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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예보전 이영기

하계훈

이영기가 주로 다루는 한지와 먹은 서양적 재료인 종이나 캔버스, 그리고 아크릴이나 유화 물감과는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도 한지와 먹의 특성 가운데에는 스밈이라는 성질이 있고, 그러한 특성은 작가로 하여금 대상이나 사유에 관한 직관적 접근을 용이하게 해주는 면이 있다. 이영기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대상의 표현에 있어서 무작위성과 자발성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작품이 철저하게 해체적이고 추상적이라고 보기보다는 최소한도일지라도 어느 정도 구상성을 견지하고 있음도 함께 지적되어야 하며 그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최소화되어 있기에 더욱 의미심장하게 읽히기도 한다.

개념과 사유가 조형을 압도하는 작가일수록 관람자와의 소통과 자기 설명적 표현에 성공할 가능성은 낮아진다. 이영기 역시 자신의 작업의 역사를 통해 스스로 기존의 진행방향으로의 전개에 대한 당위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일반적인 관람자로서는 작가가 제시하는 작품들의 전후관계 맥락 잊기를 쉽게 이루어내기가 어려우며 제시하는 메시지와는 다르게 오독(誤讀)될 개연성도 농후하다. 따라서 이영기와 같은 작가의 작품은 이미지로 접근하기보다는 작가의 직접적인 언술과 오랜 교류를 거쳐 일어나는 선문답식의 암묵적 소통이 더욱 유효할 지도 모른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 가운데 은 연속된 화면의 연결을 통해 존재의 생물학적 진화를 보여주는 듯한 형상이 중립적 배경 위에 절제된 조형으로 표현되어 있다. 작년 금호미술관에서 열렸던 자신의 개인전 도록에서 작가는 이 작품에 덧붙여 장자의 이야기를 첨부하였다. 그의 글은 회화적 진실 탐구에 대한 갈망과 일상 속의 현상에 대한 초월적인 이해의 경지를 희구하는 작가의 정신적 태도, 그리고 작가가 처해 있는 이미지와 정보의 홍수시대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느껴지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인식이라든지 깨달음의 과정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이영기가 쉽게 소통의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절제된 화면을 구성하고 있지만 작가는 결국 이러한 자신의 상황에서 작품 제목처럼 크게 소리쳐보고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함께 출품된 은 보다 전형적인 한국화적 특성을 보여준다. 원래 작가는 같은 제목을 가진 두 점의 작품이 한 조로 전시되기를 희망하였지만 전시 공간의 사정상 한 작품만 전시된 점은 작가로서도 아쉬웠던 것 같다. 작가는 굵기가 다른 먹선으로 정확하게 형체를 알아볼 수는 없지만 뭔가를 연상시키는 듯한 형태를 화면 양편에 배치하고 있다. 화면의 왼편에는 거대하게 축조된 구조물이나 혹은 건물이나 선박 등을 연상시키는 형태가 표현되어 있고 화면의 오른편에는 일종의 유기적인 생명체로 여겨지는 형태가 굵은 선과 얄은 선, 그리고 이러한 형상을 중심으로 주변의 삼각형의 세 꼭지점 위치에 작은 원형이 표현되어 있다. 화면에는 먹선 이외에도 농도를 달리하며 약간의 색이 가미된 선들이 먹선의 울림을 보여주는 듯하게 표현되어 있다. 작품의 제목과 함께 화면을 연관시켜 볼 때 작가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인공적인 것과 자연, 예술성과 시장성, 등 무한히 열거될 수 있는 두 대립항 사이에서 자기 균형을 유지하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환원적 형상을 다루는 작가의 내면에서 진행되는 복합적 정신활동을 화면에 드러나는 조형만을 가지고 읽어내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소통을 전제로 작품을 전시하는 상황에서 상호소통의 한 축을 차지하는 관람자의 입장에서는 작가가 제시하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받지 못하는 경우에 추측과 연상이라는 대안적 수단을 발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 보이는 것과 함께 보이지 않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읽어보려는 관람자의 시도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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