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북리뷰]제임스 퀴노, <누구를 위한 미술관인가?>

하계훈

제임스 퀴노, <누구를 위한 미술관인가?>

(Princeton University Press and Harvard University Art Museum, 2004)

1989년에 동서 베를린을 가로막던 장벽이 무너지고 1991년에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면서 세계적으로 냉전 상태의 긴장이 누그러뜨려지자 서방 국가들의 군사비용 지출의 부담이 줄어들게 되었고 세계 경제는 서서히 호황 국면을 보이게 된다. 서방 국가에서의 이러한 국가 예산의 사용처 변화 가능성과 경제적 호황의 효과는 미술관과 박물관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그 결과로 이 시기에 세계적으로 적지 않은 수의 미술관들이 새로 설립되거나 증축과 개축을 통해 한 단계 수준 높은 시설로 발돋움 하였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미술관의 외형 뿐 아니라 소장품의 구입과 기증에서도 이전보다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게 되었으며 미술관에 대한 관람객들의 관심과 참여도 이전과 달리 눈에 띄게 증가하였다.
양적으로 그 규모가 확대된 관람객들에게 미술관측은 한편으로는 오락과 여가의 장소가 되어주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와 예술을 통한 사회의 정서를 다듬음으로써 물질적, 정신적 생산성을 높이고 고용창출과 관광사업에도 기여하였을 뿐 아니라 사회적 문제를 치유하는 지역재생 기능도 담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미술관들은 그 탄생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양자택일적인 문제, 즉 미술관이 엘리트 계층에 봉사해야 하는가 아니면 대중적인 눈높이에서 대중들과 함께 호흡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와 끊임없이 씨름해왔으며, 제국주의 시절의 문화적 침략과 그 이후의 각종 전쟁에 수반되는 약탈의 결과로 각 미술관에 소장된 미술품들의 원소유국 반환의 문제 등에 끊임없이 부딪쳐 왔다. 게다가 최근의 몇몇 미술관에서는 종교적, 미학적으로 대중들의 이해를 구하기 어려운 극단적 표현을 수용함으로써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마찰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고 한편으로는 미술관이 상업적 영역과의 은밀한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문화적 권력으로 군림하여왔다는 의심의 눈초리도 받아왔었다.
<<누구를 위한 미술관인가?>는 미술관을 둘러싼 이러한 문제와 관점들에 대하여 영국과 미국의 유명 미술관장들이 갖고 있는 생각과 해결책, 미래에 대한 비전 등을 제시한 강연 내용을 정리하여 6편의 글로 모아놓은 책이다. 여기에 수록된 원고들은 원래 2001년 가을부터 2002년 여름까지 하바드 대학 미술관에서 주최한 Harvard Program for Art Museum Directors에서 실시된 강연 원고를 수정 보완하여 출간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원래 1995년부터 미술관 관장들과 하버드 대학 교수들이 모여 소규모로 진행해오던 것이 이 해부터 본격적인 정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기 시작하였으며 모임의 화두는 미술관장으로서의 리더쉽, 미술관의 지향점, 대중들과의 상호 교류 등의 문제였다.
6명의 기고자들은 하바드 대학 미술관장을 역임하고 현재 런던의 코털드 미술 연구소의 관장 겸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제임스 퀴노(James Cuno),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관장인 필립 드 몽테벨로(Philip de Montebello), 뉴욕 근대미술관의 관장인 글렌 D. 로우리(Glenn D. Lowry), 런던에 있는 국립 초상화박물관의 전직 관장이며 현재는 대영박물관의 관장인 닐 맥그리거(Neil MacGregor), 미국 로스 앤젤러스에 있는 폴게티 미술관의 명예관장인 존 월쉬(John Walsh), 그리고 시카고 미술관의 관장인 제임스 N. 우드(James N. Wood)다. 그리고 이 책의 끝 부분에는 강좌가 끝나고 (닐 맥그리거를 제외한) 이들 모두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모여 각자의 생각을 토론하는 원탁회의의 회의록을 첨가하여 놓고 있다.
