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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의 적극적인 관심과 사명감이 제일의 전시공간 : 영국

하계훈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영국에서 전시공간에 대한 공공 개념이 도입되고 정부가 이러한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계몽주의 사상과 이 사상의 세례를 받은 일련의 시민운동, 그리고 산업혁명이 가져다준 여가시간의 증가에서 그 시발점을 찾을 수 있다. 대중을 위한 전시공간의 대표적인 형태는 박물관과 미술관이라고 볼 수 있다.
올해 영국 국립 통계청이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 한해동안 박물관과 미술관은 2,400만명 가까운 관람객을 받아들여 영화(2,200만명), 연극/뮤지컬(1,300만)을 제치고 문화예술 분야의 관람객 동원에 있어서 선두를 차지했다. 물론 이러한 기록에는 상당수의 외국 관광객들이 포함되어 있고, 입장료를 부과하는 영화나 연극, 뮤지컬에 비해 대부분의 박물관과 미술관은 무료 입장이라는 점이 고려되어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물관과 미술관이 영국인들의 문화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박물관과 미술관의 역사적 전개과정

영국의 전시장 운영에 관하여 살펴보기 위해서는 우선 박물관과 미술관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국은 이미 1,683년에 옥스퍼드 대학의 부속 박물관으로서 애쉬몰리안 박물관(Ashmolean Museum)을 열었고 그후에도 1,800년 이전까지 5개의 굵직한 박물관과 미술관을 대학과 민간 학술단체를 중심으로 설립해왔다. 한편 정부에서는 대영박물관(1759년 개관), 국립미술관(1824년 설립),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미술관(1852년 개관), 테이트 갤러리(1896년 개관)등 20여개의 대규모 국립 박물관, 미술관을 설립해왔으며 현재는 이들 국립 기관들을 포함한 2,000여개의 공사립 전시공간이 영국 전역에 널리 퍼져있다.
영국이 오늘날의 커다란 박물관과 미술관을 갖게 된 배경 가운데 하나에는 상류층 인사들이 갖고있던 이웃나라 프랑스와의 경쟁의식이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1836년 왕실에서 임명한 미술에 관한 특별 위원회에서는 당시에 프랑스가 각 도시마다 박물관과 미술관을 갖고 있는데 비해 영국은 그렇지 못한 점을 통탄하는 조사결과를 발표하였는데 결국 이러한 분위기가 오늘날의 대부분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탄생시키는 중요한 기폭제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마침내 1845년 의회는 일정 규모 이상의 지방 도시에서 세금의 일부분을 박물관이나 도서관을 짓는데 쓰도록 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빅토리아 여왕의 통치 기간에 해당하는 19세기 후반은 영국 역사상 사회 각 분야에서 가장 번영을 누린 기간이었으며 박물관과 미술관의 측면에서도 그 숫자가 크게 증가했던 기간이었다. 수도인 런던은 말할 것도 없고 맨체스터, 버밍햄, 요크 등 당시 영국의 주요 산업 기지 역할을 하던 도시들은 서로 앞을 다투어 박물관과 미술관을 세워 나갔다. 1,900년경까지 이러한 추세는 계속되어 이 무렵에는 각 도시의 중심이나 잘 다듬어진 공원 안에 박물관과 미술관이 자리잡고 있게 되었다.
국립 전시장과 대학 박물관들이 주요 소장가들이나 학술 단체로부터 충분한 기증품과 자금을 받아 넉넉하게 운영되어 온 데 반하여 지방 도시의 박물관과 미술관들은 출발 단계에서는 극히 적은 소장품을 보유하거나 전혀 소장품이 없이 문을 연 경우가 적지 않다. 지방 전시장 가운데 많은 숫자는 1851년 런던 대 박람회처럼 박물관이나 미술관이라기 보다는 산업 박람회장같은 모습을 띠고 있어서 전시장 내에 회화와 조각뿐 아니라 공예품, 가구 등이 뒤섞여 전시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전시공간들이 오늘날과 같은 훌륭한 소장품을 갖게된 배경에는 지방정부보다 그 지방의 부유한 상공인들의 자선 기부행위가 커다란 역할을 했으며, 우리가 찬사를 보내야 할 것은 이들의 기부행위가 미국처럼 조세 감면과 연관되어 있지 않고 명예를 위한 순수한 자선행위였다는 점이다.

1,900년경부터 영국의 박물관과 미술관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다. 이제 도시마다 기본적인 전시장 시설은 갖추어졌고, 문제는 도시 변두리의 소외된 지역에 대한 투자의 균형을 맞추는 사업의 일환으로 박물관과 미술관을 건립하는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관람객들을 유치하기 위하여 별도의 전담부서까지 두고 애를 쓰는데 비하여 당시의 박물관과 미술관들은 호기심에 찬 관람객들이 몰려들어오는 것을 적절하게 통제하는 방법을 생각하느라고 고심하고 있었으니, 어느 지역에 이러한 전시공간을 설립해준다는 것은 주민들에게 크게 환영받을 일이었을 것이다. 런던 동부에 위치한 화이트 채플 갤러리, 베스날 그린 박물관 등은 이러한 배경에서 설립되어 오늘날의 명성을 얻게된 것이다.
영국의 전시문화의 중심은 국립 전시장들이라고 볼 수 있다. 영국 국립 전시장에 대하여 한가지 특이한 것은 대부분의 국립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정부로부터 상당한 부분의 재정지원을 받으면서도 직원들의 신분은 공무원이 아니고, 기관운영의 결정권도 대부분 정부가 아닌 이사회에서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사회를 통한 기관운영 방식은 귀족중심 사회에서 믿을만한 비(非)관료 신분의 덕망 있는 인사가 정부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비중 있는 활동을 해온 전통에서 비롯되었는데, 명예와 자선(慈善)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명사와 학자, 귀족들로 구성된 이사회는 실제로 경직되고 능률이 떨어지는 관료사회의 폐단을 피하고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오늘날 제 궤도에 오를
수 있게 하는데 학문적으로나 재정적으로 많은 기여를 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문화사업

