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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두 얼굴, 빛과 그림자

윤진섭

Ⅰ. 서론
도시와 예술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있다.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건축을 비롯하여 미술, 영화, 연극, 문학, 사진 등 거의 모든 예술 장르가 도시를 소재로 삼는다. 도시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삶의 양태들-일상적인 도시적 삶에서부터 살인, 강도, 강간, 매춘, 마약, 폭력 등등의 온갖 범죄에 이르기까지-이 예술가의 상상력을 통해 작품으로 태어난다. 그러니까 도시, 그 중에서도 특히 인구가 천만 명을 웃도는 서울과 같은 거대도시(megalopolis)는 예술가들에게 소재의 보고(寶庫)인 셈이다. 늘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의 삶은 비교적 느슨한 편인 농촌의 그것보다 더욱 자극적이며, 더욱 볼만한 눈요기 거리를 제공하고, 이목을 끌기 쉬운 사건을 낳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지도 모른다. 아무튼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도시적 소재는 근대화 이후 농촌을 대상으로 한 작품의 소재보다 물량 면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앞서고 있다. 서양의 경우, 모네의 <노적가리>(1890년) 연작은 이농 현상이 나타난 당시의 프랑스 사회를 반영하고 있는데, 한적한 들판에 쌓인 밀짚더미를 통해 다양한 빛의 효과를 표현하고자 한 이 연작과는 달리,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래트>(1976년)는 그 이전에 이미 도회지 사람들의 풍요로운 삶을 그리고 있어 주목된다. 흔히 ‘벨 에포크’라 부르는 이 시기(1884-1914) 동안에 도시를 소재로 한 많은 그림들이 그려졌다. 화려하게 성장을 한 여인들, 거리를 밝게 비추는 가스등, 많은 사람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는 카페 등등 다양한 벨 에포크의 상징들이 새로운 문화의 표지로 등장하게 되었으며, 이를 소재로 그림을 그린 인상주의자들이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마침내 공식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1900년, 파리의 샹 드 마르스 공원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는 8만 3천명에 이르는 전시자가 참여했으며, 200일 간에 걸쳐 약 5천 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들이는 놀라운 마력을 발휘했다. (1)

도시는 그 그늘에 가려진 익명의 얼굴만큼이나 다양한 얼굴을 지니고 있다. 특히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는 빌딩의 숲은 수많은 사람들을 쉼 없이 빨아들이고 동시에 뱉어낸다. 거기에 ‘다름(異化)’이 있고 ‘같음(同化)’이 있다. ‘다름’이란 뒤섞이되 엄연한 차이가 존재함을 말하는 것이며, ‘같음’은 차이를 지닌 각 개체들이 모여 하나의 전체를 이룰 때 나타나는 몰개성을 의미한다. 도시가 지닌 이 두 얼굴의 속성은, 서울에 빗대어 말하자면, 강남과 강북만큼이나 확연하지만, 그것이 지닌 특유의 익명성에 의해 ‘같음’ 혹은 ‘다름’으로 포장되기 일쑤다. 성냥갑을 닮은 아파트, 기성복, 비슷한 화장술과 유행, 수퍼마켓, 스타벅스, 현란한 쇼핑 몰, 붉은 악마 등등이 ‘같음’의 표지라고 한다면, 서로 다른 입맛과 취향, 색다른 주거형태, 취미의 다변화 등등은 ‘다름’의 표지다. 도시는 대중에게 균질한 기회를 제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로 다른 취미를 발산할 수 있는 장소를 부여한다. 도시가 그 맥 빠진 듯한 허장성세에도 불구하고 한없는 매력으로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까닭은 바로 이처럼 다양한 메뉴를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예술가들이 도시를 다루고 있다. 미술의 경우, 많은 화가들이 도시의 겉과 안을 묘사한다. 그중에서도 서울은 가장 매력적인 소재다. 인구 천만을 상회하는 도시인 서울은 뉴욕, 파리, 북경, 동경, 런던, 상하이, 상파울루, 모스크바 등등 세계적인 도시에 결코 뒤지지 않을 시설과 문화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강남 테헤란로의 빌딩 숲은 뉴욕의 맨하탄을 연상시키는데, 이는 상하이의 푸동지구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풍경이다. 그러나 이처럼 겉보기에 화려한 도시도 이면을 살펴보면 환부가 있게 마련이다. 빈부 간의 격차로 인한 갈등, 재개발에 따른 시비, 노사문제, 도시의 슬럼화 현상, 노숙자 문제, 각종 공해, 세대 및 인종내지는 종교 간의 갈등 등등 오늘날 거대 도시가 처한 상황은 세계의 여러 대도시와 다르지 않는데, 예술가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주목을 하며 작품을 통해 문제를 제기한다. 이 글에서 나는 한 명의 작가와 한 개의 단체의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도시의 문제가 이들의 의식에 어떤 모습으로 투영되고 있는지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Ⅱ. ‘같음’과 ‘다름’의 이중주-이민혁의 경우
