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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박물관 한국전

하계훈

세계문명, 살아있는 신화
대영박물관 한국전


지금부터 252년 전인 1753년 영국 의회에서는 92세로 세상을 떠난 한스 슬론 경의 유언에 따라 그가 남겨놓은 서적과 자료들을 국비로 구입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구입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슬론 경은 자신이 평생 동안 수집해온 서적과 자료들을 헐값으로 국가에 매도해 사실상 이 자료들을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슬론 경의 기증품과 그 밖의 몇몇 인사들의 소장품들이 모여 1759년 대영박물관이 탄생하게 되었다.
슬론 경은 “젊은 시절부터 나는 전능하신 신의 능력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드러난 경이로운 힘과 지혜를 관찰하고 찬양해 왔기에 서적과 자연적, 인공적 자료 등을 수집해 왔다. 나는 이 자료들을 흩어놓지 않고 한군데에서, 바라건대 런던이나 런던 근교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예술과 과학의 발전에 이바지하기를 바란다.” 는 내용의 유언장을 남겼다.
그가 영국 밖의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문화적 혜택의 기회가 주어지길 바랬는지는 모르지만 오늘날 대영박물관은 전 세계적으로 연간 6백만 명이 넘는 관람객들을 맞고 있으며 박물관의 이사회는 일정한 조건을 갖추면 이러한 중요 소장품들을 런던에 있는 박물관 전시장에서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전시장에서 대여 전시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인류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하고 있다.
사실 슬론 경의 유언과는 다르게 초기의 대영박물관은 일반 관람객들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관람을 원하는 사람은 서면으로 입장권을 신청하여 몇 주를 기다리는 번거로운 절차를 밟아야 했다. 어렵게 입장이 허가되어도 관람 신청인은 정해진 날짜와 시간을 지켜 단정한 차림으로 박물관에 와야 했으며 입구에서부터 안내인의 인솔에 따라 간단히 전시장을 돌아보아야 했다. 10세 이하의 아동은 입장이 허락되지 않았고 관람 중간에 질문을 할 경우에는 제대로 답을 듣지 못하거나 심한 경우에는 면박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박물관 전시장 안에는 문화적, 과학적 지식이 많지 않은 일반 관람객들을 위하여 준비된 자료를 안내하는 설명문이나 안내문도 거의 없었다.
이러한 초기의 관람 절차와 환경에 비하면 우리가 예술의전당에서 300여 점의 대영박물관 소장품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손쉽게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은 더없이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한가람미술관 제 1, 2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전시는 대영박물관이 개관 250주년을 기념하여 2003년부터 아시아 지역을 순회하는 전시로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하는 전시회이며, 한국 측 주최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세계 삼대 박물관 가운데 하나인 대영박물관의 소장품을 본격적으로 유치하여 전시한다는 의미에서 보통 이상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번 전시에는 지역적으로 5대양 6대주의 자료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으며 시간적으로도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의 시간을 관통하고 있어서 일반 관람객이 한 번의 관람으로 충분한 이해를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관람 전에 전시 자료에 대한 사전조사를 하거나 전시와 관련된 인쇄물을 참조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전시 주최자 측은 전시기간 동안 무제한으로 반복하여 입장할 수 있는 입장권을 발행한다든지, 아니면 처음 입장권을 지참한 재입장자에 대한 할인혜택을 주는 방법을 고려해 보아도 좋았을 것 같다.







전시된 작품들 가운데 전시장 입구에 있는 사진과 실물자료들은 초기 대영박물관의 역사를 보여준다. 이 가운데 초창기의 입장권 사본이나 초기 박물관의 모습인 몬테규 하우스의 실내외의 모습은 박물관사적으로도 중요한 자료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전하였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영박물관 안에서 함께 운영되던 대영도서관을 이용하였던 마르크스나 레닌의 흔적을 보여주는 자료들도 흥미롭다.
유럽의 고대 유물 가운데에는 실물 크기의 디오니소스 석상과 하드리아누스, 안티노스의 흉상 등이 눈을 끌며 그리스 도기는 붉은 바탕에 검은 상을 표현한 것과 검은 바탕에 붉은 상을 표현한 것, 흰 바탕에 붉은 선묘로 표현한 것 등이 함께 전시되어 있어서 그리스 도기 양식의 변천사를 잘 읽을 수 있게 해준다. 다만 펜던트와 반지, 동전 등과 같이 크기가 작은 전시품 관람에 확대사진이나 확대경 등의 보조 장치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더라면 관람객들이 더욱 효과적으로 감상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중세 유럽의 공예품과 종교화, 성유물함 등과 르네상스 시대 이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렘브란트, 뒤러, 숀가우어, 고야와 같은 거장들의 드로잉과 판화들도 지역적으로 북유럽에서부터 남유럽에 이르기까지 고르게 구색을 갖추고 있다. 자료의 비중으로 보아 유럽지역의 자료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 지역의 자료도 비교적 수준 높고 풍부하게 전시되어 있어서 전 세계 인류의 문화를 수집, 보호한다는 대영박물관의 역할을 가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아시아를 동, 서, 남, 중앙으로 세분하여 많은 자료와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는다. 전시장 동선상의 마지막 부분에 진열된 한국의 자료로는 채제공의 초상화 외에 몇몇 도자기와 회화가 전시되어 있는데 일본이나 중국보다 자료가 빈약한 편이다. 이것은 런던의 대영박물관 전시장에 있는 각 나라의 전시장 비중을 그대로 축소한 듯하다. 몇 년 전에 대영박물관에 한국실이 설치되었지만 이웃한 중국실이나 일본실에 비하여 그 규모나 내용이 빈약한데 이것을 보완하여 세계인들에게 우리 문화의 제 모습을 알리는 것도 앞으로 우리들이 해야 할 숙제인 것이다.

이번 대영박물관 한국전을 통해 우리는 세계적으로 중요한 작품과 자료들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이번 전시를 위해 작품을 포장, 수송하고 직접 한국을 방문하여 작품들을 배치하는 대영박물관 직원들의 앞선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자료를 소중히 다루는 그들의 자세와 박물관에서 전문 인력의 역할이 강조되는 박물관 운영체계, 그리고 이들 전문 인력들이 쌓아놓은 연구 업적이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초청을 받아서 양질의 문화를 전 세계와 공유한다는 공익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천문학적 숫자의 대여료를 받아내어 박물관 운영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는 방법 등은 우리에게 박물관 운영에 있어서 참고할 만한 하나의 사례를 제시해 준다.

- 예술의 전당 2005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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