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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객 가까이 가는 일본 박물관·미술관들

하계훈



양적 포화단계 이른 듯…운영 내실 위해 변화 시도

1960년대 말부터 20여 년간 경제적 호황을 누려오는 동안 일본은 교육·의료·문화 등의 사회분야에서 기본시설을 착실히 마련해왔다. 박물관과 미술관들도 이 기간 동안 전국적으로 약 1800여 개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뿐 아니라 기업이나 재단 등에 의해서 설립 운영되어 왔다.
그런데 이제 이러한 시설들은 양적인 포화상태에 이른 듯하고 여기에다 1990년대 초부터 서서히 닥쳐온 경제 침체는 일본의 문화분야 정부 지원을 위축시키고 있다. 2001년을 기점으로 일본정부는 박물관과 미술관의 운영의 내실을 기하고 예산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몇 가지 주목할 만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일본 경제가 하향세를 타면서 일본 정부는 2001년 4월 1일부터 국립박물관 3곳과 국립미술관 4곳을 포함하여 80여 개의 정부조직을 독립행정법인이라는 형식으로 바꾸어놓았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 내용은 이제까지 정부기구로서의 국립박물관과 미술관이 정부회계의 틀 속에 갇혀 1년 단위의 단기적 운영에 그칠 수밖에 없고, 한 번 편성된 예산을 수정하기 어렵다는 집행상의 경직성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는 점, 이제까지 금지되었던 외부로부터의 기부금이나 협찬금 등을 모금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제는 국공립 박물관과 미술관이 정부에서 배정해주는 예산으로 안이하게 운영해오던 타성을 벗어나서 각 기관마다 스스로 살아남아야 했다. 각 기관들은 예전에 정부로부터 지원받던 운영 보조금이 삭감되고 모자라는 예산을 스스로 확보해야 하는 부담감을 안게 됐다. 이제 관람객 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곧 이 기관의 적자를 의미하게 되므로 적극적으로 관람객을 끌어들일 전략이 필요하게 되며 동시에 기금 모금에도 전례 없는 노력을 쏟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독립법인화된 기관들은 기구를 개편하여 이전의 조직에서 찾아볼 수 없던 기금모금 담당자나 회계 담당부서를 편성하고 관람객을 유인할 수 있는 다양한 묘책들을 내놓고 있다. 국립서양미술관의 경우도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기금모금 담당자인 ‘사업추진관(事業推進官)’이라는 직위가 신설됐다.
하지만 박물관과 미술관의 운영을 경영적인 측면에서만 고찰하고 그 결과에 의해서만 평가를 내린다면 박물관과 미술관의 고유하면서 기본적인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조사연구 분야의 활동이 상대적으로 위축되거나 그 중요성을 낮춰보게 될 위험성이 있다.



주민 참여는 지역 사회 관심으로 이어져

요코하마 시립역사박물관은 일본의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 문화기관이 그러하듯이 정부가 세우고 민간에서 운영한다는 공설민영(公設民營)의 원칙에 의해서 요코하마 시가 설립하고 재단법인 형태의 운영조직을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 이 박물관 역시 일본박물관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재정난이나 관료주의적인 운영에서 오는 어려움 등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학예부서를 중심으로 관람객의 박물관 체험을 보다 심층적으로 유도하기 위한 몇 가지 노력이 눈에 띈다.
우선 공간배치 면에서 상설전시장은 중앙에 휴식과 자료조사를 겸할 수 있는 공간을 설정하고 여기서부터 시대별로 구획된 각 전시구역으로 찾아갈 수 있는 일종의 개방형 전시공간의 형태를 띠고 있다. 따라서 관람객들은 자신들의 관심이나 이해도에 따라 전시장을 관람할 수 있으며 개인의 체력 조건이나 집중력의 정도에 따라 언제든지 중앙의 공간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물론 이러한 공간배치가 주는 단점도 있다. 무엇보다도 각 공간간의 차단성이 모자라므로 소음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전시관람 도중에 의문사항이 있으면 즉시 자료를 찾는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이 박물관에서 관람객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전시기법은 원본 자료들을 유리진열장 등으로 차단하지 않고 관람객이 보다 생생하게 관찰하며, 나아가서 직접 만져볼 수도 있게 디스플레이를 해놓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전시는 소장품 파손이나 도난 등의 위험이 있고 실제로 이러한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박물관 측에서는 특별히 중요한 소장품을 제외하고는 이와 같은 전시방식을 당분간 지속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전시품의 일부분이 손상되거나 도난당한 일은 자연스럽게 관람객의 관람예절교육 사례로 활용하여 보다 성숙한 관람객의 자세를 고취시켜 나가고 있다.

