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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미술관에 대한 정부의 지원정책

하계훈


1. 서론


미술관은 소장품의 성격에 따라 회화(미술)관이나 조각미술관, 또는 공예미술관 등으로 구분될 수 있으며 운영 주체에 따라서는 국립, 공립, 그리고 사립미술관으로 구분될 수 있다. 이 가운데 국립과 공립 미술관의 경우는 재정 면에서 국민의 세금이나 지방 자치단체의 지방세 수입을 바탕으로 공공 기관이 책임지고 운영하는 미술관이므로 당연히 공공성을 띨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에 비하여 사립미술관들은 개인이나 기업 혹은 문화재단 등에서 사적 재원을 기반으로 설립하고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사립미술관은 재단으로 등록하지 않는 한은 개인 또는 기업 등의 사적 재산이며, 따라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이론상으로 사립미술관에 대한 관리와 지원책임도 없고 동시에 일반적 공공질서 유지 차원 이상으로 이러한 기관에 대하여 간섭할 권한도 없는 셈이다.

하지만 교육 분야에서 사적 재원을 바탕으로 설립된 사립학교가 국공립학교와 함께 우리나라의 국민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므로 정부의 교육행정부서로부터 지원을 받는 동시에 일정부분 감독과 규제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술관은 국가의 역사와 문화, 예술의 보존과 향수를 위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관들 가운데 대표적인 기관이므로 그 운영주체에 따라 공사립으로 구분되는 것과 관계없이 모든 미술관이 공공성을 띤 사회교육기관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비록 사립미술관이라도 국공립미술관과 마찬가지로 일정부분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동시에 공익과 관련된 부분에 대하여 정부의 감독과 규제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전국적으로 약 60여개의 사립미술관이 운영되고 있다. 이 가운데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최근에 새로 개관한 삼성문화재단의 리움(Leeum)과 같은 국제적 규모의 미술관에서부터 지방의 조그만 개인 미술관에 이르기까지 그 규모나 소장품의 내용, 운영주체의 역량 등에서 커다란 편차를 보여주고 있다.

국공립 미술관에 비하여 사립미술관이 갖는 특징은 비교적 소규모이지만 전체적으로 다양성을 띠고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설립자의 높은 열정을 바탕으로 설립되고 운영되므로 국공립미술관보다 열의에 찬 진지한 운영태도를 보여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게다가 규모가 작고 운영에 관한 규칙이 공공미술관보다 엄격하지 않으므로 사회 환경변화에 따르는 운영체계의 시기적절한 변화가 가능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적당히 융통성을 누릴 수 있다는 점도 사립미술관의 장점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립미술관들은 설립자의 열정에 비하여 현실적인 여건이 불비한 경우가 많아서 재정과 시설을 비롯한 여러 면에서 대부분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있으며 장기적인 발전계획이나 대규모 예산이 수반되는 사업들에 대해서는 자체의 힘만으로 이를 실현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한계점도 함께 가지고 있다. 이렇게 재정과 운영에 있어서 불안정한 상태에서 사립미술관을 통한 문화의 다양성 확보와 이러한 문화를 국민들에게 보급하는 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립미술관들은 정부 뿐 아니라 기업이나 각종 문화재단 등으로부터 이 부분에 대한 지원을 요청할 수 있지만 이 가운데 무엇보다도 정부의 지원이 가장 필요한 것이다.


2. 공적 지원을 위한 전제조건

사립미술관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공적 재원을 비롯한 여러 가지 공공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을 만족시켜야 할 것이다. 우선 무엇보다도 사립미술관들은 공적 지원을 요구하기 앞서서 스스로 공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공공성이 준비되어있음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사립미술관의 공간과 소장품들이 사적 재산으로 머물러 있고 미술관을 폐관하는 순간 미술관의 재정과 자료 등이 다시 개인들에게 귀속될 수도 있는 상태에서는 정부로부터의 적극적인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며 정부로서도 지원의 정당성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론적으로 볼 때, 어느 사립미술관이 정부의 지원에 의하여 시설을 증설하고 장비를 현대화하여 해당 미술관의 재산적 가치가 증가하였다거나, 정부의 제도적 배려 덕분에 건립과 운영에서 여러 가지 관련법에 의한 의무를 면제받고 세제 혜택을 받았다면 이것은 정부의 공적 지원에 의해 사유재산의 가치증가를 가져온 셈이므로 정부의 공적 지원의 정당성을 설명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혜택은 어디까지나 미술관이 존속하는 동안에 한하여 그 혜택을 누리도록 한정되어져야 할 것이다.

