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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미술의 중흥과 미래적 전망

윤진섭

아시아 미술의 중흥과 미래적 전망



대담자_ 홍가이 | 동서대 해외석학 초빙교수/MIT대 철학박사
윤진섭 | 국제미술평론가협회 부회장/호남대 교수



그 동안 아시아의 미술은 서구에 가려 제대로 빛을 보지 못 했다. 문화와 예술에는 높고 낮음이 없다는 문화 보편주의적 입장을 고려한다면, 이는 심히 부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러한 부당성은 세계의 문화지형도에서 현재 급부상 중에 있는 ‘아시아’에 대해 주목하게 만든다. 지구 전체 인구의 약 삼분의 이를 차지하고 경제력에서도 북미와 유럽연합에 이어 3위를 달리고 있는 아시아는 말 그대로 미래를 점칠 수 없는 ‘잠용’이다. 한 유력한 경제 분석 보고서는 아시아의 경제력이 멀지 않은 미래에 이들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조심스런 결과를 내놓아 주목을 받았다. 아시아 미술의 중흥은 이러한 경제적 전망에 토대를 두고 있다. 예술의 세계화는 경제적인 뒷받침이 제대로 이루어졌을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시아 미술의 세계화와 보편화, 나아가서는 서구와 똑같은 차원에서의 위상 제고는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그 구체적인 전략과 방법은 과연 무엇인가. ‘뷰즈’는 홍가이 박사와 윤진섭 교수의 대담을 통해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귀한 자리를 마련했다.(편집자 주)
한국의 팝 아트, 연원과 용어

