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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하계훈

서양미술사에서 빈센트 반 고흐만큼 널리 알려진 화가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미술사에 대해서 깊이 연구하지 않았더라도 반 고흐를 대상으로 한 영화나 소설, 또는 전기를 통해 우리는 그의 생애의 드라마틱한 순간들을 대부분 알고 있다. 젊은 시절의 실연과 좌절, 성공하지 못한 한때의 종교적 헌신, 그 후에 발견한 미술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열정과 그로 인해 짊어지게 되는 삶의 무거운 짐과 서서히 소모되어가는 한 인간의 영혼. 그리고 마침내 폭발한 자괴감으로 자신의 귀를 자르고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고독한 예술가가 결국 파리 근교의 들녘에서 권총으로 자살하여 37살이라는 짧은 생을 마감하는 스토리는 하나의 소설, 하나의 영화 시나리오로도 손색이 없는 것이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반 고흐전은 이렇게 짧은 생을 불태웠던 반 고흐의 북유럽 시절의 초기작에서부터 남프랑스의 아를르를 거쳐 오베르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말기작에 이르기까지 반 고흐의 10년 남짓한 창작과정의 변천을 비교적 골고루 보여주는 비중 있는 전시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시기에 이미 관람객 30만 명을 돌파하였다고 하니 그 대중적 인기는 가히 짐작한 대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반 고흐에 열광하는 것일까? 반 고흐전이 불러들이는 관람객 30만 명이라는 숫자는 서울시립미술관이나 이와 비슷한 규모의 지방의 공공미술관이 상설전과 일반 기획전을 통해 유치하는 한 해 동안의 방문객 숫자와 맞먹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과 한달 반만에 일년치 관람객을 끌어들이는 이 전시의 흡입력은 무엇일까? 혹자는 반 고흐 작품의 가식 없는 직설적 소박성이 주는 매력 때문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그의 생애를 둘러싼 드라마틱한 신화가 그 요인이라고 하기도 한다. 미술외적인 또 다른 견해는 그저 브랜드화된 문화상품을 쫓는 대세에 동참하려는 군중심리에서 오는 얄팍한 문화의식이라는 비판도 있다.
이유가 어디에 있건 간에 우리 주변의 많은 일반 대중은 반 고흐의 작품을 보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미술관을 찾고 긴 대기 행렬 속에서 장시간을 기다리고 나서 그의 작품과 마주하여 감격을 맛보게 된다. 서울시립미술관의 2층과 3층 전시실을 이용해서 유화 45점과 드로잉 22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열리는 반 고흐의 대규모 전시라는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며 이제까지 열렸던 대부분의 블록버스터 전시의 내용 빈약한 과대포장 논란을 어느 정도 피해갈 수 있을 정도로 전시 작품의 내용과 함량이 양호한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전시를 주관하는 기획사 측에서도 지나친 상업적 기획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하여 소외계층의 관람객을 무료로 초청하는 공익적 기여를 하고 있는 점은 수년간의 블록버스터 전시의 진화 과정이 조금씩이나마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주최측에서는 언론 홍보 보도자료를 통하여 이번 전시의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는데 그 초점은 국내 최초로 반 고흐 작품을 대규모로 준비한 전시라는 것과 천문학적인 액수의 보험가액이 말해주는 작품의 금전적 가치다. 말하자면 아직도 상업적 대규모 전시가 기본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상업성과 대중적인 호기심에 호소하는 홍보전략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제까지 30만이 넘는 숫자의 관람객이 몰려오는 전시에서 대중적 흥미를 끌 요소가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을 것이며 이러한 전시에서 지나치게 학문적 완성도를 요구하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는 반 고흐의 화가로서의 마지막 10년 동안의 삶을 반영하는 작품들이 시간 순으로 나열되었으며 전시의 끝부분에 작가의 초기 드로잉 22점이 제시되는 방식으로 전시장을 꾸며놓고 있다. 기획자를 도와주려 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반 고흐는 생전에 짧은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작업을 하였으며 몇 군데 거처를 옮길 때마다 작품의 변화와 발전을 보여주어서 사후에 그의 작품 전시를 디자인하는 사람들에게 별로 어려움을 주지 않고 있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들 가운데 대부분은 이미 우리가 도판이나 복제 이미지를 통하여 익숙히 알고 있는 작품들인데 진작을 직접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 가운데 특징적인 작품으로는 주최측에서 반 고흐의 5대 명작에 드는 작품이라고 소개하는 파리 시기의 자화상과 <아이리스> 이외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초기작 <베틀과 방직공>, 파리시기에 몽티첼리의 영향을 받아 여러 점을 그린 꽃병 정물화들, 파리에서 인상파 화가들의 화법을 열심히 연구한 흔적이 담겨있는 풍경화와 정물화, 그리고 밀레의 영향을 받은 아를르 시기의 <씨뿌리는 사람>, 고갱과의 불행한 동거 이후에 다시 화해의 제스처를 전하기 위하여 그렸던 <프로방스의 시골길 야경> 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반 고흐의 높은 인지도 때문에 이번 전시는 전시 종료 기점까지 사상 최대의 관람객을 유치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러한 물리적 성공에 비하여 정작 시립미술관의 주인인 큐레이터들의 역할은 초라하기 그지없으며 30만이 넘게 관람하는 전시의 준비과정을 정부나 공공미술관이 주도하지 못함으로써 막대한 대여료를 지불한다든가, 정부보증제도를 도입하지 못하여 막대한 보험료를 지불할 수밖에 없는 실정은 향후 개선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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