따라서 사립미술관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주체의 입장에서는 미술관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공성을 올바르게 인식하여 처음부터 될 수 있는 대로 개인이 임의로 설립한 단순한 사립미술관으로 출발하기보다는 비록 자신의 재산이지만 이미 사회에 환원할 의사가 분명하다는 것을 밝히고 미술관을 재단법인이나 사단법인 등의 공적 기구로 출발시킴으로써 정부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앞에서 지적한 대로 사적 재산에 대한 공적 지원이라는 논리에서 파생되는 염려를 제거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외국의 경우는 비록 개인의 재산과 소장품으로 운영되는 사립미술관이지만 거의 대부분이 비영리 재단으로 등록되어 있고 미술관을 운영하는 핵심 기구로서 이사회를 구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개인의 재산과 소장품을 가지고 사립미술관을 열기보다는 정부의 관리 능력을 신뢰하고 정부에 모든 것을 기증하여 개인의 소장품으로 출발한 문화자산이 정부의 관리 아래 들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아직 일부의 예를 제외하고는 개인의 소장품들이 본격적으로 정부에 기증되어 공공적 문화자산으로 다시 태어나는 경우는 아주 드물 뿐 아니라 설사 사립미술관을 개관하였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 미술관을 설립자 개인과 그 가족들의 영향력 아래 두려고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의 일부 사립미술관들은 아직 정부의 공적 지원을 요청할 준비가 모자란다고 말할 수 있다.

사립미술관의 설립과 별도로 개인의 소장품이 흔쾌히 국가에 기증되지 않는 이유를 또 다른 관점에서 볼 때에는 개인 소장가들이 자신들의 소장품을 정부에 기증하기를 꺼리게 만드는 것은 정부의 관리 능력을 신뢰할 수 없도록 만든 정부 당국의 책임이기도 하다. 문화자산의 관리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이나 무능력 때문에 문화자산이 개인의 손에서 힘겹게 유지되거나 상업적 영역을 통해 공공적 접근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에 대해서 정부는 자기반성과 함께 앞으로 적극적 기증을 유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검토의 기회를 가져볼 필요가 있다.

사립미술관뿐 아니라 국립이건 공립이건 미술관이라는 기관 자체가 수익성이 있는 기관이 아니므로 설립 이후의 운영은 적자가 지속될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미술관을 설립하고자 하는 사람이나 기관은 이 점을 설립준비 단계에서부터 충분히 인식하고 미술관사업에 착수하였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의 대부분의 소규모 사립미술관들은 이러한 설립 과정과 설립 이후의 운영에 대한 깊은 고려 없이 설립자의 열정에 의존하여 일단 설립해놓고 보는 식으로 미술관을 개관함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문제점이 누적된 점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미술관 운영의 핵심점인 두 가지 요소는 소장품 해석과 관련된 전문성과 재정의 안정성을 둘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요소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상호 연관성이 있는 것이라서 전문적인 운영이 잘 이루어지는 미술관은 재정적인 면에서도 남들보다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는 경우가 많으며, 다시 재정적으로 안정된 미술관은 전문적 인력의 활용이나 그 밖의 필요한 투자에 있어서 다른 미술관보다 적극적일 수 있는 긍정적인 순환구조를 형성한다.

