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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울가 / 자유와 시원(始原)의 아름다움

하계훈

평론가들 가운데에는 최울가의 그림을 캔버스 위에 그린 낙서화로 보는 시각이 있다. 마치 정규교육을 통해 터득한 조형 어법과 무관하게 어린 아이가 자유로운 표현으로 화면을 구성한 듯한 그의 작품은 현대 도시의 일상공간에서 발견할 수 있는 낙서화와 일정부분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건물 벽이나 도로 위의 구조물 등이 아닌 정통적인 캔버스에 아동화 또는 낙서형식을 담았다는 점에서는 좀 더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기도 하다.

최울가의 작품처럼 이렇게 도시 공간에서 즉흥적이고 자유롭게 표현되는 낙서 형식의 회화는 도시회화 또는 거리회화라고 불리기도 하며 작가의 서명이 없더라도 그 특징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독특한 표현이 나타나거나 작품 속에 반복되는 이미지가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 경우가 많으며 이러한 특징은 그 작가의 스타일을 브랜드화하는 형식으로 특징짓기도 하고 작가 활동의 공간적 영역 표시의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우리가 최울가의 작품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거기에서도 낙서처럼 보이는 이미지들 가운데 반복적으로 등장하여 작가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주변을 바느질한 듯하게 짧은 선으로 촘촘히 엮은 사각형의 색면과 이러한 색면이 조형적으로 메아리치듯이 조성되는 사각형의 몸통을 지닌 동물의 형상, 그리고 소용돌이 혹은 용수철처럼 감아 돌아가는 곡선의 반복 등이 그것이다. 그의 화면에는 일체의 회화적 일루전이 배제되어 있으며 소박하고 솔직하며 자유로운 표현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일찍이 평론가 윤범모는 최울가의 작품에서 직선과 곡선의 자유로운 리듬과 거기서 발생하는 내재율을 발견한 적이 있다.

도시에서의 낙서는 본래 사회비판적이고 선언적이거나 짓궂고 장난스러운 것들이 대부분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미지와 함께 텍스트가 동반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므로 이런 의미에서는 최울가의 이미지 중심의 화면은 본격적인 낙서화와는 일정부분 차이점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건물 벽이나 도로, 교통수단 등의 사물에 표현되는 낙서화에 비하여 캔버스라는 정형적인 재료를 표현의 장으로 삼는 점에서도 그의 작품은 도시화화 또는 거리회화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제도적 조형표현의 장으로 자신의 작업영역을 개척하는 시도를 발견할 수 있다. 다만 대부분의 이미지 표현에 있어서 낙서형식의 자유로움이나 즉흥적 표현 등에서 두 종류의 작품 사이의 유형적 유사성이 발견되기는 한다.
1960년대 미국 뉴욕의 브롱스에서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미국의 흑인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건물 벽이나 지하철 등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구호와 그림을 그리는 것에서 거리회화라고 불리기도 하는 그라피티라는 표현 형식이 탄생하였다. 뉴욕에서의 그라피티는 인종적 편견과 차별에 대한 저항의 표현과 도시 소외계층의 자기 정체성 상실감 같은 사회적 비판에 뿌리를 두었지만, 점차 그 표현 메시지가 확대되어 핵무기 개발 반대, 환경보호, 인권보호 등의 문제까지 그 주제 표현의 영역에 포함시키고 있으며 최근에는 소수 그룹이나 개인의 신변잡기적인 부분에까지 작품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의 유적이나 로마시대의 유적에서 볼 수 있으며 그라피티의 어원이 되기도 한 낙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는 그라피토(graffito)는 아이들이 그렸을 것처럼 엉성한 그림들이나 정치적 구호나 선언문의 키워드, 개인의 정서를 담은 문장의 한 구절 등이 담겨있어서 오늘날의 그라피티와 유사하였다. 다만 표현 재료의 미발달 상태에서 벽면을 긁어내거나 자연에서 채집되는 재료를 사용한 것이 오늘날의 뉴욕 그라피티와 다를 뿐이다. 그 옛날에도 건물 주인들은 건물 벽이 더럽혀지는 데 대해 골치를 앓았으며 낙서하는 자와 이를 막으려는 자의 숨바꼭질은 그 어느 인간행위의 역사보다도 긴 것이라고 생각된다.

