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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윤 / 인생이 아름다울 때

윤진섭

인생이 아름다울 때


윤진섭(미술평론가/본지 편집위원)



 지난 겨울, 온천지대로 유명한 일본의 벳부에 놀러 갔다가 호텔에서 동양의 음식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일본은 사시미와 스시 등 생선 요리가 유명하고 중국은 센 불에 튀긴 기름진 음식이 주종을 이루는데, 아무래도 한국은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끓인 탕과 비빔밥, 신선로, 구절판 등이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일본과 중국은 각 요리를 하나씩 음미하는데 비해 한국의 요리는 여러 식재료를 한 입에 넣고 씹어서 이것들이 서로 뒤섞이는 가운데 울어난 맛이 특징이라는 점이다. 즉, 한국 음식의 맛은 다양한 식재료의 성분들이 자아내는 ‘컴비네이션’에 있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바로 퓨전(fusion)의 본질이 아닌가 생각한다. 


 융합을 의미하는 퓨전은 다양성이 특징이다. 다양한 요소와 성질들이 한데 모여 화학적 변화를 이루는 가운데 전혀 다른 내용으로 거듭 태어나는 것이 퓨전이다. 가령, 미국은 다인종 사회인데, 그런 미국의 문화는 퓨전적이다. 그래서 미국문화를 가리켜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라고 하는데, 이는 특정한 인종이나 민족의 문화를 편들 수가 없기 때문에 그냥 모든 것을 용인하는 데서 온 것이다. 


 동양화를 전공한 홍지윤이 생각하고 실천에 옮기는 예술의 내용이 바로 이런 것과 닮아서 나의 관심을 끈다. 최근에 나우갤러리에서 연 개인전-이 전시의 제목을 그녀는 Bohemian Edition이라고 붙였다-은 사진을 이용하여 자신의 관심사를 표현한 것이다. 그녀의 사진에 대한 감각과 재능은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을 통해서 확연히 드러났거니와, 아무튼 자기의 전공분야가 아닌 사진에 대한 과감한 도전은 가히 잡식성에 가까운 그녀의 저돌적인 행동으로 미루어 볼 때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다. 사실 그녀의 이런 행보는 동양화의 순수성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사건이다. 그녀는 비단 사진뿐만 아니라 이미 출판, 서체 디자인, 퍼포먼스, 시 등등 광범위한 문화예술의 영역에까지 손을 뻗고 있으니, 그 응용은 가령, 그림을 포함한 서체 디자인만 해도 건축, 화장품, 문화상품 등 다양한 분야에 이르고 있다. 



 미술이 순수성을 버리고 생활영역에 침투하게 된 것은 이 시대의 요구다. 즉 퓨전이 주류문화(mainstream culture)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디자인의 발달은 순수미술을 밀어낸 직접적인 동인이었다. 바우하우스에서부터 팝에 이르는 디자인의 역사는 미술과 생활을 융합하는 실천적 과정이었던 것이다. 생활 속으로, 생활 속으로, 디자인은 과자의 포장에서 컴퓨터 게임에 이르기까지 예술의 질과 내용을 끊임없이 바꿔놓고 있다.  


 21세기 현대문명의 총아인 컴퓨터는 화가들이 새로운 세계를 실험할 수 있는 장을 열어 주었다. 포토샾은 그야말로 ‘훌륭한 신세계’다. 홍지윤이 이번에 붓과 먹, 종이에 의한 직접적인 표현을 떠나 이미지의 컴퓨터 합성을 시도한 것은 이러한 변화를 정확히 읽어냈기 때문이다. 시대에 부응하는 예술이란 다름 아닌 그 시대의 기술적 성과를 이용하는 예술이다. 예술가들은 이제 시대에 부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대를 선도하고자 한다.