국내외에서 대부분의 모범적인 사립미술관의 경우에는 설립 당시부터 이러한 두 가지 요소에 관하여 충분한 검토를 거쳤으며 설립 이후의 운영에 대한 충분한 대책을 가지고 출발하였다. 많은 경우 그들은 미술관 운영이 수익성 있는 사업이 아니라는 점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처음부터 미술관 운영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줄 수 있는 기금을 마련하고서 출발하였으며 비교적 충분한 후원자를 확보한 상태에서 미술관 사업을 시작하였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뉴욕의 근대미술관(MoMA)이나 보스턴에 있는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Isabella Stewart Gardner) 미술관과 캘리포니아에 있는 폴 게티(J. Paul Getty) 미술관 등의 예에서 사립미술관의 모범적인 사례를 배울 수 있다.

MoMA의 경우에는 잘 알려진 바대로 록펠러 가의 며느리와 다른 두 명의 부유한 여인들의 전폭적인 재정 후원아래 20대 후반의 젊은 미술사학자 알프레드 바아(Alfred H. Barr)가 관장직을 맡으면서 재정과 전문성 측면에서 안정적인 출발을 할 수 있었으므로 오늘날과 같은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성장하였다.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의 경우에는 가드너 여사의 저택과 그녀의 재산 가운데 상당액이 미술관에 투입되었고 유명한 미술품 감정가 버나드 베런슨(Bernard Berenson)에 의해 엄선된 질 높은 작품을 이용하여 안정적으로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는 좋은 사례로 인용되고 있다. 폴 게티 미술관의 경우는 세계적으로 첫 손에 꼽히는 사립미술관으로서 지금까지 사립미술관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기금이 투입된 미술관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사례에서 우리가 한 가지 더 주목할 만한 것은 비록 자신의 재산과 소장품이 대거 투입되었지만 이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자신이 관장직을 맡거나 그 밖의 미술관 운영 현장에 직접 개입한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사례들은 소규모의 재정과 소장품을 가지고 사립미술관을 설립하려는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뜻있는 인사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사례이겠지만 적어도 자신이 설립하였거나 이제 설립하려고 준비하는 미술관이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서 참고할 만하다.
비록 폴 게티나 가드너 여사처럼 막대한 재정을 투입할 수는 없겠지만 설립자의 의지만 확고하다면 자신의 능력 범위 안에서 출발에서부터 사유재산의 공공화 의지를 표현함으로써 주위로부터 미술관의 순조로운 출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인사들을 집결시킬 수도 있고 이러한 사심없는 태도를 천명함으로써 정부의 지원을 보다 쉽게 설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단 이렇게 사립미술관이 설립되면 그 운영에 있어서도 투명성과 전문성이 뚜렷하게 드러날 필요가 있다. 특히 재정 운영면이나 전문 인력의 활용에서의 투명성은 필수적이다. 앞의 외국 사례에서 본 것처럼 미술관의 설립 목적이 전문적인 미술품 해석을 바탕으로 대중들에게 미술에 대한 이해와 문화적 소양을 넓힐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면 그 목적에 맞는 운영이 이루어져야 한다. 거창한 설립목적을 선언해놓고 실제로는 제대로 운영의 활성화를 도모하지 않는다든지 설립자의 가족과 친지들이 전문성과 관계없이 요직을 차지하고 자기들만의 문화사업과 사교활동에 몰두한다면 이러한 사립미술관들에 대한 정부의 공적 지원은 그 명분을 살리기 어려워진다.

사립미술관의 공공지원을 논하는 마당에서 사립미술관들은 이러한 전제조건을 만족시킨 이후에라야 정부로부터의 적극적인 지원을 제대로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지금부터라도 준비되지 않은 사립미술관들의 난립을 막기 위해서는 그 설립준비 단계에서부터 설립자가 올바른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전문가 집단의 적절한 지도와 교육이 필요하다고 볼 수도 있다.

