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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어느 인재의 쓸쓸한 죽음

윤진섭

얼마 전 아까운 인재 한 사람을 잃었다. 한국 미술의 세계화를 위해 애쓰던 고 이원일씨다. 향년 50세.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을 비롯해 주요 공·사립 미술관에서 중요한 일을 했던 그는 몇 해 전 독립 큐레이터(미술관 운영·기획자)로 나섰다. 2006년 중국 상하이비엔날레 전시감독, 2007년 독일 ZKM의 아시아현대미술전 공동 큐레이터, 2008년 스페인 세비야비엔날레 큐레이터 등 굵직한 국제 미술행사를 주관하면서 한국 작가들을 해외에 알렸다. 그의 국제적 활동은 한국의 젊은 큐레이터들에겐 꿈이자 목표가 됐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지고 말았다.

비보를 듣고서 이 땅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큐레이터를 떠올렸다. 말로는 문화 강국을 외치는 나라다. 그러나 그런 구호와 현실은 얼마나 겉돌고 있는가. 만일 이원일씨가 늘 입지가 불안한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지 않고 선진국 미술관 큐레이터들처럼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면 그 인생이 이처럼 비참하게 막을 내렸을까 하고 생각한다.

장례식장에 전국서 모여든 큐레이터들이 자조적으로 국·공립미술관의 열악한 상황을 토로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국·공립미술관의 관장과 큐레이터의 계약 조건은 대부분 2년 연임제다. 어느 경우든 5년을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미국이나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 미술관의 경우 철저히 신분을 보장하고 있다. 선진국에서 큐레이터는 최고 전문가로서 사회적 존경과 선망을 받으며 미술관 문화를 일궈나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가 있다는 뉴욕의 근대미술관(MoMA)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프린스턴 대학 출신의 앨프리드 바(1902~1981)라고 하는 탁월한 미술사가(美術史家)가 초대 관장으로 부임한 이래 수십 년 재직하며 노력한 결과이다. 이 미술관에서 평생을 바쳐 일하고 있는 여성 큐레이터인 바버라 런던은 사진 및 비디오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성장했다. 미국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비롯하여 프랑스의 퐁피두센터, 영국의 테이트갤러리, 네덜란드의 스테델릭 미술관 등은 그 자체가 국가의 상징이다. 그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브랜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 엄청난 국가 브랜드를 만들고 쌓은 사람들이 바로 평생을 바친 큐레이터들이었다.

선진국의 미술관들은 전시 하나를 기획하는 데 통상 3~4년의 기간을 잡는다. 우리나라는 5~6개월이나 1년이다. 전시회 질의 차이가 어떨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선진국의 큐레이터들은 긴 시간을 갖고 치밀한 연구를 통해 말 그대로 명품을 탄생시킨다. 우리나라의 졸속 기획은 큐레이터의 불안한 신분과 허술한 제도, 그리고 부족한 예산의 산물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밥그릇 챙긴다는 소리나 듣는 것이 우리 문화계가 처한 현실이다. -조선 201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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