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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예보전 정진용

하계훈

정진용의 최근 작품들의 단초는 몇 해 전 세상을 떠나신 할머니에 대해 손자로서의 도리를 소홀히 했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죄책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할머니의 장례미사가 거행된 성당의 분위기로부터 오는 무언가 묘한 느낌을 주는 정신성과 종교성에서 출발하여 성당 내부 장면을 묘사한 정진용의 작품에서는 엄숙하고 장엄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에 대한 상상과 탐구는 계속해서 실외로도 이어진다.

한국화를 전공한 정진용은 자신의 작품에 대하여 열린 사고를 가지고 부단히 형식실험을 추구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성당 공간체험에서 느낀 개인적인 추억이면서 인간의 보편적인 감성일 수도 있는 일종의 경외심은 작가가 무심코 발견한 비행기 창밖으로 보이는 부감법적인 도시의 모습에서 다시 초월적 존재의 시각을 느끼게 되고, 그것이 가상도시라는 주제의 작업으로 탄생하게 된다.

급하게 중앙의 소실점으로 수렴하는 강한 원근법적 공간구성과 먹을 중심으로 한 강렬한 흑백의 대비, 거기에 미세한 구슬이 표면에 가미된 후의 마무리 단계에서 사용되는 다소 이질적인 재료라고 볼 수도 있는 아크릴의 절제된 적용, 그리고 일차적으로 완성된 화면을 작은 유리구슬로 덮음으로써 한국화의 전통성에 모던한 감각을 덧씌우는 표현으로 인해 정진용의 작품은 일부의 전통적 한국화 세계로부터 국외자 취급을 받을지는 모르지만 현대성과 국제적 보편성을 함께 획득해나가고 있다.

이번에 출품된 <가상도시>는 비행기 기내에서 내려다 본 도시의 풍경을 현실성을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하여 구성한 작품으로서 앞선 성당내부의 표현과 마찬가지로 웅장함과 스케일에 있어서 우리의 시각을 압도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먹의 적절한 번짐 상태로 표현되는 도시의 광활한 모습이 인상적이며, 작품의 규격이 갖는 파노라마적 화면전개와 중앙 집중과 좌우 대칭의 엄격함에서 오는 무게감이 정진용의 작품을 지배한다. 작가는 이러한 작품을 통해 우리 삶 주변에 존재하는 공간에 대한 탐구를 지속해가며 자신이 관찰하고 재해석한 공간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과 해석을 시도하고 우리의 명상과 상상력을 새롭게 자극하도록 해주고 있다.

정진용은 우리의 전통적 회화 재료인 먹과 한지를 이용하여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도시라는 공간의 인상을 흑백의 대비로 표현하고 있으며 최종적인 화면에서는 미세한 유리구슬이 투명물감처럼 붓질의 흔적을 남기며 회화 표면에 입혀짐으로써 장중하면서도 신비한 느낌을 자아내게 만들어 준다. 작품 표면을 덮고 있는 유리구슬들의 난반사 현상은 작품에 비춰지는 조명의 양과 각도에 따라 작품의 인상을 달리하면서 화면의 장중함과 함께 오묘한 신비감을 자아낼 뿐만 아니라 화면 속 가상도시에서 명멸하는 수많은 도시의 불빛들의 입체적인 느낌을 전해주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

함께 출품된 작품으로서 중국 자금성의 야경을 하늘에서 내려다 본 듯한 경관이 펼쳐지는 <군(君)>은 중국 황제의 거처였던 초대형 궁궐이라는 장중한 공간에 대한 작가의 은유적 해석을 보여준다. 화면 중앙에 우뚝 선 자금성과 그 성을 둘러싼 상상 속의 주변의 일반 가옥들이 마치 황제를 호위하며 새벽 어스름을 뚫고 침공해오는 수많은 군사들의 실루엣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화면은 작가의 상상에 의해 이루어진 공간이며 작가는 현실에서는 바라볼 수 없는 정중앙의 높은 시점에서 정면으로 웅장한 궁성을 마주대하고 있는 셈이다. 말하자면 작가는 이러한 과거의 황제의 막강 권력의 상징과도 당당히 맞서는 자신감과 초월적 시각을 갖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토록 막강했던 권력과 힘이 작은 유리구슬 입자 아래 갇혀 있는 듯한 표현으로 인해 오늘날 박제된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됨으로써 일종의 역사적 아이러니와 권력의 무상함도 읽을 수 있게 해준다. 작가의 시각과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된 이러한 역사 속의 공간은 관람자들에게 실재와 상상의 경계를 오가며 신선한 시각적 체험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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