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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그 존재의 원초적 고통 - 이수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김종근


지난 주말 일요일 나는 아는 작가의 소개로 한 작가를 만났다. 전시를 앞둔 그의 작업에 관한 글을 써달라는 것이었다. 대중적으로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은 탓인지 내 과문의 탓인지 그의 이름은 조금 낯설었다.
나는 그의 이름을 찾아보았다. 퍼포먼스 축제 2004 충돌과 실험 집행위원장. 이수. 다만 이 직함 하나가 그의 과거의 경력을 어느 정도 말해주고 있었다.
또한 신문사의 주간잡지에 실린 그에 관한 글에는 우리시대의 진정한 소리꾼 장사익과의 인연도 들어 있었다. 알고 보니 그와는 10년 이상의 오랜 지기였고 같이 그의 소개로 지금 부인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일요일의 세종문화회관, 그는 내 친구와 함께 머리를 길게 묶은 모습으로 가족과 함께 나타났다. 우리는 근처 커피숍에서 몇 명의 친구들과 둘러앉아 그의 그림들을 펴보았다. 몇 점의 작품들을 보면서 그림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별다르게 그림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작품에 대한 첫인상은 그의 인상만큼이나 단호했고 맑았다. 그는 나이를 말하지 않았지만 57살에 미술대학을 다니다 그곳이 마음에 안 들어서 다시 서울대 미대를 간 이야기며, 그의 본명은 이학수 인데 , 그 가운데 배울 학(學)자를 띄어 내고 그냥 이수라고 쓴다고 했다.
나는 하필 오십대 후반에 배움을 더하고자 하지 않고 빼고자하는 그의 개명 속에서 그의 예술에 현장성을 스치듯 발견했다. 그러나 아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오해일 뿐이었다.
그는 내게 복사물과 한 권의 도록을 건네주었다. 거기에는 1998년부터 작업해온 일련의 작업들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었다. 맨 마지막 그의 이력서에는 9번이라는 개인전 경력이 있었고 , 단체전은 물론이고 전위 행위 설치 란에는 20여차례의 퍼포먼스 전력이 실려 있었다.

그의 작품 도록을 보면서 나는 후회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의 작품에 대하여 글을 쓰겠다고 한 것을, 아니 겨우 작품 몇 점을 보고 그의 오랜 예술세계를 말한다는 것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의 작업실이 경기도 파주에서도 한참 더 들어가는 광탄이라는 말에 나는 책 쓰는 시간을 핑계삼아 그의 작업실 방문을 포기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이수라는 작가는 평면보다는 퍼포먼스가 훨씬 강렬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작가였다. 도록의 첫머리에는 전위예술가이자 퍼포먼스 작가인 무세중의 머릿글이 눈에 들어왔다.
'이수의 초월 생계 그림굿' 그런데 그의 카탈로그 맨 뒤에 논문에 '프러시안 블루에 관한 소고'라는 논문 타이틀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이점만으로도 이수는 특별하다. 사람들은 그를 이렇게 묘사했다. ' 이수는 원시적 본능과 직관으로 잿빛 도시의 감성을 전복해 온 사람이다. 최인훈의 ‘광장’에서 묘사했던 것처럼, 그의 캔버스는 늘 짙푸른 크레파스색(프러시안 블루’색)으로 넘실댔고 가끔씩 원색의 궤적이 섬광처럼 명멸한다. ' 고 그렇다.
그의 그림은 마티스의 블루처럼 아니 이브 클라인의 절대적인 블루처럼 투명했고 엄숙했다. 전혀 군더더기도 없이 블루로 뒤덮인 세계에는 간헐적으로 녹색 혹은 노란 혹은 빨강 색이 낙서처럼 간결하게 버려져 있다.
그것은 간혹 우주를 떠올리기도 하고, 밤하늘의 모습을 파란 렌즈의 망원경으로 들여다본 빛나는 광채를 생각나 게 했다.
그러나 아니 푸른 우주에 빛나는 몇 가닥의 칼라풀한 색상들은 마치 그의 춤사위에서 읽혀지는 그 선 그대로였다. 고개를 구부린 모습, 몸을 늘어뜨린 모습등 싸인처럼 보인다. 그가 오랫동안 행해왔던 그 해프닝과 퍼포먼스의 춤사위 그대로 이었다.
그런 그가 1990년대는 팔기 위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자괴감에 해오던 작업에 염증을 느끼고 전시장에서 해프닝을 본격적으로 개입시키게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동시에 그가 얼마나 자기갈등의 순간들을 겪어왔는지를 짐작케 한다. 나는 그런 과거의 모든 흔적들을 내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하고 도록만으로 본 것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러면서 나는 궁금해했다. 왜 모든 작가들은 그림이 잘 팔린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는 것일까 ? 또 안 팔리면 모두들 돌아서서 괴로워 할 것들을 .
그러고 보니 그는 1991년을 기점으로 그가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던 프러시안 블루의 작업들을 다양하게 바꿔가며 제작한 수백여점의 이미지들을 상상한다.
그는 일련의 작품들 모두를 “명상의 결과”라고 했다. 또한 자기를 초월한 영적 세계에 닿아 있다고 그는 믿는다.

