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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잔치’로서 광주 국제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의 존재 의의

윤진섭

‘빛의 잔치’로서 광주 국제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의 존재 의의


윤진섭(국제미술평론가협회 부회장/호남대 교수)             



한반도의 남쪽에 위치한 광주는 예향으로 일컬어진다. 맛깔스런 음식과 정자, 서화로 유명한 곳, 광주는 이름 그대로 ‘빛고을(光州)’이다. 무등산 너머로 솟아오르는 태양이 찬란한 황금빛을 뿜어내는 곳, 광주는 그래서 현대화된 지금 빛과 관련된 광산업을 시책사업으로 펼쳐나가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광주는 현대사에서 민주화의 성지로 기록된 이면에 담겨있는 가슴 아픈 상처를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광주에서는 그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각종 문화행사들이 연중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광주비엔날레와 광주 국제 미디어아트 페스티벌은 미술의 대표적인 국제행사이다. 




2012년에 창설된 광주 국제 미디어아트 페스티벌은 빛고을 광주의 문화적 정체성을 대변하는 말 그대로 ‘빛의 잔치’이다. 광주에서 발원한 빛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 민주화의 성지 광주를 소개하는 전령사가 되는 신명난 큰 잔치인 것이다. 

 제2회 광주 국제 미디어아트 페스티벌(2013. 10. 28-10. 29:예술감독 이이남)은 1회에 이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임으로써 ‘시민이 함께 하는 문화축제’, ‘대중 참여의 미디어 아트’를 정착시키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I love Media Art’라는 주제가 의미하듯이, 본래 실험적이며 전위적인 성격을 지닌 미디어아트가 발달된 테크놀로지 매체를 통해 대중친화적인 예술로 부각된 것 또한 이번 행사가 거둔 성과 가운데 하나이다. 



광주시의 심장부 격인 옛 전남도청 건물을 비롯하여 5.18민주평화광장 일대에서 벌어진 이번 행사는 상호작용적(interactive) 특성을 지닌 미디어아트의 다양한 매체와 기술을 활용하여 시민이 보고 즐길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직접 작품 제작에 참여함으로써 창작의 기쁨을 함께 누리는 예술의 진정한 민주화를 구현했다는 데 더욱 의의가 크다. 이는 작가가 작업실에서 고독하게 작품을 제작한 후 전시를 통해 관객들의 감상에 이르게 하는 전형적인 아날로그 방식의 예술행위에서 벗어나, 관객을 창작의 필수적인 요소로 간주하는 ‘digital interactive media art’의 개가임에 분명해 보인다. 이미 1969년에 롤랑 바르트가 말한 ‘저자의 죽음’이 새로운 방식의 디지털 환경에서 만개한 듯 신선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 환경에서의 상호작용적 미디어 아트는 관객의 존재가 없이는 애초부터 작품이 성립될 수 없거니와, 이번 행사에 이 상호작용적 미디어 아트 작품이 다수 출품된 것은 이러한 문화적 패러다임의 일대 전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전형적인 예이다. 예컨대 독일의 V/R Urban이 출품한 <SMSlingshot>는 관객이 모바일 폰에 눈자를 입력하고 색상을 선택한 후 아시아문화마루 건물의 외벽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을 향해 새총을 쏘면 입력한 문자가 선택한 색상을 지닌 터진 풍선의 형태로 나타나는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관객의 참여가 없이는 작품의 완성이 어려운, 다분히 관객참여적인 작업이다. 


스페인 출신의 루모팀(Lumo Team) 역시 테트리스 게임을 기반으로 관객참여를 시도한 작품을 선보여 시민들의 호응을 받았다. 옛 전남도청 광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앞에서 2인 1조가 된 관객들이 직접 몸을 움직여 테트리스 게임을 벌인 것이다. ‘작품에 손대지 마시오’라는 상투적인 문구가 적힌 아날로그 스타일의 전시 형태를 부정하고, 관객이 직접 몸으로 참여함으로써 예술을 향수하게 하는 디지털 미디어 아트의 새로운 예술 형식은 예술의 새 지평을 열기에 이른 것이다. 시민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선보인 정운학의 도청분수대를 미디어 환경으로 바꾼 대형 설치 작업은 시민들이 제공한 사진과 글을 활용하여 작품화했다는 점에서 관객이 주인이 되는 미디어 작품의 한 예이다. 김태윤의 <혼불>은 전형적인 관객참여형 작업으로서 관객 참여에 비례하여 작품이 완성돼 가는 ‘과정(process)으로서의 미디어 아트’의 한 유형을 보여주었다. 즉, 관객이 자석이 부착된 작은 창(dart)을 대형 하트 모양의 구조물에 던지면 불이 들어오면서 하나의 점을 이루는 것이다. 


