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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보존과 박물관의 역할

하계훈

2004년 10월 2일부터 8일까지 7일간 한국에서 개최된 제 20차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International Council Of Museums) 총회는 일명 문화올림픽으로 불릴 정도로 그 참석규모나 국제적 전파력에 있어서 올림픽 행사만큼이나 영향력 있고 중요한 행사라고 볼 수 있다.
국제박물관협의회의 설립에 관한 역사를 간단하게 살펴보면, 원래 제 1차 세계대전 이후에 연합국을 중심으로 결성되었던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 산하에 국제박물관사무국(The International Museums Office)이라는 기구가 조직되어 있었는데 이 사무국이 제 2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계기로 해체되었다. 그 후 전쟁이 종료된 1945년에 국제연합 산하의 국제연합 교육, 과학 및 문화기구(UNESCO, 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에서 활동하던 미국 뉴욕주의 버팔로박물관 관장 햄린(Chauncy J. Hamlin)이 유네스코의 공식적인 자문 및 협력기구이면서 비정부기구인 국제적 박물관 관련 기구의 필요성을 다시 주장함에 따라 1946년에 유네스코 산하의 기구로서 국제박물관협의회가 새롭게 탄생하게 되었다.
당시 햄린은 미국박물관협회(American Association of Museums)의 회원이었으므로 국제박물관협의회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큰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고 자연스럽게 햄린은 국제박물관협의회의 초대 회장직을 맡게 되었다. 같은 해에 국제박물관협의회 본부가 소재한 프랑스의 파리에서 ‘문서기록, 보존과 교류’라는 주제 아래 제 1회 총회가 열렸으며 4년 뒤 1950년에 런던에서 2차 총회가 열렸다. 런던에서 2차 총회가 열린 이후에는 매 3년마다 회원국간에 박물관과 관련된 회의 주제를 선택하여서 돌아가며 총회를 개최한 결과 올해 20회 총회를 한국에서 개최하게 된 것이다.
국제박물관협의회는 회원으로 가입한 130여개국의 국가위원회와 29개의 박물관 관련분야의 국제위원회를 두고 있으며, 정책의 결정은 본부의 집행위원회(Executive Council)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집회위원회는 회장을 정점으로 부회장 2인, 상임이사 11인, 감사 1인, 그리고 국제박물관협의회의 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국제박물관협의회의 자문위원회는 각국의 국가위원장과 국제위원회 위원장 및 14개의 자매기구 위원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자문위원회 위원장은 이 기구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당연직(ex-dfficio) 구성원이다. 말하자면 이 자문위원장을 포함하여 집행위원회의 상임이사 숫자가 12인인 셈이다. 이들의 임기는 3년이며 1회에 한하여 연임할 수 있고, 위원의 선출방식은 각국 국가위원회당 5명, 각 국제위원회당 5명, 그리고 각 자매기구당 3명으로 구성된 투표인단에서 선출하게 된다. 이들의 직책은 보수가 없는 명예직이다.
국제박물관협의회가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조직이므로 협의회는 보다 효율적인 교류와 협력을 위하여 전 세계를 몇 개의 지역으로 나누어 지역기구(Regional Organization)를 두고 있다. 이 지역기구는 해당지역 국제박물관협의회의 국가위원회 박물관 종사자들의 정보교류와 협력을 위한 포럼(forum)을 제공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해당 지역의 신규 국가위원회의 가입을 접수하여 국제박물관협의회 집행위원회가 최종적으로 가입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을 중계하는 역할을 한다. 지역 기구는 이사회를 통해 운영되는데 이사회의 조직은 위원장 1인, 이사 3인 이상, 그리고 해당지역에 거주하는 국제박물관협의회 집행위원이 당연직으로 참여하게 된다. 이들의 임기 역시 3년이며 1회에 한하여 연임할 수 있고 보수가 지급되지 않는 명예직이다. 이사회의 선출방식은 해당지역의 각 국가위원회가 1표씩 투표하여 결정하는데 지역기구의 임원은 지역에서는 의결권은 갖고 있지만 국제박물관협의회 총회에서는 투표권을 갖지 않는다.





