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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 여성작가 16인의 작품 세계와 그 의미

윤진섭

 한국 현대 여성작가 16인의 작품 세계와 그 의미


윤진섭(미술평론가)



Ⅰ.

   최근 몇 년 간 한국 사회에 나타난 괄목할만한 현상 가운데 하나로 우먼파워를 들 수 있다.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 일은 한국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은 일대 사건이거니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학술 등등 각 분야에 걸쳐 여성 인재들의 활약상이 연일 신문 지상을 장식하고 있다. 미술 분야만 하더라도 많은 수의 국공립미술관과 박물관의 수장이 여성이고 학예직의 적잖은 자리가 여성들로 채워져 있다. 그와 더불어 60년대 이후 여성 작가들의 두드러진 활약은 미술계의 판도를 바꿔놓을 만큼 증가 추세에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 화단에 나타난 두드러진 변화는 여성 미술인들의 약진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해방이후 국내에 미술대학이 창설되면서  여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한 사실에 기인한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유학을 간 초창기의 선구적 여성 미술인들, 예컨대 나혜석을 비롯하여 천경자, 박래현, 백남순 등등은 남성 주도의 화단에서 나름대로 투쟁하며 여성의 권리신장을 위해 초석을 다진 인물들이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온갖 제도적 한계와 성차별, 사회적 편견과 맞서 싸워온 여성 선구자들의 업적은 해방 이후 국내의 미술대학에 진출한 김정숙과 윤영자 등 여성작가들로 그 계보가 이어지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60-70년대에 이르러 괄목할만한 수준으로 확산된 여성에 대한 교육열은 여성미술인의 수적 증가를 가져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화단 진출은 용이한 것이 아니었다.  미술대학을 졸업했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이라는 사회적, 생리적인 벽에 부딪쳐 작가로서의 꿈을 접는 일이 허다했다. 재능은 여자라고 해서 남자에 비해 특별히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남성위주의 사회구조와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이 여성의 화단 진출을 가로 막는 주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이는 비단 한국사회뿐만 아니라 서양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여성 미술사가인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은 미술사에서 위대한 여성작가를 찾아볼 수 없는 이유는 남성 위주의 제도에 의해 여성들이 철저히 배제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근대 이전의 서양미술사에 등재된 여성작가의 이름은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라는 걸작을 남긴 젠틸레스키 등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미미하다. 사정이 그렇기 때문에 만일 피카소가 ‘파블리타’라는 이름의 여자로 태어났다면 과연 그가 오늘날처럼 천재적인 작가로 칭송을 받을 수 있었을까 하고 노클린은 묻는다. 그녀가 적절히 비유하고 있듯이, 아무리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 하더라도 현재와 같은 조건에서라면 피카소가 되지 못하고 접시닦이나 여자 판매원이 되는 게 고작이었을 것이다. 

   린다 노클린이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들은 존재하지 않았는가?>라는 글을 통해 성의 편견을 고발한 때가 1969년도니까 그 때와 지금의 사정은 비교할 바가 못 된다. 70년대 이후 여성운동의 불을 댕긴 케이트 밀레트(Kate Millet) 등 여성운동가들의 활동에 힙 입어 오늘날 여성의 권리는 놀라울 만치 신장되었다. 이 점에 있어서는 한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1980년대 이후 미술계에 진출한 미학과, 미술사학과, 예술학과 등등의 여성미술인들은 미술평론가, 미술사가, 큐레이터로 활동하면서 여성작가들에 지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남성위주의 단단한 미술계 벽을 허물고자 노력한 이들의 시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미술비평과 전시기획, 미술사 분야에서 점차 그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오늘날 보는 것과 같은 여성작가들의 뚜렷한 미술계 진출 현상은 이들 여성 미술이론가들의 후원에 많은 부분을 힘입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여성 미술인들의 두드러진 화단 진출은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 일제강점기 때부터 현재까지 끈기 있게 이어온 여성미술가들의 활동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Ⅱ. 

