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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누가 울어’

김종근





‘누가 울어’



프리다 카를로의 티셔츠를 즐겨 입는 천경자는 한국화의 불꽃 같은 작가다. 그래서 70년대 작품에서부터 대표적인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등 200여점이 전시되는 갤러리 현대(3월8일~4월2일)의 회고전은 생전에 다시 못볼 것 같아 우리를 가슴 뭉클하게 한다.

그의 오랜 친구였던 소설가 박경리는 ‘천경자’라는 시에서 “가까이 갈 수도 없고 멀리할 수도 없다. …꿈은 화폭에 있고 시름은 담배에 있고 용기 있는 자유주의자, 정직한 생애 그러나 그는 좀 고약한 예술가다”라고 노래했다.

그렇다. 시처럼 천경자는 원색처럼 화려하게, 그러나 쓸쓸하게 인생과 예술을 짊어진 숙명적인 예술가다. 그를 말한다는 것은 비장한 미인도의 아픔과 상처를 같이한다.

“내 작품은 내 혼이 담겨 있는 핏줄이나 다름없어요. 자기 자식인지 아닌지 모르는 부모가 어디 있어요? 나는 결코 그 그림을 그린 적이 없습니다”라고 절규하며 절필 선언을 했던 그는 ‘생태’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등 대표작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고 뉴욕으로 훌쩍 떠났다. 무엇보다 그림을 목숨보다 더 귀하게 생각했고, 그래서 그림을 팔 때마다 꼭 자식을 팔아먹는 부모의 심정이라며 쉽게 넘겨주지 않으려 눈시울을 뜨겁게 한 다시 없는 소중한 작가였다.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목숨도 없었을 것이다”라고 했지만 그가 처음부터 되고자 했던 것은 연극배우. 그는 전남 고흥 아름다운 시골마을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외할아버지 밑에서 천자문을 배우고, 가끔 읽어 주는 소설에 슬픈 대목이 나오면 무릎을 베고 엉엉 소리내어 울 정도로 감수성이 남달랐던 본명 천옥자.

꽃다운 나이 16세, 일본의 도쿄여자미술대학에 유학하며 당시 입체파와 야수파가 풍미하던 일본 화단에서 섬세하고 고운 채색화의 일본화풍에 매료당했다. 그러나 결혼생활은 그 다음의 결혼도 길지도, 순탄하지도 못했다. 그녀는 여자로서 35마리의 독사가 한데 엉켜 우글거리는 뱀을 그려 화단에 충격을 주었다.

“나는 무섭고 징그러워 뱀을 참 싫어한다. 그러나 가난, 동생의 죽음, 불안 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친 듯이 뱀을 그렸다. 징그러워 몸서리치며 뱀집 앞에서 스케치를 했고, 그러면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했다.

이 ‘누가 울어’는 80년대 후반 65세인 그가 미국 중서부 여행을 마치면서 ‘누가 울어’ 시리즈로 제작한 것 중 하나다. 드로잉과 누드작품도 많이 했으나 섹시함이나 에로틱한 감성보다는 마치 자신의 자화상처럼 고독과 우울한 감성을 보여준다.

배경은 그가 인상깊게 보았던 아프리카. 그는 고갱이 머물렀던 타이티는 물론 멕시코·페루 등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영화 속 현장도 잊지 않았다. 이 그림은 관능적인 여인보다는 우수에 젖은 채 검은 카펫 위에서 혹독했던 지난 삶을 돌아보는 회고적인 이미지가 물씬 풍긴다.

운명의 상징처럼 즐겨 등장하는 트럼프, 하트를 물고 있는 강아지, 화사했던 시절의 꽃과 모자와 아프리카 풍경이 그의 지나간 사랑이 하트 속에 물려진 채 상하로 나누어진 누드작품 중 백미다.

스포츠칸 2006.3.6 │미술속의 에로티시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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