홍가이 : 팝 아트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자. 지금 경제적으로는 동북아시아를 괄시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서구의 중심부에서는 아시아 미술을 얕잡아 본다. 중국의 팝 아트가 1960년대 초에 10달러면 살 수 있었던 게 지금 100만 달러로까지 값이 올라갔는데, 그것은 아시아 미술의 위상이 올라간 것이 아니라 서양에서 동양을 우습게보고 장난을 친 것이다. 마치 주식에서 작전을 하듯이 비즈니스 차원에서 미술작품의 값을 높여 놓은 건데, 문제는 중국의 팝 아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덩달아 우리나라에서도 팝 아트가 붐을 이룬 것이다. 그러다보니 중국의 팝 아트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 한국의 팝 아트는 내용이 없다는 비판을 듣는다. 중국의 팝 아트는 미국의 팝 아트와 달리 중국 근대 역사의 해체와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간접적으로 비판했다는 의미가 있다. 직접적으로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드러내지 않지만 간접적으로 휴머니즘을 표현하는 것인데, 그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중국의 팝이 의미 있다고 해서 값이 십만 배나 뛸 만큼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더 중요한 것은 중국에서 하니까 덩달아 하는 한국의 팝 아트는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윤진섭 :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책이 한 권 나왔는데, 이 책을 읽어 보면 중국은 미국에 대해서 적대적이지가 않다. 왜냐하면 중국인들은 굉장한 전략가들이고 현실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중국의 팝 아트는 미국에 대한 우호적인 제스처가 표출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또 미국에 종속적인 것 같으면서도 보다 큰 것을 전략적으로 끌어내는 측면이 있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중국 팝 아트의 주 고객 층이 화교라는 점이 작용하고 있다. 전 세계 화교들이 중국의 작가를 지지한다.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우리나라의 김동유 작가가 그린 모택동 초상화가 비싼 가격으로 팔렸는데, 그걸 산 사람도 화교라는 설이 있다. 구매자가 모택동을 소재로 한 미술작품에 굉장한 편집증이 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 팝 아트는 여러 면에서 빈약하다. 작가들은 상업적이지만, 판로는 제대로 확보되지 않고 있다.
11월 18일부터 24일까지 열리는 제3회 <인사미술제>의 커미셔너를 다시 맡았는데, 주제가 ‘한국 팝(Korean POP)’이다. 이번에는 기존의 도록 대신 한국 팝의 역사적 변천을 다룬 책을 출판하기로 운영위원회가 결정을 봤다. 획기적인 일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한국 팝은 다른 팝 아트와 구별되게 고유명사로 재정립되어야 할 용어이다. 사실 나는 코리안 팝 아트라는 말 대신 대중화(Daejoong Art)라는 말을 쓸 것을 주장하는 입장이다. 한지도 Hanji라고 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어느 정도 쓰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맥락이다. 그랬더니 어떤 분이 베트남 팝도 있고, 일본 팝도 있고, 중국 팝이 있는데 유독 한국에서만 대중화라고 하면 누가 알아주느냐, 대중화라고 하는 특성이 과연 있느냐 라고 이야기하는데 나는 어쨌든 이름이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말했듯이 지금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코리안 팝이 많이 번지고 있는데 굉장히 상업주의에 치중하는 양상이다. 독특한 예술적 철학이나 나름의 미학적인 주장이 약하다고 본다. 어떻든, 한국 팝을 어떻게 개념규정하고 용어를 정리할까 하는 것은 당면과제다.
비근한 예로 흔히 1970년대 이후 단색화, 소위 ‘모노크롬(monochrome)’이라는 용어를 쓰는데, 일본의 원로 미술평론가인 미네무라 도시아키(峯忖敏眀)씨가 한국에서 강연을 하면서, 미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한국의 독특한 미감과 감수성을 가진, 고유한 문화에서 우러나온 미술의 경향을 ‘코리안 모노크롬 페인팅’이라고 쓰는 것을 봤다. 이는 애써 가꾸어 온 것을 구미 양식의 가면으로 바꿔 쓰는 것과 같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말하자면 주체성도 없이 스스로 자기 것을 버리고 남의 우산 속으로 쑥 들어가 버리는 일과도 같은 것이다.
나는 2000년 제3회 광주비엔날레에서 <한일현대미술의 단면전>을 기획한 일이 있는데, 그 이전부터 이미 일본의 ‘모노하(物派)’는 국제적으로 브랜드화 되어 있었다. 서양의 미술평론가나 미술전문지 기자들이 알파벳으로 Monoha라고 고유명사로 써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단색화를 가리켜 스스로 ‘코리안 모노크롬 페인팅’이라고 한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래서 나는 그때 도록의 영문판에 단색화, 즉 Dansaekhwa라는 고유명사로 표기하였고, 지금도 기회 있을 때마다 일관되게 주장을 하고 있다.
다시 팝 아트 이야기로 돌아가자. 우리 미술사에서 팝 아트의 연원을 짚어 보면, 1967년의<청년작가연립전>이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무’동인, ‘신전’동인, ‘오리진’ 이 세 그룹이 주최한 이 전시회에 출품한 정강자 씨의 <<키스 미>>, 김영자 씨의 U.N 성냥통을 크게 확대한 오브제 작품, 신선희 씨의 패션을 주제로 한 설치작품 등이 팝적인 요소가 강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또 1970년대 초반에 하인두 씨가 <<태극기 송(頌)>>이라는 작품을 발표했는데, 미술평론가 오광수 씨가 재스퍼 존스의 성조기를 표절했다는 주장을 펼쳐 논란에 휩싸였다. 논란의 쟁점은 차지하고 이 역시 팝 아트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얼마 전 성남아트센터에서 극사실주의 회화를 조명하는 전시가 있었는데, 고영훈 씨가 1973년도에 코카콜라병을 소재로 한 작품이 도록에 실렸다. 그렇다면 이는 한만영 씨가 1978년에 모나리자의 이미지를 차용해서 그린 것보다 다소 앞선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계보를 뒤지다보면 우리나라에 고유한 팝의 역사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추출해 낼 수 있다.


글로컬리즘 혹은 멀티컬처럴리즘의 허상

윤진섭 : 팝아트에 관한 이야기에 이어서 글로컬리즘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다. 소위 로컬리즘localism과 글로벌리즘globalism이 합쳐져 글로컬리즘glocalism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는데, 이는 말 그대로 지역성을 충분히 살리면서 세계성을 확보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 용어에 대해 어떻게 해석하고 계시는가?

