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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Pop

하계훈

베트남과 대한민국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상호교류가 그리 많았다고 보기 어렵다. 아무래도 교통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으니 중국이나 일본처럼 인접한 나라만큼 교류가 빈번하지 않았던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굳이 양국간의 관련성을 찾기 위하여 좀 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 연관성은 13세기 초 베트남의 몰락한 리(李) 왕조의 왕자 가운데 한 사람이 배를 타고 자기 나라를 탈출하여 황해도 옹진군 화산면에 도착해서 우리나라의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정도일 것이다.

만일 미군이 베트남의 공산화를 막겠다는 목적으로 사이공을 거점으로 베트남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그리고 공산 베트남군의 저항이 그렇게 끈질기지 않았다면, 그래서 점점 커지는 미국 병력의 손실을 대체하기 위하여 한국군을 대신 투입할 것을 요청하지 않았다면 20세기에 들어서 우리나라와 베트남과는 살상과 파괴, 혼혈과 원망 등의 현대사의 질곡을 나누지 않았을 것이며, 세계평화라든가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라는 추상적이고 허망한 명분의 대가로 5천명의 한국 젊은이가 전혀 연고가 없는 낯선 땅에서 목숨을 잃지도 않았을 것이고, 고엽제의 후유증때문에 고생하는 월남전 참전용사들의 고통도, 일부 참전 용사들의 전투중 잔혹행위에 대한 참회와 번민도 없었을 것이다.

어느덧 시간은 흘렀고 베트남의 전후 세대는 이런 기억이 별로 없이 ‘한류’라는 이름으로 몰려오는 한국 대중음악과 드라마에 열광하였고, 젊은이들 사이에 한국은 기회의 땅이 되어 산업연수생, 농촌 총각의 신부로 우리나라에 몰려들어왔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도 베트남으로 가서 생산시설을 만들었고 병원과 학교를 지어주었고, 골프도 치고 유흥업소에서 베트남 젊은 여성을 돈으로 사다가 베트남 당국에 체포되어 추방되기도 했다.
이번에 아르코미술관에서 개최한 <트랜스pop>전은 이처럼 한국과 베트남 양국이 안고 있는 현대사에서의 트라우마와 최근에 벌어지는 경제 주도형 사회 전개에서 오는 자기정체성의 문제, 전통과 현대의 긴장관계, 그리고 두 나라의 국민들이 미국이라는 나라를 매개로 조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아가는 디아스포라의 문제를 다층적으로 검토하려는 그룹전이었다.

앞에서 간단하게 살펴본 것처럼 한국과 베트남의 현대사에서의 악연은 미술뿐 아니라 영화, 문학 등의 장르에서도 강렬한 주제를 제공해준다. 전쟁이 있었고, 인명의 대량 살상이 있었고, 이산(離散)이 있었고 원수처럼 싸우던 두 진영간의 경제적 타협과 제휴에 따르는 새로운 교류가 있었으니 참으로 좋은 소재인 셈인 것이다.

주최측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번 전시는 한국, 베트남, 미국 출신의 작가 16명(팀)이 함께 어우러지는 역동적인 무대로서 한국과 베트남을 결합하는 역사적, 동시대적 연결고리를 다각적으로 제시하려고 했던 것 같다. 이러한 시각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오래 동안 생활해 온 한국출신의 기획자와 베트남 출신의 기획자의 조우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들은 고국을 떠나 먼 나라에서 (미국을 상징하는) 부대찌게를 나누어 먹으며 이번 전시의 컨셉을 발전시켰다고 한다.
평면회화와 입체, 사진과 영상 등으로 다양하게 제시된 작품들은 양국 사이의 상관성을 담은 주제를 다루기도 하고 한 나라의 사회적, 역사적 주제를 부각시키기도 한다. 베트남과 한국이 공통적으로 갖는 경험과 정서는 유교적 사회라는 점과 가족애를 중시하는 사회 작동의 체계, 그리고 외부 세력이 개입한 상태에서 내전을 겪은 경험과 상처,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국과 어떠한 형태로든 관련을 맺으며 현대사를 엮어왔다는 점이다.

미국은 베트남과 한국에 군사적으로 개입했고 하나는 성공적으로 그리고 다른 하나는 치욕적으로 전쟁을 마감하였고 전쟁이 종료된 뒤에는 두 나라의 전후 세대에게 팝문화를 이식시켰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한류나 베트남 팝문화의 스승은 미국의 팝문화인 셈이다.

이처럼 베트남과 한국은 미국을 매개로 현대 사회를 전개하면서 적지 않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좀 더 세밀히 살펴보면 한국과 베트남 사이의 역사적, 문화적 공통점과 최근에 와서 대중문화를 매개로 한 상호교류가 빈번함에도 불구하고 디아스포라(離散)의 문제에 있어서는 양국 교민들의 배경과 입장이 다를 수 있는데 이점까지 끌어들이다 보니 주제가 다소 산만해진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양국의 교민들은 미국에 의해서 내나라를 떠나 살게 되었지만 적어도 한인 교포들은 보트피플은 아니었다. 비록 그들이 무슨 이유에서건 미국 때문에 그곳이 살게 되었고 둘 다 비슷한 대접을 받는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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