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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원 / 세계의 빗장을 여는 사제(司祭)

윤진섭

세계의 빗장을 여는 사제(司祭)

김영원의 작품세계


윤진섭(미술평론가)



1. 선(禪)과 예술

 선(禪)을 통한 정신과 신체수련의 한 방편인 기공명상이 예술과 어떤 관련을 지니고 있는지 나는 확실히 아는 바가 없다. 언젠가 그림이나 조각을 하는 작가들 한테서 이에 대해 귀동냥으로 들은 적이 있지만, 그 때만 해도 관심밖이라 그냥 지나가는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선과 현대예술은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대음악의 선구자 가운데 한 사람인 존 케이지만 하더라도 자신의 음악에 우연성과 침묵의 요소를 도입하는데 있어 동양의 선사상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으며, 무용의 머스 커닝햄이라든가 플럭서스 작가들의 창작방법론은 선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조각가 김영원은 바로 이 선적 체험과 기공명상의 경지를 신봉하고 있다. 그의 체질과 정신구조, 유전적인 형질이 운명적으로 그러한 세계에 관심을 갖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 두 요소가 그의 현재 작업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영감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영원은 아침 일찍 일어나 선방을 찾는다. 직장에 출근하기 전에 선방에 들러 좌선을 하고 나서야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말하자면, 선이 생활화돼 있는 것이다. 좌선과 함께 기공수련을 하고, 신체단련은 물론 명상을 통해 마음을 갈고 닦는다. 그것은 일상적 삶의 한 부분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업인 작업에도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의 작업에 나타나고 있는 불교적 색채와 선적인 분위기는 이와 관련이 깊다.

 얼마전 미술회관에서 가졌던 개인전은 그의 이러한 사고가 총체적으로 드러난 전시회였다. 그것은 그 이전의 개인전에서 보여졌던 작업의 내용에 비쳐볼 때 일관된 형식적 맥락을 유지하면서도 내용적으로는 한층 더 심화된 양상으로 나타났다. 1990년 선화랑 개인전에서 불교적 색채가 짙은 작품을 몇점 선보인 적이 있는데, ‘윤회’를 주제로 했던 이 작품들은 사실적 기법에 기반을 둔 그 이전의 작품들과 연계되는 것이었다. 



2. 사회적 관심에서 정신적 내면의 세계로

 한국 조각계에서 김영원이 차지하는 위치는 독특하다. 이미 중견작가로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한 그는 인체조각을 중심으로 한 사실적 기법을 고수하면서도 내용과 형식상의 변화를 꾸준히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술의 현장에서 그가 거론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이처럼 문제를 제기하는 그의 도전의식과 왕성한 실험정신에 기인하지않나 생각한다. 그의 실험정신은 이를테면 구상과 추상간의 접합을 비롯하여 퍼포먼스의 도입이라든가 설치형식의 원용과 같은 유연한 자세를 통해 나타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나의 작업은 때로는 행위로, 설치로, 입체로, 평면으로 다양하게 전개될 것이며, 그 양식 또한 구상이나 추상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로운 세계를 열어가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작업의 주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표출하기 위해서 그 어떠한 방법론도 열린 의식으로 수용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개방된 사고가 그의 작업을 보다 풍요한 것으로 만들 소지는 매우 높아 보인다. 최근 미술회관에서 가진 그의 개인전은 조명과 설치, 퍼포먼스적 요인에 의해 매우 드라마틱한 성격을 띄었는데, 이처럼 총체화된 장(場)의 제시는 향후 그의 작업을 보다 개방된 차원으로 끌어올리게 될 것이다. 

 김영원의 작품에서 퍼포먼스적 요소가 도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중력ㆍ무중력](1987, 토탈미술관 소장)과 미니어쳐 작품인 [중력ㆍ무중력-순환](1987-88, 작가소장)에서 등장인물들의 집단적 초상을 통해 드러난 바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들은 예의 벌거벗은 인물군상을 통해 현대산업사회의 단면과 윤회사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인데, 드라마틱한 분위기의 연출방식이 미래의 퍼포먼스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이 작품들은 내용과 형식면에서 볼 때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에 이르는 초기작업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 그것들은 이미 김영원 조각의 전형(典型)이 돼 버린 ‘벌거숭이 인간군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7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는 한국적 사회상황에 대한 완곡한 비판의 의미를 지닌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특정한 장소나 시대를 지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인체표현의 특징이랄 수 있는 익명성은 곧게 뻗은 신체와 맨 머리에 기인하는데, 거기에는 인간의 특정한 성격 보다는 보편성의 의미가 보다 짙게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3. 대지로의 회귀:윤회(輪廻)

 김영원의 인체조각을 유심히 살펴보면 거기에는 주제와 형식을 교묘히 통합시키는 기법들이 동원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마치 귤껍질처럼 인체표면을 죽죽 찢어놓은 것같은 기법이라든가 원이나 사각형의 구멍을 뚫은 것, 파편속에 잠긴 인체, 혹은 땅속으로 부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일련의 시리즈 작업 등은 각자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표출시키기 위해 고안된 것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긴장감을 낳는다. 김영원 인체 작업의 특징은 바로 이 긴장감에 달려있는데,  형식의 실험에서 내용으로 넘어가면서 이러한 긴장감은 점차 와해되기에 이른다.