무세중은 이러한 그의 에술세계를 ' 작은 우주 덩어리, 보이는 것으로는 석류알 같은 '피 맺힘 들이다. ' 영롱하고 아롱진 별 새끼들의 석류 알들 그 석류 속에는 꿈꾸는 우주가 흐르는 물처럼 은하수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라고 적었다.
어쩌면 그로서는 2차원이라는 캔버스의 행로인, 사각형의 평면이 그 자신을 통째로 담아 두기에 한계를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 결과 그는 2차원의 삶과 결별했다. 당시 궁궐 안에서 펼쳤던 행사가 평면 작업과 설치 미술이 혼합된, 새로운 차원의‘전시 행위’였고, 그것을 그는 '거듭남'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그는 그의 그림에 싸인처럼 혹은 간결한 선들의 이미지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다.

어쨌든 모든 화가들은 색으로 자신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표현한다. 고흐의 노랑과 뚤루즈 로트렉의 블랙, 마티스의 블루와 빨강, 피카소의 청색처럼 이수의 감정의 뿌리는 파랑이다.
화가의 그림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이런 컬러들이 이수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러나 불행히도 난 그의 퍼포먼스를 보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의 무대에 선 퍼포먼스를 보면은 눈에는 불이 나고 퍼포먼스로서의 결행은 날렵하고 당당하다고 한다. 그러나 의외로 회화작품들은 사람의 두상, 상자 등 몇 개의 오브제를 들고 즉흥적으로 펼치는 육체 언어의 해프닝처럼 단순하고 명료하다.
마티스에게 블루가 그의 세계의 새로운 깨달음이었다면 , 이수에게 프러시안 블루는 그 색에 숨어 있는 초월의 세계에 다름 아니다. 그가 면의 길이가 10m를 넘는,1,500호 작품에 도전 한 것 등이 그것이다.
여전히 작가 이수가 지향하고 있는 것은 새로운 질서의 세계이다. 바로 이벤트와 설치가 합쳐진 탈(脫) 캔버스의 세계, ‘명상무곡’의 지평임을 그는 밝히고 있다.
아마도 이번 평면 작업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그 프러시안 블루의 내밀한 언어가 장사익의 노래와 어울려 우리들을 비장미와 눈물의 세계로 우리를 밀어 넣을지 모른다.

이수는 색채에도 영혼이 있음’을 보여주는 마티스처럼 진지하다. “색은 단순할수록 내면의 감정에 더 강렬하게 작용한다”그는 그가 매일 바라본 지중해와 그 하늘의 푸른빛만큼이나 단순 명쾌한 원초적 순수를 꿈꾸고 있다. 이수는 금방 생성된 우주의 푸른빛과 밤하늘을 보면서 사람만이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빛을 지닌 모든 것은 다 영혼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작가이다. 이수의 프러시안 블루의 영혼 속에는 그가 추구해온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이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이수는 우리들에게 몇 장의 티켓을 건네주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10년 만에 열리는 소리꾼 장사익의 공연이었다.
나는 거기서 찔레꽃 , 아버지 등의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내 양쪽 옆으로 눈물을 훔치는 모습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마치 이수의 아득하도록 파란 아니 그곳에서 빠져 죽고 싶은 고독과 비장함을 장사익의 노래에서 이수의 그림에서 느낀다. 공연이 끝나고 우린 장사익의 노래를 이야기하며 2차 3차를 했다.
나는 그들이 아주 각별한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이제사 조금 알 것 같았다. 예술의 가장 절정의 표현은 로드코가 가졌던 좌절의 순간이며 색채로 모든 감성을 표현한 진지한 삶의 무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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