   조문자, 이정지, 유영희, 황주리(이상 서양화), 고(故) 김정숙, 박기옥, 김효숙, 김경옥, 최은경(이상 조각), 이병복(무대미술), 금동원, 이숙자, 차명희, 장혜용(이상 한국화), 이성순, 김승희(이상 공예) 등 16인의 여성작가들이 참여하는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리의 시선을 끈다. 여성들에 의한 미술, 다시 말해서 남성위주의 한국 현대미술사 서술에서 그 동안 가려져 온 여성미술의 단면을 보여줌으로써 한국 미술에 풍부한 표정을 부가하려는 목적에서 기획된 것이다. 참여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비평적 기술을 위해 필자를 포함, 서성록, 이선영 등 세 명의 미술평론가가 간여하고 있는 것도 이번 전시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시의 구성이 한국의 전체 화단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졌다고 말하기에는 곤란한 부분이 있는데, 그 이유는 16인에 이르는 참여작가들이 어떤 공동의 학연에 의해 맺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숙명여고 동문으로서 미술반 활동을 통해 선후배의 인연을 맺고 있다. 100 여 년의 오랜 역사를 지닌 숙명여고는 여타의 활동 중에서 특히 미술반 활동이 괄목할 만한데, 그 이유는 이 요람에서 많은 작가들이 배출되었으며, 이 일에 공헌한 역대 미술교사들이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들이란 점에 있다. 일제강점기 때 미술교사를 지낸 동양화가 이영일을 필두로 홍일표, 이준, 이종무, 임직순, 고화흠, 안상철, 김정숙, 오종욱, 윤영자, 박영희, 최종태, 윤형근, 황용엽, 최재종 등 한국근현대미술사를 이루는 중요한 작가들이 미술교사로서 많은 여성작가들을 배출해냈던 것이다. 

   이처럼 훌륭한 스승 밑에서 미술을 배운 이들은 연령적으로 볼 때 현재 70대에서 50대에 이르고 있는데, 이는 한국현대미술사의 입장에서 볼 때 1960년대에서 현재에 이르는 50년간을 아우르는 세대의 분포를 보여준다. 따라서 이번 전시를 통해 관객들은 세대 간에 흐르는 미의식과 예술적 관점의 차이는 물론, 회화(서양화, 한국화), 조각, 공예, 무대미술 등 다양한 미술 장르의 특성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남성위주의 미술계 판도에서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출산과 육아 등 여성 특유의 신체적 약점을 딛고 작가로서 입지를 뚜렷이 함과 동시에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확립한 참여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한국 현대 여성작가들의 세계를 압축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조문자 : 무채색에 흐르는 사념과 정조(情調)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초반에 걸쳐 미술대학에서 수학한 조문자는 당시 화단에 팽배해 있던 앵포르멜 풍의 추상화에 빠져든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기간이 무려 50년이다. 추상화에 대한 그의 일관된 태도는 색과 형태, 그리고 재료 사이의 길항관계를 집중적으로 탐구하는데 모아지고 있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 일관된 화두로 삼고 있는 <광야에서>란 명제는 자신의 회화에 대한 은유로 읽혀진다. 캔버스에 돌가루를 바르고 그 위에 가해지는 붓질은 결과적으로 어떤 구체적인 형태를 탄생시키게 마련이다. 

 구약성서의 출애급기에 나오는 ‘광야’는 이스라엘 민족의 고난에 찬 역사에 대한 상징으로 간주되거니와, 그 거친 광야를 표상하듯이 돌가루의 투박한 질감은 아스라한 역사성에 대한 은유일 터이다. 화면의 구조적 측면에서 볼 때 덧 씌워지는 물감의 층들은 시간의 켜로 인식된다. 겹쳐지고 또 겹쳐진다는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먼지가 쌓이듯이 시간의 추이를 상정할 때 가능한 것이며, 그 결과 시간의 담지체로서의 신체는 필연적으로 어떤 형(形)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색은 일종의 부가적 요소로서 그러한 형태 속으로 잠입해 들어가거나 때로는 그 위에 얹혀진다. 

   검정, 회색, 흰색 등 무채색은 금욕적이다. 조문자는 검정에서 흰색에 이르는 다양한 무채색의 뉘앙스에 주목하여 붓질을 하거나 때로는 막대기나 넓적한 판재를 이용하여 물감을 밀어내기도 한다. 그의 작품은 호흡을 통한 긴장과 이완의 연속체이며, 마음속에 흐르는 온갖 상념과 정염을 풀어내는 심리적 투기장이다. 그 기나 긴 싸움에서 승자란 없다. 어떤 의미에서 예술가란 끊임없이 언덕 위로 바위를 올려야하는 시지푸스의 운명을 타고난 자이기 때문이다. 조문자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광야에서>란 일관된 명제로 10여 년에 걸친 세월을 마치 수행을 하듯 이끌어 온 그의 작가적 태도는 완성을 위한 분투라기보다는 차라리 지속을 위한 것에 가깝다. 검정이 지닌 절제와 침묵, 절대고독, 그리고 삼라만상을 빨아들여 무화(無化)시키는 색의(色意)는 조문자의 작품을 통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그것은 애잔하게 슬픈 공간이다.   



