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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아트의 문화적 지평

윤진섭

미디어 아트의 문화적 지평


윤진섭(국제미술평론가협회 부회장/전시감독)



한지연 컨템포러리 스페이스가 중국 베이징에 둥지를 틀고 한국과 중국, 그리고 세계를 연결하는 국제미술 교류의 인큐베이터를 자임하기로 한 것은 한지연 대표의 야망을 잘 보여고 있다. 그녀는 상업적 이익을 사업의 주된 목표로 삼기보다는 당대 문화예술의 발전을 위해 일익을 담당하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시의 대부분이 오늘의 현실적 이익보다는 내일의 문화적 전망을 모색하는 원대한 목표의 일환으로 기획되고 있다. 



이번에 선보이는 <가상의 경계-한중 미디어 아트의 오늘>전은 한지연 컨템포러리 스페이스가 한국과 중국의 정상급 미디어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통해 미디어 아트의 당대적 이슈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기 위해 마련한 야심 찬 기획이다. 사실 이러한 성격의 국제전은 사적인 갤러리보다는 미술관과 같은 공적인 기관에서 수행했어야 할 사업이다. 그처럼 중대한 사업이 일개 개인 소유의 갤러리 공간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이미 이 프로젝트가 지닌 문화적 의의를 말해주는 것이다. 특히 미디어 아트가 지닌 비상업적 성격을 감안한다면 이는 모험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리스크를 지닌 것이다. 내가 한지연 관장과 의기가 투합하여 이 모험에 동참하기로 한 이유도 따지고 보면 이 프로젝트가 지닌 공익적 측면과 문화적 전망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미디어 아트가 미술의 중심적인 표현 매체로 떠오르게 된 것은 몇 년 되지 않는다. 개인용 컴퓨터의 등장과 인터넷의 발달은 미디어 아트의 출현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세계는 지금 인터넷으로 인하여 하나의 공동체로 확산되고 있는데, 차제에 지역을 논한다는 것이 시대착오적으로 인식될 만 하다. 


그러나 아무리 ‘로칼(local)’에서 '글로벌(global)’로 확산돼 하나로 통합된 세계, 즉 ‘글로벌리즘(globalism)’을 구가하는 시대라고 해도 거기에는 지역을 의미하는 ‘로칼’이 존재하고, 또 존재해야만 한다. 그것이 한국의 작가들과 중국의 작가들이 만나는 의미인 것이다. 이들은 사진과 비디오를 매개로 한 자리에서 만나 각자 고유의 문화를 이야기하는 동시에 세계적인 예술적 가치에 대해 논의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 전시가 지닌 가장 주된 의미다. 


<가상의 경계(Border of Virtuality>란 주제는 미디어 아트가 처한 오늘의 현실을 대변하는 은유다. 여기서 가상이란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사이버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즉 현실의 상이 아닌 ‘가상(virtuality)’, 즉 ‘환영(illusion)’의 문제를 주된 쟁점으로 제기하고 있다. 이 전시에는 비단 비디오를 비롯한 영상 작가뿐만이 아니라, 사진을 매체로 이용하는 작가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첨단 영상기법을 이용한 작가들이나 사진기법을 이용한 작가들 모두 현실의 상을 왜곡 또는 변형시켜 새로운 세계를 창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혹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는 굳이 장 보들리야르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미 미디어 아트에서는 고전이 된 지 오래다. 나날이 발달해 가는 미디어 아트는 과학기술의 신문명과 결합하여 새로운 영상기법을 예술계에 선보인다. 영화에서 컴퓨터의 합성기술은 관객들에게 새로운 미적 체험을 안겨주고 있다. 그 실험실이 바로 첨단의 전위 미디어 아트이며, 그것을 선도하는 사람이 미디어 아티스트인 것이다. 그렇다면 미디어 아트를 다루는 미디어 아트전은 첨단 예술의 인큐베이터다. 


데비한, 정연두, 김준, 이경호, 문경원은 중국을 대표하는 리용빈, 펑홍즈, 왕지엔웨이, 유엔광민과 함께 한국의 정상급 미디어 작가들이다. 이 작가들이 한국과 중국의 미디어 아트를 대변하는 대표적 작가들로서 손색이 없다고 하는 사실은 이들이 쌓아온 경력을 참고로 할 때 확연히 드러난다. 국내의 중요한 미디어 관련 기획전에 다수 초대를 받았음은 물론, 세계적인 비엔날레나 미술관의 기획전에 이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것은 이 전시회의 우수한 질과 수준을 담보해 준다.   


여기서 이 작가들의 작품에 대해 개별적인 언급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을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 그 이유는 간략히 요약된 비평적 언급이 오히려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기는커녕 관객들에게 그릇된 인상을 심어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나는 각 참여작가의 작품에 대한 개별적인 언급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그 보다는 오히려 이번 전시가 지닌 의의를 보다 폭넓은 문화적 지평에서 논의하고자 한다. 

