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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박물관, 문화의 메카가 되라

하계훈

올해 가을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 시민공원 내에 엄청난 규모의 공간으로 이전 개관될 예정이다. 일본에 의해 식민통치를 받던 1915년에 경복궁 뒤뜰에서 158평이라는 작은 규모의 조선총독부박물관으로부터 시작된 국립중앙박물관은 오늘날 전국적으로 10여 개의 지방 국립박물관들을 지점망처럼 연결운영하면서 우리나라 고고학, 민속학, 미술사 등의 분야에서 수집, 연구, 보존, 전시, 그리고 교육 등의 중요한 기능을 담당해오고 있다.

조선총독부의 식민통치 시절 경주고적보존회와 부여고적보존회라는 민간단체의 활동을 흡수하여 중앙의 조선총독부박물관의 분관 개념으로 운영되던 지방의 박물관들과 총독부 박물관과의 관계는 해방이 되자 그대로 국립중앙박물관과 그 분관들과의 관계로 운영체제가 굳어졌으며 경주, 부여에 이어 정부가 개성, 공주, 광주, 청주, 제주 등 주요 도시에 하나하나 분관을 늘려가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6.25 전쟁 중 부산으로의 임시이전과 환도이후 남산과 덕수궁 등으로 몇 차례 이사를 다닌 끝에 국립중앙박물관은 광화문에 터를 잡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박물관답게 학문적 연구에 노력하면서 지금까지 비교적 모범적으로 운영되어왔다. 교통이 편리하고 외국 관광객들이 선택의 여지없이 필수적 관광코스로서 방문해주는 까닭인지는 모르겠으나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나라 박물관들 가운데에서 가장 많은 수의 관람객을 받아들이는 대표적인 기관이며 시설 면에서도 비교적 양호한 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국립박물관 운영이 이렇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최근에 정부의 사업 가운데 문화 분야 활동의 중요성이 점차 강조됨에 따라 2003년에는 박물관장의 직급이 차관급으로 격상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중앙의 박물관이 이렇게 점진적 발전과 개선을 이루는 동안 대부분의 지방 국, 공립박물관들은 중앙의 박물관과는 달리 침체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다시 지방의 국, 공립 박물관과 미술관이 이제까지의 시행착오에 대한 심층적인 반성도 없이 하나 둘씩 추가로 설립되고 있어서 향후의 그 운영이 더욱 염려된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문화 분야뿐 아니라 정치, 경제, 교육 등 모든 분야가 중앙에 집중되어 있는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지방 국립박물관들의 침체는 보통 이상으로 심각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지방 국, 공립박물관의 침체를 인책론적 관점에서 바라보자는 것은 아니지만 흔히 이야기되는 지역민들의 낮은 문화욕구에서 우선적으로 그 원인을 찾으려는 책임회피적인 태도는 결코 정당화되기 힘들 것이다. 비록 지역의 낮은 문화수요가 박물관 근무자들의 업무의욕을 저하시키는 것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 하더라도 박물관 근무자들은 이것을 자기합리화에 이용하지 말고, 우선 자신들 내부에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것에 대한 해결책을 구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마케팅 관점에서 지방의 국, 공립박물관들을 살펴볼 때에도 우리는 박물관의 설립과 운영에 몇 가지 기본적인 문제점이 반복적으로 되풀이 되어왔음을 쉽게 지적할 수 있다. 우선 박물관의 설립 단계에서부터 지방의 대부분의 국, 공립박물관들은 마케팅의 기본적인 원칙을 벗어나고 있다. 지방의 대부분의 국, 공립박물관들은 그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중심지에 위치해있기보다는 교통이 불편하고 지리적으로도 접근성이 떨어지는 외곽에 세워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지방 국, 공립박물관들의 설립을 담당했던 사람들은 그 이유를 예산부족과 지역이기주의 등으로 돌린다. 하지만 일단 국가나 지방자치 단체에서 박물관을 세우기로 결정해놓고 적절한 부지 확보를 위한 예산이 부족하다는 것은 앞과 뒤가 맞지 않는 설명인 것이다. 어떤 지점이 박물관 부지로서 적합하다는 확신이 서지 않을 경우 본래의 계획은 당연히 수정, 보완되거나 필요에 따라서는 연기되어야 한다. 또 적절한 부지가 예산부족으로 매입이 어렵다면 예산을 추가 확보하는 방향으로 일이 추진되어야지 관람객의 접근성이나 편의성이 희생되는 방향으로 대체부지가 마련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행정관료들의 문화의식 부재와 이용자를 고려하지 않는 운영자 중심적 사고, 그리고 장기적인 운영의 비전보다는 건축을 중심으로 한 실적위주의 업무추진 태도, 그리고 여기에 연관되는 여러 집단간에 복잡하게 얽히는 문화외적 관점에서의 이해관계로 인해 결과가 불 보듯이 뻔히 보이는 박물관 건립사업은 불완전한 상태 그대로 집행되어 왔고 그것이 오늘날의 지방 국립박물관들의 운영상의 침체를 초래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설립되는 지방의 박물관들은 행정편의적 결정에 앞서서 관람객의 접근성을 고려한 위치선정과 사용자 중심의 발상이 무엇보다도 먼저 이루어지고 이에 따른 철저한 예산의 확보가 보장되어야만 지금까지 반복되던 시행착오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지적되어야 하는 것은 박물관 건물의 건축적인 문제점이다. 지방의 국, 공립박물관들 가운데 많은 수의 박물관들은 지극히 권위주의적인 외관을 띠고 있다. 관람객들이 불편한 교통시설을 이용하여 어렵게 박물관 외곽에 도착하면, 멀리 좌우대칭의 근엄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박물관 본관을 향해서 마치 신전에 들어서는 사람처럼 숙연하게 다가가게 된다. 박물관 입구로 가는 통로는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화강석 계단과 잘 정돈된 좌우 대칭의 조경 등으로 인해 차가운 느낌을 주며 관람객들을 주눅들게 하는 경우가 많다.


