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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립미술관세미나

윤진섭

국제화시대 지역미술관의 활성화 방안과 전망

‘Facebook’이나 ‘Twitter’와 같은 ‘사회적 관계망(social networking)’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잘 알고 있듯이, 작금의 사회는 ‘세계화’의 흐름에 급격히 편승하고 있다. 개인은 빠르게 변모하는 시대의 흐름에 동참하지 않고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 점은 양상은 다를지라도 지역사회나 국가 역시 대동소이하다. 부단히 변하는 시간의 좌표(x축)와 공간의 좌표(y축)의 교차점에 서서 자신의 위치를 늘 확인하고 수정해야 하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개인이나 집단의 운명인 것이다.

중대한 운명의 결정을 신탁(神託)에 의존해야 했던 고대의 주술사회와는 달리 현대의 개인이나 사회, 국가는 믿을만한 데이터에 의존하여 합리적 판단을 내린다. 그것이 과학적 사고다. 즉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볼 때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의 목소리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내린 결정에 의해 운명을 개척한다는 것은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국제화 시대를 맞이하여 지역미술관의 활성화 문제를 생각해 볼 때, 사활은 그래서 더욱 막중하다. 거대한 세계의 판도에서 지역의 미술관은 작전상황판 위에서 명멸하는 작은 불빛에 불과하다. 수십만 개의 불빛 가운에 하나에 불과한 작은 불빛. 그것이 어떻게 생명의 소리를 낼 것인가. 이것이 바로 우리의 초미의 관심사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의 목소리를 믿고 우연의 바다에 몸을 맡길 것인가, 아니면 객관적인 데이터에 근거하여 과학적, 합리적, 이성적 판단을 내림으로써 수십만의 다른 불꽃과 경쟁을 하여 이길 것인가.

사실 어떻게 보면 미술관의 운영은 다른 미술관과 싸워 이기기 위해 하는 것은 아니다. 문화나 예술은 체육과 달리 이기고 지는 것이 분명하지 않다. 무엇을 근거로 판단을 내릴 것인가. 월드컵 축구는 골의 득실에 의해 승패가 갈라지지만, 미술관끼리의 경쟁은 세계적인 걸작이 한 점 더 있다고 해서 이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이 문화와 예술이 운동경기와 다른 점이다. 한국이 운동경기에 열중하고 국가적 관심사로 체육을 중시하는 것은 이 같은 경쟁의식의 소치다. 단기간에 국가를 홍보하고 국력을 자랑하기에는 체육만큼 안성맞춤의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서 문화와 예술은 늘 아우성의 뒷전에 머무르고 만다. 과연 언제까지 그럴 것인가.

거두절미하고 지역미술관,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1991년 지방자치제의 부활이후 전국의 각도와 광역시에서 미술관을 열었지만, 과연 이것들을 국제적인 수준의 미술관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가. 운영이나 소장품, 그리고 교육의 질에 있어서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마도 미술관계자라면 이러한 질문에 손을 들어 찬성을 표할 사람은 없을 것으로 본다.

국제화 시대는 세계화 시대와 흔히 혼동될 수 있는 개념이다. 그러나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가 국가와 국가간의 관계 혹은 국제적 표준화에 초점을 두는 반면, ‘세계화(globalization)’는 지구촌 전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문제는 국제화 시대를 살아가면서 동시에 세계화를 추구해야 하는 우리의 입장에 있다. 여기에는 전략적인 문제가 따른다. 왜냐하면 ‘세계화’의 문제에는 문화적 정체성과 보편성의 문제가 제기되기 때문이다. ‘지역(local)’이 ‘세계(global)’로 나아감에 있어서 나의 것을 가꾸고 전파하는 동시에 세계적 보편성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지상과제가 그것이다.

지역미술관은 늘 이 문제를 화두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세계화를 추구하는데 있어서 국제적인 수준을 염두에 두고 문화와 예술을 국제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려고 노력할 때 비로소 지역미술관은 그 사명을 다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만일 지역적인 것을 세계적인 것으로 착각하고 고집을 부린다거나 근시안적인 안목으로 미술관을 운영한다면 국제화는커녕 세계화는 공염불에 그치고 말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미술관의 최고 운영자인 관장의 자격이다. 최근에 국내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비미술인과 작가들의 국공립미술관장 직의 취임은 국제경쟁력을 현저히 저해한다는 점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더욱이나 안타까운 것은 미술관장 직이 점차 퇴직 교수들을 위한 자리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물론 그 중에 전문적인 식견과 안목을 갖춘 분들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미술관의 미래적 전망과 관련해 볼 때 이는 분명 개선돼야 할 점이다. 현재 일부 공립미술관이 연간 전시일수의 상당 부분을 민간업체가 주도하는 블록버스터 전시에 할애하고 있는 사실은 전문성과 관련해 볼 때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만큼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판단된다.

비근한 사례이지만 생각 없이 저지르는 이러한 일들이 지역미술관의 국제경쟁력을 가로막는 요인들이다. 미술관은 전시기획, 작품의 수집과 보존, 교육에 있어서 전문성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다. 인체에 비유하면 두뇌에 해당하는 미술관이 전문적인 지식과 판단력이 없는 관장에 의해 휘둘릴 때 그 신체가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 아닌가.

국제화내지는 세계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최근에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도 미술관에 경영인을 영입하는 사례가 있었으나, 그런 미술관이 문제점에 봉착한 것은 얼마 전 Facebook을 달군 쟁점에서 잘 드러나 있다. 이른바 스타 만들기와 관련된 공공미술관의 뒷거래 설과 같은 다소 미심쩍은 사례들은 오늘의 미술관이 얼마나 상업 시스템과 연루돼 있는가 하는 사실을 말해준다.

역설 같지만 지역미술관의 활성화 방안은 우선 적합한 인재의 등용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전시기획, 연구, 작품의 수집 및 보존, 교육 등 미술관의 각 부서에 적합한 전문 인력을 배치하고 풍부한 예산과 활동 여건을 보장해 줄 때 지역미술관의 활성화는 서서히 기지개를 켜게 될 것이다. 이 문제는 자치단체장을 비롯한 지역 의회의 역할과 관련되는 정치적인 사안이기에 이 분들에게 분명하게 건의한다.

또 한 가지 거론해야 할 것은 특색 없는 미술관의 운영이다. 물론 대다수의 지역미술관들이 지역내지는 지역 출신의 미술인들을 조명하는 전시를 여는 등 지역미술에 기여하고 있으나 그것을 지역미술관의 특징이라고 말 할 수는 없다. 그것은 거꾸로 이야기하면 지역이기주의에 발이 묶여 올바른 연구와 전시기획을 저해하는 암적인 요인이라고 할 수도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미술관의 비개방적인 태도다. 가령, ‘초빙 큐레이터’ 제도의 도입은 매우 시급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않은데 이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봐도 인력의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전시의 내용에 따라 미술관 밖에 적합한 전문가가 있다면 기꺼이 영입하는 개방적 태도야말로 미술관의 대외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제주도는 국제적인 관광지역으로서 수준높은 문화 인프라의 구축을 위해서는 제주도립미술관이 주도하는 세계적인 프로그램을 조만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것이든 간에 주도면밀하게 준비하여 제주를 단순히 관광이 아닌 문화예술의 중심거점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교두보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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