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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연 선견지명이 있는 매미들인가?

윤진섭

우리는 과연 선견지명이 있는 매미들인가?


다사다난했던 2010년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올해에는 G20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열려 세계의 이목이 아시아에 집중되었던 반면, 북한이 연평도 도발을 감행하여 잠시나마 불안한 전운(戰雲)이 일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다사다난한 한 해의 끝자락에 한/중/일 삼국의 미술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친목을 도모하는 한편, 아시아 미술의 미래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입니다. 이미 몇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Asian Editors Conference’의 축적된 성과는 지금 이 자리에서 보는 것처럼 다양한 반응을 낳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핵심은 아시아 미술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장차 아시아의 미술이 세계 미술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세계의 미술은 20세기 초의 프랑스 파리에서 2차대전 이후에는 뉴욕으로 옮겨왔습니다.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21세기의 초입인 현재 이제 세계 미술인의 이목은 아시아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북경, 동경, 서울, 홍콩, 타이페이, 상하이, 자카르타, 방콕, 싱가포르와 같은 아시아 미술의 거점도시에는 연중 수많은 미술행사들이 열리고 있으며,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를 비롯하여 상하이비엔날레, 요코하마트리엔날레, 싱가포르비엔날레 등 굵직한 미술행사들이 세계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만물은 유전(流轉)한다(panta rhei)”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유명한 명제를 생각해 볼 때 세계미술의 중심이 움직이는 이러한 현상은 매우 자연스런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세계 미술계의 이목이 아시아를 향하고 있는 지금, 서구의 미적 가치와 기준에서 벗어나 아시아의 미적 가치와 기준이 부상되리라는 조심스런 전망은 매우 심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전복의 조짐은 아시아의 미술인들에게 아시아의 미술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과 사명감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명감은 이제 우리가 과연 미래의 아시아 미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점에 대한 깊은 성찰을 유도합니다. 특히 이 문제에 대해 일찍이 선견지명을 갖고 수차례에 걸쳐 행사를 주도해온 ‘Asian Editors Conference’는 그러한 논의의 중심에 서서 미학적 성찰을 견인할 것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의 미술은 시험받고 있습니다. 지금은 과도한 상업주의의 횡포와 실종된 아방가르드 정신 앞에서 미술이 과연 인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목표를 상실한 시대처럼 보입니다. 작가 정신이 자본의 힘에 압도된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하고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험과 전위(avant-garde)의 교두보인 비엔날레가 아트 페어나 옥션, 미술관과 의심스런 관계를 보이는 현상의 중심에는 자본의 막강한 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심쩍어 보이는 이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 의심의 눈길로 살피고 분석, 해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과제임에 분명해 보입니다.

일찍이 한스 리히터(Hans Richter)는 다다(Dada) 운동을 회고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 바 있습니다. 우리는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또한 그는 “천하태평의 매미들로 둘러싸인 가운데서도 선견지명의 개미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금처럼 아시아의 많은 미술인이 모여 서로 간에 의견을 나누고 공통의 관심사를 논의한 경우는 흔치 않았습니다. 각자 서로 다른 문화적 환경과 역사적 배경을 지닌 아시아의 미술인들이 모여 친목을 도모하는 한편, 아시아 미술의 미래에 대해 진지한 의견을 나누는 이 자리가 매우 생산적인 자리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베이징 한중일 미술 포럼 발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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