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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환

하계훈

작가 최수환은 빛을 연구한다. 작가에게 빛은 작품 표현의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다. 혹자는 빛이 공간의 형태로 자리 잡을 수 있고, 빛은 공간속의 입체적 그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빛이라는,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비(非)물질적(물론 물리학의 입장은 다르겠지만) 요소가 명암의 대비를 통해 마치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도 하고 이차원적인 물체로 보일 대상을 삼차원적인 것으로, 그리고 더 나아가서 정지된 것을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게 하는 일루전의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

최수환은 여러 해 전부터 자화상이나 손과 발 혹은 입술과 같은 자신의 신체 일부분, 그리고 사과나 나뭇잎, 정물 등을 수많은 작은 구멍으로 빛을 투과시키는 작업방식으로 표현해왔다. 그의 작업은 지극히 노동집약적이며 테크놀로지 의존적이라고 볼 수 있는데 오늘날 작가들이 표현수단이 크게 확장되었지만 어떠한 매체를 사용하더라도 작가의 손노동이 성실하게 적용되는 작품에 높은 평가를 내려야 한다는 생각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플렉시글라스(plexiglass)나 검은 종이에 서로 다른 크기의 수많은 구멍을 뚫어 이미지를 형성하고 라이트 박스처럼 제작된 공간을 이러한 이미지로 봉쇄함으로써 최수환의 작품에서 빛은 작가의 손에 의해 선택적이고 부분적으로 석방되는 셈이다. 또한 그의 작품에서 발산되는 빛은 플랙시글라스의 두께와 구멍의 크기에 따라, 정면과 측면에서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모양으로 감지된다. 이러한 체험에 의해서 관람자는 빛의 근본적인 속성에 다가갈 수 있는 감각적 체험을 할 수 있다.

작가는 이러한 빛의 속성을 빔(emptiness)이자 이미지라는 것을 관람자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이러한 작가의 생각은 정교하게 묘사된 액자 틀에 검게 드러나는 화면에 의해 빛이 이미지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는 검은 화면을 유발하는 근본 원인소일 수도 있다는 말해준다. 작가가 사용하고 있는 인공의 빛은 전원의 개폐와 투과의 가부에 따라 그 형체나 존재의 유무가 극명하게 변화하는 속성을 지닌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빛은 그 막대한 시각적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테크놀로지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측면도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눈에 보이는 빛을 체험하고 경험적으로 빛을 인지하며 더 나아가서 상징적으로 빛과 어둠을 해석한다. 심리적으로 우리는 빛을 생성과 생명, 긍정과 선의 상징으로 해석하며 이와 대척점에 있는 어둠을 소멸과 죽음, 부정, 악과 무지의 상징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최수환의 작품에서 종교적 선과 악이 대결하는 구도를 발견해보려는 시도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무색하게도 작가 최수환이 다루는 빛과 그 빛을 컨트롤하는 장치로서의 천공작업은 종교적 상징이나 도덕적 선악의 대비가 배제된 순수한 조형의 표현으로 제시된다. 작가의 빛에 대한 존재론적 사고와는 달리 그의 작품이 우리들에게 보이는 이미지는 지극히 세련된 중세 또는 근대의 장식적 문양으로 드러나며 마치 고딕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장미창과 같은 조형적 유사성을 보여준다.

최수환의 작품은 결국 대다수의 작가들이 캔버스에 물감을 가지고 이미지를 만들어가듯이 플랙시글라스나 검은 종이에 크고 작은 구멍을 연속적으로 그려나감으로써 이미지를 형성하고 그 이미지를 빛이라는 요소를 통해 완성시키는 과정을 밟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일반성에서 벗어나는 독특함을 가질 수 있는 한 편으로 미세하고 자유로운 표현에 있어서 한계가 있는 단점도 동시에 갖게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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