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그림을 보면 봄날의 화사한 꽃들이 떠오른다. 백합 같은 하얀 꽃 , 노란 빛깔의 치자꽃 ,언덕에 핀 붉은 진달래꽃 이 모든 꽃들이 순백의 광목천에 그대로 박혀 아름다운 풍경으로 태어난다.

그가 이런 그림으로 화단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최근 몇 년 전의 일이다. 그 이전에 여러 전시장을 지나면서 한두 번쯤 그의 그림을 지나쳤던 내가 그의 작품을 처음으로 가장 인상 깊게 접한 곳은 2003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장이었다.

그 자리는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새로 신설된 미술평론가상 수상 작가를 뽑는 자리였다. 함께 심사를 맡았던 오세권씨를 비롯한 5명의 평론가들은 너무나도 쉽게 그의 작품을 수상작품으로 선정하는데 전원 합의로 이루어졌다.

미술평론가들이 선정하는 이 상은 공정성과 권위를 위해 투표 등의 방법이 아닌 심사위원 전원일치제로 가장 우수한 작품을 선정하자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그 때 최무영의 작품은 이견 없이 심사위원 전원의 일치로 선정되었다.

최무영의 작품이 5명의 미술평론가들 부터 주목을 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짜임새 있는 구성과 세련된 균형 감각, 절제된 표현들과 색채가 다른 어느 작품보다 단연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공모전이 갖는 특성상 의례적이고 진부한 작품들이 즐비한 시점에 최무영처럼 자기 세계를 가지고 하는 확고한 표현 양식과 지나가는 유행을 의식하지 않고 소신껏 내놓은 작품세계가 인상적이었던 것이다.

그 외에도 최무영의 작품은 한지로 전통적인 느낌을 충분히 살려주면서 한국적 아름다움의 조형적인 요소들을 색채로 충분히 살려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한국적인가라는 물음에는 여러 가지 이견이 있겠지만 , 그의 작품을 통해서본 한국적 아름다움은 부드러움과 한지가 주는 소박함 그리고 색채들이 빚어내는 조화였다.

그의 작품 속에 짜여진 구성들은 마치 베틀로 짜여진 것처럼 선명하고 은은하며 때로는 강렬한 원색들의 대비로 우리들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섬세한 한지의 무늬들이 있다. 한지의 전면에서 보이는 백색의 흔적들은 마치 설원에 펼쳐진 아득한 풍경 속에 색색의 보석이 박힌 멋진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그 속에 아주 작은 무늬와 발자국 같은 감각적인 형과 색채와의 조화가 최무영 회화의 매력적인 멋이다. 그에게 있어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멋스러움은 한지의 색채들이 엮어내는 다양한 색감들이 단순하면서도 경쾌하게 한 화면 속에서 엮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때로는 거친 듯 커다란 흔적으로 때로는 여리고 가냘픈 발자국과 부드러움으로 감싼 한지의 색덩어리는 짜 맞춘 듯 만남과 어울림의 미를 보여준다.

이처럼 그의 작품은 드문 여류작가의 작품처럼 섬세하고 정교하게 결따라 엮어 진다. 그리고 그것들은 어느 한 부분도 소흘하게 다루어지지 않고 화면 전체에 균일하게 나타난다.


또한 최무영에게는 아주 자유로운 여유와 느슨함이 스며 있다. 화면에 교차하는 직선과 사선들이 빚어내는 자연스러운 종이들의 겹침과 벌어짐을 통해서 그의 작품들은 보다 다양한 공간 속에 조화로움의 여유를 드러낸다.





그는 오랫동안 내안의 풍경이란 표제로 연작작업을 해왔다. 그가 풀어내는 풍경들은 실제의 풍경보다 그가 평소에 간직하고 있던 감추어진 마음속의 풍경으로 초기의 기법 보다 화면을 다루는 기술에서 세련된 테크닉을 보여준다.

초기 작품들에서 보여진 반복되는 지루함을 벗어버리고 종이를 만들어 두들기고 천연 염색을 하고 오려 붙이던 표현 양식에서 색채가 훨씬 들어가 있는 구성적인 형태들을 보여준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그의 작품은 닥종이를 주요 재료로 사용하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 그가 이렇게 근사한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는 일정한 절차가 있다. 예를 들면 먼저 그는 닥종이를 물에 적셔 일정한 형태를 만든다. 그 다음에 스티로플로 만든 모양들을 기초로 한지로 덧붙이거나 짜 맞추는 과정을 통하여 그의 은은하고 부드러운 평면이 완성된다.

