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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정책 개선을 위한 제안

하계훈


행정자치부 장관께


안녕하십니까? 서울아트가이드 편집자로부터 우리나라의 미술관 정책에 관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무슨 말을 쓸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렇게 글을 드립니다. 우리나라 미술관에 관한 정책을 왜 행정자치부에다 대고 이야기하는지 의아해 하실지 모르겠지만, 일단 계속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70개 정도의 크고 작은 공사립미술관이 전국에 설립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이러한 미술관들의 운영이 공립은 공립대로 그리고 사립은 사립대로 그리 만족스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전문 인력의 활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국립미술관을 운영하는 인력은 백 명이 좀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나마 그 숫자 가운데 정작 중요한 인력이라고 할 수 있는 학예연구 인력은 스무 명도 안 되는 실정입니다. 게다가 그 가운데 일부는 안정적 고용이 보장되는 정규직이 아니라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술관은 미술품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 국민들에게 학문적, 여가적 문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입니다. 따라서 그 중심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은 미술품을 전문으로 연구해온 사람이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군요. 국립현대미술관의 인적 구조에서 보는 것처럼 정작 미술관의 중심 인력이라 할 수 있는 학예직원은 스무 명도 안 되는 반면에 일반 행정직원들은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술관을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학예직원을 비롯한 미술관련 전문직원들이 중심이 되고 이들을 행정 분야에서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행정직원의 자리 가운데 상당 부분을 학예직원의 자리로 만들고 정작 일반 단순행정이나 회계지원 등의 수는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일반 기업에서는 급여나 시설관리, 단순 행정과 같은 업무는 담당부서를 폐지하고 외부의 전문회사에 그 업무를 대행시키는 사례도 있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국공립미술관의 조직구조를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미술관 정책 개선을 위한 제안

듣자하니 지난 8월부터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위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되었다고 합니다. 미술관이 책임운영기관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관장이 정부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미술관의 운영목표를 설정한 뒤에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직원들과 함께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관장 이하 전 직원의 협력이 중요하며 관장은 당연히 전 직원에 관한 인사권을 포함한 지휘권한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절반이상의 직원들에 대한 인사권도 없이 관장이 이들을 지휘하여 사업을 펼쳐 나아가야 한다니 이것은 반쪽짜리 책임운영기관 제도에 불과합니다. 제대로 된 책임운영기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관장에게 인사, 재정, 조직구성의 권한을 주고난 뒤에 그의 업무수행 결과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공무원의 정원 조정이나 기관의 조직구성에 관한 실질적인 권한은 행정자치부에 있지 않습니까?

지금의 미술관 학예직 선발방식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을 따라하는 지방자치단체의 미술관들도 역시 문제입니다. ‘미술관련 전공자’라는 애매모호한 자격기준은 보다 더 세분화되고 전문화되어야 합니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병원에서 의사를 모집하면서 의대 졸업자 가운데 안과 전공의를 뽑아 산부인과나 피부과에서 진료하게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지금처럼 ‘미술관련 전공자 몇 명’하는 식으로 뭉뚱그려 뽑는 방식을 개선하여 ‘19세기 회화 담당 큐레이터’나 ‘17세기 네덜란드미술 전공자’등으로 선발하는 외국처럼 전공분야를 정확히 명시하여 필요한 전문 학예인력을 선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제가 학예인력을 지나치게 호의적으로 평가하고 옹호한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미술관의 학예직원들도 자기 미술관의 소장품에 관한 변변한 연구실적도 제대로 없이 전문성을 주장할 수는 없도록 긴장감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외국처럼 이들의 전문성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평가하는 제도가 도입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국립미술관의 학예직원이 백화점 교양강좌에 나가서 강의를 하는 것과 같은 부적절한 여유는 있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행정자치부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이 문제가 너무 국지적이고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미술관 관련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도 정작 중요한 결정권은 행정자치부에 있으니 제대로 된 개선책을 마련하기가 어렵습니다.
워낙 바쁘시니까 답변의 말씀은 기대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라고 부디 문화관광부나 이 분야의 전문인들과 상의하여 우리나라 미술관 문화가 한 단계 높아지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 서울아트가이드 2005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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