홍가이 : 말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글로벌리제이션globalization은 한국말로 하면 세계화이다. 다들 세계화를 찾는데 어떤 의미에서 세계화는 서구에서 자기네의 경제*문화적인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한 음모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실제로 그런 것이 경제 쪽에서는 확연히 드러나기도 했다. 김영삼 정부 때 미국 제도가 최고인 양 그것을 따랐는데 준비도 안 된 상황에서 받아들인 덕분에 IMF가 생긴 것이 그런 예다. 말레이시아는 같은 상황에서도 버텨내어 IMF를 맞지 않았다. 덕분에 <뉴욕타임즈> 등에서 욕은 먹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개의치 않았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즈> 등의 언론에 굉장히 민감했다. 그래서 우리가 얼마나 손해를 많이 봤는지 모른다. 글로벌리제이션은 미국, 유럽의 경제적 헤게모니에 대한 장악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글로벌리제이션이 경제적 측면이라면 글로컬리즘은 같은 의미의 문화적 측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나는 글로컬리즘을 80년대 멀티컬처럴리즘multiculturalism, 즉 다문화주의의 변용으로 본다. 멀티컬처럴리즘, 물론 좋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밖에서 보이는 대로 볼 것이 아니라 이면을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 글로컬리즘에는 유태인의 미국 진출 이후 주류를 이루는 사람들의 구성 성분을 변화시키기 위해 마련된 정치적 목적이 깔려 있다. 흑인, 여성, 아시아인들로 대변되는 소수자들을 끼워 넣어, 미국 주류 사회에서 유태인의 이질성을 희석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허울은 좋지만 글로컬리즘 역시 문화에서 서구가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방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윤진섭 : 글로컬리즘이 모든 것을 자유롭게 받아들이는 것 같지만 매우 선택적으로만 수용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유태인이 자본과 종교에 입각해 대통령을 만들어 내는 것과도 같은. 언젠가 상파울루비엔날레의 주제가 카니발리즘이었는데, 그때 파울로 헤르켄호프Paulo Herkenhoff 총감독이 서문에서, 아시아 지역을 큐레이팅한 태국의 아피난 포샤난다Apinan Poshananda가 카니발리즘을 후기식민주의적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 하는 점을 구체적으로 예시한 일이 있다. 가령, 인육을 ‘먹는(to eat)’ 카니발리즘의 특성은 식민주의자에 의한 아시아의 통화(通貨)에 대한 국제 금융제도의 공략이나 전쟁, 소수민족에 대한 억압 등, 정치적인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먹는다고 하는 기표의 이면에는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미국의 막강한 금융자본에 의한 무차별적 탐식이 숨겨져 있다는 식이다. 그는 마찬가지로 현재 북미 사회에 의해 발전돼 온 인종적 분류체계에 의한 다문화주의의 이데올로기에 관심이 없다고 단언함으로써, 미국에 의해 시행되고 있는 문화적 분류 시스템이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좀 전에 이야기한 예술의 브랜드화 역시 이런 관점과 다르지 않다. 태권도(Takwondo)나 김치(Gimchi)를 다른 영어로 바꾸지 않는 것처럼 단색화, 한지미술(Hanji Art) 등의 표기를 해서 이를 ‘브랜드화’하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민중미술의 경우는 퀸즈뮤지엄의 초대전인 <태평양을 건너서>전을 계기로 ‘민중미술(Minjoong Art)’로 표기한 선례가 있는데, 이런 성과가 더 자주 있어야 한다. 그런데 더 답답한 것은 작가들조차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얼마 전에 한국의 단색화 작가들을 다룬 화집이 미국에서 출판되었는데, 거기서도 모노크롬이란 용어를 표제어로 쓰고 있는 걸 봤다.
글로컬리즘이라 하면, 자신만의 고유한 문화적 특징을 ‘고유명사화’하여 수출함으로써 글로벌리즘을 지향하는 보편성을 얻는 것이어야지, ‘코리안 미니멀리즘’이라든지 ‘모노크롬 페인팅’이라는 말로 끼워 맞춰 가지고서는 미국으로 진출해 봤자 정신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식민지라는 소리밖에 못 듣는다. 우리에게는 분명히 고유한 미적 특수성이 있고, 그것은 서양과 차별화 되는 미적 감수성이라는 점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홍가이 :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다. 예를 들면 윤형근 작가의 작품이 서구의 작가들의 작품과 비슷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계보학적으로 족보를 따지면 완전히 출신성분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윤진섭 : 가령 로버트 라이먼이나 애드 라인하르트의 작품을 보고, 우리 작가의 비슷한 작품을 보면 똑같이 미니멀 회화, 블랙 페인팅이라고 해버릴 수도 있다. 