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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하계훈

이번에 전시된 김태호의 작업은 반복된 물감층 쌓기와 그렇게 하여 축적된 물감층 긁어내기라는 상반되면서도 고도의 수공(手功)적 노력을 요구하는 작업을 통해 형성된 작품들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연작을 중심으로 활동해 온 작가는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강가의 퇴적층과 같은 지층을 형성하도록 반복적으로 물감을 칠하여 두껍게 쌓아올린 물감 층을 끌칼을 이용해서 수직과 수평의 방향으로 깎아낸 대형 캔버스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보통 스무 가지 이상의 층을 이루는 물감의 단층이 부분적으로 속살을 드러내듯이 지표층 아래쪽의 구조를 드러나면서 다양한 색으로 이루어진 동심원이나 나이테 모양을 형성하기도 하고 자연에서 우연히 발견할 수 있는 유기적인 형상을 띠기도 하여 보색의 대비에 의해 색채의 스파크가 일어나는 것같이 화면에 전개되는 색채의 미묘한 울림과 리듬이 캔버스를 전체를 뒤덮게 된다.

대형 캔버스에 수평과 수직으로 그리드를 형성하는 단색조의 모노크롬 화면을 기본으로 하는 김태호의 작품에서는 역설적이게도 많은 이야기들과 움직임들을 읽어낼 수 있다. 멀리서 바라보는 작가의 작품은 관람자의 망막에서 하나의 색으로 읽혀지지만 작품에 다가가서 자세히 화면을 들여다보면 수없이 쌓아 올린 물감 층의 두께와 세부의 미묘한 조형적 변형을 읽을 수 있다. 조그만 격자 형태로 화면을 설정하고 그 형태를 따라 반복적으로 물감을 쌓아 올리다 보면 화면에는 마치 벌집과 같은 곤충들의 서식지나 달 표면의 분화구와 같은 작은 구멍이 수없이 생겨나고 그러한 미세한 구조의 반복에 의해 규칙적인 리듬을 만들어 낸다. 여기에 오묘한 색채의 변주가 더해지면 화면은 단순한 모노크롬 회화에서 벗어나 치밀한 구성으로 관람자들이 생명의 리듬감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태어난 작품을 작가는 내재율(internal rhythm)라고 명명하고 있다. 격자형의 구조와 물감층의 오묘한 변주를 통해 소우주를 형상화해 낸 작가는 화면을 가득 메우는 이러한 구조의 반복에서 시간과 공간의 끝없는 윤회와 순환을 겪어가는 인간 개개인의 삶과 내면의 울림을 표현해 내고자 한다. 규칙적인 반복을 통해 전체가 하나가 되는 통합과 그 속에서 미묘한 대비와 조화를 이루는 김태호의 작품 속에는 예술적 고행의 진지함과 우주를 관조하는 격조를 통해 미술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작가의 내면세계가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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