국립박물관, 권위의 옷을 벗어라

건물의 외관뿐 아니라 내부공간의 설계에서도 대부분의 국, 공립박물관들은 크고 작은 문제점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이유 가운데 일부는 건물 사용자인 관람객과 내부의 학예인력 등과 같은 사람들의 의견이 설계 시점부터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박물관 시설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로서 관람객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사용되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마모와 손상 등을 적시에 보완하도록 해야지 이러한 문제를 막기 위하여 관람객의 사용을 사전이 제한하고 통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 될 것이다.

시설이용에 대한 지나친 통제는 박물관 근무자들의 위압적인 태도로 나타나며 이것은 관람객을 박물관으로부터 멀리하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비록 말처럼 간단하고 쉽지는 않겠지만 박물관 내부의 근무자들은 관람객들의 편의를 위해 어느 정도 희생과 봉사를 제공하려는 서비스 정신을 가져야 할 것이며 문제를 일으키는 일부의 관람객들을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계몽하여 궁극적으로 그들을 충성도 높은 관람객으로 개종시킨다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지방의 박물관 설립단계에서 위와 같은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면 그 이후의 운영에서는 박물관 조직의 문제와 운영 절차의 문제 등을 지적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의 자연스런 진화과정에서 박물관이 탄생한 것이 아니라 일본의 식민통치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효율적 지배의 필요에 의해 박물관이 설립되었다. 그러므로 그 설립 초기부터 운영의 기본 틀이 전문적인 학예연구를 중심으로 하기보다는 일반적 관리에 초점이 맞춰져왔고, 그 연장선상에서 오늘날 국, 공립박물관들의 침체되고 파행적인 운영의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907년 조선총독부의 강압으로 이왕가박물관 설립이 추진되면서 동물원과 식물원을 포함한 박물관의 설립준비가 어원사무국(御苑事務局)에 위임된 것은 이러한 행정중심의 박물관 운영태도를 잘 보여준다. 박물관 설립을 주관하게 된 어원사무국 측에서는 박물관 설립업무를 사무적으로 처리하는 것을 중심에 두었으며 큐레이팅과 같은 전문활동은 부수적인 업무쯤으로 보고 차후에 겨우 촉탁직 한 사람 쯤 고용하여 일을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행정중심의 사고는 오늘날까지 이어져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부터 자방의 국립박물관은 물론이고 지방 자치단체가 건립한 미술관과 박물관들이 거의 전부 행정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뿌리가 되는 셈이다.