그런데 그건 해석의 방법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이야기다. 작품이라는 것은 해석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어떻게 보고 글로 풀어내 거기에 의미 부여를 하느냐 하는 건데, 서양 회화의 막다른 종착점이 검정과 흰색 페인팅에 표출된 것은 맞는다고 하더라도, 또 우리가 그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나름대로는 이 땅에서 맹렬하게 산 조상들의 유전자를 받은 내가 외국의 문화를 받아들였지만 거기에 젖지 않고 나만의 작품을 한 것이므로 작품의 결(layer)속에 각인된 정신이 다르다고 봐야 한다. 그렇게 개별 작가나 작품을 다르게 해석하고, 집단으로 묶고, 브랜드화하고, 홍보하고, 설득하고, 책자로 만들고, 전시의 형태로 엮어야 한다. 그래야 의미 있는 생산이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금 70대 노인이 된 우리 원로 작가들이 30~40년 동안 활동한 성과가 서구문화의 우산 속으로 들어가는 꼴이 되고 만다.
대통령 직속의 국가브랜드위원회가 해야 할 일이 바로 그런 거다. 답답한 것이, 중국 따산즈 798에 가면 서점이 몇 곳 있는데, 세계적인 평론가들을 동원하여 권위 있는 출판사에서 낸 중국 미술에 관한 책자들이 엄청나게 꽂혀 있다. 그 두께조차 놀라울 정도다. 한국에 관한 책이 있나 찾아봤더니 <아파처>에서 나온 김아타 씨의 사진집 딱 한 권이 꽂혀 있더라. 이런 사실은 세계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아무 것도 안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호소력 있는 우리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글로 써서 번역을 해 수출하고, 세계적인 보급망을 가진 서양의 대형 출판사와 연계해서 출판해야 한다. 서구 출판사들이 나서지 않으면 우리가 일정 부분을 사서 수지타산을 맞춰주면 된다. 그들이 중국 책은 왜 만드느냐? 장사가 되니까 그런 거다. 중국시장에서 일정 부분 소화를 해 주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의 지원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큰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제대로 된 미술책 한 권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나는 평론가, 작가, 기획자로 일하면서 꽤 많은 경험을 해온 셈인데, 국제미술평론가협회(AICA)의 스톡홀름 총회에 처음 나간 1994년을 잊을 수 없다. 70개국, 4300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국제 미술 평론단체의 총회에 동양인이라곤 나와 발제자로 나섰던 일본 동경대학의 츠카모토 교수, 아프리카의 한 인류사박물관 부관장 등 단 세 명 뿐이었고, 미국, 유럽 일색인 총회를 그들이 좌지우지하는 것이었다. 어찌나 화가 나던지 1995년에 홍콩의 <아시안 아트 뉴스> 잡지에서 한국 특집을 다루었을 때 인터뷰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 “스톡홀름 총회처럼 편향된 국제협회는 필요 없다. 아시아가 새로운 협회를 전략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이념을 들이대 반쪽 행사로 치러지는 올림픽이 의미 없듯이 머릿수가 비슷하지 않으면 인류 공동의 이벤트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2003년도에 바베이도스 총회에 가서도 서구인 일색인 구성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고, 2007년 상파울루 총회에서 9명 중 유일하게 아시아인으로서 부회장에 당선됐는데, 늘 일관된 주장을 해온 결과라고 여긴다.
지난 6월1일 제주도에서 한아세안 정상회의(Korea/ASEAN Summit)가 열린 것을 계기로 미술, 문화, 영화 세 분야의 대표들이 모여 공동회의를 했는데, 거기서 아시아 미술이 어떻게 활로를 개척해나갈 것이냐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 열리는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샹하이비엔날레, 싱가포르비엔날레 등이 서구 추종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이 활발했다. 가령 베니스비엔날레 같은 전통 있는 행사에서도 황금사자상은 자기네들이 독식하는데 왜 우리까지 그걸 따라가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아시아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백남준 씨가 황금사자상을 탔지만 독일 자격으로 출품했던 것 아닌가. 독일의 카셀 도큐멘타KASSEL DOCUMENTA(독일 중북부의 도시 카셀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현대미술 전시회로 5년에 한번씩 개최된다.-편집자 주)에 가 보아도 아시아 작가들, 제3세계 국가들은 가뭄에 콩 나듯 끼워놓고, 90프로 이상이 서구 작가들 판이다. 이는 마치 흰 쌀밥에 콩 몇 개 뿌려놓고 콩밥을 했다는 격이 아닌가.

