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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춘천박물관의 이상스런 개관식

하계훈

새해 벽두에 지난 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지난 2002년 10월 30일 강원도의 국립 전시장으로서는 처음으로 국립춘천박물관이 개관했다. 개관식에는 문화관광부장관과 국립중앙박물관의 관장, 그리고 이러저러한 단체와 정치권의 직함을 가진 인사들이 모여들어 정부행사에서 수십년간 지켜온 전통(?)을 따라 박물관 정문의 입구를 등지고 한줄로 늘어서서 기념촬영을 한 뒤 하얀 장갑을 끼고 사회자의 지시에 따라 가위로 다섯가지 색띠를 잘랐다. 이어서 장갑과 가위를 거두면서 자기들끼리 악수를 나누는 동안 서로의 서열을 계산하여 작은 사람이 스스로 알아서 머리를 조아렸다.

그런데 이상스런 것은 이 박물관이 국립춘천박물관이고 여기에는 엄연히 기관의 대표로서 박물관장이 있는데 그의 존재는 개막행사 대열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신축 박물관의 개관식이, 비록 문화기관이긴 하지만 정치적 논리와 자기들끼리의 서열매기기에 얽매여 진행되었다는 느낌이며 어쩐지 주인없이 객들끼리 집들이 잔치를 한 느낌이다.


국립춘천박물관은 우리나라의 국립박물관 가운데 비교적 규모가 작은 시설로서 문화관광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규정(대통령령제17611호) 제 29조에 의해 학예연구관이 관장으로 임명되도록 되어있다. 그러니 5급 학예연구관이 감히 문화관광부장관이나 고위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가위질을 한다는 것이 불경스런 일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개관준비하느라고 바쁘셨으니까 쉬라는 뜻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국립춘천박물관의 개관식은 관장의 참여 없이 성대하게 거행되었고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취재진이나 박물관 직원 누구 하나도 불만을 드러낸 일이 없었던 듯 하다.

그렇다면 이제 이 박물관을 하루하루 꾸려가며 춘천을 중심으로한 강원도 지역민들과 강원문화의 참모습을 제대로 살펴보고 규명하는 일을 할 사람은 누구인가? 이런 개막행사마다 단골로 얼굴을 내미는 무슨 무슨 협회장, 무슨 무슨 의원들은 이제 일년에 몇 번이나 이 박물관을 찾을 것이며 박물관을 위해 얼마나 기여할 것인가?

박물관 신문 375호에 기고한 글에서 최응천 관장은 박물관을 지역 문화 공간으로서 그 문을 활짝 열고 누구나 쉽게 편히 쓰도록 할 예정이며, 강원도의 문화유산을 보존ㆍ전시ㆍ연구함에 그치지 않고 관람객들이 편안히 쉬면서 역사와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지역의 중추적 문화기관으로 거듭나고자 다짐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는 이런 이야기를 개막식장에서 할 수 없었고 신문 지면을 통해서만 관장의 포부를 밝힐 수 있었다.

- [컬처뉴스] 2003-12-22 오후 4: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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