전일빌딩을 비롯한 5.18민주평화광장 주변의 고층건물 벽에 투사된 미디어 파사드는 광장 일대를 환상적인 빛으로 물들인 행사의 하이라이트이다. 건물의 외벽 전체를 스크린 삼아 미디어 영상 작품을 투사하는 미디어 파사드는 도시의 특수한 환경을 예술의 문맥 속으로 끌어들이는 미디어 아트의 전형적인 실행의 예이다. 초대형 이미지로 박진감과 함께 일종의 숭고미를 느끼게 하는 미디어 파사드의 상영작품들은 무엇보다도 크기로 인해 시선을 압도한다. 현대 테크놀로지의 신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영상장비의 개발은 도시환경을 급속히 바꿔놓고 있는데, 이번 행사의 미디어 파사드는 다양한 내용과 첨단의 기법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는 점에서 중요한 성과 가운데 하나이다. 



예로부터 광주는 문화예술이 융성한 곳이다. 특히 영화산업은 일찍부터 광주에 터를 잡았다. 기록에 의하면 1910년대 후반에 일본인 후지가와 타다요시(藤川忠義)에 의해 설립된 광주좌(光州座)를 필두로 1935년 동구 충장로 5가 62번지에 개관한 광주극장이 민족자본에 의해 건립된 광주 최초의 극장이다. 이번 행사 가운데 하나인 시네마 미디어 아트는 현존하는 극장 중 가장 오래된 이곳을 갤러리 공간으로 활용, 싱글채널 비디오와 예술영화, 독립영화를 상영한 프로그램이다. 영화가 지닌 대중성을 상기해 볼 때 이러한 시도는 미디어 아트에 대한 대중의 친밀감을 북돋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이미 LED를 활용한 각종 광고와 간판, 안내판 등이 일상 속에 침투하고 있는 현실을 놓고 볼 때 미디어 아트의 존재 당위성은 부정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미디어 아트는 회화나 조각과 같은 대표적인 아날로그 매체가 지닌 한계를 벗어나 생활공간 속에 존재하며, 빛이 조성하는 환상적인 환경을 통해 대중의 시선을 빨아들인다. 그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발달된 인터랙티브 테크놀로지를 활용하여 대중의 참여를 유도하는 가운데 새로운 형태의 미적 체험을 놓고 있다. 이처럼 부정할 수 없는 예술의 진화는 왜 광주 국제 미디어아트 페스티벌이 연례적인 국제행사로 발돋움할  수밖에 없는가 하는 현실적 당위를 뒷받침해 준다. 아마도 빛고을 광주가  시의 정체성과 맞물려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문화예술 행사가 있다면, 광주비엔날레와 함께 광주 국제 미디어아트 페스티벌일 것이다. 특히 산업과 예술의 융합을 놓고 본다면 시가 주력산업으로 추진하는 광산업과 예술 간의 연계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안인 것이며,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예산이 투입돼 명실 공히 세계적인 ‘빛의 축제’로 키워나가야 한다는 명분이 도출된다. 


광주CGI센터를 비롯하여 롯데갤리리, 신세계갤러리, 무등현대미술관, 갤러리리채, 아트타운갤러리, 원갤러리 등 시내에 산재한 전시공간에서 열린 미디어아트 특별전은 광주를 비롯한 국내 작가들이 참여하여 미디어 아트를 대중 속으로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제 미디어 아트의 기획자들은 특유의 첨단 기법에서 오는 ‘낯설음(소외효과)’에서 벗어나 예술에 대한 대중의 자발적 향수 욕구를 유발하는 적극적인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특히 전형적인 다중적 공간인 백화점에서 미디어 아트를 전시하는 행위는 예술의 일상화 또는 예술의 민주화라는 측면에서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쇼핑과 함께 벌어지는 예술작품 감상은 부담감 없이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문턱이 없는’ 예술의 전형이다. 


광주 국제 미디어아트 아트 페스티벌은 이제 3회를 앞두고 있다. 무릇 모든 행사는 3회가 고비라는 말이 있듯이, 금년 행사가 보다 좋은 아이디어와 뛰어난 기획력으로 무장하여 세계 속의 미디어 아트 축제로 도약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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