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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위원회의 출범을 기다리며

하계훈



1973년에 문화관광부(당시에는 문화공보부) 산하의 재단법인으로 출범한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좀 더 자율적이고 독자적인 법적 위상과 기능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이 심심치 않게 대두되어 오던 끝에 드디어 올해부터 문화예술위원회로 변신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신의 의미는 이제까지 주로 문화예술 분야의 정부 지원사업 집행기구의 성격을 갖고 있었던 문화예술진흥원이 이제는 중요한 문화예술 지원정책의 수립에서부터 집행에 이르기까지 좀 더 넓고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독립적인 기구로 탈바꿈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문화예술 환경이 지방분권적이며 민간자율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추세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과 그 동안 우리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향상되고 그에 따른 문화적 자율성과 전문성의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는 점이 지적되어왔다. 지난 해 말에 최종적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문화예술진흥법개정안에 의하면 앞으로 약 6개월 후에는 문화예술위원회가 출범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제까지 문화예술 분야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던 문화관광부는 문화예술위원회에게 문화예술 지원정책 가운데 중요한 역할의 상당부분을 이양하고 그야말로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으면서 한 걸음 물러서서 우리나라의 문화예술계가 자율적으로 돌아가는 것을 관찰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문화예술위원회는 자율적 운영의 권한을 얻는 동시에 이제 명실상부하게 우리나라의 문화예술 진흥을 책임지며 문화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표적인 기관이 될 것이므로 여기에 따르는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러 전문가들이 주장해 온대로 이제 문화예술 지원정책에 있어서 보다 민간주도적이고 자율적인 문화예술위원회가 탄생되게 되었으니 모두가 기뻐해야 할 일이겠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염려스럽고 아쉬운 감정이 남아있기도 하다.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지만, 어쨌든 문화예술위원회의 탄생을 계기로 변화된 문화예술 지원제도를 둘러싼 문화예술계의 관심의 초점 가운데 하나는 누가 위원회에 진출하는가라는 문제다. 벌써부터 각 단체들 사이의 물밑 경쟁과 상호견제가 포착되기도 하고 문화관광부로서는 장르별, 지역별, 단체별 등등 각종 안배에 신경을 쓰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잡음을 없애기 위하여 위원회 위원을 추천하는 위원추천위원회라는 또 다른 위원회도 만들어진다. 이렇게 되면 그리 풍족하지 않은 문화예술 진흥기금과 시간은 각종 위원회를 조직하고 위원을 뽑기 위한 위원회를 운영하느라고 낭비되고 만다.


