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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락 / 사과의 진실 그리고 눈속임

김종근

윤병락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를 일컬어 사과 화가라 부른다. 왜냐하면 최근 그의 작품에 주요한 모티브가 사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사과는 폴 세잔느가 추구했던 사과와는 다르다. 세잔느가 입체적 표현을 위한 대상으로서 사과를 화면에 끌어 들였다면, 윤병락은 자연적인 욕망의 표현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과일을 테마로 하는 배경에는 고향 영천에서 자란 기억과 농사를 지으면서 얻었던 소중한 기억에서 시작 된다.
'농작물을 생산하는 부모님의 소중한 땀방울을 나만의 이미지로 옮겨놓고 싶었다.'고 그는 고백했다.
그런 그에게 사과나 과일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화폭 속으로 들어왔다.
게다가 그는 어릴 적부터 사과가 의외의 작품 소재로 이상적이라고 판단 한 듯하다.
그는 이런 사과를 통하여 양감과 질감을 완벽하게 그리거나 드러내고자 했다.
초기 작업들이 철저하게 회화가 요구하는 충실한 정물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구도 또한 변화무쌍하다. 2003년을 전후 해 그는 사과나 감 등을 한결같이 위에서 내려다 본 시점으로 제작했다.
여기까지 그는 아주 사과를 잘 그리는 작가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이러한 딜레마와 매너리즘을 이번 전시에서 성공적으로 탈피하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리고자 하는 모티브를 하나의 명백한 오브제로 파악하고 그것을 확대 하여 그린다는 것이다.
즉 윤병락의 시점과 테크닉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그 시각은 아주 일상적인 사과에서 특별한 사과로 전환 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빨갛게 잘 익은 사과는 이제 더 이상 화면 속에 닫혀있는 하나의 사과가 아니라 마치 작품 속에 실제 오브제처럼 존재하거나 등장한다.
이제 그의 사과는 진짜 사과보다 더 사과처럼 질감이 살아 있고, 실제 복숭아 보다 더 복숭아 적이다.
그가 보여준 빨간 사과에서 부터 푸른 사과 , 쪼개진 사과, 수박, 그리고 잡지 위에 오렌지 까지 그는 모든 오브제의 위치를 다시 재설정한다.
예를 들면 잡지 위에 오렌지는 위에서 내려다 본 풍경이지만 그림자는 앞으로 길게 깔려있다. 시점도 착시현상을 일으킬 정도로 이중적인 인상을 던져준다.
그리하여 그림자는 위에서 직접 내려다보는 실재감과 일류 전을 불러일으킨다.
사과를 화폭에 담아내기 시작했던 2003년 말.
이전 작업들을 보자 .접시 위에 놓인 나뭇가지, 대추, 감 등 정물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단일한 오브제로의 클로즈업을 시도하고 평범한 정물의 풍경과 구성에서 벗어나 보다 리얼리티한 오브제로의 이행에 집중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지난 오월 홍콩의 크리스티 아시안 컨템포러리 옥션에서 4억 6천만 원에 거래 된 복숭아는 그러한 복숭아 보다 더 복숭아적인 것에 대한 하나의 평가이다.
유년시절의 추억을 극 사실주의 테크닉의 언어로 풀어나간 이면에는 캔버스 대신 한지를 쓰는 그의 선택도 무시 할 수 없다.
그는 한지에 가장 리얼리티한 사과의 질감을 획득하기 위해 나무판 위에 삼합지 이상의 두꺼운 한지를 덧붙이고 그 위에 다시 유화물감으로 수차례 덧칠, 최종적으로 완성한다.
그의 작업이 다른 작가와 구별 되는 이유는 사과의 표현과 위치, 궤짝의 부감법적 표현과 다양한 구도이다.
그 뿐만 아니라 수건. 궤짝 한쪽에 걸쳐져 있는 하얀 수건, 이러한 소품들은 노동의 땀과 노동의 신성함을 은밀하게 보여준다. 그가 고향에서 포도 농사를 짓고 있는 아버지, 수입농산물에 밀려 힘겨워하는 농부의 모습을 직접 보면서 이를 조형적으로 나타내고 싶었다는 자전적 독백을 떠 올리는 것이다.
이제 그는 가을향기라는 주제로 상자에 담긴 과일들로 정물화의 새로운 차원을 이룩하였다.
이것은 구상주의 미술의 씨앗이 될 수 있으며 또 다른 리얼리즘과 구상미술의 패러다임에 매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의 그림이 단순히 사실주의 계열의 작가로 떨어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대상을 하나의 오브제로 인식하는 시각, 사과상자의 나뭇결이나 못 자국, 그림자, 잡지의 표지그림까지 재현의 극한점을 지향하면서 단순미의 지평을 열어 보이는 윤병락은 모더니스트로서의 몫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더욱이 고가구나 골동품 등 앤틱 분위기의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는 것은 그의 작업이 ‘따뜻한 감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휴매니티한 예술가라는 점을 더욱 명확하게 드러내는 증거이기도 하다.

출처 | 월간 아트인컬쳐 2007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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