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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브랜드와 국제 경쟁력

윤진섭

국가 브랜드와 국제 경쟁력


다사다난했던 2010년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올해에는 G20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열려 세계의 이목이 아시아에 집중되었다.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북한이 연평도 도발을 감행하여 잠시나마 한반도에 불안한 전운(戰雲)이 감돌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국제사회의 반응을 살펴보면 예전과는 다른 두드러진 양상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를 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이 옛날과는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이는 한반도의 안보를 둘러싼 동북아의 정세가 국제사회에서 그만큼 민감한 사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입증하는 사례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관심을 끈다는 점에서는 그다지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뉴스에 나오는 빈도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지명도가 높아질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그것은 우리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말의 이면에는 좋은 일로 알려질 때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들의 이미지가 좋아진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돌이켜 보면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한국에 대한 외국인들의 시선이나 인지도가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진 것만은 사실이다. 그 전에는 세계에서 한국의 지명도는 일본과 중국에 늘 뒤쳐져 있었다. 유럽을 여행해 본 적이 있는 한국인들은 한두 번쯤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디서 왔느냐? 일본? 중국?

내 경우엔 “코리아?”하고 상대편에서 먼저 한국의 이름을 불러준 경우는 한번도 없었다. 어쩌다 가계에서 물건을 살 때, 친근하게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묻는 상대방에게 마지못해 “Korea”하고 말하면, 그제서야 “아, 코리아?”하고 좀 머쓱한 듯 잠시 머뭇거리다 “올림픽!” 또는 “현다이(Hundai)!”하고 자신의 머리 속에 들어있는 한국 관련의 단어를 한두 개 끄집어내는 게 고작이었다. 그럴 때 마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어쩌겠는가. 바쁜 사람을 붙들고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주절주절 들려줄 수도 없는 일, 또 그렇게 한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니지 않는가.

이제는 사정이 많이 나아졌다. 특히 2002년 월드컵 개최 이후 해외에서 한국의 지명도는 급상승했다. 게다가 이젠 확실히 자리 잡은 IT강국으로서 한국의 이미지는 불에 기름을 붓는 상승효과를 가져왔다. 지난 10월 국제회의를 하러 파리에 갔을 때는 한 미국 친구가 스마트폰을 호주머니에서 꺼내 보이며 “삼성!”하고 외치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늘어놓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 어디 그뿐인가? 상파울루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도로의 양옆에는 삼성, 현대, 기아, 엘지 등 한국의 제품을 알리는 대형 광고판이 즐비한데, 이러한 광경은 세계 어느 공항, 어느 대도시를 가나 대체로 비슷하다. 오, 필승 코리아-, 이는 부지런한 한국의 세일즈맨들이 월드컵의 여세를 몰아 세계 곳곳을 누비며 해상왕 장보고의 후예임을 몸으로 보여준 결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김연아 선수의 금메달을 브랜드 가치로 환산하면 2천억 원대가 된다는 사실을 한 신문의 칼럼기사에서 읽고 웬만한 기업보다 낫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국제적 지명도가 있는 작가의 브랜드 가치는?” 하고 생각하다가 그만두고 말았다. 필시 계산조차 나오지 않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한국 미술의 현주소다. 몇 해 전 한 신문사에서 독자들에게 알고 있는 화가의 이름을 묻는 앙케트 조사를 했더니, 그룹전에 딱 한번 참가한 적이 있는 모 유명 여배우가 열 손가락 안에 들었다나? 하도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 말을 친구에게 했더니, 친구는 “그게 대중이지.”하고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어서 어리둥절했던 적이 있다.

북경의 타싼즈(大山子) 798이란 곳은 화랑들이 밀집돼 있는 문화특구다. 원래는 공장지대였지만 지금은 구역 전체가 화랑가로 탈바꿈하여 서울의 인사동처럼 외국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이곳에는 아트사이드갤러리를 비롯해서 표화랑, TN갤러리 등 한국인이 경영하는 화랑도 있고 페이스, 콘티누아 등 외국 계열의 화랑들도 적지 않다. 그곳에 미술전문 서점이 몇 군데 있어서 갈 때 마다 들리곤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날이 갈수록 중국미술과 중국작가들에 대한 서적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서구의 저명한 미술평론가나 큐레이터 등 미술전문가들이 영어로 펴낸 중국 관련 책들이 눈에 띄게 느는 추세다. 그렇다면 한국에 관한 책은? 하고 찾아봤더니 중국책들이 즐비한 서가의 한 구석에 미국의 애퍼처 출판사에서 나온 김아타의 사진집 한 권이 달랑 꽂혀 있었다. 이러한 사정은 미국, 유럽 등 세계 어느 나라의 화랑가나 미술관을 가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바로 한국 미술의 현주소인 것이다.

나는 이 자리에서 문화체육관광부가 내건 ‘문화의 세기’는 그냥 표어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주무부처의 입장에서는 한정된 예산에 비단 문화예술뿐만 아니라 체육, 관광 등 신경을 써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겠지만, G20 정상회의를 치룬 나라에서 해외에 이 정도로 초라한 모습을 보이면 이건 나라 체면이 말이 아니다. 한국의 현대미술을 해외에 소개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영문서적 한권조차 없는 나라가 돼서야 어디 쓰겠는가.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관은 있지만 정작 그곳에서 한국 현대미술을 해외에 소개할 수 있는 영문책자는 없다니, 이는 실탄이 없는 병사가 총을 들고 전장에 나간 꼴이다. 내 기억으로 우리가 세계화를 외친지 무려 20년이 가까워 오는데, 아직도 국가를 대표하여 한국 현대미술을 소개할 수 있는 변변한 영문책자가 없다는 것은 G20 정상회의를 무색하게 만드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대통령 직속의 ‘국가브랜드위원회’라는 조직을 갖추고 있는 나라이니 앞으로는 사정이 나아지리라 믿는다.

한국을 외국에 알릴 수 있는 대표적 브랜드로는 김치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현대미술 역시 포장하기에 따라서는 브랜드 가치가 매우 높은 품목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단색화는 일본의 ‘모노파(物波)’처럼 세계적으로 알릴 수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미술사조 가운데 하나다. 일찍이 영국의 테이트 리버풀 갤러리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원로작가들이 초대전을 가진 적이 있어서 단색화의 우수한 예술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바 있다. 나 개인적으로는 2000년 제3회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을 통해 우리의 단색화를 일본의 모노파와 비교 전시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도록의 영문판에 단색화의 영문표기를 기존의 ‘모노크롬(Monochrome)’이 아닌 ‘Dansaekhwa라는 우리말로 고유명사화 하였다.

일본이 모노파를 일본어 발음 그대로 ’Monoha‘라고 표기하고 또 서양에서도 그대로 통용되는 것에 자극을 받았던 것이다. 그 뒤로 나는 일관되게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거니와, 언젠가는 이 용어가 국제미술계에서 통용될 날이 올 것을 기대하며 지금도 이론적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시작은 이제부터다. 전시회를 기획하고 출판을 하는 일, 그리고 그것을 해외에 알리는 일이 고단하고 힘든 일임에는 틀림없지만, 언젠가는 꼭 이루어지리라고 믿는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지 않던가. | 문화저널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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