그 과정 중에 나타나는 틈새를 그는 색채가 다른 종이로 오려 붙이거나 , 색종이를 접어 색채와 구성의 아름다운 대비를 질서 있게 배치한다. 다분히 그러한 과정은 어떻게 보면 그린다는 개념보다 만들거나 찢어 붙인다는 콜라주의 특성이나 성격들이 현저하게 돋보인다.

그렇다고 그가 전적으로 동양회화의 특성을 져버리는 것은 아니다. 아주 부분적이지만 그는 적절한 지점에 농담과 발묵의 멋을 한껏 살린 수묵들을 신선하게 풀어놓음으로서 그의 전통적 동양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그러고 보면 그의 회화는 우리에게 그린다는 것에서 벗어난, 만든다는 아주 특별한 시각적 경험들을 확인 시켜 주는 셈이다. 결국 내 안의 풍경이라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마치 흰색의 천들로 탁월한 구성미와 조형성을 획득한 조선시대의 보자기를 흰색으로 이어 놓은 듯한 조형성을 엿보이게도 한다.

그러한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자투리 천으로 이어지고 연결한 그 담백한 풍경들이 우리들을 부드럽고 편안한 색채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것이다.

그의 작품이 부담감 없이 보는 이들에게 아스라한 향수가 느껴지는 먼 곳 마을의 풍경을 연상시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 마을 가운데서도 단연 눈 내린 풍경의 크고 작은 이미지의 편린들은 시골 마을의 겨울 풍경의 흔적을 사진처럼 선명하게 떠올린다.

그의 이러한 이미지의 완결 된 아름다움은 구상적인 형태를 더욱 끌어들이면서 색채를 차가운 구성처럼 극대화 시킨 작품에서 강한 흡인력을 보여준다.

어쩌면 그는 ' 한국적 모노크롬'으로 불려지는 단조로움을 입체적인 양식을 통하여 흰색의 공간적 구성을 확장시키는 한국화의 새로운 양식을 구축하고 있다. 이것으로 그는 순결한 지평에 펼쳐지는 관념적 풍경의 아름다움과 그 안에는 고요함과 절제미로 이어지는 장식적인 패턴으로 최무영의 독창성을 만들어 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릴리프적인 효과와 색채들을 적절하게 사용함으로서 단조로움을 피하면서 세련미와 완성도를 고양시키고 있다.

특히 뛰어난 색채에 대한 배치 감각과 조형능력 그러한 조화를 화면에 충분히 일으키는 미감능력은 다른 작가에게서 쉽게 발견 할 수 없는 점으로 눈여겨볼만하다. 아울러 흰색이라는 우리의 공통 된 민족적인 정서 , 한지와 단청 색들과의 결합 혹은 한국적인 미의식 등은 단연 그의 회화가 가지고 있는 훌륭한 가능성이자 힘이다.






이제 우리는 최무영이란 화가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공의 가도에 올라서면서 늘 감사 해 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바로 그의 처갓집 식구들이다. 직장동료와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그를 향해 도둑눔(?)이라고 놀리듯 말한다. 그의 결혼은 그 자체가 대단한 스캔들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한 아이의 엄마인 그녀의 아내는 그와는 12살 차이에 띠 동갑이다. 또한 그와는 선생님과 제자 사이였다. 그것도 열두 살 차이의 당시의 결혼은 충분히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화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 제자에다가 그녀는 겨우 대학에서 호텔경영학을 배우는 학생에 불과 했다. 그녀는 결국 결혼을 선택했다. 그렇게 결정을 하고 결혼에 이르기까지는 그녀의 아버지의 용기가 무척 컸다고 한다.

아버지는 공부는 나중에도 할 수 있으나 결혼은 아무 때나 할 수 없다고 적극 추천하여 학업을 그만두고 결혼을 하였다고 한다. 용기 있는 사랑이 아닌가! 이것은 ! 당시 장인어른은 일찍이 그림에 뜻을 두었으나 그 뜻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농장과 어업을 하는 사업가의 길로 들어선 아쉬움이 그림을 그리는 사위를 예뻐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최무영은 지금도 그런 그의 처갓집에 특별한 배려와 혜택에 몇 번이고 늘 감사한다고 했다. 그에게 처갓집은 고흐에게 있어 테오같은 후원자 이거나 메디치가의 파트롱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