아마도 이민혁 만큼 도시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작가도 드물 것이다. 최근 들어 화단에서 급부상하기 시작한 그는 빗살무늬를 연상시키는 특유의 현란한 색채와 필치로 도시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인간 군상에 초점을 맞춰 그 삶의 양태를 묘사해 왔다. 그는 지금까지 모두 세 권의 작품집을 발간하였는데, 그것들은 첫째, 도시의 외관, 둘째, 그 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의 양태, 셋째, 도시에 존재하는 관공서를 각각 다루고 있다.
이민혁은 작품집 제1권, 첫 째 장에 ‘도시여행’이라는 표제를 붙이고 있다. 모두 서울을 다룬 것들이다. 그는 마치 카메라가 대상을 빠른 속도로 훑고 지나가듯, 속사의 필치로 대상을 묘사한다. 화면에는 사람은 없고 도시의 일부 풍경만 존재한다. 그가 그려낸 서울의 풍경은 매우 다양하다. 그것들은 가령, <신설동 거리>, <광진구 언덕>, <한강 다리>, <청계 고가>, <삼선동 거리>, <롯데백화점>, <올림픽 대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작품의 제목 자체가 소재가 되고 있다. 약 60여 점에 달하는 이 서울 소재의 작품들은 대다수가 인물을 배제하고 있기 때문에 일종의 풍경화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민혁의 이 그림들이 나의 눈길을 끌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단순히 풍경화라서가 아니라, 전체 그림을 관류하고 있는 표현의 방식이 매우 독특하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은 빠른 필치로 그려진다. 그림 속의 필선들은 대개 한쪽 방향으로 흐른다. 이것이 이민혁 그림의 특징이다. 한쪽 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에 이를 바라보는 관객들은 마치 자신의 몸이 캔버스에 빨려 들어가 작품 속의 사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편승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 특이한 공간 체험은 물론 시각 체험으로부터 전이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민혁의 풍경화가 여타의 풍경화와 다른 점이다. 내가 그가 이루어낸 성과에 후한 점수를 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기만의 독자적인 표현 스타일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이민혁의 그림은 그것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 강렬한 시각적 충격을 준다. 기존의 관례와는 다른, 몹시 이질적이며 어딘가 편치 않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개의 경우 처음에는 강한 혐오의 감정을 품게 마련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실험적이거나 전위적인 작품이 처음에는 혐오스런 감정을 야기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일반적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의 작업을 이 범주에 넣어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
‘흘러가는 사람들’ 연작에 이르러 이민혁은 도시의 풍경에 인간군상을 삽입하기 시작한다. 소위 ‘군중이 있는 풍경’인 셈이다. 두 번째 작품집은 도시인들의 삶의 양태를 묘사한 것이다. 그는 <<나는 바바리코트를 입고 사울여고로 간다.>>는 테마아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담은 그림을 그리고 직설법을 사용, 명제를 달았다. 그것은 가령, “룸싸롱에서 애절히 사랑을 구하다.”, “여관으로 들어가는 아름다운 여인”, “안마방에서 피부 맛사지를 통해 사람의 정겨움을 느끼다.”, “한강에서 카섹스를 보고 싶다면 동전을 준비하세요.” 등등과 같은 것들이다. 그의 그림은 한편으로 이 시대의 모습을 담은 일종의 풍속화로 읽혀질 수도 있지만, 단순히 풍속화로 간주하기에는 위트와 풍자가 두드러져 보인다.
