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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의 전복, 그 의미론적 이해

윤진섭

추상의 전복, 그 의미론적 이해



Ⅰ. 소위, 추상(抽象)이라는 것

왜 다시, 새삼스럽게, 추상이 문제인가? 영어로‘abstract’에 해당하는 한자어 ‘추상(抽象)’은 ‘구체(具體)’와 반대의 짝을 이룬다.‘구체’는 쉽게 풀이하면 ‘몸을 갖추는 것’이다. 즉, 형체 혹은 형태가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구체적인 형태가 있을 때 사람들은 쉽게 알아보고 쉽게 생각한다. 이 말의 쉬운 용례를 일상 회화에서 찾아보자. 어떤 사람이 “야, 추상적으로 말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말해,”라고 했을 때, 이는 곧 눈에 보이듯이 선명하게 설명해 달라는 함의를 지니고 있지 않은가. 즉, 이해하기가 쉽지 않으니(not easy to understand1)), 애매모호(曖昧模糊)하게 말하지 말고 그림을 그리듯이 상세하게 설명해 달라는 말이다.

애매모호하다는 것은 흐릿하고 희미해서 분명하지 못한 상태를 의미한다. ‘무지몽매(無知蒙昧)’와도 통한다. 몽매(蒙昧)는 주역(周易)에서 몽(蒙)의 괘(卦), 즉 ‘산 밑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형국이다.2) 그런데 이 몽의 괘는 한마디로 ‘철들지 않은 어린애’를 말한다.3) 산 밑에 옹달샘이 있어 물이 졸졸졸 흐르는데, 그 위를 덩굴(蒙草)이 잔뜩 뒤덮고 있어 그 아래에 있는 샘의 부위가 어두컴컴한 것이 곧 ‘몽’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샘이 장차 내(川)를 이루어 바다로 나아가니 잘 계도만 한다면 장차 크게 될 궤이다.4)

여기서 ‘애매모호’는 대상의 상태, ‘무지몽매’는 이를 바라보는 주체의 상태를 가리킨다. 대상의 모습이 흐릿하여 분명치 않으니 추상적이거나, 이를 바라보는 사람의 지적 수준이 높지 않을 경우 해석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흔히 추상은 어렵다고 말한다.
<추상과 감정이입(Abstraktion und Einfühlung)>을 쓴 빌헬름 보링거(W. Worringer)는 '감정이입충동은 인간과 외부세계와의 현상사이의 행복한 범신론적 친화관계를 조건으로 하는데 반하여, 추상충동은 바깥 현상에 의해서 일어나는 인간의 내적 불안에서 생기는 결과“라고 갈파했다.5)

인간과 바깥 세계 사이에서 발생하는 ‘행복한 범신론적 친화관계’란 구체의 세계를 가리킨다. 즉 눈에 보이는 세계를 말한다. 나무가 있고 숲이 있고 그 안에서 노루가 뛰어노는 광경을 바라보며 인간은 공포심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천둥이 치고 번개가 이는 무시무시한 자연 현상을 접할 때 인간은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전자가 대상에 대한 재현의 근거를 이루는 ‘모방의욕’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정신의 내면성을 추구하는 ‘예술의욕’의 단초가 된다.6)


주석
1.Websters Newworld Dictionary, Third College Edition, Prentice Hall, 1994, ‘abstract’ 항목 참조.
2.松亭 金赫濟 校閱, <原本集註 周易(全), 明文堂,, 1983, 39쪽 참조.
단(彖)왈, 산수유험(山水有險)하고 험이지(險而止)하니, 곧 몽(蒙)이라.
3.역경(易經), <세계고전전집 9>, 金昌洙, 金學主 공역.
4.여담이지만, 내가 20여 년 전에 산점을 배워 점을 치니, 바로 이 몽(蒙)의 괘가 나왔다. 그런데 이 몽의 괘 풀이에 “시초점을 칠 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점을 치면, 처음에는 반드시 진실을 말해준다. 그러나 점친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재삼 점을 친다는 것은 점서의 신성을 모독하는 것이다. 모독하면 진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가르침을 의심하는 자에게 가르치는 것은, 결국 배우는 자도 더럽히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어서 그 후로는 재삼 점을 치지 않았다. 앞의 책, 98쪽.
5.조요한, 현대미술에 있어서의 추상의 문제, <예술철학>, 경문사, 208쪽.
6.조요한, 앞의 책, 208쪽.