<3. 사립미술관의 공공적 기여와 정부의 공적 지원


사립미술관이 설립과 운영에 있어서 설립자와 그 주변인들의 사적 이기심이 배제되고 공익적 헌신이 확인될 때 정부는 비록 사립미술관이라도 그 공익적 성격을 고려하여 공공미술관들에 버금가는 배려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특히 제대로 운영되는 사립미술관은 미술관을 통한 국민문화 향수와 진흥에 있어서 공공미술관이 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보완적인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인식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으며 이 점을 강조해서라도 사립미술관에 대한 공적 지원은 적극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실제로 사립미술관은 그 숫자로 보나 소장품들의 내용과 질적 다양성으로 보나 미술관을 통한 문화정책을 집행하는 데 있어서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다양한 사립미술관의 활성화가 이루어진다면 미술관 문화의 진흥에 있어서 국공립미술관들만으로는 해낼 수 없는 역할을 사립미술관들이 수행하게 됨으로써 국가 전체의 문화지형을 풍부하고 알차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립미술관이 공공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기본적으로 앞에서 언급된 것처럼 국가적으로, 그리고 나아가 인류의 역사와 문화예술에 있어서 중요한 문화 자산을 수집, 보존하고 이를 통해 대중들의 문화 향수와 교양 증진에 이바지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역할은 결과적으로 사회의 교양과 지적, 예술적 생산성을 증가시킬 수 있으며 사회 구성원들의 문화체험 증진을 통한 감수성 함양에 의해 사회적 병리현상의 예방과 치료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그리고 미술관을 통한 문화 자산의 평등주의적 보급으로 인해 지역간의 불균형을 해소할 수도 있으며 이렇게 지역과 계층간의 차이를 좁힘으로써 서로간의 갈등과 적대감을 줄여나가고 범죄나 질병의 발생에 따르는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긍정적 효과의 한 예를 들어보면, 영국 런던의 동남부 지역에서는 정부의 지원으로 지역미술관이 작가들과 협력하여 지역의 학교를 방문해서 미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그 결과를 해당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사업을 벌여왔다. 이러한 미술관의 지역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의 청소년들이 새롭게 예술적 감수성에 눈을 뜨게 되고 지역의 문화적 환경에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됨으로써 지역의 청소년 우범화 경향을 감소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청소년 보호시설이나 정신병원 등의 사회적 소수자들이 집중되어있는 시설에까지 유사한 프로그램을 운영해오고 있는데 놀랍게도 그 결과는 지역의 학생들과 청소년들뿐 아니라 지역주민들로부터 높은 호응을 얻었으며 의학적 치료효과를 향상시킨다거나 보호시설에 수용되었던 청소년이 출소 후에 해당 미술관을 찾아와 인턴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사회에 적응해나가는 긍정적인 사례를 낳기도 하였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미술관의 프로그램에 의해 한 사회의 범죄 발생율이 낮아진다면 교정시설에 투자되는 비용과 그와 관련된 인력과 시설운영에 드는 비용 등이 절감될 뿐 아니라 거기에 투입될 인력과 예산이 보다 생산적인 곳으로 돌려짐으로써 두 배의 효과를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지역의 사립미술관을 통해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얻어지는 효과는 재정적인 면을 떠나서도 금액으로 계산할 수 없이 값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프로그램은 문화담당 부서만의 일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 법무부서나 교육부서, 혹은 환경부서나 과학기술부서 등과도 연계하여 적극적으로 사업을 펼칠 필요가 있다. 이 경우 그 사업실행의 매개 기구로서 지역의 여러 가지 미술관과 박물관들이 유용하게 이용될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의미에서도 미술관은 공사립을 막론하고 공적 기구로서의 기능에 대한 공공재원의 투입이 정당화될 수 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면 모범적으로 운영되는 사립미술관은 국가의 관광사업이나 그 밖의 파생 산업에서의 생산성과 인력고용 효과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사실 이러한 관광진흥이나 고용확대 등의 일들은 정부가 해야 할 일들이므로 사립미술관이 이러한 효과를 유발하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해준다면 사립미술관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선택이아니라 필수가 되어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립미술관들은 이러한 공공적 기여를 위하여 스스로 노력할 것이므로 정부는 사립미술관들이 이러한 기능을 보다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이 기관들에 대한 지원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요구될 것이다.


