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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 전

하계훈

도시는 인류 진화과정의 정점에서 속도와 효율성을 자랑하며 경쟁적으로 미래를 향한 발전을 추구한다. 지리적으로도 도시는 중심성을 띠고 주변의 인력과 자본, 에너지를 집중시키며 활력과 생동감을 키워 나아간다. 도시는 스스로 세포증식하여 몸집을 불려가거나 마치 물방울의 표면장력처럼 커다란 도시가 인접한 소형 도시를 빨아들여 거대 광역도시로 성장하기도 한다. 이렇게 도시는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거대화되어가며 우리의 의식과 생활방식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도시의 마이크로 세계를 들여다보면 많은 개체의 다양한 운동과 복잡미묘한 생태계가 포착된다.

1970년대 이후 급속하게 도시화가 진행된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진화해 온 도시를 관찰하는 작가들이 적지 않다. 김준기는 이러한 도시를 거닐며 도시를 구성하는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는 현대식 건물의 유리창과 거울을 매개로 생성되는 반사와 투영의 이미지들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작업에 응용하고 있다. 작가 스스로의 언급처럼 개인 차량을 이용하지 않고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거나 도시를 거닐면서 시각적 촉수를 예민하게 유지함으로써 순간적으로 포착되는 이미지들을 작품으로 끌어들이는 그의 화면에는 거대도시의 전형적인 상징이 드러나기도 하고 때로는 그 도시의 이면의 소소한 모습이 인상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도시 안에서 생활하며 작품의 모티브를 사냥하면서도 작가는 도시를 ‘낯선’ 곳으로 규정한다. 김준기에게 도시는 자신의 창작의 근거지이자 내 생활과 내 의식의 일부분이면서도 자아가 아니라 관찰과 분석의 대상으로서의 객체화된 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의 작품의 특징은 지극히 평범한 시선으로 바라본 도시의 단상이 화면에 중첩되어 다층적 이미지의 하모니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화면을 구성하기 위하여 밀러잉크나 세라믹 잉크 등을 사용한 인화기법을 구사하여 거울 위에 화면을 만들어낸 다음, 그 위에 유리를 밀착시켜 덧씌우는 작업을 한다. 거울은 원래 자아성찰의 도구이면서 허영의 상징이었으나 김준기에게 거울은 자아와 대상을 비추는 장이며 실제와 그 허상으로서의 그림자, 그리고 다시 그 허상의 반사와 중첩이 이루어지는 다중적 의미와 관계를 형성시켜주는 장으로서 인식되고 있다.
김준기 작품처럼 도시의 단상을 포착하는 사진이나 회화는 범람이라는 표현이 가능할 정도로 많은 것이 다실이다. 그 안에서 김준기의 작품은 재료적 차별성과 함께 몇 가지 특징을 드러낸다. 우선 그의 작품 속의 인물이나 오브제들은 관람객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도시의 익명성과 단절 등의 감정이 잘 드러난다. 또한 그의 작품에서는 많은 경우 급격한 원근법적 사선 구도가 두 가지 이상 상호 침투하여 화면의 운동감과 깊이감을 자아낸다. 이러한 표현 역시 도시의 속도감이나 공간감을 표현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여기에 가끔씩 등장하는 가로수와 소량의 조경 식물들은 도시의 삭막함과 목마름을 적절히 강조해준다고 생각된다.
김준기의 화면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평범하고 사실적이며, 걷거나 차를 타고 지나가면 순간적으로 포착된 듯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한 이미지에서 작가는 자신이 속한 공간의 의미와 존재감을 확인하고 자신을 그 속에 투영시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이러한 이미지들을 통해 거창한 사회적 혹은 역사적 비판이나 분석을 제시하지 않으며 당대의 사회현상에 대한 본격적인 해부와 의미부여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자신에게 순간적으로 다가온 이미지들을 중첩시켜 구성된 화면 안에서 존재 간의 관계와 사고에 주목하고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자의 입장에 따라 가변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열려진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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