보링거는 후자의 추상충동이 비단 고대 동방예술에서 보는 것과 같은 원시적인 예술의욕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높은 문화적 단계에 도달한’ 여러 민족에서도 보인다고 말한다.7)

앞에서 나는 몽의 궤가 ‘철들지 않은 어린애’를 계도하여 밝은 길로 나아가도록 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서구문명에 빗대어 말하자면 계몽사상(啓蒙思想)의 등장과도 통한다. 17-18세기 영국의 존 로크, 데이빗 흄, 프랑스의 몽테스키외, 디드로, 독일의 볼프, 칸트, 렛싱 등 전제주의나 권위주의, 기성 종교를 비판하면서 등장한 계몽사상가들이 그들이다.8)

계몽(啓蒙)이란 영어의 ‘enlightenment’, 즉 밝게 비추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이성과 과학의 힘을 빌려 미신이나 신화와 같은 비합리적 요소를 제거하는 일과 관련된다. 프랑스에서 디드로와 달랑베르 등에 의해 백과전서(Encyclopédie)가 편찬된 것은 1751-1781년의 일이었다. 이들은 과학, 기술, 학술 등 당시의 학문과 기술을 집대성한 대규모 출판사업을 벌여 훗날 프랑스대혁명의 사상적 배경을 마련했다. 여기서 램프가 은유하는, 스스로를 태워 주위를 밝게 비추는 행위는 천둥이 치고 번개가 이는 자연 현상을 해명하는 것에 대한 비유다. 여기에는 중세의 신 중심이 아닌, 르네상스 이후의 인간중심 사상이 배경을 이룬다. 원근법의 발명이 말해주듯이 수평적인 시선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것, 즉 ‘시각의 합리화’야 말로 자연에 대한 내적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는 방편이었던 것이다.

‘재현(representation)’은 원근법과 음영법과 같은 합리적인 원리에 의해 구현된다. 자연 대상을 합리적인 원리에 의해 재현할 때 인간은 불안하지 않고 ‘행복한 범신론적 친화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서양미술사상, 이러한 관계가 깨지기 시작하는 것은 세계 제1차 대전이라고 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에서 비롯된다. 다다(Dada)에서 우연성의 등장은 그 한 예다.

Ⅱ. 20세기 초반 서양 추상회화의 전개9)

1900년을 전후한 10여 년간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다양한 미술의 유파들이 산발적으로 나타났다. 허버트 리드(Herbert Read)의 표현을 빌면 ‘근본적으로 혁명적’인 성격의 이 미술운동들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전개될 양상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프랑스의 야수파와 입체파를 필두로 독일의 표현주의, 이탈리아의 미래파, 네덜란드의 ‘데 스틸’과 신조형주의, 러시아의 절대주의와 구성주의 등이 이 시기에 나타난 미술운동들이다. 이들 사조의 공통점은 새로운 미학적 이념으로 무장한 ‘전위운동(Avant-garde movement)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조들은 비단 후대에 나타난 현대미술의 원형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정신에 있어서 근원이 된다. 혁신과 새로움을 근간으로 한 현대미술의 출범이 이 시기에 정립되었던 것이다.

이 시기 미술의 또 하나 특징은 사조 및 유파의 발생주기가 매우 짧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인상파 이전의 고전적 미술이 매우 긴 주기를 가지고 단선적으로 나타났던 것과 현격히 다른 점이다. 아울러 동시 발생적으로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특징적 양상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금세기 미술 전반에 걸친 조형 실험의 모든 가능성이 이 시기에 이루어졌으며, 현대미술의 전망이 엿보였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며 혁명적인 시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주석
7.조요한, 앞의 책, 208쪽.
8.粟田賢三, 古在由重 編, <岩波哲學小辭典>, 岩波書店, 1979, 66쪽.
9.이 장(章)은 에뽀끄 학술논문집에 발표한 글을 전재한 것임을 밝혀둠.