나는 이번 기획전의 테마를 <가상의 경계>로 정했다. 그 이유는 ‘현실(reality)’에 반대되는 ‘가상(virtuality)’의 개념이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어떤 위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것은 장차 다가올 현대미술의 미래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 하는 진단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무릇 예술에서의 ‘현상’이란 도래할 미래의 조감도를 앞에 놓고 바라보는 어떤 예감과도 같은 것이다. 예술가들의 탁월한 예언의 힘은 그런 미래에 대해 나름대로 이러저러한 진술을 하는 데서 나온다. 이를테면 20세기 초반에 초현실주의 작가들은 견고한 현실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가상’에 대해 발언을 했는데, 이 정신의 분비물이 컴퓨터가 성행하는 오늘에 와서 보다 더 현실적으로 실현이 된 것은 역사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는 곧 한 때의 이단이 미래의 어느 날에는 주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예증한 것으로써, 중세의 이단아 히에로니무스 보쉬(Hieronimus Bosch 1450?-1516?)가 이미 500여 년 전에 뛰어난 상상력을 통해 증명한 바 있다. 

오늘날 가상을 다루는 미디어 작가들은 어찌 보면 이 탁월한 중세 이단아의 후예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히에로니무스 보쉬가 캔버스에서 가상을 다뤘던 것에 비해 이들은 사진과 테크놀로지를 통해 상상력을 구현한다는 데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사진이다. 혹자는 왜 미디어 아트에 사진이 들어왔는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 의문은 매우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전시의 주제가 <가상의 경계>란 사실을 상기한다면 이 의문은 쉽게 풀릴 것으로 믿는다. 


사진이 단순히 현실을 재현하는 수단으로 머문다면 당연히 그것은 이번 전시에서 배제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 초대된 작가들은 사진을 단순히 현실의 재현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사진을 컴퓨터의 합성기술과 접맥시켜 현실을 왜곡하거나 원본을 전혀 다른 문맥에 전치시켜 일종의 ‘가상’을 만들어낸다. 그렇다고 할 때, “그 경계는 과연 어디가 될 것인가”하는 것이 나의 관점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에 초대한, 사진을 주된 매체로 삼는 작가들은 사진 그 자체의 미학적 질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자신의 예술적 아이디어를 성취하는 수단으로 사진을 선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사진을 현실의 재현 수단으로 여기는 여타의 사진작가들과 다르다. 물론 이 작가들 역시 출력된 사진의 미학적 질을 중요시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사진을 대하는 근본적인 태도나 목적이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가상의 경계’는 과연 어디쯤일까? 당연히 이런 의문이 나올 것이다. 가령, 현재 미디어 아트에서 왕성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호작용(interactive)’이 경계의 끝일까? 관객의 참여를 필수로 하는 상호작용은 일방적 수용이 이루어지는 기존의 회화와 조각의 관례를 바꾼 미술사의 혁명이었다. 이는 퍼포먼스가 무대와 객석의 분리라는 원리에 입각한 전통 연극의 관례를 바꾼 것에 비견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재 미디어 아트 작가들이 벌이는 맹렬한 탐구는 기존의 미디어 아트의 지평을 과연 얼마나 넓혀 놓을 것인가? 이것이 바로 내가 제기하고 싶은 ‘가상의 경계’의 논점이다. 미술은 시각, 촉각, 미각, 후각, 청각이라는 인간의 오감과 관련하여 그 영역을 확장해 왔다. 전통적으로 볼 때 회화는 시각, 조각은 촉각에 주로 의존하는 예술의 장르다. 그러나 퍼포먼스가 미술의 영역에 들어오면서 미각과 후각, 청각이 새로운 개념으로 떠올랐다. 미디어 아트에서는 시각뿐만이 아니라 청각도 중요한 요소다. 그런가 하면 냄새나는 조각, 먹을 수 있는 조각은 후각과 미각을 중요한 미적 체험의 요소로 간주한다. 이러한 감각들은 예술이 ‘퓨전화’하는 포스트모던 상황 하에서 예술의 지평을 넓히게 될 것이다. 


예술과 기술이 접맥하여 문화와 예술의 지평을 넓혀나가는 대표적인 예술의 장르가 바로 미디어 아트다. 그것의 현황은 과연 어떤 것일까? 한국과 중국의 미디어 아트의 정상급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그 모습을 살펴보자는 것이 이 전시의 취지다.    

나는 한국과 중국의 고유한 미적 감수성에 바탕을 둔 작품들을 통해 이 작가들의 국제적인 역량을 한지연 컨템포러리 스페이스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한중미술 교류사에 남을 역사적인 일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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