박물관에서 이루어지는 업무의 성격상 박물관 활동의 중심은 학예직원들에게 주어져야 하며 그들의 활발한 활동이 제대로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학예직에서는 직위의 고하가 아니라 자신의 전문분야에서의 고유성이 존중되어야 한다. 따라서 학예직에서의 직위의 고하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행정자치부에서 일괄적으로 조직하는 정부조직법에 의해 계통화된 일반행정 조직이나 군대 조직처럼 ‘몇 급 직원 몇 명’ 식으로 구성되는 박물관 조직이 관료성을 탈피하기는 쉽지 않으며 전문성보다는 상하간의 위계질서를 우선으로 업무처리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박물관의 업무 성격상 학예연구를 하는 인력과 행정업무를 주로 다루는 두 가지 다른 성분의 인력이 한 기관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의 활동에 대하여 평가를 내리는 한 가지 잣대를 적용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학예직원은 연구업적이, 행정직원은 업무수행 성적이 평가의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박물관의 인적 자원 가운데 행정직원과 전문 학예직원간의 적정한 구성비율을 유지하는 문제도 심각하게 고려하여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학예직에 비하여 행정직의 비율이 너무 높은 편이다.









자율권 부여로 지방박물관 활성화를 꾀해야

국립박물관에서는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국립중앙박물관과 지방의 국립박물관들의 관계에서도 상하관계가 작용한다. 문화관광부와그소속기관직제 제29조 4항에 의하면 “지방박물관장은 중앙박물관장의 명을 받아 소관사무를 통할하고, 소속공무원을 지휘·감독한다”고 되어있다. 따라서 비록 작기는 하지만 엄연히 지방의 개별적 박물관의 관장이 중앙의 상위 계급자에게 부하직원 취급을 받는다. 지방 국립박물관들의 독자성 부족은 해당 박물관들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훑어보아도 금방 눈에 들어온다. 한두 군데를 뺀 다수의 지방 국립박물관들은 기관을 홍보하는 홈페이지에서 기관의 대표인 관장의 인사말조차 찾아볼 수가 없으며 심지어 관장의 인사말을 안내문처럼 관장직함으로만 제공해놓아서 현재의 관장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는 관장이 누가 되더라도 우리 박물관은 성격이 변하지 않는다는 함의를 가지는 것이며 결국 관장은 허수아비고 ‘흔들리지 않는 행정력이 우리 박물관의 중심입니다’라고 말해주고 있는 셈인 것이다.

지방의 국립박물관 관장들과 상당수의 직원들은 전국적으로 보직이 순환되는데, 이 순환보직제도도 형평성과 업무경험의 심화라는 그럴듯한 명목 아래 박물관 운영효율을 떨어트리는 주범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일부의 예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지방 국립박물관 근무자들은 중앙박물관 근무를 원하며 자녀교육 등의 사생활 면에서도 수도권에 생활 기반을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들은 지방으로 발령을 받더라도 얼마 후에는 다시 수도권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몇 년간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생활하게 되고 주말이 되면 근무지에서 벗어나 가족들과 지내기 위하여 수도권으로 향한다. 주말이면 지방의 박물관 근무자들이 서울로 올라가기 위하여 삼삼오오 기차역이나 버스 터미널로 향하는 모습은 일상적인 광경이 되어있다.

이러한 생활 태도와 의식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는 지방의 국립박물관이 바람직하게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지나친 기대인지 모른다. 어떤 지방의 국립박물관 직원이 자신의 생활 기반이 아닌 곳에서 가족과 떨어져 관람객들의 낮은 관심 속에서 관료주의적 행정력의 구속을 받으며 근무하는 가운데 봉사정신을 강요받는다고 생각해보자. 이 직원의 근무의욕 저하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는 지방의 국립박물관의 운영 자율성을 더욱 확대시키고 직원의 상당 부분을 현지 거주자나 그 지역에 생활기반을 갖고 있는 연고자 가운데 선발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지역의 특성을 살려 중앙박물관과는 차별되는 지방의 국립박물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현지의 사정을 잘 알고 애향심을 발휘할 수 있는 인력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적절한 지원을 전제로 한다면 지방박물관을 중앙으로부터 독립시켜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이상에서 간단하게 살펴본 것처럼 우리나라의 지방 국, 공립박물관들 가운데 대부분은 활성화와는 거리가 먼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 사실이다. 박물관 운영 활성화를 위한 노력은 무엇보다도 박물관 직원들의 적극적 태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박물관 운영의 성패를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인 공간의 문제, 인력의 문제,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의 운영 문제에 있어서 우리나라 상당수의 지방 국, 공립박물관들은 비효율, 관료주의, 비문화적 사고 등에서 기인하는 중병상태에 놓여있다. 환자에 대한 정확한 진단에 따른 시급한 치료와 필요한 부분에 대한 과감한 수술이 하루 바삐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우리는 영안실에서 박물관이라는 환자를 조문하게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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