뉴욕 근대미술관(MoMA)의 초대 관장을 역임한 알프레드 바(Alfred Jr. Barr)는 <근대미술의 정의(Defining Modern Art)>에서 20세기 초반의 근대미술에 대한 간략한 도해를 시도한 바 있다. 20세기 초 미술의 복잡한 지형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지도 그리기’를 시도한 것이다. 1890년에서 1935년에 이르는 시기를 대상으로 중요한 미술의 흐름을 파악해 보자는 것이 그의 본래 의도였는데, 이 도해는 그 이후에 전개된 미술 상황에 견주어 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장 큰 수확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미술의 전개가 20세기 초반 미술의 연장적 성격을 띤다는 점이다. 전후 현대미술의 사조 명칭에 덧붙여진 ‘Neo나 ’Post와 같은 접두사들은 금세기 초엽의 미술 사조들의 변종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20세기 초엽에 나타난 신조류의 대다수는 추상 미술(abstract art)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추상 미술은 “형태와 색채가 사물을 알아볼 수 있게 묘사하려는 목적에 종속되지 않고, 고유의 표현적 목적을 갖는 미술”(옥스포드 20세기 미술사전, 시공사)로 정의된다. 말하자면, 색채와 형태의 자율성이 중시되는 미술의 형식을 가리켜 ‘추상 미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폭넓은 의미에서 장식 미술도 포함되나, 그 보다는 모방(mimesis)의 원리를 좇는 서양의 전통적인 미술 개념을 탈피한 20세기 회화와 조각을 지칭한다. 추상에 대한 정의와 관련하여 일찍이 허버트 리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관례적으로, 어떤 미술 작품이 외적 세계에 존재하는 대상에 대한 미술가의 자각에서 출발하였다고 할지라도, 더 이상 대상에 기반 하지 않는 독자적이고 일관적인 미학적 총체를 만들어 나가는 모든 미술 작품을 우리는 ‘추상’이라고 부른다.”

1910-20년이란 기간이 서양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의미는 바로 이러한 관점, 즉 대상의 외관에 기대지 않는 독자적인 미술 형식이 이 시기에 확립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앞서 언급한 알프레드 바의 도표를 반으로 나눌 때 왼쪽은 주정적 경향의 표현주의적 추상 양식이, 오른쪽은 주지적 경향의 기하학적 추상 양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쓴다면 이를 통해 서양 근․현대미술의 대강을 파악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그는 <입체주의와 추상 미술(Cubism and Abstract Art, 1936)>이란 책에서 이러한 사실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는 “지적이고, 구조적이며, 건축학적이고, 기하학적이며, 직선적이고, 고전적인 엄격함을 지닌, 논리와 계산에 기반을 둔” 추상 양식과 “지적이기보다는 직관적이고 감성적이며, 기하학적이기보다 유기체적이고 생물 형태적인 형태를 취하며, 직선적이기보다 곡선적이고, 구조적이기보다 장식적이며, 신비주의적인 것과 자발적인 것, 비합리적인 것을 고양시킨다는 점에서 고전적이기보다는 낭만적인” 추상 양식으로 분류하고 전자의 대표적인 작가로 말레비치를, 후자의 대표적인 작가로 칸딘스키를 들고 있다(옥스포드 20세기 미술사전).

알프레드 바의 이러한 분류는 추상 미술에 대한 대략적인 길잡이가 돼 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왜냐하면 바의 이러한 분류 이후에 나타난 현대미술의 제 경향을 살펴볼 때 그러한 분류에 엄격히 편입시키기 어려운 양식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파리를 중심으로 나타난 앵포르멜과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그 중에서도 특히 잭슨 폴록의 드리핑 회화는 바의 이러한 분류에 편입되기를 거부한다. 따라서 다시 옥스퍼드 미술사전에 기대어 20세기 추상 미술의 복잡한 갈래를 분류하면 다음과 같은 세 개의 유형으로 요약된다.

첫째는 ‘추상화하다(to abstract)는 동사가 지닌 함의, 즉 요약과 감축의 의미를 좇아 자연 대상을 해체하였을 때 나타나는 결과로서 이는 부랑쿠시의 조각과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추상회화가 대표적이며, 환원주의적 입장을 따른다. 둘째는 비재현적인 기본 형상들로 작품을 구축하는 경향을 들 수 있다. 여기에는 벤 니콜슨의 부조 작품들이 해당된다. 셋째는 즉각적이며 자유로운 운필을 구사하는 경우로서 잭슨 폴록의 경우를 들 수 있다.

물론 이처럼 단순한 분류에는 어느 정도 위험부담이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20세기 추상 미술이란 거대한 조류를 불과 서너 개의 갈래로 분류할 때 나타나는 단순화의 위험이 그것이다. 그러나 알프레드 바의 경우에서 보듯이, 이러한 분류가 갖는 위험부담에도 불구하고 미술평론과 미술사 분야의 여러 석학들은 그러한 시도를 해 왔다. 대표적인 경우가 르네 위그와 허버트 리드이다. 르네 위그는 [예술과 인간](1961)에서 현대 회화에 나타난 미술의 이원성을 지적하고 있으며, 허버트 리드는 근대 회화의 전개 과정에 내포된 기본적인 예술형태로 이른바 ‘결정적 관계의 예술’과 ‘내적 필연의 예술’로 분류하였다.