홍가이 : 사실 멀티컬처리즘이란 것이 그렇게 된 거다. 좀 다른 예이지만 세계 랭킹 1위인 MIT 수학과를 예로 들면, 70~80년대 이곳 대학원에 이미 아시아 학생들이 많았는데 교수진에는 중국인 한 두 명이 끼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무슨 말이냐 하면 중국인이나 한국인이 MIT 수학과에서 교수하려면 최고가 아니면 안 된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은 세계 최고가 아니어도 무더기로 교수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도 차별인 셈이다. 멀티컬처럴리즘이라는 미명하에 ‘아시안 아메리칸 스터디’ 이런 프로그램을 만든 것 등도 사실은 구색 맞추기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건 정치학에서 포괄적으로 다 다룰 수 있는 내용이다. 저런 프로그램은 뭐 하나 던져주고 그 안에서 살아라, 하는 식이다. 과거에 내가 MIT에서 객원교수로 가서 3년을 재직했는데, 4년을 안 채우고 정교수 자리를 박차버리고 나와 버린 것도 이유가 뭔가 게토에 살고 있는 이류가 된 것 같은 기분 때문이었다.
아시아 미술의 중흥을 위한 계획과 실천

윤진섭 :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유명 아트지가 매년 세계 주요 콜렉터 200명을 발표하는데 그 중 아시아인은 김창일 아라리오갤러리 대표 한 분이었다. 미국이 약 37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이 게 뭔가 하면 미술시장을 움직이는 큰손들이 모두 미국이나 유럽 쪽이면 아시아 미술이 영원히 주목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멀티컬처럴리즘이니 글로벌리즘이니 하지만 그 이면에는 전략적으로 백인중심 사상에 입각해서 움직이는 힘이 있으므로 아시아 미술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관심 밖이 돼 버린다.
바로 이때 아시아의 경제인들이 일어나 줘야 하리라고 본다. 일단 아시아 붐을 일으켜야 한다. 좋은 작가를 찾아내고 키워주어서 전략적으로 스타를 만들어야 한다. 늘 문화보다 다른 곳에 돈을 쓰는 일이 더 급하다고 여기는데, 사실 이 부분의 투자가 매우 시급하다. 적어도 십년 안에 그런 일들이 진행되어야 서서히 수위가 비슷해지면서 역전의 발판이 마련될 수 있다. 물론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보면 리스크도 있을 것이다. 투자 이후의 지속성에 대한 회의도 있고. 홍 박사는 어떻게 보시는지?

홍가이 : 정부나 아시아의 지각 있는 독지가가 약간의 지원만 해준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지금 서구 미술 시장은 월스트리트 투기원의 집합과 같다. 미술 역시 상업적인 기반 없이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윤 교수가 말씀하신 것 같은 전략이 매우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는 아직도 서구의 전위미술이 최고인 줄 알지만 그건 허상이다. 내가 배운 하버드대학의 스탠리 카벨 교수 같은 분은 ‘미술에는 늘 사기의 가능성이 산재해 있다’라고까지 이야기했다. 서구는 지금은 무엇을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게임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런 내용이 없는데 아름답게 포장하는 것이다. 서양에서도 뛰어난 사상가들은 너 나 없이 새로운 탈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이론과 철학, 예를 들어 칸트 미학 등을 전부 버리고 새 출발을 해야 한다고 난리다.
그런데 동양학을 연구해 보면 저들이 모색한 표현방법이 이미 동양에 다 있다. 이 사실은 나만의 주장이 아니라 세계적인 철학자 프랑소와 줄리앙같은 이도 이미 이야기한 부분이다. 프랑소와 줄리앙은 중국의 예술 역사에 대해서 지금까지의 어떤 동양학자보다 제대로 책을 쓴 사람이다. 그는 폭넓은 관점에서 동양과 서양의 문학을 비교하고 있는데, 가령 프랑스의 시인인 폴 베를렌느와 중국의 소동파의 시를 분석하면서 대시인들의 서로 다른 세계관적 이해를 풀이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베를렌느의 시 세계에는 서양 현대문명이 주는 허무감이 깃들어 있는 반면, 소동파의 시에는 자연을 관조하는 데서 오는 허심탄회한 담(淡)의 정서가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뭔가 하면 우리가 담론을 잘 조성하면 저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론적 근거가 이미 확립되어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김천일 교수의 산수화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는데, 혹자는 그의 산수화가 세잔의 영향이라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의 그림이 추사 김정희의 글쓰기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인도 그렇게 이야기했고. 물론 한꺼번에 패러다임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작은 규모로라도 담론을 형성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경제건 문화건 중심은 시대에 따라서 바뀌게 마련이므로 이론적 체계를 계속 보강하고 재정립해 가다 보면 축이 바뀔 것이다.