관람객에 대한 조그만 배려는 전시실 옆의 도서실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시와 관련된 자료를 전면에 배치하여 관람객들이 찾아보기 쉽게 비치하는 방식이나, 기획전시실에서 관람객들이 고고학적 발굴을 실제로 체험하는 느낌을 갖도록 재현해 놓은 발굴현장, 그리고 전시장 끝 부분에 배치된 방에서 발굴 장비나 발굴품 실물을 조작해 보게 하는 체험학습실 등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재정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일부 박물관과 미술관은 관람객의 입장에서 그들의 편의와 이해를 증진시키는 데 초점을 두고 세심한 배려를 더해가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데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시도가 단기적으로는 재정적 부담을 심화시키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결국은 관람객 증가와 지역 사회의 관심 고조로 연결되어 장기적으로는 재정적인 면에서도 유익할 뿐 아니라, 박물관과 미술관의 본래의 목적을 충실히 수행해 나아가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박물관 통한 전통문화 보존 노력

박물관과 미술관 운영의 전반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일본 정부는 자신들의 전통적 문화를 보존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에도도쿄 박물관의 경우는 건물의 외관에서부터 옛 일본의 곳간인 구라(倉)의 모양을 본떠서 지어 에도 시대부터 1964년 도쿄올림픽 때까지의 도쿄의 역사를 실물과 복원 모형, 도서, 영상자료 등을 통해 다양하게 재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 박물관과 인접한 부지에는 에도도쿄 야외건축박물관을 설치해 현대화되어 가는 도시에서 자칫 사라져버릴 수도 있는 옛 건축물들을 옮겨놓고 잘 보존하고 있다.
이 박물관은 박물관과 야외건축박물관을 통한 전시와 교육사업 이외에 에도도쿄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연구를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도시역사 연구실을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 연구실에서는 에도도쿄의 역사, 생활문화, 도시 구조 등의 조사연구를 진행하여 보고서, 세미나 등의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2001년 4월 현재 81명의 상근 직원 가운데 학예과 직원 34명, 도시역사 연구실 직원 13명 등 전체 행정직원 가운데 비교적 높은 연구인력의 비율을 유지하는 것도 이 박물관의 전문적 연구와 전시, 교육 등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어느 정도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점은 박물관 조직이 일반 행정직과 학예연구직이라는 서로 다른 속성의 이중적 인적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사실상 일치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게다가 이러한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일반 기업과는 달리 개인의 업적에 따라 보상이 이루어짐으로써 각자의 업무 성취 의욕을 자극할 만한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기가 마땅치 않다.

독립법인화 조치 우리도 관심 가져볼 때

일본정부가 박물관과 미술관의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하여 선택한 방향은 국공립 박물관과 미술관이 관료주의적이고 행정 위주의 타성에 빠지기 쉬운 점을 경계하여 독립법인이라는 일종의 민영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까지 문화공급자로서의 정부의 입장에서 정책을 펴온 것에서 문화소비자인 관람객들을 보다 더 배려하기 시작하는 쪽으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쯤에서 우리나라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살펴보면 우리는 일본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이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도 일본 못지 않게 관료주의적 행정 위주로 박물관과 미술관을 운영해오고 있으니 비슷한 문제점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데 일본과 달리 우리는 독립법인과 같은 반(半)민영화를 실시할 민간적 토대도 미처 이루어지지 않아 더욱 상황을 어렵게 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박물관과 미술관의 독립법인화 조치는 우리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일본의 경우처럼 독립법인화를 통해 예산 집행과 사업, 그리고 조직의 구성 면에서 자율성과 신축성을 얻는다면 우리나라의 박물관과 미술관도 지금보다 더 나은 역량을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앞선 사례를 통해 이러한 제도의 변화가 가져오는 한계점과 단점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 출처 / <문화도시 문화복지> 200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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