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임기가 만료된 국립 중앙박물관장의 후임자 선정에 관하여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많았다. 특히 모씨는 일찌감치 관장 내정설이 흘러나오자 어느 인터넷 신문에서 그의 학식과 인격 등이 거론되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집중적인 비난의 화살을 받고 마침내 지원의사를 철회하고 말았다.

박물관장은 과연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학문적 업적과 남들이 본받을 만한 인격의 소유자가 제격일 것이다. 이것은 관장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필수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요즈음은 이러한 조건 이외에도 행정력, 조직을 이끌어 가는 리더쉽, 경영자 다운 감각 거기다가 심지어 누구와도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 능숙한 화술 등 가히 초인적인 능력이 박물관의 관장에게 요구되는 추세다. 그래서 외국의 경우에는 한때 커다란 박물관의 관장 자리가 비어도 선뜻 나서는 이가 없어서 장기간 공석으로 남아있기도 했다.

그런데 뒤늦게 우리 나라에서는 서로 관장직을 맡으려고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우리보다 먼저 박물관을 운영해 온 외국에는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면서 비난을 받는 관장과 존경을 받는 관장들이 여러 명 있었다. 그런데 실패한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능력에 벗어나는 자리에 억지로 앉아 일을 그르치다 물러났다는 것이고, 존경받는 이들의 특징은 사심을 버리고 공정하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했으며 퇴임 후에도 자신의 박물관에 학문적으로나 재정적으로 기여할 정도로 박물관에 대하여 애정을 가졌다는 것이다.


외국 이야기를 하던 끝에 조금 더 해보면, 앞에서 그처럼 지원자 없이 운영되던 관장 자리는 마침내 학문적 배경보다는 경영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돌아간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장단점이 모두 드러났다.

그런데 이러한 사례는 우리의 현실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외국의 유명 박물관은 각 분야별 전문 학예직원의 역할이 오래동안 확고하게 자리잡혀 있기 때문에 관장이 바뀐다 해도 전문적 영역에 있어서는 그의 영향력이 비교적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지금 관장이 누가 되느냐에 관심을 보이는 것과 동시에 관장이 결정되면 그가 많은 것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염려와 기대가 함께 숨어있는 것같다.

몇급이니 차관급이니 하면서 계급을 앞세우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아마도 이것은 이제까지 행정공무원들 위주로 운영되어온 박물관에서 오래동안 갑갑증을 느껴온 학예직원들이 갖는 속풀이같은 것일 수도 있다. 문화관광부의 주무 국장이 관장이나 학예직원들을 부하직원 다루듯 해온 것도 잘못이지만 이제 관장직이 차관급으로 격상되면 국장은 내 부하직원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이다. 박물관은 기본적으로 직급과 관계없는 전문적인 연구기관이며 관람객을 위한 문화적 서비스 기관이어야 한다.


편집: [컬처뉴스] 2003-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