윤진섭 : 중국이나 한국 그리고 일본, 동남아 등의 현대미술에서 나타나고 있는 개념적인 동향을 분석할 때 무조건 서양의 작품을 먼저 규명하는 것이 습관화 돼 있는 것 같다. 말씀한 대로 김천일 산수화에 세잔을 들이대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지금 여기서 작업하는 사람 중에 미국이나 유럽에 나갔다 온 작가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들에게 그곳에서의 체험, 정신의 이식이 작용한 것도 사실이고. 그들이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그쪽 그림을 베끼다시피 하는 것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베낀다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거기에는 반드시 자기만의 무언가가 개입하게 되어 있다. 어릴 때 추억이라든지 관련된 사물을 끌어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술사학자들 가운데 일부는 서양에서 배운 방법론만을 가지고 도상학적으로 단순 비교를 한다. 그래서 표절이라고 치부하기도 하는데, 그건 우리 작가들을 죽이는 결과가 되고 만다. 물론 정보가 없었던 어둑한 시절에는 외국작가의 작품을 베낀 작가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겉보기에 비슷하다고 무조건 아류로 치부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하는 이들은 대개 자신만의 경험이나 배경을 선택적으로 작품 속에 녹여내기 마련이다. 단순 비교는 작가들은 죽이는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홍가이 : 윤형근 선생의 작품에 대해 쓴 글들을 읽어 봐도 하나같이 이분을 서양의 유명한 화가와 비교하는 것들 일색이다. 나름대로 그게 칭찬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참 한심한 일이다.

윤진섭 : 추사의 그 유명한 ‘불이선란(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를 보면 서로 다른 낙관들이 여백에 가득 찍혀 있고, 시제 역시 다 다르다. 중국 그림들도 빨간 낙관들로 뒤덮여 있고, 다른 사람들이 그림을 보고 시를 써 넣은 것들이 많다. 이건 뭐냐 하면 대대손손 소장자들이 그걸 펼쳐보면서 저마다 자신의 감상을 써 넣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림 속의 여백을 작가 개인의 공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서양에서는 화가 자신도 사인을 극도로 축소하고 더 이상의 개입을 용인하지 않는데, 어디 감히 사인을 넣고 글을 쓰겠는가? 즉 근본적으로 공간을 대하는 자세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사적으로 물화된 공간과 열린 공간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념미술Conceptual Art도 다르게 해석해 들어갈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의 고대 한나라 때 조성된 화상석의 탁본을 보면 하나같이 교훈적인 상징, 알레고리들이 있는데 그것들이 매우 다층적이다. 시각적으로는 아주 평면적이고 현대적인 디자인과 매우 근접해 있으면서 의미가 다층적인 것, 바로 그게 우리네 동양의 전통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전부 서양 시각에 조회하여 그 가치를 폄하하기 때문에 망친다. 미술평론가들과 미술사학자들이 공동연구를 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다. 그리하여 소위 새로운 예술의 패러다임 자체를 만들어 가야 한다. 서양 것이 아니라 우리 것에서 모델을 취하면서 큰 틀에서 패러다임을 바꿔 나가다 보면, 이런 조그마한 것들이 모여 10년, 20년 뒤에 새로운 문화적 지평을 열 수 있을 것이다.