실제로 미술관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오늘날 관장들이 부딪치는 문제들 가운데 중요한 것으로는 운영비용 증가에 비해 재정 수입이 정체나 감소됨으로써 발생하는 경영난과 내실 있는 운영의 위축, 그리고 그로 인한 학술적이고 전문적인 인력들의 역할보다 경영과 마케팅 등의 시장지향적인 활동을 위한 인력들과 그들의 업무에 더욱 초점을 맞추게 되는 현실에서 파생되는 미술관의 정체성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하바드 대학 미술관에서 이 강좌가 설치되었을 때 미술관 관장으로서 이 프로그램을 이끌었으며 이 책의 편집자 역할을 맡았던 제임스 퀴노는 책의 서문에서 미술관 관장을 두 가지 유형 즉, 공격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며 팽창을 지향하는 관장과 차곡차곡 관람객을 늘려가면서 지역과 친화관계를 유지하려는 관장으로 나누고 있다. 사실 이러한 태도는 이 프로그램에는 참가하지 않았지만 구겐하임 미술관 관장을 맡고 있는 토마스 크렌스(Thomas Krens)가 2000년 2월에 뉴욕타임즈에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관장인 몽테벨로와 가진 대담 “유행 대 위엄, 두 박물관/미술관의 입장(Hip vs. Stately: The Tao of Two Museums)'에서 드러난 상반된 견해와도 연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미술관의 재정적 압박은 때때로 미술관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난 결정을 내림으로써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한다. 퀴노는 이러한 사례로 1999년 뉴욕의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열린 <센세이션전>을 둘러싼 뉴욕시장과 미술관 사이의 법정 공방 과정에서 드러난 상업주의의 개입과 작품 소장자의 사욕에 봉사하는 미술관의 실책 등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2001년 구겐하임 미술관 관장인 토마스 크렌스가 야심적으로 구상하여 라스베가스의 베네치아 호텔 카지노에 미술 전시장을 여는 계획도 크렌스의 기대와는 달리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150억원의 기부금을 받고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디자이너 조르지오 알마니의 전시를 연 것도 자본에 굴복하여 미술관을 대관해주었다는 비평가 로베르타 스미스(Roberta Smith)의 신랄한 비판을 받았다.
미국의 경우 공공적 기구로서의 미술관에 대한 신뢰는 그것이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과 객관적인 정보의 원천으로서 기능하는데서 찾을 수 있다. 실제로 2001년에 미국 박물관 협회에서 실시한 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인들은 사회적 신뢰의 원천으로서 책이나 뉴스에서보다 미술관/박물관에서 제공되는 정보를 더 신뢰한다고 한다. 그러나 박물관의 종류가 다양한 것처럼 그 가운데 미술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한 신뢰는 미술의 사회적 기능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는다면 그 신뢰도가 그리 높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책은 각 미술관장들의 견해를 사전 조율 없이 자유롭게 발표하도록 함으로써 일관된 주제로 수렴되는 예정된 편집 의도는 없다. 다만 각 박물관장들이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기관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를 드러내다 보니 공통적인 내용이 중복되는 점을 발견할 수는 있다.
이 책의 편집자로서 두 번째 장에 수록된 기고문 ‘미술관의 목적’이라는 글에서 제임스 퀴노는 미술관 소장품 가운데 상설전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시인 폴 발레리의 말을 인용하여 퀴노는 미술관의 개별 작품들이 상호 병렬되어 있음으로 해서 자칫 그 개개의 가치가 소홀히 전달될 위험성에 노출되어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상설전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오늘날 블록버스터 전시에 집중된 미술관의 관심에 대한 일종의 반성의 메시지로 해석된다.
첫 번째 기고문 ‘트라팔가 광장의 오순절(五旬節)’에서 영국 런던의 국립미술관장을 역임하고 현재 대영박물관장을 맡고 있는 닐 맥그리거는 런던의 국립미술관이 유럽의 대부분의 미술관들과는 다르게 그 설립의 배경에 왕실 소장품이 바탕을 이루고 있지 않으며 왕립 아카데미와 관련된 교육 기관으로서의 성격이 중요한 설립 배경을 이루어 왔음을 지적하고 있다.