이정지 : 원초적 행위의 흔적들 

     

   70년대 이후 단색화를 일관되게 추구해 온 이정지는 평면과 행위의 문제를 화두로 삼아 작업을 전개해 오고 있다. 그 기간이 물경 40년이다. 70년대에는 오랜 기간 동안 갈색의 물감을 사용하였으나 그 이후 녹색, 회색, 검정 등 다양한 색을 구사해 왔다. 그는 나이프와 로울러를 사용하여 마치 고색창연한 비문(碑文)이나 오랜 세월에 걸쳐 마모된 벽돌담과 같은 느낌을 주는 화면을 창출한다.  

   근본적인 화면 구조는 격자와 마치 비문에서 보는 것처럼 세로로 일정한 간격을 지닌 칸이다. 그는 그 위에 물감을 칠한 다음 페인팅 나이프를 사용하여 빠른 필치로 서예를 연상시키는 ‘짓거리’를 펼쳐나간다. 그 ‘짓거리’는 일종의 퍼포먼스에 가까운 것인데, 순간적인 감흥에 따라 즉흥적으로 이루어진다. 그의 검정색조의 근작들에서는 구체적인 한자(漢字)가 보이기도 하는데, 그것은 완성된 것이라기보다는 대부분 일부가 생략되거나 누락돼 있어서  전통적인 서체의 범주로는 볼 수가 없다. 그가 구사하는 한자들은 원초적인 행위의 흔적들 속에 섞여 있다. 그런데 그가 구사하는 한자들은 원초적인 행위의 흔적들과 혼재하는 가운데 그의 작업의 근원을 동양의 오랜 전통 속으로 끌어올린다. 절제와 수행을 의미하는 검정색을 바탕으로 한 그의 작업은 한자나 원초적인 짓거리, 그리고 비문 특유의 구조에 힘입어 다소 상투적인 표현을 빌리면, 전통의 현대화를 이루고 있다. 이는 그의 작업이 지닌 문화적 정체성을 말해주는 것으로 그의 작업을 규정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이정지의 작업은 색의 변주이면서 동시에 형(形)의 변주이다. 40년간에 걸친 일관된 제작태도, 즉 단색화에 대해 뚜렷한 신념을 지닌 그는 오랜 세월의 수행에 상응하는 예술적 성과를 얻고 있다. 물감을 칠하고 긋고, 다시 칠하고 긋고 하는 반복적인 행위를 거쳐 화면은 순간의 지속을 통해 숙성된 시간의 겹을 현재화한다. 긋고 칠하는 순간의 반복은 행위의 흔적으로서의 형(形)을 매 순간 현재화하는 동시에 결과적으로는 한 화면 안에 현존케 하는 것이다. 



유영희 : 놀이로서의 그림 


   유영희의 작업은 그리는 행위를 통한 놀이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비단 회화뿐만 아니라 판화와 입체작품을 통해서도 발현되는 그의 이러한 작업의 특징은 밝고 거침없는 특유의 화풍을 낳았다. 캔버스나 한지를 주재료로 사용하는 그는 우선 화면을 격자형으로 구획하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격자형이긴 하나 서구의 미니멀 작가들의 작품처럼 엄격한 작도법 에 의한 것이 아니라, 손으로 직접 드로잉을 해서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격자형으로 구획된 공간에 베풀어지는 드로잉은 매우 자유로운 느낌을 준다. 아크릴 물감과 오일 파스텔을 사용하여 프리 드로잉을 하거나 때로는 꽃과 나비와 같은 자연물을 그리기도 한다. 그는 ‘색채의 드로잉’ 이것이 나의 회화 행위의 근본이다‘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서 색채는 매우 중요한 요소에 속한다. 