미술에서의 그라피토(그라피티)는 오늘날의 공공시설에서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으며 형식의 자유로움과 즉흥적 표현 등에서 한 때 미술계에서 높은 관심을 끈 적도 있다. 최울가의 작품을 그라피티 또는 그라피토와 연관지어 해석한다면 그 유사성과 상이성이 동시에 발견될 것이다. 우선 유사성으로는 앞에서 이미 언급된 것처럼 형식상의 자유로움과 즉흥성, 이미지의 반복에 의한 작가와 작품의 브랜드화와 원근법이나 사실적 표현을 제거한 기본적인 색과 선에 의한 조형의 단순화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며 바탕색을 칠한 화면을 흰색으로 덮고 나서 그 화면을 긁어내면서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작업이 마치 그라피토를 연상시켜 준다.

이에 비하여 그라피토와 최울가의 작품 사이의 상이성으로는 무엇보다도 작가가 사용하는 캔버스와 유화물감이나 아크릴과 같은 재료의 정통성과 자유분방한 듯하면서도 전체 화면의 분위기를 통일시키고 조화롭게 구성하려는 구성의지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며, 거리회화에서 심심치 않게 나타나는 텍스트나 구호가 그의 화면에서는 부재하는 점 등이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최울가가 만들어내는 화면의 특징은 자유분방하고 즉흥적인 것 같으면서도 화면 전체로 볼 때 균형과 조화, 색선이나 색면 또는 색점들을 통한 색채의 대비가 잘 이루어져 한 화면 안에서 즉흥성과 구도가 적절하게 밸런스를 맞추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주로 빨강, 파랑, 노랑 등의 원색 선묘를 통해 드러나는 화면의 다양한 형상들은 국지적으로는 헝클어지고 혼잡스러울지 모르지만 전체적인 효과는 놀랍게도 꾀나 조화롭고 장식적이다.

이러한 의견과는 조금 다르게 일본의 미술평론가 나카하라 유스케는 최울가의 그림을 원시시대 동굴벽화와 비교하며 아나키(anarchy)적 혼란과 무질서한 성격을 지적하거나 코브라(Cobra) 그룹의 표현주의적 성격과 유사한 분위기를 지적하였다. 물론 그도 최울가의 근작에서는 어느 정도 질서와 기하학적 구성을 발견하고 있지만 그가 주로 착안하는 점은 최울가의 작품에서 보이는 원시성과 원시 동굴 벽화에서 나타나는 탈구도적인 표현들이다.

하지만 최울가의 작품이 아나키적 동굴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면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무엇보다도 화면 안에서의 이미지의 무분별한 중첩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며 화면 속의 여백에 대한 안배가 어느 정도 균형있게 이루어짐으로써 오히려 전체적인 조화와 질서가 반영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주제 면에서 최울가는 스스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젊은 시절의 조형적 탐구와 예술의 본질에 대한 천착에서 진화하여 자연과 인간의 존재론적 진실에 자신의 예술세계의 초점을 집중시켜 왔으며 오랜 시간 동안 파리와 뉴욕 등 타국에서의 생활에서 오는 자기정체성의 탐구와 조형세계에 있어서의 세계적 보편성의 추구 등이 화면에 은유적으로 담겨있는 듯하다.

그는 정신과 물질의 이분법적 대립을 극복하고 자연과 원시성에서 작가로서의 보편적 관심을 이끌어내고 있으며 이것을 형식화하는 방법으로서 지나치게 동양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다분히 서양적이지도 않은 형식으로서 인간의 원초성에 접근하는 아동이나 원시인들의 그림 같은 보편적으로 널리 인식될 수 있는 이미지들, 그리고 그러한 이미지들을 형상화하는 기본적인 색과 선, 그리고 형상으로 자신의 작품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실 최울가의 작품은 보기에 따라서는 페인팅이기보다는 드로잉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주로 선묘를 통하여 이미지를 표현하고 흰색이 주조를 이루는 화면에 약간의 색이 드러나거나 덧칠해지는 형식으로 구성되는 그의 화면은 형식의 구속을 벗어나 자유로우며 현대의 이미지를 생산하는 기술적인 집착을 떨쳐버림으로써 인간의 근원에 보다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현대미술의 양대 구심점이라고 할 수 있는 뉴욕과 파리의 미술계를 다년간 몸소 체험하고 두 도시와 서울을 잇는 삼각구도 속에서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조형어법을 통해 회화적 자유와 인간 시원의 본질을 추구하는 작업을 해 온 최울가의 작품에서 우리는 자유와 시원의 아름다움이 어우러지는 시각적 오케스트레이션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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