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정영한 / 바다와 오브제 이미지의 충돌

김종근

최근 우리 현대미술에서 주요한 흐름 중에 하나는 극사실주의 화풍에 대한 뜨거운 열풍이다. 화단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그 하이퍼 리얼리즘의 흐름 속에서 일관되게 바다의 풍경 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작가가 정영한 이다. 주목 받고 있는 극사실 화풍의 작가군에서 크게 비켜나 있지 않은 그의 작품세계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극사실적 경향을 취한다는 것과 그 극사실적 풍경에 더하여 오브제를 결합 시킨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볼것은 본질적으로 바다와 오브제와의 만남이 잘 맞아 떨어지는가 라는 점이다. 즉 그가 의도하는 컨셉중에 하나인 바다와 꽃의 이미지가 완벽하게 결합 되는가 이다. 정영한에게 있어 사실 그 풍경과 오브제가 어떤 특별한 필연성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는 않아보인다. 그의 작품세계에 키워드로 요약되는 이 물리적인 풍경과 오브제와의 만남은 서로 다른 대상들이 만나는 신선한 충돌로 회화가 주는 상상력의 즐거움을 주고 있음은 분명하다. 예를 들면 서로 다른 이미지들이 상충하면서 우리들에게 아주 낯선 쾌감과 시각적 충격을 이끌어 낸다는 것이다.

그의 풍경은 실제 바다로 착각할 만큼의 극사실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 기법은 일종의 그림상의 트릭이다. 프랑스어 가운데에는 눈속임이란 트롱프 뢰이유라는 단어가 있다. 바로 그림의 처음 시작은 눈속임에서 출발하며 그림이란 것이 원래 시각적인 눈속임이라는 것이다. 그의 어느 작품을 보더라도 주요 배경에 바다는 매우 낭만적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그 위에는 언제나 커다란 꽃이 놓여있다. 이러한 컨셉은 마치 1958년 달리가 그린 <명상적인 장미>의 작품 구성을 떠 올릴 만큼 깊은 연관성을 보여준다. 그의 회화가 초현실주의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달리가 푸른 하늘에 붉은 장미를 띄워 놓아 낯설고 극적인 대비를 통해 시각적 놀라움을 주었다면, 정영한은 바다위에 꽃과 꽃잎을 설정 배치한다. 그러고 보면 작가는 평면 위에 오브제를 끌어들여 어떤 관계로 연결,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 낸다. 이 물리적이고 의도적인 충돌적 만남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그의 회화의 목적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비록 눈속임이란 것이 실재가 아닌 환영의 세계를 보여 주지만 그것조차도 눈에 보이는 실재가 어쩌면 허구일지 모른다는 알레고리적인 개념을 그는 담고 있다.

그에게 그림의 목적은 바다를 똑같이 그리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이입시키는 추상화가처럼 바다와 꽃이라는 충돌적 세계를 드러낼 뿐이다. 그러한 세계를 더욱 설득력 있게 하기 위하여 그는 꽃을 가져다 놓지만 실제로 그의 화폭에서 꽃은 그다지 큰 상징성이나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것은 이미지의 가상화 일뿐이다. 사람도 사물도 없는 텅 빈 화면에 단지 바다 이미지가 난데없이 등장하는 거대한 꽃과 꽃잎, 그는 이것을 자연에 대한 실재 이미지보다 체험하는 자연을 제시 하는 것이다. 또한 돌발 이미지로 바다풍경의 허공에 삽입된 거대한 꽃들은 화면을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 공간으로 옮겨가게 한다.
궁극적으로 그는 회화를 주, 객관적인 시각에 국한되지 않고 자유로운 연상 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각적 유희로 이미지를 탈출시키고자하는 목적을 드러낸다. 반면에 각기 다른 형태의 색깔과 이미지의 꽃들은 사진처럼 정밀하게 그려진 바다와 충돌 되어 또 다른 풍경을 위해 충실하게 복무한다. 원래 꽃은 화분이나 정원 혹은 자연 속에 놓이는 대상이다. 꽃이 하늘에 혹은 바다 위에 떠 있어야할 오브제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곳에 놓여 있어야 할 꽃을 그는 바다공간에 끌어다 놓는다. 그것이 바로 데페이즈망 기법이다.

전위나 전치로 물체나 영상을 그것이 놓여있던 본래의 배경에서 떼어내어 그 사물의 속성과는 전혀 관련 없는 엉뚱한 장소에 놓음으로써, 심리적 혹은 시각적 충격을 주는 기법인것이다. 즉 위치를 바꾸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면서 그리하여 마음 속 깊이 잠재되어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해방시키는 방법이다. 작가는 이 데페이즈망의 형식으로 바로 파도와 꽃을 초현실적으로 배치한 우리시대 신화 연작 시리즈를 탄생 시킨것이다. 물론 그의 회화에서 형상은 그리기 보다는 화면에 이미지화, 또는 프린트화 시킨다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처럼 화면은 기계적 수법에 의해 표면이 단정하다. 여기에서 그는 붓 자국을 의도적으로 드러내지 않음으로 절제된 감정으로 대상을 관조하고 있음도 암시적으로 드러낸다.

정영한의 이 회화적 변용과 시도는 초기 건물이나 특정한 이미지를 병치 시키는 것에서 시작 되어 점차 도시 풍경을 거쳐 바다 위에 꽃을 놓는 스타일로 진행 되어 왔다. 화면처럼 그의 전개방식은 구성이나 포맷에서 단순하게 완결 짓는다. 동어 반복적 이미지의 바다로 그는 보고 싶은 대상만을 취한다는 의미에서 멀티비전과 다중채널의 방식을 끌어들이기도 하지만 집요한 표현으로 회화적 감성과 사진의 경계를 아우른다.

사실 현대회화가 하이퍼 리얼리즘의 차원을 넘어서기 위한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회화는 불투명 하며 종래의 회화에서 사용되던 일루전과 가상성은 회화의 상상력 속에서 더 이상의 새로운 비전을 주고 있지 못하다. 르네 마그리뜨나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보였던 양식들이 더 이상 현대미술에서 새롭게 등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 속에 회화성은 여전히 현대미술, 하이퍼 미술에 대한 포스트 모던 쪽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 할 가치가 있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