   선긋기와 사물의 형태를 그리는 일은 한 화면 내에서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는 구상적 요소와 추상적 요소가 혼재돼 있다. 작품의 구조는 격자를 이루는 수직선과 수평선의 교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안에서 자유로운 제작이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그는 스스로의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그는 수평은 무한과 감성, 외적인 것의 담지체요, 수직은 수평을 지탱하는 안정, 감정, 내적인 요소의 총화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볼 때, 통상적인 정의에 따라 수평은 시간을 의미하는 x축, 수직은 공간을 의미하는 y축으로 구분해 볼 수도 있다. 어제가 아닌 지금, 저기가 아닌 여기서 대상으로서의 사물을 만나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시간과 장소가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자명한 사실에 입각해 있기 때문이다. 유영희는 이 두 요소의 만남을 가리켜 ‘흐름(시간성)’과 ‘존재의식(장소성)이라는 말로 풀이한다. 이 두 요소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그 자신의 말처럼 우주 안에 존재하길 원하는 지도 모른다. 

        


황주리 : 도시인의 우울한 자화상


   황주리는 도시를 주제로 다루는 작가이다. 도시인의 평범한 일상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 골프를 치는 사람들, 데이트 하는 연인들 등이 화면에 나타난다. 그의 작품의 특징은 마치 옵니버스 영화처럼 한 화면 안에 여러 장면이 혼재하는 것이다. 가령 해바라기 꽃판 속에 사람들의 일상 풍경이 담기는 식이다. 그런데 화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큰 해바라기 꽃 뒤로는 사람의 얼굴이 있다. 그 아래 넥타이를 맨 남자의 상체가 있고, 해바라기의 줄기는 남자의 셔츠 속에 들어가 있다. 이 이중의 장치들은 황주리 작품의 의미를 해독하는 암호가 필요함을 말해주는 증표이다. 그의 작품은 알레고리의 덩어리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풍부한 비의(秘意)를 간직하고 있다. 거울을 보는 여인, 꽃을 입에 문 비둘기 등등 한 화면에 다양한 풍경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황주리의 그림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의 동작이나 사물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때 텍스트에 대한 해석은 종종 빗나갈 때가 있다. 가령, 손거울을 들여다보는 여성을 보고 단순히 화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행위를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황주리의 그림은 구상적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얼핏 알기 쉬운 것 같아 보여도 감상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다양한 상징과 알레고리, 은유를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형상들의 겹침과 단순화, 의인화 등은 올바른 해독(解讀)을 가로막는 장치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그림을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암호집이 필요한 지도 모른다. 

황주리의 알기 쉬운 그림은 거꾸로 우리의 일상적 삶이 실은 모호함과 이해 불가능한 것들 의 집합장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그의 그림은 잘만 감상한다면 인생의 훌륭한 지침서이자 교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장혜용 : 일상이 숨 쉬는 이상향의 세계  


   화려한 오방색의 세계에서 변신을 거듭하여 오늘의 화풍에 이른 것이 장혜용의 작업이다. 90년대 초반에 그는 적, 청, 황, 흑, 백 등 오방색을 통해 무속적이며 토속적인 향취를 물씬 풍기는 대담한 운필을 구사했다. 호방한 필의 구사에 따른 기운생동하는 분위기는 그를 채색화의 주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일조했던 것이다. 그런 그의 작품이 언제부터인지 일련의 변화과정을 거치면서 점차 양식화내지는 정형화되기 시작했다. 검정색의 굵은 윤곽선이 등장하면서 화면은 닫힌 구조를 지니기 시작했고, 반면에 소재는 인간과 자연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상향과 가정의 안락 쪽으로 옮겨갔다. 

   장혜용의 화사한 작품들은 그의 연륜이 말해주듯 삶의 관조와 기쁨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사람들, 사물들, 꽃들, 새들 산들 등 모든 것이 정돈된 상태로 한 화면에 어우러지고 있으며, 그것은 무질서를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태도를 보여주는 듯하다. 근작을 관류하는 기본적인 색채감은 오방색이 주조를 이루었던 과거의 작품에 연결돼 있으나 전반적인 느낌은 매우 세련돼 보인다. 이러한 변화를 추동한 요인은 과연 무엇일까? 

   장혜용은 아르카디아로 불리는 일종의 낙원 혹은 이상향에 작의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 고단한 현실을 잊기 위한 도피처이거나 현실적으로는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예술이 지닌 고유한 기능 가운데 하나이다. 그의 작품들 중 적잖은 수가 마티스의 <삶의 기쁨>에 나타난 것과 같은 원형의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지도 모른다. 둥글게 둘러앉은 원형의 인물 배치는 ‘아르카디아’적 이상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녹음방초가 우거진 숲속에서 한 가족이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는 장면은 특히 가족을 둘러싼 일상적 모습이 빈번히 등장하는 장혜용의 근작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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