폴게티 미술관 관장 존 월시는 세 번째 기고문 ‘그림, 눈물, 조명, 그리고 의자’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미술관에서 작품과 관람자 사이의 정서적 교감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관람객들의 차분하고 인상적인 감상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에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효과적으로 제거하여 어떻게 하면 관람객들이 보다 즐겁고 현명하게 미술관 방문 경험을 간직하도록 할 것인가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는 필립 피셔의 연설문과 제임스 엘킨스(James Elkins)의 책 <그림과 눈물,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린 사람들의 역사>에서 글의 제목을 부분적으로 인용하였다.
시카고 미술관의 제임스 우드는 미국 사회에서 미술관이 대중의 신뢰를 받는데 있어서 여덟 가지 유형의 미술관의 사례를 들고 결론적으로 사명감과 리더쉽을 세움으로써 미술관이 대중들의 신뢰를 얻는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으며 뉴욕 근대미술관의 글렌 로리 관장은 근래에 들어서 미술관들이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과 비슷한 형태로 운영되는 현상을 분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메트로폴리탄의 필립 드 몽토벨로 관장은 ‘대중의 신뢰’라는 말의 의미를 천착해보고 신뢰의 근거를 완전성(integrity)에서 찾고 있다. 그는 미술관의 소장품이 학문적으로 권위를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철저하게 연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오늘날 많은 미술관들이 상업주의적인 유혹으로부터 위협받고 있음을 경계하고 있다.
프로그램이 종료된 후 제임스 퀴노의 주선으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모인 필자들은 강연을 통해서 미처 말하지 못한 내용이나 다른 강연자들의 발표문을 일고 떠오른 생각들을 서로 주고 받는 기회를 가졌고 이들의 토론 내용은 책의 뒷부분에 회의록 형식으로 수록되었다.
토론은 주로 미국의 상황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참석자들은 미술관이 안고 있는 운영상의 어려움과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미술관이 기업과의 협력을 모색함에 있어서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는 것을 채워주는 과정이 미술관의 정체성과 어떻게 연관되는가, 비영리 기관인 미술관의 운영에 있어서 영리적 활동을 하는 비즈니스 영역의 전략들이 도입되는 이유는 무엇이고 그것이 바람직한가, 그리고 이러한 것들의 결과가 미술관이 대중으로부터 신뢰를 잃지 않게 하는데 어떻게 작용하는가 등의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참석자들은 미술관과 기업이 모두 어려운 상태에 있겠지만 대중들이 이 두 영역에 반응하는 태도는 크게 다르다고 보고 있다. 대부분의 토론자들은 필랜트로피의 전통이 사라진 이 시대에 미술관이 의지하여야 할 대상은 충성도 높은 대중들이라고 보고 있으며 이들은 아직 대중들이 미술관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았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미술관이 처한 재정적 어려움을 비즈니스 영역의 마케팅 전략으로 대응하게 된 배경을 토론자들은 미술관 이사회 구성원들의 개인적인 비즈니스 경험과 정부로부터의 압박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토론자들이 구체적으로 대상을 지적하지는 않았지만 구겐하임 미술관의 경우처럼 미술관을 일반 상품처럼 브랜드(brand)화하는 경향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주관자인 제임스 퀴노는 미술관의 브랜드화는 미술관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단기적으로 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년간의 꾸준한 업적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자칫 잘못하면 미술관을 일반 상품처럼 브랜드화하는 것은 미술관의 자기파괴적인(self-destructive) 전략으로 전락할 위험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이 책에 수록된 미술관 관장들은 국제 규모의 대형 미술관들을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미술관들은 우리나라의 미술관들과는 그 규모 면으로나 운영 주체의 성격 면에서나 상당히 다른 상황에 처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년간의 미술관 운영 경험에서 나온 이들의 의견들은 미술관의 규모나 운영방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우리 미술관들이 참고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던져주는 시사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무엇보다도 미술관의 관람객들로부터의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하여 미술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것을 한결같이 강조하고 있는 점은 미술관 문화가 이제 막 피어나가 시작하는 우리나라의 국공립 미술관뿐 아니라 사립미술관들도 주의 깊게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