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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아시아 / 문화의 스밈과 섞임, 그리고 짜임

윤진섭

Ⅰ. 최근 아시아 미술이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뉴욕의 소더비와 홍콩 크리스티를 비롯한 해외 옥션에서 아시아 미술에 대한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으며, 여기에 편승하여 한국의 젊은 작가들 또한 해외 컬렉터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뿐만 아니라 1995년 광주비엔날레의 창설 이후 형성된 아시아의 비엔날레 벨트는 상호간의 유대를 통해 정보 교환은 물론 아시아 미술에 관한 다양한 담론을 생산해 내는 중에 있다. 한국의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 미디어시티 서울, 중국의 상하이비엔날레, 베이징비엔날레, 광조우비엔날레, 그리고 동남아시아 현대미술의 창구격인 싱가포르비엔날레와 일본의 요코하마트리엔날레, 후쿠오카트리엔날레 등은 하나의 벨트를 형성하면서 아시아 현대미술의 전략적 요충지의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의 KIAF를 비롯한 상하이아트페어, 홍콩아트페어와 같은 미술의 견본시(見本市:art fair)들은 상업적 이유에서 해외 미술관계자들의 관심을 아시아로 향하게 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이 운영하는 창작스튜디오(고양, 창동)를 비롯하여 다양한 공사립 레지던시 프로그램들이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아시아 작가들을 초청하여 활발한 미술의 인적 교류를 확대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아시아 미술의 다양한 창구들은 아시아 지역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미술관 주최의 기획전들과 함께 아시아 미술의 중흥을 기약하는 자산이다. 이번에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이 주최하는 [Rainbow Asia]전 역시 최근 몇 년간 아시아 지역의 미술관들이 기획한 주목할 만한 전시회들과 함께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 미술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에 나타난 이러한 기류변화는 아시아 경제의 부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는 세계 60억 인구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아시아의 인구 분포가 세계 기업들의 시선을 끄는 주요인이 되고 있으며, 그 결과 아시아 시장의 활성화가 문화예술의 활성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에 토대를 두고 있다. 어느덧 잠용이 아니라 거룡(巨龍)으로 성장한 중국은 그러한 변화의 중심에 있다.

최근 들어 세계 미술계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중국 현대미술 작가들의 약진은 중국 경제의 도약과 긴밀한 함수관계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일본은 30년의 역사를 지닌 [아시아미술제](Asian Art Show)]①가 다져놓은 풍부한 아카이브를 바탕②으로 아시아 미술의 요충으로 일찍이 자리를 잡았다. 이에 반해 한국은 최근 몇 년 사이 학술적 연구와 병행하여 동남아시아의 현대미술에 초점을 맞춘 전시회들이 나타나고 있어 이 분야에 대한 성과는 다소 미흡한 편이다. ③

Ⅱ. 지구의 동쪽 끝에 위치한 일본 열도에서 서쪽 끝의 서아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아시아의 한 가운데 동남아시아가 있다. 이곳이 바로 ‘아세안(ASEAN)’④으로 알려진 지역이다. 작년 6월 초에 제주도에서 열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계기로 잘 알려진 이 곳은 특히 최근 몇 년간 한국에 다문화 현상을 촉발시킨 지역이기도 하여 우리의 첨예한 관심을 끈다. 특히 동남아시아가 우리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취업이나 이민, 국제결혼과 관련된 직접적인 이유 외에도 이곳이 지닌 지정학적, 문화적, 종교적, 경제적 위상에 있다. 이를 좀더 글로벌한 시각에서 보자면 근대의 식민지 체험이라는, 아시아 지역의 국가 대부분이 겪은 정신적 상흔(trauma)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논의의 대상이 된다. 이른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란 서양 중심의 아시아에 대한 담론은 ‘근대성(modernity)’의 출범을 알리는 원근법의 시각이 낳은 허상이기 때문에 역원근법에 의한 시각의 교정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시아 가치를 개발하고 알리는 고도의 노력과 합리적 전략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아시아 여러 나라들 사이의 다자간 협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는 서세동점 이후 서양이 동양을 지배하면서 형성된 서양인의 동양에 대한 이미지가 정교한 학문과 예술작품을 통한 허상적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인식하에 서양을 세계의 중심으로 만든 서양의 근대성 개념에 대한 철저한 비판적 성찰에서 비롯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아시아 내부에는 이중의 타자들이 존재해 왔다. 서양이라는 현저히 이질적인 타자와 중화주의를 주창한 중국, 그리고 대동아공영권을 획책한 일본의 아시아에 대한 식민지배로 대변되는 동질적인 타자가 그것이다. 그처럼 특수한 문화구도는 아시아의 중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양과 일본의 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는 중국과 역시 아시아의 식민지 지배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양의 식민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일본이란 존재에서 유래한다.