이번 총회는 국제박물관협의회의 한국위원회가 한국박물관협회와 국립중앙박물관과 공동으로 주관하여 조직위원회를 구성하고 서울의 코엑스 컨벤션센터에서 총회와 각 국제위원회의 회의를 개최하였는데 ‘박물관과 무형문화유산(Museums and Intangible Heritage)’이라는 주제 아래 전세계에서 2000여명의 학자들과 박물관 관계자들이 다양한 관점과 경험을 나누는 장을 펼쳤다. 총회와 29개의 국제위원회에서 다룬 주제는 대략 박물관과 무형문화유산, 문화유산의 보호, 디지털 환경과 미래의 박물관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10월 2일에는 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기원하는 전야행사가 열렸고 이어서 3일의 총회 개막식은 자크 페로(Jacques Perot) 국제박물관협의회장과 서울대회의 명예대회장인 한국의 대통령부인, 그리고 태국 공주 등의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되었다.
총회에 이어서 4일부터 진행된 개별 국제위원회의 회의는 각 위원회가 선정한 주제에 따라 각국의 참가 회원들이 발표의 기회를 가졌는데 청중동원 실적과 파급효과는 위원회마다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내국인 청중의 참여는 저조한 편이어서 이 점이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국제박물관협의회의 총회는 원래 호원들을 중심으로 하는 총회의 성격이므로 일반 청중들을 동원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대회 관계자에 따르면 이러한 청중동원 실적은 한국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럽이나 미주에서 벗어나 총회를 개최할 때에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다만 선진국의 경우 자국에서 국제박물관협의회 총회가 열리게 되면 관련대학의 학생들이 학교의 지원이나 여러 문화재단 등의 도움에 의해 대부분의 학생들이 회원으로 등록함으로써 대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최근에 박물관 관련 학과들이 적지 않게 생겨났지만 어느 학교나 재단도 학생들에게 이러한 지원을 해준 곳이 없었으며 개인의 개별적인 등록을 통해 일부 학생들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참가한 경우가 있었을 뿐이었다.
29개의 국제위원회 가운데 국제현대미술박물관위원회(CIMAM), 국제교육,문화활동위원회(CECA), 국제전시교류위원회(ICEE), 국제전문인력훈련위원회(ICTOP) 등은 비교적 많은 청중들과 함께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며 일부 위원회는 두개의 위원회가 합동으로 회의를 개최함으로써 관심사를 공유하고 청중동원에도 성공했다.
이번 국제박물관협의회가 서울에서 개최된 의의는 국제박물관협의회의 58년간의 역사상 처음으로 아시아 지역에서 개최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게다가 총회의 주제를 무형문화유산으로 정함으로써 우리나라가 1990년대 초부터 강조해온 박물관에서의 무형문화재의 중요성이 전세계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여 받아들여진 셈이다. 대회 마지막 날에는 무형문화유산을 보호하고 이와 관련된 전문가들을 육성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문이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서울선언”이라는 명칭으로 발표되었다.
이번 대회의 마지막 날에는 국제박물관협의회의 자문위원회가 개최되었으며 한국의 참가자 가운데 국립민속박물관의 김종석 학예사가 국제박물관협의회의 12명의 집행위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것도 역사상 최연소로 선출되어 앞으로 우리나라의 박물관이 국제적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국제적인 행사가 결과적으로 별 무리없이 잘 치러졌음에도 불구하고 대회를 준비해오는 과정을 살펴본 사람들은 걱정스러움을 떨치지 못했을 것이다. 정부는 1년 전에 지원단을 파견하였다고 하지만 사실 대회 6개월 전만 하더라도 준비위원회의 활동은 지극히 염려스러운 수준이었다. 그 원인 가운데 일부는 업무지휘체계의 일원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점과 준비위원회의 인적 구성이 실무자는 별로 없고 상위층의 감투를 쓴 사람들만 많아서 극소수의 인력을 제외하면 실제로 행동하기보다는 회의를 통해 입으로만 일을 하고 있었던 점이었다. 대회준비위원장을 3인 공동위원장으로 임명한 것도 기능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대회 후반부에 실시된 여러 박물관과 문화유적지에 대한 회원들의 답사와 다양한 전통공연 프로그램은 한국을 방문한 세계의 박물관 관련자들과 학자들에게 우리문화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아직 완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시로 개관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과 일부 박물관 근무자들의 국제적 감각결여로 빚어지는 진행상의 미숙함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국제박물관협의회 총회를 통해 우리는 전세계의 박물관들로부터 박물관 경영에 관한 새로운 사실과 유익한 경험들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들어도 실천으로 이어가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과연 그들이 우리처럼 관료화된 박물관 조직을 운영하고 있는지, 박물관 전문직을 어떻게 대우해주고 있는지, 자국의 문화유산을 어떻게 보호하고 있는지, 이러한 물음들을 스스로 답해볼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
이제 한바탕 잔치는 끝나고 뒷정리를 하면서 차분하게 앉아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시간이다. 사실 이번 대회를 치루면서 우리는 박물관과 문화재에 관한 산적한 문제점을 대충대충 감춘 채 우리나라를 찾은 세계의 박물관 관련인사들에게 평소의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 화장한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규탄하면서 평소에 우리 땅에 있는 고구려 유적을 제대로 보존하지 못했고, 무형문화유산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도 일상생활에서 그들에 대해 충분한 관심을 보여왔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이제 손님이 돌아갔으니 화장을 지우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긴장감을 풀고 이전처럼 집안에 산적한 문제를 예산타령, 인력타령, 책임관할 타령 하면서 자꾸 미루어 갈 것인지, 아니면 이번 기회에 우리의 생활태도를 바꾸고 자세를 가다듬어 진정으로 우리의 박물관과 문화재를 언제 어디서 국제무대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도록 만드는 일에 힘을 쏟을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월간미술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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