리드는 이 두 형태의 예술은 예술가의 감수성과 창조력의 방향에 따라 구분된다고 보았다. 가령, 피카소처럼 다면적인 재능을 지닌 작가는 어느 한 방향에 치우치지 않고 쌍방의 양식을 통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작가들은 하나의 뚜렷한 양식에 맞춰 자신의 개성을 발전시켜 나간다는 것이다. 그 결과 ‘명석․ 정확․ 정형’의 이상에 접근하려는 경향과 이와는 상반되게 ‘몽롱하고 비정형적이며, 부정확한 이상(理想), 다시 말해 표현성․ 생명력․ 유동성을 향해 나아가려는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이 일, 서양미술의 계보, API).

20세기 초엽에 나타난 추상 미술의 복잡다단한 제 경향은 그 근원을 살펴볼 때 13세기 유럽미술의 역사에 빚지고 있다. 이에 대한 간략한 초안을 마련한 사람은 역시 알프레드 바이다. 그는 유럽의 미술을 베네치아 전통과 폴로렌스 전통, 시각적 리얼리즘의 전통으로 분류하고 20세기 미술이 이러한 전통에 의존하고 있음을 앞서 열거한 도표를 통해 분석하였다. 그는 풍부한 색채와 역동적인 동세가 특징인 베네치아 전통은 표현주의 미술의 제 경향으로 이어졌으며, 그리스․로마 미술에 영향을 받은 고전적인 선과 정적인 조각 형태를 특징으로 하는 폴로렌스 전통과 시각적 리얼리즘의 전통은 신인상주의와 인상주의를 낳았다고 보았다. 말하자면 서양의 미술은 기승전결이 분명한 고유의 역사적 맥락과 정통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1910년에서 20년에 이르는 서양미술은 현대미술의 원류라고 할 정도로 도전적인 실험정신과 왕성한 전위의식을 보여준다. 20세기 전체에 걸친 미술의 거의 모든 기법과 양식이 이 시기에 나타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른바 ‘Neo니 ‘Post, ‘Anti와 같은 접두사들이 시사하는 것처럼 이 시기 이후에 등장한 다양한 사조와 이즘들은 대개 이 시기의 미술 양식과 기법을 새롭게 번안한 것들일 만큼 형태상의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이 시기의 미술양상과 전개에 대한 학습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바, 전통의 극복으로서의 새로운 운동이 다음 세대에게는 다시 또 하나의 극복되어야 할 전통으로 간주되는, 현대미술의 숙명이 바로 이 지점에서 싹트고 있기 때문이다.

Ⅲ.‘추상하라(Abstract it!’展과 기존의 전시 관행에 대한 도전

기획자인 유진상 교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을 전시한 이 전시회에서 과감하게 작품의 명제표(caption)와 설명판을 제거하였다. 원래 어느 전시건 작품의 명제표는 필수인데 마치 사람의 몸에서 옷을 벗기듯 제거한 것이다. 따라서 관객들은 작품에 대한 나름대로의 지식이나 선입견을 가지고 작품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이란 알몸의 사물 앞에 마주하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명제표와 함께 날아간 것은 작품의 아우라(aura),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작가의 아우라다.

관객들은 작가에 대한 정보가 미흡한 상태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평가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 그것은 미술사나 미학에 대한 관객의 지식의 정도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아마 유진상 교수는 그 점을 노리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는 ‘추상’이란 용어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가. 내가 이렇게 묻는 이유는 이번 전시에 비단 관례적으로 이해해 온 추상화의 개념이나 범주뿐만 아니라 명백히 구상화의 영역에 속하는 작품들이 다수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미술관 측이 준비한 도록을 보니 기획자의 글 가운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눈에 띄어 여기에 인용한다.

“난해하고 애매한 ‘추상’이라는 요소는 오늘날 거의 모든 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 작품들에 의미 있게 포함되어 있다. 추상을 전면에 내세우던 20세기 초의 예술작품들과 달리 오늘날의 예술작품들은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구상적인 작품들 속에서 추상적인 표현을 보여주거나, 아니면 추상적인 작품을 구체적이고 알아볼 수 있는 요소와 결합시키는 등의 좀더 예외적이고 다양한 사례들을 보여준다. 이러한 예술작품들은 평범하고 진부한 표현을 피해가는 대신 지나치게 모호하거나 애매한 해석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예술작품은 무엇보다도 감상자에게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동시에 그것은 감상자의 지적, 감정적 상상력을 더욱 고양시켜 줄 수도 있어야 한다. 추상은 바로 그러한 목적에서 고안된 예술적 수사(修辭)이자 사고의 작용이다.”