관공서 연작은 이민혁이 가장 최근에 시도한 것이다. 그는 서울에 있는 여러 관공서 건물 중에서 국회의사당, 고등법원, 대법원, 강동구청, 헌법재판소, 서울동부지방법원, 국세청, 고등검찰, 국회분수 등등의 건물을 선택하였다. 한국적 상황에서 관청 건물은 흔히 권위적이며, 위압적인 인상을 풍긴다. 이 일련의 관공서 건물을 다룬 작품에 이르면 이민혁은 다시 인물을 소거한다. 사람이 없는 관공서 건물은 예의 잘게 파편화된 필촉이 무수히 중첩되는 가운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빛은 작렬하듯이 건물의 위 혹은 왼쪽에서 쏟아져 들어온다. 시점은 한결같이 아래에서 위를 향해 쳐다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이는 이 시점의 설정은 대중에게 권위적으로 비쳐지는 관에 대한 풍자로 읽혀진다.

Ⅲ. 예술현장(Art Site)의 예 : 쿤스트독 국제창작 스튜디오의 경우
서울은 늘 부산하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체와도 같다. 사람들은 분주히 어딘가를 향해 오가고 있으며, 차량들은 도심의 거리를 질주하고, 지하철은 동맥처럼 도시의 피부 밑을 운행한다. 도로는 어느 날 느닷없이 파헤쳐지기 일쑤며, 낡고 낮은 건물이 헐린 자리에 높은 고층건물이 우람한 자태를 드러낸다. 그것은 마치 수명을 다한 세포가 죽고 새로운 세포가 생성되는 인체를 연상시킨다. 예술가들은 서울의 이런 모습을 바라보며 상상의 나래를 펴기도 하고, 문득 작품에 대한 영감을 떠올리기도 한다.
2006년 9월 어느 날, 종로구 통의동에 위치한 보안여관 자리에 일단의 예술가들이 몰려들었다. 고인숙, 권남희, 박진호, 박형철, 손한샘, 이명진, 이진준, 우금화, 최익진, 차기율, 베른트 할베르, 미켈리스 나콜라이데스, 론 센더슨, 페트릭 잠봉, 곤도 유키코 등 열 다섯 명의 국내외 작가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쿤스트독 국제창작 스튜디오’의 프로젝트에 동참하기 위해 신청한 작가들이다. 보안여관은 일제시대에 지어진 건물로 아직도 적산가옥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문화재적 가치가 돋보이는 건축물이다. 당시 이 건물은 여관의 소임을 다해 소유주가 바뀔 운명에 처해 있었다. 서울의 근현대사를 몸으로 입증해 주는 이건물이 예술가들을 위한 창작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은 역사적 아이러니다. 이 보안여관과 그 옆에 있는 아담한 일본식 양옥 한 채, 그리고 다시 그 옆의 한옥 한 채가 2006년 9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창작스튜디오로 사용되었다.