 사진을 크게 확대하여 디아섹으로 처리한 이번 출품작들은 대작이 주류를 이루었다. 전시장은 이 대작들이 뿜어내는 화려한 분위기로 넘쳐흘렀다. 그녀가 즐겨 사용하는 화려하고 강렬한 느낌의 형광색의 이미지가 그런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개성이다. 흑백으로 처리한 독일 여인의 풍만한 육체를 난무하듯 화려하게 뒤덮은 홍지윤의 꽃과 글씨, 새-이것들은 이제 그녀의 잘 알려진 아이콘이 돼 버렸다-등등, 그것들은 하나의 화면에서 서로 충돌하면서 융합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서로 스미거나 섞이지 않는다. 사진 속의 여인은 깊숙이 가라앉아 있고, 그 위에 부초처럼 떠 있는 화려한 글씨와 그림들은 그것들대로 하나의 표면층을 형성하고 있다. 포토샆이 가져다 준 기술적 성과는 바로 이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그림에서는 어떤 물감을 사용해도 그처럼 뚜렷이 구분되는 층을 만들기 어렵다. 사진의 번질거리는 느낌과 디아색의 번질거리는 표면은 두 개 층의 서로 다른 이미지들이 서로 미끈거리며 탈주하듯 시각 장을 교란시킨다. 홍지윤의 이번 디아섹 작품은 가령 같은 내용이라도 화선지 위에 그렸을 경우와는 전혀 다른 미적 경험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화선지에 스며든 먹의 색깔과 그것을 사진으로 촬영하여 컴퓨터의 편집과정을 거쳐 디아섹으로 포장한 색깔은 근본적으로 다른 감흥을 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관객의 취향이 판연히 엇갈리게 되는데, 누구는 화선지 위의 먹색과 종이의 질감을 좋아할 수도 있고, 사진으로 출력된 먹의 색과 종이의 질감을 좋아할 수도 있다. 그것은 근본적의 감각의 차이에 기인한다. 



 홍지윤은 여행을 즐기는 에뜨랑제다. 세계의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시적 감흥에 젖는다. 이미 그녀의 작품은 시를 떠나서는 성립될 수 없거니와, 한글을 비롯하여 한문과 영문 등을 빌어 화면을 수놓고 있는 현란한 단어, 시구들은 그녀의 내면을 읽게 해 주는 일종의 주해들이다. 


 뜨거운 여름날 이름 모를 곳을 여행하고 있을 때에도 전시를 위해 동서분주 낯선 곳을 찾아 나설 때에도 그리고 가만히 창가에 앉아서 부서지는 햇살에 무지개 빛 날개를 한 눈부신 새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에도 나의 영혼은 바람 속 또 다른 어딘가를 맴돈다.

 그대로 난 길이 아닌 아무도 모르는, 나조차도 몰랐던 길을 무심히 지나갈 때

자유, 방랑, 떠도는, 늘 움직이는,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영혼과 같은 단어들이 내 주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어떤 이상도 감상도 이성도 감성도 아닌 내 심장과 혈류를 따라 흐르는

그러한 것들.                           

<홍지윤, Episode 1. - 여행: Blowing in the wind 전문>


 짙은 초록의 풀과 나무, 그리고 그 사이에 화려하게 피어있는 꽃을 찍은 사진 위에 시가 적혀 있다. 영혼은 대지에 영원히 머물지 못하고 잠깐 스쳐 지나갈 뿐, ‘빛의 기록물인 사진’이 그런 영혼과 스치듯이 만나고, 그 영혼의 그림자와도 같은 시와 글씨와 그림이 또한 그들과 합류한다. 이제 사진과 포토샾, 디아섹은 홍지윤이 자신의 내면을 새롭게 드러내기 위한 표현수단이자 시각적 장치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지필묵에서 사진, 포토샾, 디아섹으로의 이행은 홍지윤의 감각을 다른 각도에서 보여주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퍼포먼스 역시 자신의 내면을 보다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인생은 아름다워, 장지에 수묵채색, 117x80cm, 2008


 홍지윤은 이미 <인생은 아름다워>(2008) 연작을 통해 지필묵에 의한, 현란하고도 화려한 시각적 언설을 질펀하게 보여준 바 있다. 화면에 빼곡히 들어차서 서로 튀는 글씨와 꽃, 새들의 난무, 시각장을 어지럽히는 그것들은 단순한 것과 정리된 것에 길들여진 관객들의 미적 취향을 기준으로 할 때 일말의 거부감이 느껴질 법도 하다. 그러나 실험적인 것은 처음에 거부감을 준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홍지윤이 관심을 기울이는 이 실험은 의미심장한 데가 있다. 


 홍지윤의 작품은 문화예술의 퓨전을 통해 작가의 내면과 생활 세계가 만나는 교차로이다. 실크로드가 동서문화의 융합을 가져온 것처럼 그녀의 작업은 더 당차게, 더 퓨전적으로 될 필요가 있다. 그녀의 작업은 동서양의 온갖 문화적 형식을 집약하여 하나의 용광로에 집어넣고 제련할 때 합금처럼 그 반짝임의 빛을 더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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