 ‘윤회’를 주제로 한 일련의 작품들이 나타난 때는 1989년 무렵이었다. [중력ㆍ무중력-윤회] 연작은 뚜렷한 불교적 색채로 인하여 굳이 명제를 살펴보지 않더라도 불교의 윤회사상을 주제로 삼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영윈의 작업에서 이 시기는 일련의 사회적 주제들이 종언을 고하고 종교적 주제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해당하는데, 비록 90년대 초반에 다시 종전의 주제로 환원되는 기미가 나타나기는 했지만 근작에서 보는 것과 같은 스타일로의 완전한 정착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 때가 대략 1993년 무렵으로 원기둥 작품이 나타나는 시기이다.

 이 무렵은 작가 김영원이 정체성(identity)의 문제로 고민하던 시기였다. 이 땅에 살고있는 작가라면 누구든지 한 번쯤은 맞닥뜨리게 되는 이 정체성에 대한 회의는 한국 근ㆍ현대미술사를 점유해온 서구미술에 대한 ‘이식문화 컴플렉스’로 부터 비롯된다. 김영원의 경우에 있어 그것은 인체의 표현과 관련된다. 이상미에 가까운 인체비례가 가져다주는 이질감과 비현실성은 대상의 모델링을 통한 서구적 조형어법의 익숙한 모습을 연상시키면서 반사적으로 내용주의로의 전환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 이때 그가 다시 끄집어낸 것은 [중력ㆍ무중력-순환]에 나타났던 ‘윤회’였다. 잔디가 파릇파릇하게 돋은 언덕을 달려내려오는 수많은 군중들을 묘사한 이 작품은 인간군상의 모습을 통해 만물의 생성과 소멸, 혹은 윤회적 과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윤회’라고 하는 동양적 사상에 기초한 그의 기본 아이디어는 92년 무렵 급기야 원통형의 기둥을 통해 구체화되기에 이른다. 이는 89년도 작품인, 할머니의 인생을 소재로 한 [중력ㆍ무중력-윤회]에 연결되는 것으로 현격한 내용주의로의 전환이다. 

 기둥은 종교학적인 의미로 말한다면, 성현(聖顯)의 매개물로서 땅과 하늘을 이어주는 끈이다. 그것은 우주의 축(axis mundi)이자 ‘거룩’의 상징이기도 하다. 우리가 신목(神木)이나 서낭당, 당산나무, 솟대를 접할 때 느끼는 거룩한 감정과 법열의 느낌이 기둥에 내재한다. 바로 그런 맥락에서라면 김영원의 기둥 작품을 종교론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그의 미술회관 개인전(1997) 출품작들은 윤회사상에 초점을 맞춘 종교적인 색채의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4. 전통과 현대의 결합: 새로운 지평을 향하여

 바로 그 개인전 오프닝에서 김영원은 흰색의 한복을 입고 기둥을 돌며 한바탕 춤을 췄다. 흙으로 만든 기둥의 꼭대기에는 울긋불긋한 오방색의 천조각들이 둘러쳐진 가운데 그는 기둥의 주변을 돌며 채 마르지않은 흙기둥의 바탕에 손가락으로 드로잉을 했다. 그는 퍼포머(performer)인 동시에 의식(儀式)을 행하는 사제가 된 셈이다. 그가 퍼포먼스를 하는 장소, 즉 전시장은 그 순간 탈(脫) 일상화된다. 그곳은 적어도 퍼포먼스를 하는 순간만큼은 범속한 공간이 아니라, 신성한 공간이었으며 거룩한 공간이다. 관객들은 새로운 예술적 체험과 함께 거룩한 종교적 체험을 맛보게 된다. 그들이 거룩한 체험을 하게 되는 이유는 그의 작품이 지닌 특별한 ‘의미’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김영원의 작품이 ‘종교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의 작품들중 상당수가 불교적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예컨대, 오체투지(五體投地)라든가 광배, 결가부좌, 불두(佛頭) 따위), 작가의 의도가 형식 자체의 발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제의 효과적인 표출에 두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서 주제는  해탈과 재생을 둘러싼 인간성의 존엄과 관련된다. 

 인간성의 존엄에 대한 발견은 곧 문명에 대한 혐오이다. 그의 예술적/종교적 의식(儀式)은 바로 이러한 인간적 존엄에의 각성을 위한 매개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그는 현대문명의 기반을 이루는 물질에의 경도(傾倒)를 경고함으로써 예술행위를 통해 세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정신이 주인되는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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