쿤스트독 갤러리 부설 현대미술연구소가 주관한 이 국제창작 스튜디오 프로그램은 서울의 도심에서 일어난, 순수한 민간 예술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이 계획은 이보다 조금 일찍 문을 연 쿤스트독 갤러리와 함께 도시에서의 예술 창작과 향수가 어떤 함수관계를 지니고 있으며, 그것은 또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모범적인 답변을 제시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관심을 끈다. 그것은 마치 물품의 운송과 사람의 이동을 위한 도시의 교통 시스템과 상하수도로 대변되는 도시의 복잡한 순환체계-이는 마치 인체에서 피의 흐름과도 같다.-속에서 막힌 기(氣)의 흐름을 트는 중요한 포인트(穴))가 된다는 점에서 그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도시를 인체와도 같은 하나의 유기체로 간주할 때, 마치 인체가 육체와 정신 간의 원만한 균형관계로 인해 건강이 유지되듯이, 하드웨어(도시의 각종 시설 인프라)와 소프트웨어(정신적인 것) 간의 적당한 균형은 필수적이다. 문화예술이 복잡한 도시생활에 지친 시민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주는 청량제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새삼 되새긴다면, 이 포인트(穴)로서의 예술의 기능과 지역의 예술 거점으로서의 창작내지는 향수 공간의 역할은 결코 간과할 수 없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현재 보는 것과 같은 예술 지역의 편중은(3) 바람직하다고만 할 수는 없다. 보다 바람직한 형태의 예술향수는 기존의 예술 거리는 그대로 장려내지는 육성하더라도 혈(穴)로서의 예술의 거점은 부도심권과 변두리 지역까지 확장시켜 나가는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관 주도의 정책보다는 민간에 의한 자생적 움직임을 부양할 수 있는 적극적인 지원책이 보다 효율적이라는 사실이다.
쿤스트독 국제창작 스튜디오가 문을 열고 약 8개월이 지나는 동안 전통 한옥들이 대부분인 통의동 일대의 주민들에게 조용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원래 이 지역은 문화재 보존지구인 지역의 특성상 이주가 빈번하지 않은 곳으로 주민의 연령층이 비교적 높은 편인데, 그 만큼 주민들의 예술에 대한 접근의 기회가 많지 않은 곳이다.
예술의 소통과 참여라는 쌍방향적(interactive)인 관점에서 바라볼 때, 쿤스트독 국제창작 스튜디오가 프로젝트 기간 내에 행한 두 개의 기획전(open studio)은 주목할 만 하다고 여겨져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이 프로젝트가 지닌 특성은 이들의 작업이 예술현장(Art Site)의 성격을 지닌다는 점이다. 그것은 첫째, 장소적 특성으로서 최근 몇 년간 국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국공립 및 사립 창작 스튜디오의 설립과 궤를 같이하고 있으며,(4) 그 중에서도 특히 민간 주도의 프로젝트로서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첫 번째 사례라는 점, 둘째, 철거 예정인 역사적인 건물을 한시적으로 이용한 ‘장소, 시간 특성적(time-site specific)’ 프로젝트라는 점, 셋째, 기존의 창작스튜디오가 건물 내에 있는 작업실을 활용, 오픈 스튜디오를 여는 것에 반해 이 프로젝트는 작업실 외에도 인근의 공터나 주택, 공원, 골목 등등을 이용함으로써 보다 적극적으로 주민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통의동 일대는 경복궁의 서쪽에 위치, 북으로는 창성동과 동으로는 효자로에 접해있다. 북악산과 인왕산에 둘러싸여 있으며, 청와대가 인접해 있어 고도 및 층수 제한 등 제약이 많은 지역이다. 차가 들어갈 수 없는 비좁은 골목이 많으며, 주민들은 이동이 거의 없고, 간혹 사람이 살지 않는 가옥이 눈에 띄기도 한다. [우리동네-통의동 골목길 프로젝트]는 앞에서 열거한 15명의 창작 스튜디오 입주 작가들이 2006년 11월 17일부터 11월 26일까지 10일 간에 걸쳐 행한 야외전시다.
