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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춘자 / 정통성을 지닌 정직한 누드

김종근

미술의 역사 속에서 ‘미적인 대상으로서의 누드’는 중세 때 잠시 제약을 받기는 하였지만 그리스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예술가들에게 가장 오랫동안 사랑 받아온 주제였다. 벌거벗은 여체의 그림이란 이유로 곧잘 천박한 에로티시즘으로 폄하되었지만, 누가 뭐래도 누드라는 테마는 생명력과 아름다움의 절대적 대상임이 틀림없다. 서양에 비해 동양 쪽에서는 대부분의 그림이 춘화라는 양식으로 남아있어 진정한 의미에서 누드화는 그리 풍요롭지 못하고 궁핍하다.

이런 한국화의 열악한 전통 속에서 20여년 이상 누드화를 그려온 조춘자는 이 사실만으로 주목 받아 마땅하다. 최근 그에게 주어진 월전미술상이나 춘추미술상은 그런 의미에서 채색과 누드화의 예술적 평가에 있어 하나의 상징적 평가의 의미를 가진다.

무엇보다 채색의 흐름으로 볼 때 그의 작업이 논의 되어야 하는 이유는 천경자 이후 한국 채색화의 전통을 누드로 정통적으로 잇고 있다는 점이다. 주제면에서 볼 때 조춘자의 전체적인 테마는 누드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특히 전신상이나 군상 혹은 좌상 등으로 직선과 곡선이 화폭 속에서 적절히 이루어져 누드화 특성을 풍부하게 살려내고 있다.

먼저 그의 누드의 특성은 색채의 대비에서 회화의 강렬한 대조적 효과를 보여준다. 또한 여체의 단정한 이미지와 포즈의 다양한 구성이 여체 묘사의 정직함과 탄탄함을 받쳐준다.




특히 누드의 색채 표현의 아름다움은 조춘자 회화의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쪽물을 들인 것처럼 은은하고 우아한 색채가 천과 실루엣으로 가꾸어진 여체의 선들과 만나 채색화 누드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전통적 미인을 섬세하고 깔끔한 선으로 묘사하고 있는 그의 누드는 노랑색과 검정, 빨강의 강렬한 색상으로 서양의 누드화가 가질 수 없는 단아함과 깊은 누드화의 지평을 열어 보인다. 조춘자의 누드는 조형적인 측면에서 단순한 구성으로 보이지만 간결한 선묘풍의 비례와 조화가 화면전체에 균형감각을 주고 있다.

물론 기본적으로 그의 누드는 청초한 감정을 보여주는 편이지 미의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정적인 자세를 보여주는 모델들은 사실적인 형태로 여성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는 화려한 붓놀림 보다는 담백하고 미련하리만큼 절제된 색채로 일관된 흐름의 작업태도를 가지고 있다. 다소곳한 여인의 표정, 고개를 숙이거나 무표정한 얼굴에 가느다랗고 긴 눈, 치켜 올린 눈썹에 달걀형 이 그의 누드 인물화에 특징적인 얼굴모습이다. 앞가슴에 손을 다소곳이 얹은 모습, 치마 자락을 여미고 머리를 묶은 얼굴에서 그가 추구하는 침묵적인 여인의 내면을 응시하는 작가의 의식을 발견 한다.

누드를 즐겨 그린 르느아르는 “가슴이나 허리를 애무하고 싶어지는 충동을 느끼는 그림을 그리려 노력”했는데 오히려 조춘자는 담백하고 인간 삶으로서의 순수한 누드화를 위해 노력한다. 그녀의 누드는 분 냄새를 풍기는 에로틱한 표정은 거의 없어 보인다. 대신 여인들이 가슴에 담아두고 있는 순결하고 단아함이 풍기는 누드를 그린다.

최근 그는 여전히 인물중심의 누드를 다루면서, 이전에 그가 보여주었던 전통적인 호분과 석채를 섞어가며 전통적인 화법의 계승을 이어가고 있다. 이것으로 보면 조춘자는 응정취상(凝情取象)의 이념으로 “마음을 집중하여 형상을 취하는 힘”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즉 화가가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집중하여 그가 그리고자 하는 인물형상 속으로 옮겨 쏟아 넣어야 생기가 살아 움직인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의 누드에서 좀 더 특별한 시각으로 관심 있게 봐야할 부분이 있다.
그것은 단신상이나 군상에서 보이는 독특한 눈빛의 시선이다. 그의 시선은 작고 가느다란 눈에 일정한 방향으로 시선을 내려놓고 있다. 예를 들면 아래로 향하거나 때로는 무심한 듯 무표정한 시선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들의 방향은 대부분이 아래로 향하고 있다.

그 시선은 두말할 여지없이 결국 작가의 감정과 내면의 의식을 드러내는 의미를 가진다. 아마도 그러한 시선의 응집력과 결심이 그가 누드만을 고집하는 강렬한 원인과 배경이 되고 있다.

이러한 표현들은 그가 단순한 누드의 묘사로써 여체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닫혀진 의식을 반영하는 대상으로 누드임이 명확해진다. 이것은 평론가 김영순이 지적한 <고독하게 소외된 인간상의 반영>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 속에 여인들의 표정들은 이러한 것을 기인한다.

케네드 클라크는 옷을 벗었다는 상태의 단순한 알몸은 보는 사람에게 당혹감을 주지만, <누드>라는 낱말은 교양 있게 쓰일 경우 균형 잡힌 육체의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고 했다. 조춘자의 누드는 기본적으로 건강하고 신선한 여체미를 가진 대상으로 표현된다. 그런 점에서 통속적 사실주의를 넘어선 전통적 미인의 표현으로 혜원의 여인 이미지는 아니지만 그만의 고집과 세계를 보여주는 누드화로 평가 된다.

무엇보다 그의 강점은 주제에 대한 끈기 있게 밀고 가는 집요한 추진력이다. 소재표현에 있어 침묵적인 인상으로 돋보이는 그의 누드는 더 이상 누드가 벗은 몸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전통적인 소재 이상의 누드로 발전하고 있다. 몸을 부끄러워하고 감추려는 구태에서 벗어나 인간 육체의 근원적인 아름다움과 내면세계를 담아내는 대상으로서 누드화 , 그런 정통성을 조춘자가 잇고 있는 것이다. 전통을 계승하고, 쉬운 길을 마다하고 어렵고 힘든 채색화의 기법을 고집하는 예술가 그들이 아름답고 존경스러운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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