오늘날 영국의 주요 박물관, 미술관들이 탄생되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그 소장품들이 학자나 귀족들의 개인 소장품을 정부에 기증함으로써 공공 전시장으로서의 기능이 시작된 경우가 적지 않다. 영국 정부는 이렇게 기증품이 확보되면서 전시 공간이나 운영에 필요한 사항들을 책임지게 되었으며, 이러한 수동적인 출발 동기 때문에 박물관과 미술관의 운영에 있어 적극적인 개입이 힘들 경우도 있다.
미술부문에 있어서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전시사업은 국왕 조지 3세의 후원 아래 1768년에 설립되면서 매년 여름 전시회를 열어온 왕립 미술원(Royal Academy)의 연례 전시회(Summer Exhibition)다. 왕립 미술원은 재능 있는 화가의 양성과 국민들의 미술 감상 기회 확대를 목표로 설립되어 오늘날까지 이 두 가지 목표를 잘 실천해오고 있는 편이다. 군주의 실질적인 힘이 상실된 오늘날 왕립 미술원은 왕실의 재정적인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미술계의 지도적인 인사들로 구성된 미술원 회원들과 기업 및 일반인들의 후원에 의해 자체적으로 기관을 운영해가고 있다.
왕립 미술원 여름 전시회의 설립 목표 가운데 하나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영국에서는 미술이 국민 교육의 한가지 중요한 수단이 되어 왔고 이를 위해 군주와 귀족들의 후원이 따랐었다. 이러한 인식은 1851년의 런던 대 박람회에서도 나타나며 과학과 예술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높임으로써 제조 산업분야의 부가가치를 높이려 했던 노력이 눈에 띈다.
영국인들이 인식하고 있는 미술에 대한 또 하나의 용도는 평론가 존 러스킨(Jonh Ruskin)이 말한 것처럼 미술이 사회의 도덕적 건실성의 척도(index of a societys moral health)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술관과 박물관을 통한 국민교육은 국민의 미의식 개발 차원을 넘어 국민들의 정신문화를 통제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에 두고 벌여온 문화사업의 정신은 제 2차 세계대전중 음악과 미술등의 예술활동을 통해 전쟁의 고통으로 시름에 잠겨있는 국민의 사기를 진작하고자 했던 CEMA(Council for the Encouragement of Music and the Arts), 그후 예술 평의회(Arts Council of Great Britain. 현재는 Englad, Scotland, Wales등의 Arts Council로 분리되었음)로 이어져 왔다.



공·사립 박물관과 미술관에 대한 지원

정부와 예술 평의회가 주로 국립 박물관과 미술관에 대한 지원을 맡고 있다면 공,사립박물관과 미술관은 박물관 위원회(Museums & Galleries Commission)에서 대부분의 재정적, 기술적 지원을 하고 있다. 원래 이 위원회는 1929년 정부의 자문기구로서 출발했으나 현재는 박물관과 미술관에 관한 정부 지원금을 의회로부터 일괄 배정받아 각 지방 박물관 위원회에 배분하는 일에서부터 기관 운영의 경영적, 기술적 지원과, 국가 차원에서의 중요성이 인정되는 문화재의 국외 수출 가능여부를 사실상 결정짓는 조언을 정부에 제공하기에 이르기까지 영국 박물관과 미술관에 관련된 대부분의 일을 하고 있는 기관이다. 이 기관 역시 이사회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비정부기관
의 성격을 띠고 있다.
공, 사립 박물관과 미술관에 대한 지원 가운데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소장품 구입비일 것이다. 박물관 위원회는 매년 의회에서 배정되는 예산 가운데 각 박물관 미술관에서 요청하는 소장품 구입예산을 확보하고 있는데 전체예산의 20% 정도가 소장품 구입예산으로 책정되어 있다. 소장품은 성격상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미술 부문은 빅토리아 앤드 알버트 미술관으로, 그 밖의 과학, 역사 부문은 과학 박물관(Science Museum)을 통해 일괄 지원하고 있다.

대부분의 다른 문화사업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영국의 전시사업 분야에서도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불충분한 재정, 공공 재원의 폭넓은 분배효과 추구, 그리고 전시 내용의 질적 향상 등이다. 이 가운데 재정 문제는 넓게 보면 그 나라의 정치나 경제, 국가 외교의 문제까지 결부되어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불충분한 재정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하여 영국 정부에서 착수한 사업은 문화복권 사업이다. 1994년부터 시작한 문화복권 사업은 현재 정부 재정에서 지원되는 금액을 상회하는 커다란 액수의 문화 기금을 확보하여 박물관 미술관을 비롯한 각종 문화사업에 이 기금을 배분하고 있다.
이밖에도 영국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위한 지원은 개인과 기업의 기부, 사립 재단의 기부와 전문적 연구 사업 보조등 다방면으로부터 여러층의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입각하여 예술 평의회나 박물관 위원회를 통해 간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제몫을 톡톡히 해내는 것은 위에서 간단하게 살펴본 것처럼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사심 없는 기부행위와 관람객들의 적극적인 참여,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전시장에 근무하는 담당자들의 사명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출처 / <문화예술> 1999.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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