홍가이 : 일부에서는 그런 노력들이 우리만의 잔치가 되지 않을까 염려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가 그렇게 정리해 나가면 서양인들은 더욱 동양의 문화에 목말라할 것이다. 실제로 지금 서양에서는 스타벅스보다 요가와 참선을 할 수 있는 곳이 더 성행하고 있다. 자기네들에게 없는 것에 매료되어 있는 것이다. 동양의 정신이 깃든 작품, 치유(healing)의 미술에 목말라하고 있고, 심지어 전시공간도 서구와 다른 정신적 장소이기를 기대한다. 전시공간을 기획할 때 그 점도 충분히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윤진섭 : 그래서 더욱 브랜드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이미 서구의 학자들에게 일본의 현대미술을 연구하게 해서 구겐하임 등 굴지의 아트 숍에서 그 결과물인 출판물들을 판매하고 있다.

홍가이 : 내가 생각하기에는 윤형근 선생의 작품들이 그 선두에 서야 할 것이다. 그분의 작품을 추상미술의 범주에 넣어버리는 건 잘못이다. 추사 김정희의 글쓰기에 뿌리를 둔 그의 작품은 담(淡)이라는 말로 설명될 수 있는데, 추사로부터 이어 내려오는 ‘담’은 소동파의 애잔한 담담함과도 또 다르다. 의연함에 가깝다고 할까. 이처럼 동양적인 ‘담’조차도 각기 다른 문화적 콘텐츠 안에 있기 때문에 직관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서양화가와 견주어 평한다는 건 기본적으로 잘못 된 방법론이다.

윤진섭 : 서예를 한 사람들은 그래서 뿌리가 깊다. 동양의 쓰기는 수행이다. 틀 자체가 다른데 같은 지평선에 두고 보는 우를 더 이상 범하지 말아야 한다. 선교사들을 따라 들어온 서양 문화를 받아들인 입장이다 보니 처음에는 멋져 보였지만 이제는 재정립할 때다. 마치 단발령 때 머리를 자르느니 차라리 목숨을 내놓았던 그런 의연한 한국의 선비 의식을 되살려야 한다. 그 정신으로 아시아의 예술을 재정비해야 한다. 서양에는 아직도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것, 즉 17~18세기에 유럽 식민주의의 시각에서 동양을 게으르고 더럽게 보는 시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무수한 영화나 소설, 그림 등에서 동양을 야만으로 표현하거나 동양인을 시녀 또는 하인으로 취급해오지 않았나.

홍가이 : 야만으로 보지 않더라도 그저 신비주의적이거나 이색적인 사람으로 취급한다. 좋게 포장하지만 말장난에 불과하다. 예술이나 문화 쪽 뿐만이 아니라 학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지식이 풍부한 제3세계인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면 배척당하고, 가난하게 살면 오히려 파티에 초청 받는다. 불쌍하고 이색적으로 보여서 운 좋게 성장해도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다.

윤진섭 : 역(易)오리엔탈리즘이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동북아를 비롯하여 아세안 국가들, 그리고 나아가서는 인도, 파키스탄, 터키, 중동권 국가들까지 포괄하는 폭넓은 지역의 작가들을 끌어들여 몽고가 대륙을 지배할 때 썼던 식으로 신출귀몰한 전시를 여러 국가에서 조그만 규모로라도 지속적으로 개최할 예정이다. 폭넓은 네트워킹이 이를 가능케 할 것이다.

홍가이 : 건투를 빈다. 나도 열심히 돕겠다.




홍가이(Kai Hong) 박사 약력
미시간대학교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하고 이태리 우르비노대학에서 기호언어학을 전공한 바 있다. MIT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록펠러대학 특별연구원을 거쳐 프린스톤, 캠브릿지, MIT대학의 교수를 역임하였다.
희곡집으로 <노스토이(Nostoi)-프로메테우스(불)의 아해들>, <히바쿠사>가 있고, 이우환, 박서보, 윤형근론 등 한국 현대미술에 관해 쓴 많은 글들이 있다.

윤진섭 교수 약력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동 대학원 미학과 졸업하고. 웨스턴 시드니 대학 대학원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1, 3회 광주비엔날레 조직위원 및 특별전 큐레이터, 제25회 상파울루비엔날레 커미셔너, 제3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전시총감독, 제1회 포천아시아미술제 조직위원장 겸 전시총감독,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국제미술평론가협회(AICA) 부회장, 호남대 교수로 있다.

<뷰즈 9/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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