀중한 재정으로 한해한해 땜질식으로 지원해가면서 장기적인 비젼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이러한 박물관들에 대한 폐쇄와 통폐합은 당연히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위치에 설립된 사립박물관들을 관람객의 접근용이성 관점에서 판단하여 이전 재배치하거나 재설립하는 것도 고려해보아야 한다.

박물관이 다른 공익적 기관이나 문화기관들과 다른 점은 소장품을 매개로 한 관람객들과의 원활한 소통이 가능한 공간이라는 점이며, 이때의 소통이란 소장품에 대한 전문적인 해석과 연구가 전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나라 사립박물관들이 지난 4년간 100억 원이 넘는 정부지원금을 받아서 사업을 해왔다면 그에 걸맞는 연구업적과 학문적 성과가 가시적으로 도출되었어야 하며 이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졌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사립박물관이 정부로부터의 지원을 지속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지금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사립박물관들이 정부의 지원에만 전적으로 의존하지 말고 각자의 여건에서 최대한으로 자체 발전의 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 발전을 모색하는 노력이 없이 전적으로 정부의 지원에만 의존하는 박물관에서 우리는 박물관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박물관들은 정부로부터의 지원에 대한 투명한 집행과 이에 대한 기록, 그리고 정부의 지원과는 별도로 자체적으로 노력한 결과에 대한 기록들을 투명하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노력의 가시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보다도 사립박물관 개별관들이 한 해 동안 노력한 결과를 연례보고서를 통하여 관람객 대중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정부의 사립박물관에 대한 지원도 지금처럼 프로그램 사업에 일정액의 재정을 지원해주는 정도에 그치지 말고 박물관 운영의 사회적 의무감을 고취시키는 박물관 윤리에 대한 교육과 박물관 운영의 기술적 지원이나 경영과 마케팅에 대한 의식을 제고시키는 비금전적인 지원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재정 지원에 있어서도 무조건적인 지원이 아니라 해당 박물관이 사회에 기여하려 한다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그 노력에 대응하는 매칭펀드(matching fund)식 지원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현재 일부 사립박물관에서는 사업비나 인건비가 대 부분 정부지원에 의존되어 있고 자체적으로 사업비나 자체 고용된 인원이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립박물관들에 대한 이러한 개선방안과 발전방안은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하며 이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박물관들에 대해서는 한국박물관협회 차원에서 회계 관리나 경영과 마케팅에 관한 지원 등이 과도기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박물관 소장품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나 관장을 포함한 학예인력의 전문성을 제고하는 방법으로는 사립박물관이 소재한 지역의 교육기관이나 학술적 연구기관 등과 제휴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한국박물관협회 차원에서 지역의 교육기관이나 연구기관과 협력하여 사립박물관의 연구 성과와 전문성 등을 인정하는 자격인증제도를 만들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사립박물관은 그 인적, 물적 구성에 있어서 동질성이 떨어지는 편이다. 이것은 달리 말해서 다양성이 강하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학문적 성취의 수준이나 경영의 투명성 등에 있어서 상향적으로 수준차를 좁히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볼 수도 있다. 수준과 능력이 모자라는 박물관에 대해서는 충고와 질책이 필요할 수 있으며 의욕적으로 모범을 보이는 박물관에 대해서는 격려와 성원을 보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역할의 중심에는 한국박물관협회가 자리 잡고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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