같은 글에서 그는 “‘추상’이라는 용어가 최근에 와서는 과거의 역사적인 예술적 스타일을 가리키는 말처럼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하면서 “이 용어는 이제 전처럼 빈번히 사용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권위주의적이고 심미적’인 보수적 예술작품의 고유한 특성처럼 진부한 것”으로 간주된다고 본다.

내가 보기에 그의 이러한 발언 속에는 추상이 원래 지니고 있던 저항적이며 도전적인 요소의 회복을 기도해야한다고 하는 의미가 함축돼 있는 것 같다. 즉, 20세기 초엽, ‘다다’나 ‘미래파’와 같은 전위적 운동들이 지니고 있던 체제 전복적인 급진성이 새롭게 정립돼야 할 시기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논지는 여기서 끝나고 위에 인용한 문장으로 연결되고 있다. 그렇다면 위에 인용한 부분이 바로 그가 이번 전시에 일련의 구상작품들을 포함시킨 이유가 될 터인데, 그렇다고 해서 추상과 구상이란 범주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장르의 교류 내지는 혼융(hybrid)이 허용될지는 의문이다. 물론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을 살펴볼 때 기획자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명제표를 제거한 것에서부터 구상작품에 추상적인 요소가 함유돼 있는 작품들, 혹은 그 반대로 추상적인 작품에 구상적인 요소가 엿보이는 작품들을 선정한 것은 그 자신도 언급한 바 있듯이, ‘추상’의 의의를 좀 더 확장된 것으로 다루어보고자 하는 바람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언어학에서 일반의미론자 가운데 알프레드 코르집스키(A. Korsybski)는 ‘추상사다리’ 이론을 통해 언어의 추상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가령, 내가 키우는 도사견 ‘왕치’가 과연 개의 속성을 얼마나 지니고 있는가. 나아가서 그 놈이 개장수에게 팔렸다고 가정할 경우 상품인 그것은 또 어느 정도 개의 속성을 지니고 있는가. 더 나아가서 그 놈이 경매 시장에 올랐을 경우를 상상하면 경매사의 부지런히 움직이는 손놀림에 과연 그 개의 속성은 어느 정도일까.

이러한 가정을 상정하면, 오형근의 <아줌마> 연작을 이번 전시에 포함시킨 유 교수의 결정은 매우 흥미로운 논점을 제공한다. 관례적으로 판단하면 이 사진작품은 아주 모범적인 재현미술의 한 부류이다. 추상성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것이 관례적인 인식일 것이다. 그러나 의미론적 입장에서 보면 정반대로 아주 추상적인 작품에 속한다. 유 교수도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이 작품은 “단순한 아줌마를 찍은 인물사진이 아니라 아 사회의 구조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사진 속의 아줌마는 파마머리에 수수한 한복을 입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아줌마를 소재로 한 인물사진의 전형처럼 여겨질 수 있으나 ‘아줌마’라고 하는 사회적 속성에 주목하면 구체성은 증발돼 버리고 고도의 추상성만 남게 된다. 여기서 만약 이 작품의 제목을 실제 주인공의 이름을 따 가령 ‘김복순 여사’라고 붙였다면 추상성은 훨씬 반감되었을 것이다.

일찍이 헤라클레이토스는 판타레이(Panta Rhei), 즉 “만물은 유전한다(Everything flows)”고 말했다. 그는 또 “인간은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도 했다. 시간이 감에 따라 모든 것은 변한다. 예술도, 예술의 개념이나 범주도 매양 똑같을 수는 없다. 일반의미론의 대명제처럼 “지도는 땅이 아닌” 것이다.


참고문헌
해럴드 오스본 편, 김영나, 오진경 감수, 한국미술연구소 옮김. <옥스퍼드 20세기 미술사전>, 시공사, 2001
이 일, <서양미술의 계보>, API, 1992
Alfred. Jr. Barr, , Harry N. Abrams, Inc. Publishers, New York
Werner Hafmann, , Praeger Publishers, New York, 1976
Websters Newworld Dictionary, Third College Edition, Prentice Hall, 1994,
松亭 金赫濟 校閱, <原本集註 周易(全), 明文堂,, 1983
역경(易經), <세계고전전집 9>, 金昌洙, 金學主 공역
조요한, <예술철학>, 경문사
윤진섭, 20세기 미술-1910-1920년대 중심, <현대미술강좌>, 광주시립미술관 발행, 1999
粟田賢三, 古在由重 編, <岩波哲學小辭典>, 岩波書店, 1979,

국립현대미술관 주최 <추상하라!> 전 학술세미나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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