이처럼 아시아 문화의 기저를 이루는 혼성성은 실타래처럼 복잡하여 아시아를 하나의 색깔로 칠하는 것은 난망한 일이다. 따라서 아시아적 가치를 찾거나 논한다는 것이 무망한 일일 수 있으며, 차라리 이 전시의 제목처럼 무지개 색을 인정하거나 아시아가 여러 색실로 짜인 카펫 그 자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문화적 차이와 동질성을 찾는 일이 현명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아가 우리의 의제로 떠오르는 것은 서양이라고 하는 실체가 현실적으로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계 미술의 현장에서 느끼고 경험하는 유쾌하지 못한 기억들은 동양이 여전히 서양에겐 타자이며 주변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바, 새로운 문화 창조의 주체로서 아시아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요구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개인적 경험들이 가져올 폐단도 상존한다. 개인적 경험이 학문이나 예술의 외피를 쓸 때 나타날 수 있는 논리의 단순화가 곧 그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이러한 시각 교정의 노력들이 여전히 필요하며, 그러한 노력들이 예술 현장에서 힘을 발휘할 때 세계 이해는 개선되게 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역원근법’이란 이러한 노력들이 취하게 될 현실적인 전략과 방법론에 대한 일종의 메타포로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문화 창조의 주체로 아시아를 설정하는 데에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아시아가 말 그대로 하나의 몸인 실체가 아니며, 상이한 역사적 배경과 문화를 지닌 국가들의 연합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시아라는 또 하나의 허상을 만드는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아시아의 국가들이 지닌 다문화적 혼성성을 인정하고 그 실들로 훌륭한 피륙을 짜는 일이다. 그러한 피륙들이 넘쳐날 때 서양은 동양에서 온 피륙에 시선을 주게 될 것이며, 마침내 그것이 자기의 피륙보다 못한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를 뿐이라는 인식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Ⅲ. 외국인 거주자 수가 120만 명을 넘어선 현재 우리나라의 화제 거리는 단연 다문화이다. 방송은 연일 다문화를 토픽으로 다루고 있으며, 신문이나 방송은 이와 관련된 각종 사건들을 앞 다퉈 보도하고 있다. 또한 다문화 가정, 외국인 이주와 노동의 문제, 국제결혼, 디아스포라(diaspora), 문화적 정체성 등이 다문화 문제를 다루는 사회적 의제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중국, 파키스탄, 인도, 스리랑카, 네팔, 티베트 등지에서 온 이주민이나 노동자들이 다문화와 관련한 논의의 대상들이다. 한국에는 서울의 이태원과 혜화동, 가리봉동 등을 비롯하여 안산의 원곡동 등 특정한 국가에서 온 외국인들이 거주하는 외국인 밀집지역이 전국적으로 산재해 있어 한국은 이제 더 이상 단일민족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다문화 시대를 맞이하여 외국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도 변화해야 할 시점이다. 민족 개념에 입각한 완고한 민족주의적 시각도 현실에 맞춰 바뀌어야 함은 물론 외국인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국민소득이 높아짐에 따라 문화의식 또한 거기에 맞게 성숙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다문화를 인정하고 용광로처럼 용해하듯이 우리도 이질적인 문화를 흡수하여 창조적으로 승화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국가적으로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유입되면서 빚어지는 문화적 갈등과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의 구축과 함께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적극적인 개발이 필요하다. 1960년대, 어려웠던 시기에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한 경험이 있는 우리는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이 땅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고유의 문화를 보장해줘야 할 책임이 있다. 현재 한국에는 180개국에서 온 120만 명의 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다문화 가정의 자녀는 현재 12만 명을 넘어섰고 이 추세대로라면 2012년에는 농촌지역 초등학교 1학년 학생 10명 중 4명이 다문화 가정 출신 학생에 해당되리라고 한다. 순혈주의 사상에 젖어있는 한국인들이 경청해야 될 부분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문화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외래문화와 부단히 접변을 일으키는 유동체라는 사실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열린 자세다. 특히 최근 한국에는 잘 구축된 IT 인프라를 바탕으로 페이스북(Facebook)과 트위터(Twitter) 등의 사회적 관계망(social networking service:SNS)을 비롯한 인터넷 중심의 각종 디지털 매체⑤를 통한 다양한 트랜스컬처럴리즘의 형성과 문화의 퓨전화(fusionization)가 특히 신세대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어 구세대와의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의 변화는 국가 안에서도 주류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향후 전개될 우리 사회의 문화적 변화를 생각한다면 다문화 가정을 비롯한 외국인 역시 우리 사회의 주류 속에 편입되도록 도와주는 너그러운 자세가 필요하다.
이번에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이 주최하는 [Rainbow Asia]는 한국 사회가 처한 다문화의 문제를 환기시켜준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할 것이다.


①후쿠오카시립미술관(Fukuoka Art Museum)이 주최하는 현 [후쿠오카트리엔날레]의 전신으로 1979년 제1회 [아시아미술제]를 개최하였다.
② 일본의 미술평론가인 다니 아라타(Tani Arata)가 동남아시아 미술에 대해 연구하고 <북상(北上)하는 남풍(南風))-동남아시아의 현대미술>이란 책을 출판한 해는 1994년이었다. 이는 후쿠오카미술관의 [아시아미술제]와 함께 동남아시아의 현대미술에 대한 일본의 이른 관심을 대변해 준다.
③서울시립미술관 기획의 [City_net Asia](2003년 창설)를 비롯하여 필자가 기획한 [포천아시아미술제](1995)와 [아시아비평포럼](2005, 2006), 이대형과 박찬국 기획의 [BlueDot Asia](2008, 2009), 문재선 기획의 [Pan-Asia Performance Network](2008) 등이 최근 몇 년간에 걸쳐 이루어진 성과들이다. 그나마 [City_net Asia]와 [BlueDot Asia]는 한국, 중국, 일본 등 주로 동아시아에 치중한 전시들이라 동남아시아 현대미술과는 무관한 편이다.
④‘Association of South East Asian Nations’의 약자로 ‘동남아국가연합’이라고 부른다. 1967년 8월 ‘방콕선언’을 계기로 창설되었으며, 동남아 지역의 공동안보 및 자주독립의 필요성 인식에 따른 지역의 협력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협의체로 출범했다. 현재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브루나이,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등 10개의 회원국으로 구성돼 있다.
⑤컴퓨터는 물론 아이포드(iphod), 아이폰(iphone), 각종 스마트폰으로 대변되는 모바일 기기들을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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