이 전시에서 작가들이 착안한 것은 기존의 건물이나 시설을 있는 그대로 이용하면서 장소의 특성을 돋보이게 하는 전략을 구사하자는 것이었다. 그런 전략에 따라 고인숙은 약 20미터에 달하는 좁은 골목길에 레드 카펫을 깔고 입구에 장난감 경찰 사이드카를 배치하였다. 레드 카펫은 좀처럼 밟아 볼 기회가 없는 동네의 주민들에게 영광스런 기회를 주자는 의도였는데, 이 작품은 전시기간 동안 동네 주민들로부터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권남희의 작품은 주변거리의 교통 표지판에 인접하여 붉은색 원판에 “......” 문구를 새긴 특유의 표지판을 붙인 것으로 관람자의 자의적 해석을 유도한 것이었다. 골판지를 오려 사물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 손한샘은 실물 크기의 장방형 의자를 여러 개 만들어 골목 여기저기에 놓았으며, 박형철은 철제 구조물을 이용하여 높은 망루를 설치, 관람객들이 직접 올라가 주변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들의 작품을 통해 공통적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은 예술의 공공성 혹은 예술에 대한 공공적 이해다. 원래 청와대 주변을 관할하는 경찰을 상대로 참여 퍼포먼스를 기획했던 고인숙은 공공장소에 대한 깊은 애착을 지니고 있다. 그녀는 이름 없는 민초의 삶에 주목한다. 그녀는 “승리자 일색의 역사에 대비되는 통의동 주민들의 일상을 기념하고, 재개발 직전의 시간들을 보존하며, 화려한 도심 중심부들을 잣대로 한 재개발이라는 허식 가득한 유혹과 주민들의 의 관계”(5)에 주목한다. 반면에 권남희의 작업에 나타난 공공성은 보다 폭넓은 개념을 지닌다. 그녀의 표지판은 익명의 대중을 향해 열려있다. 그것은 말만 요란하고 실천이 없는 사회에 대한 무언의 메시지로 읽힐 수 있거나, 반대로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저항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중의적이다.
골목 여기저기에 경구를 쓴 플래카드를 붙여놓은 최익진은 개인적 서사를 채록하는 작업을 시도하였다. 근현대사를 몸소 겪은 동네 노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역사를 재구성하고 개인적 삶과 연관된 장소를 설치작업을 통해 현재화하는 작업을 실천에 옮겼다.
통의동 창작 스튜디오의 작업성과를 마감하기 위해 마련한 [통의동 경수필]전은 입주기간 동안에 작가들이 살면서 부딪친 일상의 기록을 작업의 형식으로 풀어낸 것이다. 이 전시가 지닌 중요한 특성은 건물의 일부를 파괴내지는 해체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조건은 이 건물들이 머지않아 철거된다는 사실 때문에 가능하였다. 그러한 조건하에서 몇몇 작가들은 보안여관에서 습득한 물건들을 이용하거나 한옥의 마당을 발굴하는 이색적인 작업을 수행할 수 있었다. 이러한 유형의 전시는 기존의 창작 스튜디오에서는 실행하기 곤란한 프로젝트다.(6)
일본작가인 곤도 유카코는 ‘保安遺物博物館’이란 현판을 건물의 입구에 붙이고 지하에 전시장을 마련하였다. 그녀는 보안여관 주인이 남기고 간 여러 물품들을 가지런히 정리하여 마치 역사박물관과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도시 試掘-삶의 고고학>이란 제하의 차기율의 작업은 거주 기간동안 자신이 살던 한옥의 방을 파헤쳐 발굴을 하는 내용이었다. 이들의 작업은 “강돌은 하나의 무기물이지만/우리가 그것의 여정을 회상한다면,/이는 시공간을 초월한 긴 여행으로 이어진다.”는 최익진의 의미심장한 발언에 그 의미가 잘 녹아있다.
손한샘은 작업실로 쓰던 여관방을 골판지를 이용하여 재구성하는 동시에 형태는 닮았지만 쓸모가 없는 사물들을 골판지로 만들어 배열하였다. 박진호는 헌 이불을 말아 한쪽 벽면을 바리케이드처럼 만들고 그 안에 비디오 작품을 설치하였으며, 이명진은 보안여관 실내의 얼룩진 벽지 문양을 덧칠해 이미지를 그려 넣는 작업을 실행하였다.

