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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환상으로 말하기

하계훈

현실과 환상으로 말하기


프로젝트 139전 2004. 5.12 - 5.30 일민미술관




일민미술관이 유망한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연차적으로 기획하는 프로젝트 139의 세 번째 전시인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은 3인의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아르헨티나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보르헤스의 소설작품의 제목인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의 정원>에서 빌려왔으며 세 작가들은 공통적으로 자신들과 관련된 일정한 공간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작업하였다. 그리고 그 공간은 현실과 환상의 공간이 혼재하고 있어 모호하기도 하고 회고적이기도 하며 자기 방어적이기도 하다.







이지현은 자아의 방이라는 사적 공간에 존재하는 일상적인 사물을 묘사하면서 의도적으로 일부분을 배제하기도 하고 거울을 통해 허구적 공간과 그 속의 사물들을 증식시키기도 한다. 이렇게 생성되는 공간과 그 공간 안의 사물들은 재현되고 복제된 이미지이면서도 또 하나의 통합적 이미지를 구성한다. 그리고 이 이미지는 실체와 환영의 혼재로 구성되어 현실감각을 가지고 공간을 인식하기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장 보드리야는 이러한 이미지의 복제가 가져오는 유해성과 더 나아가서 대량으로 쏟아부어지며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미지의 과포화 상태가 보여주는 일종의 공격성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작가가 제시하는 공간과 사물은, 마치 18세기의 프랑스 화가 샤르댕의 정물화나 19세기 화가 뷔야르의 친숙한 실내묘사처럼, 폭력적 도구이기에는 너무 안락하고 친숙하며 이러한 속성으로 인하여 오히려 관람자들을 혼란에 빠트린다.


이명진의 경우에는 어린시절 홀로 지내던 기억으로부터 작업의 실마리를 찾았다. 홀로 앉아 이웃집을 들여다보거나 출입문을 장시간 동안 응시하는 과정에서 피어오르는 상상은 자기만의 환상의 공간으로 어린 시절의 작가를 인도했었다. 돌출된 판넬 위에 드로잉된 핸드레일과 그려지거나 설치된 계단을 통해 모호하게 이어지는 공간 속에서 홀로 서있는 어린이의 실루엣이나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의 희미한 모습은 지극히 사적인 기억을 드러낸다. 벽에 부착된 졸업 앨범의 한 면 속의 인물들의 모습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것은 자기 존재에 대한 정면 응시를 화피하려는 작가의 자기의식을 보여주는 듯하다.
현실의 결핍은 환상을 낳고, 그 환상 속에서 자아는 과거와 현재라는 두개의 자아로 분화되어 서로 의도적인 회피와 어쩔 수 없는 조우를 하게 되면서 낯설어하고 귀찮아하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서로가 위로의 주체가 되며 동시에 위로의 대상이 된다. 결국 작가가 만들어낸 공간과 그 공간 안의 인물은 숙명적으로 고독하다.


정상현의 경우에도 자신의 가상의 작업실 창을 통해 부분적으로 드러나는 현실적인 공간과 그 공간을 품는 더 큰 프레임 안에 형성된 공간을 왼쪽에 배치하고, 다른 한쪽에 동일한 크기의 프레임으로 근접 촬영된 비포장도로를 비추는 장면을 구성한다. 그리고 이렇게 양분된 두 프레임이 합쳐져서 커다란 전체화면이 영상으로 제시된다. 오른쪽의 화면에서는 간헐적으로 모형자동차로 보이는 물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커다란 기계음을 내며 지나가고 이럴 때마다 왼편의 화면은 그 물체의 통과로 인한 진동 때문에 화면 전체가 가볍게 흔들린다. 이렇게 화면이 흔들릴 때마다 관람자들은 왼쪽 프레임의 공간을 하나의 개체로서 인식하게 된다.
화면 안에는 현실의 공간과 가상의 공간이 나란히 인접하여 존재한다. 작가는 이 작품에 ‘사고(事故)’라는 제목을 붙여 초조하고 긴장된 자아의 심리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안과 밖, 멈춤과 움직임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속성을 나란히 배치하여 긴장감을 자아내고 나아가 이 두 요소를 충돌시켜 불안감을 증폭시킴으로써 외부세계로부터 도피하여 자신만의 공간으로 움츠려드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다.

이번에 출품된 세 작가들의 작품은 개인의 역사와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작품을 구성하고 있으며 현실과 환상을 교차하여 통합적인 전체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들의 작품들이 관람객들과 성공적으로 소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이들 젊은 작가들의 앞날을 낙관적으로 점쳐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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