4. 정부지원의 종류와 방법

정부의 사립미술관에 대한 지원은 크게 직접적인 지원과 간접적인 지원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직접적인 지원은 무엇보다도 재정적인 지원이 그 대표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재정적인 지원은 전시나 교육과 같은 미술관의 중요사업에 재정을 직접 투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시설의 현대화나 공간의 확장, 소장 자료의 구입 등에도 재정적 지원이 이루어진다.
정부가 개별 사립미술관에 대해 재정을 지원하는데 있어서 공공재원을 이용한 사적 공간에 대한 지원이라는 모순되어 보이는 논리를 극복하는 것 이외에도 재정지원의 원칙은 몇 가지 기준을 따를 필요가 있다. 우선 지원을 요구하는 기관의 자발적인 경영 합리화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스스로 자구적인 경영합리화의 노력을 최대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외부의 힘에 의존하기 위하여 정부의 지원을 우선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자칫하면 해당 기관을 도덕적으로 해이하게 만들 수 있다.

재정상태가 좋지 않아서 정부의 지원을 요구하면서 경영의 합리화와나 인력구조의 비능률성을 그대로 유지한다거나 설립자를 중심으로 한 낭비적인 예산지출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 채 정부의 도움을 요구하는 것은 철저하게 교정되어야 한다. 극소수이긴 하지만 일부의 사립미술관에서는 설립자와 그 주변인들의 활동에 소요되는 예산과 일반 직원들의 활동에 소요되는 예산이 지나치게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다. ‘내 돈으로 내 맘대로 쓴다’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미술관의 재정운영은 이미 사적 재정의 상태를 벗어난 것이므로 아무리 개인의 비용으로 활동하더라도 설립자로서 미술관 운영의 전체적인 균형을 맞추어야 하며 재정지출의 우선순위를 합리적으로 선정하여야 한다. 재정이 충분치 않은 미술관에서 관장이나 특정인이 이러저러한 명분으로 지나치게 지출을 많이 한다거나 재정지출의 우선순위를 왜곡시켜 운영하는 경우에는 아무리 그 미술관의 재정이 양호하여도 올바르게 운영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미술관이 있다면 여기에 사립미술관의 운영지원이라는 일괄적인 명분으로 정부의 재정지원이 미술관의 자구적 노력보다 먼저 이루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립미술관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은 자구적인 노력에 비례하여 차등적으로 지원될 필요가 있다. 아무리 공정하게 지원을 한다고 하더라도 정부지원의 비중이 크면 클수록 미술관의 입장에서도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미술관에 대한 재정지원이 필요할 경우 재정의 지원은 여러 곳으로부터의 지원이 다양하게 혼합되는 것이 미술관 운영의 명분이나 실질적인 운영의 편의에 있어서 바람직하다. 이러한 지원을 위해 외국의 몇몇 정부에서 이용하는 방법은 소위 대충(代充,matching)지원이라는 방법으로서 미술관이 어느 자금원으로부터 지원을 유도하면 그 액수에 비례하여 정부가 재정지원을 해주는 방식이다. 따라서 개별 미술관들이 노력하여 많은 지원을 얻으면 얻을수록 정부의 재정지원 액수는 커지게 되므로 미술관의 노력에 따라서 재정지원 효과는 2배가 되는 셈인 것이다.

미술관에 대한 또 다른 재정지원 방법으로는 미술관의 사업수행의 결과에 대하여 사후에 적자부분을 보조해주는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은 미술관의 사업이 집행됨으로써 일정한 수익이 발생될 것이 예상되며 그 액수가 정해지지 않았을 경우 사후에 지원규모를 확정하는 것이다. 이 경우 지원의 주체는 행사의 성공적인 결과를 위하여 마케팅 등의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지원을 하여 최대한의 결과를 낳도록 노력하기도 한다. 미술관 사업의 성격이 외국과 관련되어있기 때문에 외환사정에 따라 시차에 의해 재정지원 효과가 달라지는 경우에도 이러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정부의 예산운용은 상당히 경직되어 있으므로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에는 정부에서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 이상과 같은 방법이 정부로부터 사립미술관을 지원할 수 있는 직접적인 재정지원 방법일 것이다.