Ⅳ. 결론
예술가는 어느 면에서 ‘이미지의 채집자’ 혹은 ‘도시의 사냥꾼’이다. 그들은 발정난 암캐모양 예리한 후각으로 소재를 찾아 나선다. 도시는 그런 그들에게 적절한 소재를 제공해 준다. 낮과 밤은 도시의 이면과 표면이면서 동시에 작품의 전경과 후경이기도 하다. 다중이 모여 사는 도시는 화려함의 이면에 적막과 을씨년스런 풍경을 감추고 있다. 도시가 지닌 이 이중적인 모습은 마치 가면을 쓴 얼굴과도 같다. 그 가면의 뒤에 도시인들은 익명의 얼굴을 감추고 살아간다. 도시는 회색빛이다. 콘크리트 건물들이 자아내는 우중충한 느낌이 네온사인의 화려한 색채감과 뒤섞여 기묘한 조화를 이루는 서울의 도심은 배부른 부자나 가난한 빈자가 다같이 호흡을 공유하는 축복받은 땅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할까? 보이지 않는 시선과 눈으로 볼 수 없는 경계, 다가갈 수 없는 모종의 차단막에 의해 비밀스런 섹터가 형성된 곳, 그리하여 한편에서는 환락과 축제가 또 다른 한편에서는 굶주림과 유랑이 공존하는 곳 또한 서울이란 도시이기도 하다. 그런 곳에서 우리의 예술가들은 오늘의 양식을 위해 또다시 거리의 사냥에 나선다. 문득 피터 홀의 다음과 같은 문구가 떠오른다.

“도시는 스트레스와 갈등의 공간이고 사람들의 몸속에서, 그들이 걷는 거리 곳곳에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현실의 비참한 공간이다. 어지러운 공간, 야비한 공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만한 가치가 있는 눈부신 공간이다...”
<서울문화포럼 창간호, 2007>

참고문헌
서울 시나리오, 공간사, 2004
J. L. 페리에 편저, 이일 감수, 김정화 역, 20세기 미술의 모험, API, 1990
이민혁 작품집 1, 2, 3. 2007
쿤스트독 국제 창작 스튜디오 활동보고서, 쿤스트독 미술연구소 간, 2007








1) J.L. 페리에 편저, 이일 감수, 김정화 역, 20세기 미술의 모험, API, 1990, 16쪽.
2) 이민혁, 작품집, 2007, 페이지 표기 없음.
3) 가령 화랑들이 인사동이나 사간동, 혹은 청담동에 몰려있는 현재의 모습을 가리킨다.
4) 국내의 창작스튜디오는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이 운영하는 창동과 고양 스튜디오 두 곳을 비롯하여 공립 29, 사립 23 등 합계 54개가 있다. 쿤스트독 국제창작스튜디오 운영보고서, 7쪽.
5) 고인숙, 작업노트, 앞의 책, 46쪽.
6) 예술현장 통의동은 일정한 공간에 작품이 전시되어야 하는 통념에서 벗어나 자유롭고자 하며, 공간이 사라짐과 함께 작품의 생명도 함께 소멸되는 실험을 한국의 창작 환경과도 묶어내 보고자 한다. 이 과정을 통하여 관객과 새로운 미적 경험을 공유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작가에게는 시작에서 소멸에 이르기까지 작업과 작품을 일원화하는 결과를 취하도록 함께 한다. 예술현장 통의동은 물리적인 철거를 앞두고 행해지는 예술가들의 창작 열의가 주어진 기간 안에 어떠한 이론과 실천의 다양한 면모들을 야기할 수 있는지 타진해 볼 것이며 예술이 사회에 개입하는 부분들과 예술이 사회와 접하는 지점들을 예술가와 미술관계자, 관객이 함께 고민해 보는 과정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 앞의 책, 94쪽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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