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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스케 시로타

하계훈

사진과 회화를 한 화면에 도입한 도시풍경을 주로 묘사하는 케이스케 시로타의 작품에서는 특별히 웅장하거나 위압적인 낭만주의적 풍경보다는 그저 평범하게 스쳐가는 일상의 한 순간을 표현한 듯한 표정들이 마치 스냅 사진처럼 전개된다. 따라서 그의 작품들은 보는 이들의 눈을 부담스럽지 않게 하면서 비교적 편안하게 작품에 접근하게 해준다. 그가 화면 속에서 묘사하는 대상은 우리의 생활공간 가운데 일상적으로 접하게 되는 지하철 승강장이나 지하도 혹은 도시 고가도로, 상점들이 늘어선 거리와 어느 동네 입구의 모습 등 대부분이 우리에게 낯익은 곳들이다.

작가는 이러한 장소를 앞에 두고 구도나 주제를 의식하지 않고 우연하게 찍은 사진을 캔버스 한 부분에 붙이고 그 주위를 기억과 상상에 의존하여 아크릴 물감으로 그려나가는 작업을 더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컬러 사진의 연장된 부분을 흑백으로 처리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전체 화면은 사진 부분을 중심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무대처럼 드러나고 마치 기억 속의 한 장면을 연극적으로 연출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2004년에 첫 개인전을 갖고 그 이듬해부터 일본 현대미술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케이스케 시로타는 지난 여름 서울에 머물면서 촬영한 사진들과 동경에서 촬영한 사진들을 중심으로 두 도시의 낯과 밤의 풍경들을 보여주고 있다. 카메라를 통해 ‘본 것’과 그것의 주변에 대해서 ‘기억하는 것’을 한 화면 안에 오버랩시키는 기법을 통해 그는 회화와 사진의 합성, 기억과 현실의 혼합을 만들어낸다.

도시생활에 익숙한 젊은 작가답게 시로타의 작품은 도시의 이곳저곳의 모습을 마치 달리는 차안에서 순간적으로 포착한 사진처럼 형상이 초점을 잃고 흘러가듯이 채집된다. 이러한 도시의 표정을 화면의 한 지점에 자리 잡게 해놓고 작가는 그 주위를 사진화면으로부터 연장하여 하나의 통일된 공간으로 확대시킨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사진과 캔버스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시각적 수단으로서 투시 원근법적 구도에서 발생하는 사선들을 사진의 경계 밖으로 연장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소실점을 향하여 빠르게 흐르는 사선들은 우리가 사진과 그림의 경계를 의식하지 못하게 만들면서 형식상으로 화면에 일종의 운동감과 속도감을 부여한다.

몇 해 전 작가는 회화로 사진의 내용을 바꾸는 자신의 작업에 대하여 ‘기억의 현존의 부정확함을 배우는 행위’라고 스스로 고백하고 이러한 작업에 의해서 확장되는 화면이야말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창조해내는 것이라고 했다. 우연히 발견한 한 장의 사진에서 작가는 향수를 느끼기도 하고 언젠가 스쳐간 것 같은 그곳에 대한 아련함이나 까마득하고 가물가물하는 기억을 애써 떠올려보려고도 할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사진은 창작의 대상이기보다는 응시의 대상이자 기억의 단초이며 최종 창작물을 위한 중간재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시로타의 작품 가운데에는 서로 다른 두 지점을 포착한 사진이 한 화면 안에 나란히 배치되고 그 주변 공간이 회화적 기법으로 연장된 작품이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서로 다른 장소와 시간을 한 화면 안에 융합시킴으로써 관람자의 무의식적인 기억을 자극하거나 낯선 시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이상한 경험을 하게 만든다. 논리적으로 한 공간에 존재할 수 없는 장소와 시간을 하나로 만들어서 우리들에게 제시함으로써 작가는 우리의 기억 속의 한 시점과 지점을 새로운 틀 안에 <지금> <여기>로 융합하여 새로운 시공을 체험하게 만들어 준다. 결국 시로타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제시하는 화면속의 공간은 사진에 의해 포착된 과거 어느 시점의 사실적인 장소이면서, 그 장소는 작가의 기억에 의해 확장되고 변형되거나 때로는 시공을 초월하여 제시됨으로써 우리의 향수와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하고 새로운 차원의 물리적 시공개념을 체험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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