이밖에도 정부가 사립미술관들의 재정을 지원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정부가 확보한 미술품과 자료를 공사립미술관 사이에서 적절하게 공유하도록 하는 경우, 그리고 사립미술관에서 재정이 소요되는 시설이나 장비 등에 대한 지원을 통해 재정지원 효과를 내는 경우 등을 들 수 있다. 사립미술관들 사이의 긴밀한 연결망을 구성하고 그들 사이에서 성공적인 경영의 경험을 서로 나눔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돕는 상호 상승효과를 낸다면 이것은 재정적으로도 적지 않게 도움이 된다. 대부분의 사립미술관들이 고가의 보존 장비나 그 밖의 특수 장비들이 필요한 경우가 있지만 경제적으로 그 비용을 부담하기 어려운 경우 정부는 대표기관을 지정하여 이러한 시설과 장비를 지원하고 사설미술관들이 이것을 공동으로 사용하도록 혜택을 줌으로써 그들을 지원해줄 수도 있다.

오늘날의 미술관 운영은 소장품의 보호보다는 자료의 홀용을 극대화하여 많은 관람객들에게 가능한 한 편의와 만족감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경우에 따라서 미술관의 소장품들이 한 곳에서 관람객을 기다리기 보다는 그들을 찾아서 여러 곳을 순회하며 더 많은 관람객들을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작품들이 미술관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은 더 많은 위험성에 노출되는 것이므로 이에 따르는 보험료의 증가를 낳는다. 외국의 경우 미술관의 재정비용 가운데 점차 그 비중이 증가하고 있는 작품 보험료를 정부가 보증하는 제도(GIS, Government Indemnity Scheme)가 실행되고 있는데 이러한 제도적 지원도 간접적으로 재정지원의 효과를 낼 수 있으므로 우리 정부도 미술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이러한 제도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사립미술관을 간접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는 방법 가운데에는 법과 제도를 통해 사립미술관의 설립과 운영을 보다 용이하게 해준다든지, 세제를 개선하여 미술관의 조세부담을 덜어주거나 기업 활동과 관련하여 세제 혜택을 확대시켜 기업의 미술관에 대한 지원을 증가시키는 방법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밖에도 단기적이고 직접적인 재정지원과는 거리가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립미술관을 비롯한 미술관의 활성화를 위하여 교육행정부서나 교통관광부서 등과의 협조를 통해 잠재적인 미술관 고객이자 호의적인 기부자로서의 관람객을 육성, 창출해내는 등의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정부가 사립미술관을 지원하는 목적은 대체적으로 재정기반이 열악한 사립미술관들이 자칫하면 관람객에 대한 서비스의 질을 떨어트릴 위험이 있는 것을 방지하고 장기적으로 보다 질 높은 서비스가 관람객들에게 제공되게 하는 데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서비스의 질 향상은 박물관 근무자들에 대한 자질향상 교육을 통해서 달성될 수 있다. 따라서 박물관에서 근무하는 인적 자원에 대한 투자도 정부의 지원 항목 가운데 중요한 항목으로 볼 수 있다.

우리와 비슷하게 복권기금을 통해 박물관과 미술관을 지원하고 있는 영국의 경우에는 기금 가운데 약 80억원 정도가 문화재복권기금(Heritage Lottery Fund)을 통해 박물관 관련 근무자들의 훈련기금으로 할당되어 있다. 이 기금은 주로 소형 미술관들의 인적 개발을 위해 사용된다. 복권기금은 박물관과 미술관에 대한 직접적인 재정지원 이외에도 박물관과 미술관이 기관의 운영, 관람객과 시장조사, 자원봉사 관리, 장기계획, 교육, 위기관리, 복원과 보존, 기금모금, 지역개발과의 연계 등의 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이론적 연구도 병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한다.

