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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 / 동시대의 문명에 대한 회화적 해석

윤진섭

동시대의 문명에 대한 회화적 해석


윤진섭(미술평론가/호남대 교수)



 어찌 보면 현재 이 땅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화가들의 고민은 작품의 소재나 제재보다는 매체나 재료에서 기인하는 것인 지도 모른다. 이것을 정신상의 위기(crisis)로 간주한다면, 그것은 주로 한국화의 정체성의 문제와 관련된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한국화는 이런 것이다'라고 하는 기존의 관념이 바탕에 깔려 있다. 과연 한국화는 무엇일까? 지필묵일까? 단지 화선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한국화일까? 아니면 한국적인 정취나 소재를 다룬 것이 한국화일까? 이런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그 이유는 한국화단을 둘러 싼 상황이 날로 복잡다단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작가들이 기존의 전통적인 재료에서 벗어나 설치, 입체, 영상, 사진, 퍼포먼스 등 타 매체나 장르와의 융합을 시도하는 까닭도 이러한 위기의식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화는 위기에 부닥친 것일까? 그러한 시도들은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에 실마리를 제공할 것인가?   


유목동물+인간2010-14, 122x162cm, 한지에 수묵채색, 2010


 허진은 손에 의한 장인적 정신을 바탕에 깔고 작업을 하는 작가다. 소치 허련에서 시작, 남농 허건으로 이어지는 집안의 5대에 걸친 화맥은 그에게 그림에 대한 천부적 재능과 분위기를 선사했다. 성곡미술관에서 열린 이번 초대전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수석으로 대변되는 풍류와 인문학적인 토대와 관련된다. 이는 작가도 술회하고 있듯이, 약 2년여에 걸친 목포에서의 유년시절 추억과 깊은 관계가 있다. 할아버지인 남농의 화실에서 본 수석의 인상과 유달산에서 본, 점점이 떠 있는 다도해 풍경 등은 그의 의식 속에 각인되었다가 점묘의 형태와 이번 전시에서 보듯이 수석을 이용한 설치작업으로 표출되기에 이른 것이다. 


 허진의 전 작품에 관류하고 있는 인간과 문명, 자연 간의 대위법적 등식은 자연과 문명을 바라보는 그의 작가적 시선이다. 이는 그가 작업노트에서 기술하고 있는 것처럼 거대 도시로 변질돼 버린 오늘날의 서울 풍경과도 무관치 않다. 그는 서울을 온갖 잡종적 인자들이 들끓고 있는 용광로처럼 묘사하고 있거니와, 이는 뉴욕이나 런던, 상파울루와 같은 대도시들이 겪고 있는 현상과도 무관치 않은 것이다. 따라서 그가 바라보는 문명에 대한 시선은 지역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범세계적인 차원의 것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허진이 철저히 손의 노동에 의존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했을 때, 그것이 영상과 같은 뉴미디어나 설치 위주의 시류에 꿀리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작품의 내용에 기인한다 할 것이다. 그의 그림들은 거대도시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나약한 인간의 존재와 야생 동물로 대변되는 자연, 그리고 인간적 산물인 기술 문명에 대한 그 나름대로의 해석이다. 그것은 그의 그림 속에서 다소 도식적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그것이 주는 환기력은 강렬한 색채만큼이나 강하다. 물론 나로선 동물보다 왜소하게 표현된 인간의 이미지, 기계나 도구의 나열이나 혼재가 이러한 그의 사고를 효과적으로 표출하고 있다는 데 선뜻 동의하기 어렵지만, 한결같이 밀어붙이는 주제에 대한 그의 뚝심은 문제작가로서 그의 자질을 의심치 않게 하는 요인이다. 가령, 생명 복제나 유전공학의 폐해로 일컬어지는 이종융합동물의 이미지는 과연 도슨트의 설명이 없이도 관객의 이해가 가능한가? 내가 그의 그림을 가리켜 도식적이라고 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거니와, 무엇보다 그림은 설명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허진의 작품에서 강한 색채감과 사물의 복잡한 형태간의 충돌은 따라서 작가가 발언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약화를 가져오는 요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화의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그의 작품들은 대작이 주는 박진감과 함께 세심하게 살펴보는 데서 오는 해석력이 뒷받침될 때 진정한 의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이는 가령 그의 화면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모바일 폰으로 대변되는 현대의 유목적 삶에 대한 유비가 될 것인가' 하는 것과 같은 질문과 관련된다. 


 나로서는 말을 소재로 삼고 있다고 해서 곧바로 유목적 삶 운운하는 것은 지나친 견강부회처럼 보인다. 일반론적으로 볼 때 스토리텔링에 의존하는 소설이나 영화와는 달리 붙박이 이미지에 의존하는 그림은 특히 그것이 구상적 형식을 띠는 한, 해석에 일정한 한계를 지니기 십상이다. 허진의 경우에 특히 주제의 도식적 적용은 그림의 내용을 가두는 일종의 감옥이 될 수도 있다. 이는 그의 작업의 행로가 매우 오랜 것이고, 또 작가는 아주 충실하게 그 행로를 밟아왔다고 하더라도 주제에 작품이 함몰되는 길을 약간은 피해가야 할 것이라는 나의 소견에 뒷받침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진은 당대의 문제를 미술의 주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화가 처한 위기를 돌파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수묵이나 채색화와 같은 전통적 재료와 기법에 충실하면서도 그것을 오늘의 실정에 맞게 적용하여 오늘의 사회가 처한 문제를 포괄적인 주제에 담아 공유하려는 의식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그를 문제작가 중 한 사람으로 보는 이유이다   


<아트인컬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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