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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주

하계훈

고대와 중세에도 도시는 존재해왔지만 오늘날의 모습처럼 본격적인 도시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산업혁명이 가져다준 우리 생활 패러다임의 혁신적인 변화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기술 개발에 의한 생산력 증가, 교통수단의 발달과 시장의 확대는 인구의 도시집중을 가속화시켰다. 이러한 사회 변화 속에서 도시는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탄생하고, 자기증식을 통해 확장되고 성장하며 쇄락하고 소멸하는 순환의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도시의 특징은 인공적인(artificial) 것이다. 산촌의 주거 방식이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이 형성한 지형과 환경을 따라 이루어진다면, 자연의 대척점이라고 볼 수 있는 인공성이 도시의 특징을 이룬다는 것은 산허리를 관통하여 터널을 뚫거나 도로를 내고 언덕을 깎아 대단위 주거단지를 형성함으로써 자연의 실루엣을 변형시킨다든지, 하천의 깊이와 물길을 바꾸거나 그 위를 덮어씌워버리는 등의 도시 개발이라는 행위에서 잘 드러난다.

도시의 생활은 인간이 자연에 순응하는 삶의 패턴도 변화시켰다. 일몰 후의 일상이 인공조명에 의해 주간의 생활과 다름없게 되면서 도시인들의 수면 패턴을 변화시키고, 여름철에 겨울을 혹은 겨울철에 여름을 체험할 수 있는 인공적인 환경을 조성하기도 한다. 게다가 공간이동 수단의 다양화로 도시 공간 내에서 물리적 거리와 시간의 비례도 더 이상 절대적인 것이 되지 못한다. 이렇게 혼란스럽고 복잡한 도시에 모여드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자신들의 미래를 꿈꾸고 냉혹한 현실에 부딪치며 저마다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작가 이문주는 이러한 도시의 표정에 주목한다. 그런데 그녀가 관심을 갖는 도시의 모습은 발전과 성장의 과정을 지나 폐허 상태에 있거나 재개발을 앞둔 도시 공간의 풍경들이다. 작가는 활동 초기에 국내의 대표적인 재개발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 조사를 한 적이 있으며 미국 유학시절에는 디트로이트와 보스턴, 부르클린 지역에서 진행되던 도심개발의 과정에서 인종적, 정치경제적 소수자들의 공동체가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논리에 의해 해체되어가는 현장을 목격하기도 하였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큐멘타리 회화로 볼 수도 있는 이문주의 작품에는 목격자로서의 시각과 함께 멜랑콜리한 서정성을 느끼게 해주는 다소 우수에 찬 관찰자의 시각도 동시에 존재한다. 작가는 특정 장소가 재개발되는 과정을 수개월간 관찰하고 이러한 개발과 관련된 역사적, 사회적 의미를 연구하면서 작품을 준비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작가는 현장의 폐허 속에서 진행되는 마이크로코즘의 변화에도 주목한다. 거대한 건축물의 해체와 재건축이 이루어지는 장소에 바로 인접한 공터에서 작가는 흙더미에서 피어나는 잡초를 통해 우리의 전통산수나 서양의 풍경화의 한 장면을 연상하기도 한다.

작가의 화면은 재개발의 과정에서 버려진 잡다한 물건들이 널려있는 전경과 그 너머로 철거되어 가는 건축물의 모습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가는 화면에 부분적으로 현장의 사진을 콜라주하거나 실크스크린으로 표현한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폐허의 풍경을 묘사한다. 보통의 관점과 부감법적 시각으로 현장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그녀의 화면은 대부분의 경우 일반 가정이나 소규모 사무공간에서 소화시키기 어려울 정도로 대형화 되어 있어서 화면을 대하는 관람자가 보다 생생한 현장성을 느끼게 해준다.
이문주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체류를 기록하기도 한다. 한국에 있을 때 그녀는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도심의 재개발 현장에 주목하였고 미국에 유학할 때에는 그곳의 도시 재생 작업 현장에 주목하였다. 지난 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독일의 쿤스틀러하우스 베타니엔 국제스튜디오 프로그램 참가자로 이문주를 최종 선정하여 작가가 독일에 체류하였을 때에는 그녀의 작품에서 독일의 도시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진다.

이번 전시는 베타니엔 스튜디오에 다녀온 작가의 귀국 보고전 형식의 전시였다. 베타니엔 스튜디오는 독일 베를린에 있는 현대미술 작가들의 레지던스 스튜디오 공간으로서 1974년에 시작되었다. 지금 레지던스 공간으로 이용하는 고풍스런 성의 모습을 한 건물은 원래 병원으로 사용하였던 곳이며 지금은 주로 외국의 뛰어난 예술가들을 초빙해 창작환경을 지원하고 그들로부터 발현되는 예술적 상상력을 독일 예술계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베타니엔 국제스튜디오는 1년간 독일 및 외국 작가 25명에게 창작공간을 제공하고 전시 기회를 마련해주며 체류 기간 동안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작가들이 작업과정을 개방하고 각국 작가들과의 상호 교류를 통해 국제적 소통의 장을 펼치게 하는 데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작가들은 거의 모든 것이 무료로 제공되며 약간의 창작 보조금도 지급된다. 지금까지 30개국 600명 이상의 작가가 거쳐 간 이 프로그램은 공동 후원자인 각 국의 정부나 재단의 후원과 결합하여 운영되며, 우리나라에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2005년부터 후원자로 참여하고 있는데 이문주는 2007년도 한 해 동안 이 프로그램에 참가 작가로 선정되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은 주로 베를린의 정치사회적 변화를 함축한 두 개의 공사 현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마치 종교적 장면들을 담던 세 폭 제단화 형식으로 펼쳐진 대형 화면 속에 반쯤 철거된 모습으로 묘사된 건물은 자본주의 사회와 역사적 이데올로기로 대체되는 오늘날의 종교화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독일 통신회사에 의해 재개발되는 건축 현장과 구동독의 정치적 상징성을 제거하기 위하여 실시되는 철거작업이 인접한 장소에서 거의 동시에 진행되면서 그 과정에서 형성되는 광경들을 수개월간 관찰한 작가는 상업화와 결부된 재개발의 빠른 속도와 이데올로기 문제가 결부된 재개발의 또 다른 현상 사이의 대조적임 모습을 대형 화면을 통해 기록하고 있다.

작가의 말처럼 한 쪽에서는 오락과 소비의 궁전을 짓고 있고 다른 한 쪽에서는 공화국 궁전이라는 정치적 역사를 지우고 그 이전 시대 궁전의 복제물을 세우려는 정 반대 문맥의 두 재개발 장소를 기록하는 장면들이 콜라주와 실크스크린, 그리고 이러한 바탕 위에 아크릴 채색으로 표현된 이문주의 화면을 통해 독일의 역사와 사회가 생생하게, 그러면서도 이 문제가 독일의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 보편적인 도시의 개발에 함축된 은유적 의미로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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