그러나 이렇게 2중의 안전장치를 갖추어 안배 위주로 인선을 하다보면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닌 것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문화예술진흥원이 문화예술위원회로 바뀌게 된 취지 가운데에는 우리 문화의 정체성이나 전통문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뿐 아니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변화하는 문화환경에 적절히 대처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이러한 변화 가운데에는 국제적 문화환경과 국내에서의 소수자 문화에 대한 관심과 영향력 증가, 그리고 첨단 기술매체와 연관된 예술표현 방식의 변화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오래 전에 조직되어 학맥과 서열 등에 의해 운영된다고 의심받던 단체들이나 소위 정치권력과 코드가 맞는 인사들이 저마다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겠다고 각 단체장들을 위원회에 밀어넣으려고 한다면 문화예술위원회의 구성과 그렇게 구성된 위원들이 해낼 수 있는 문화예술의 진흥의 미래는 불보듯 뻔한 것이다. 이미 우리는 수 십 년간의 문화예술진흥기금 지원과정에서 각 단체들간의 갈등과 잡음을 피하기 위하여 지원금을 특성없이 고르게 배분하는 지원형식의 폐해를 충분히 보아왔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문화예술위원회의 위원들은 이 위원회가 추구하는 목표를 가장 잘 이해하고 그 목표달성에 효과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하며 형평성이라는 이름아래 배분의 원칙에 의해서 선정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하여서 필요하다면 과도기적으로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일단 위원으로 선정된 사람을 자신의 소속 단체에서 탈퇴하도록 하여 그를 소집단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중압감에서 어느 정도 해방시켜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식적 방법보다는 모두가 공감하는 전문가를 선정하고 이들의 권위를 인정하여 그들의 결정에 깨끗이 승복하는 문화예술계의 풍토가 하루빨리 조성되어야 국제적으로 부끄럽지 않은 문화예술위원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문화관광부가 밝힌 문화예술위원회 운영방침에 의하면 앞으로 문화관광부는 우리나라의 문화예술 지원정책에 있어서 한 발 물러서서 문화예술위원회가 자율적으로 실시한 사업에 대하여 성과 측정과 평가를 맡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경우에 따라 위원회 업무의 시정요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선에서 자율권을 이양한다고 한다. 개정을 검토한 법안에서도 위원회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진흥기금 운용계획 등에 관한 위원회와 문화부 사이의 업무협의나 문화부 직원의 위원회 파견 등의 검토조항이 삭제되었는데 이 점은 위원회의 자율성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개정된 문화예술진흥법에 의하면 이제 문화관광부로서는 진흥기금 재원조달의 의무만 있고 이렇게 조달된 재원의 사용에 대한 실질적인 결정권한은 없게 된 셈이다. 문화관광부가 혹시 있을 지도 모르는 위원회의 파행을 견제하는 방법은 위원회의 사업성과 측정을 통한 시정요구 수준이다. 그런데 문화예술 사업에서 어떠한 관점에서 평가기준을 세운 것인가, 그리고 그 기준에 의해 평가를 할 때 객관적 수치로 환산되지 않을 결과에 대하여 어떠한 방법으로 성과를 측정할 것인가에 대해서 여전히 염려스러움이 남는다. 사실 이러한 일들은 문화관광부에서 할 일이라기보다는 문화예술위원회 위원들이 책임져야 할 몫이고 위원으로 선정된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이러한 일을 해낼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문화예술위원회의 출발을 목전에 둔 상태에서 염려되는 부분은 또 하나 있다. 이번 변화의 필요성 가운데에는 보다 효율적 운영을 추구하고 문화예술 현장의 변화된 환경을 고려한 면이 작용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위원회의 조직이나 운영이 이러한 변화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지금 거론되고 있는 위원회 구성방식이나 조직 구성에 있어서 일부분은 옛 모습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떨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제 좀 더 구체적인 시행령이 만들어져야 하겠지만 현재까지 개정된 법의 범위에서만 살펴보아도 20세기가 지나도 한참 지난 2005년에 새롭게 단장한 법이라고 보기에는 여전히 진부한 점이 눈에 들어온다. 우선 무엇보다도 운영의 효율성을 표방하면서도 여전히 상임감사를 조직 내부에 존속시킴으로써 연간 1억원이 넘는 예산낭비를 하게 된 것은 눈에 두드러지는 흠으로 보인다. 문화예술진흥원의 부속 조직으로 출발하였던 예술의 전당도 몇 해 전에 특별법인으로 전환하면서 상임감사 직제를 비상임제로 전환하였고 이후에 그 운영에 있어서 상임감사가 부재함으로써 발생하는 아무런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제 새롭게 출발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상임감사제를 그대로 안고 간다는 것은 앞으로 이 위원회의 운영이 여전히 구태의연해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하게 만든다. 외국의 유사한 조직에서는 우리처럼 상임감사제를 두고 있는 나라가 거의 없으며 감사의 내용이 대부분 회계감사에 치중하여 있으므로 매 회계연도마다 외부의 공신력 있는 회계법인이 감사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문화관광부가 또다시 예전처럼 자기 기관에서 퇴임을 앞둔 인사의 자리를 하나 마련하거나 정치적 논공행상의 자리로 상임감사제를 유지하려고 한다는 의혹을 떨치려면 문화예술위원회의 출발 시점에서 이 직제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론 문화예술위원회의 출발을 앞둔 상태에서 이와 같은 염려스러운 점이 있긴 하지만 문화예술진흥원의 문화예술위원회로의 전환은 바람직한 측면을 많이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제까지 문화예술진흥원이 장관이 임명한 원장 한사람의 독자적인 결정에 의해 운영되어 온 것에 비하여 새로 생기게 되는 문화예술위원회에서는 11인의 위원들에 의해 합의제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으므로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원장 1인의 독선적 의사결정과 업무집행도 쉽지 않을 것이다.


개정된 법에 의하면 문화예술위원회는 전체 위원회의 하부 기구로서 소위원회를 두고 여기에 예술현장의 경험이 많은 예술가 당사자들을 포함한 보다 실질적인 전문인들의 의견을 정책으로 연결시킬 수 있고 여기서 제안된 의견이 최종적으로 전체 위원회에서 결정되는 중간 과정에서 이전의 문화예술진흥원처럼 관료적 사고를 가진 문화관광부 공무원들의 실질적 개입이 제도적으로 차단됨으로써 이제까지와는 다른 신속하고 현실감 있는 정책이 입안되고 집행될 것이 기대되기도 한다.


기대와 염려가 섞여있는 상태이지만 원래의 취지처럼 문화예술진흥원이 문화예술위원회로 바뀌는 것에 대한 문화예술인들의 기대는 매우 높다. 이제까지 이루어진 일상적인 문화예술 진흥사업 이외에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앞으로 중점적으로 고려해야 할 임무 가운데에는 지역간의 문화격차를 해소시키는 일과 소외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발굴하여 진흥 육성 시키는데 힘을 쏟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관련법에 지방문화예술위원회의 설치가 명문화되어 있으므로 문화예술위원회에서는 중앙의 문화예술 진흥뿐 아니라 지방과 상대적 문화소외지역의 문화예술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데에도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지역문화의 발굴과 육성은 국제적 문화경쟁의 장에서 우리문화예술의 경쟁력을 보다 튼튼하게 해주는 결과로도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은 제도의 개선과 보완으로 해낼 수 있는 것보다는 사명감과 전문성으로 무장된 이 분야의 전문인력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사업의 핵심에 관여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진부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문화예술위원회가 자율성을 획득했다면 이제부터는 전문인력이 얼마나 적재적소에서 활약하는가가 위원회의 성공을 좌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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