사립미술관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직접적인 방법과 간접적인 방법이 효과적으로 병행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사립미술관을 설립하고자 하는 개인의 설립의지를 북돋우고 기존의 설립자들이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설립자와 그 주변의 참여자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사립미술관을 운영하도록 장려할 수 있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 정부나 정부를 대리하여 사립미술관들을 지원하는 기관에서는 소규모 사립미술관들의 활동을 격려하기 위하여 경영실적이 우수하거나 모범적인 사례를 창출한 미술관을 포상하는 시상제도를 운영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정부 차원에서 사립미술관의 활성화를 위해 지원할 수 있는 대표적이 사업 가운데에는 이들 미술관들을 하나로 묶는 연결망을 구성하고 이를 꾸준히 유지해준다든지, 미술관 운영의 전문가 그룹을 유지하면서 전국의 사립미술관들에게 운영과 전문적인 연구 등에 대한 자문을 해주는 등의 사업을 실시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사업은 정부가 직접 실행할 수도 있고 별도의 전문 기관을 설립하여 이 기관을 통해 지원할 수도 있다. 그리고 두 경우 가운데 어느 경우에도 이러한 활동은 사립미술관들을 격려하는 진흥의 성격을 띠어야 하며 규제나 적발 중심으로 운영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5. 결론

이상에서 간단하게 살펴본 것처럼 사립미술관은 비록 그 기관이 사적 재원을 바탕으로 개인적인 동기에서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일단 미술관이 설립된 이후에는 일정부분 공공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는 문화예술의 보존과 향유의 영역에서 공공미술관과 함께 사립미술관의 균형있는 상호협력을 필요로 하며 이 때문에 사립미술관의 활성화를 위한 공적 지원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개인의 재산과 소장품으로 출발하지만 이것을 공공의 소유로 만들고자 하는 사립미술관들의 공공적 헌신과 기여가 명확하게 드러나도록 조치가 취해지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미술관을 설립해놓고 나서도 공공성을 압도하는 개인적인 취향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설립자와 그 주변인 중심의 파행적 운영이 근절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사립미술관들은 개인의 사적 컬렉션으로 남는 것보다 더 역효과를 낳으며 이러한 사립미술관에 대한 정부로부터의 공적 지원은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비록 사립미술관이더라도 설립 단계에서부터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국가와 사회를 위한 미술관 운영에 기여할 수 있는 전문인들을 중심으로 이사회를 구성하여 출발부터 미술관 운영의 장기적 비전을 명확하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론상으로 가장 바람직한 것은 사립미술관이 설립 당시부터 완벽하게 준비되어 충분한 기금과 전문인력, 시설 등을 확보하면 가장 바람직하겠으나 우리나라의 사립미술관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미술관들의 현실은 이와는 좀 동떨어져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의 사립미술관들이 설립 기점을 목표로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미술관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설립 이후의 구상이 설립 이전의 단계에서 꼼꼼하게 준비되어야 한다. 폴 게티가 1950년대에 자신의 사립미술관을 짓기 시작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앞으로 완성 후의 미술관 운영과 작품 구입을 위한 기부금을 연차적으로 꾸준히 적립해간 사실이나 1976년 그가 사망하면서 남겨놓은 유산으로 폴 게티 미술재단 운영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전문가들이 학예연구와 보존, 교육 등을 앞으로 폴 게티 미술관이 집중적으로 몰두해야 하는 사업이라고 결정한 사실은 비록 문화가 다른 외국의 경우이고 수십 년의 시간차가 있지만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사립미술관을 설립하려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점들을 시사해주고 있다.

사립미술관들이 안고 있는 운영상의 문제는 재정적인 문제를 비롯하여 충분한 전문인력의 활용, 시설의 현대화, 정보의 공유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온 시간을 되돌려 다시 사립미술관의 설립준비 단계로 돌아갈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철저하게 준비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미 지나온 과거를 탓하거나 과거의 오류에 계속 발목을 잡힐 필요는 없다.
따라서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사립미술관이 국가적 차원에서 문화예술이나 교육, 관광, 고용창출 등의 분야에서 공적으로 기여하는 역할을 인정하고 이러한 역할이 제대로 수행될 수 있도록 설립 이전부터 긴밀하게 협력하고 설립 후에는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효과적인 정책적 지원을 실시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립미술관의 입장에서는 정부의 공적 지원이 정당화될 수 있는 기관으로 거듭 태어나 미술관 업무의 전반이 공익을 우선으로 하며 모든 것이 투명하게 운영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의 사립미술관을 공적으로 지원하는 일에는 대부분의 사립미술관들과 정부 양측이 각자 해결하여야 할 숙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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