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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운동장 전

하계훈


동대문운동장 전
2008.11.1 - 12.28 충무갤러리


장소성이란 특정 장소를 통해 인지되어 인간이 체험을 통해 애착을 느끼며 다른 공간과의 차별성과 고유성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동대문운동장은 이런 의미에서 서울의 오래된 명소로서 각별한 장소성을 갖는 곳 가운데 하나다. 인간의 경험을 통해 의미를 부여 받게 되는 일종의 경험재인 동대문운동장에 대한 시각적 기록을 통해서 사라진 역사적 장소성의 의미를 구현하여 집단의 기억을 되새김질하는 것을 목적으로 충무갤러리에서는 동대문운동장전을 개최하였다.

서울시의 중구청에서 운영을 관리하는 충무갤러리는 작년에 중구에 속한 황학동을 주제로 성공적인 기획공모전을 개최한 바 있으며 이러한 기획공모전의 연장선상에서 올해에는 동대문운동장을 주제로 선택하였다. 생각해보면 중구 관내에는 우리의 향수를 자극하는 곳이 적지 않다. 대중가요의 가사에도 등장하는 장충단 공원, 서울의 중심에 위치한 남산, 영화산업의 중심지로 오랜 전통을 유지해왔던 충무로 등이 행정구역상으로 중구에 속하니 앞으로 매년 이러한 지역을 주제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충무갤러리가 이러한 주제에 착안하여 기획공모전 형식으로 연례행사를 개최하는 것은 공익적 성격을 가진 미술 전시장이 수행하여야 하는 지역적 기여행위로서 적절하며 장려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충무갤러리가 올해의 기획공모전 주제로 선택한 동대문운동장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점령하고 있던 1926년에 당시 일본의 동궁(일왕 히로히토)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지었던 것이며 그 당시의 이름은 경성운동장이었다. 좀 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자리는 조선시대 도성을 경비하던 훈련도감이 위치해있던 곳이기도 하다. 그 계기가 무엇이었든간에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경기장이 된 동대문운동장의 탄생과 진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사건과 에피소드들은 시각예술의 소재로서 충분한 향수와 상상력을 제공해 줄 수 있다.

197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짜릿한 전율을 느끼게 해주는 ‘고교야구’의 스타를 만들어내고, 프로야구의 첫걸음이 시작된 곳이며 대통령배 축구나 씨름, 수영, 테니스 등의 경기가 벌어지던 동대문운동장은 지금 철거되어 새로운 공간으로 거듭나기 과정을 거치고 있는 중이다. 이번에 예심과 본심의 심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선정된 네 명의 작가와 한 팀(3명)은 이러한 역사를 가진 동대문운동장을 기억하고 그로부터 동대문운동장이라는 장소의 역사적, 사회적 의미를 찾고자 했다.
이번 전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형성된 동대문운동장의 장소성(場所性)을 보여주는 전시로 설정되었는데, 대상수상자 우상호는 빛과 어두움의 강한 대비로 동대문운동장의 역사적 명암을 인상적으로 담아냈다. 특히 물감을 반복적으로 칠하고 다시 갈아내는 과정을 통해 마치 나이테와 같은 시간의 축적이 함께 느껴지는 독특한 작품이었다.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경기를 영화포스터와 간판으로 패러디 한 김,강,박씨 팀의 경우 유화물감이 아닌 간판용 페인트를 사용한 점이 인상적이었으며 작가들 자신들이 실제로 이전에 영화관 간판을 그렸던 이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이채롭기도 하였다. 다양한 사진 테크닉을 구사하여 동대문운동장의 모습을 서정적으로 표현한 김영경, 동대문운동장과 인근 상가에서 수집된 사진이미지를 분석, 재구성하는 김문경의 작품 등이 높은 점수를 받아 우수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마지막으로 동대문운동장의 철거에 따른 사회적 의미와 파급효과를 설치작품으로 표현한 차지량의 작품도 인상적이었다. 스포츠 스타를 꿈꾸며 상경한 젊은이가 푸른 꿈을 접고 동대문운동장의 철거 작업 현장에서 자신의 꿈의 무대가 될 수도 있었던 공간을 부수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에 놓인다는 설정은 미술뿐 아니라 문학이나 공연예술의 이야기 줄거리로도 손색이 없다.

올해로 두 번째를 맞은 충무아트갤러리의 기획공모전은 주제의 설정을 전제로 공모하는 제한점을 지니는 면도 있지만 주어진 주제의 틀 안에서 독특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작가들이 있는 한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대안공간의 역할이 희미해지는 요즈음 충무갤러리의 공모전이 대안적인 기능을 일부 부담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는 바 우리 미술계의 다양한 상황 전개를 위해서도 이러한 형식의 전시가 좀 더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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