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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영 / 세계 최고의 명화를 그리는 컬렉터

김종근

차가운 콘크리트로 단아하게 빚어놓은 듯한 평창동. 건축가 조병수가 지은 한만영의 작업실이다.
그 화실에는 우리가 좀처럼 보기 힘든 겸재 정선의 그림은 물론 피카소, 다빈치 , 앵그르의 그림들이 수두룩하게 있다.
시인 박희준은 그의ㅐ 작품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 화면 앞에서, 나는 녹청색 푸른 못 위로 떠오른 시간의 빛을 보았다. 그 시간의 빛은 금빛의 흔적으로 다시 화면 속에 자리하여 간결하면서도 선명한 각인을 하고 있다. 그리고 설치작업에서 한만영은 그 시간의 빛에 금빛 날개를 단다. 안테나나 바이올린의 현 에서 발전한 이 금빛 시간의 날개,'
한만영의 작품 속에는 이렇듯 과거와 현재, 현실과 이상의 세계가 같이 동거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의 작업실에는 모든 것이 어우러져 꿈을 꾸듯 몽롱하다고 말한다.
이것이 한만영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의 진실은 아니다.
그 자신은 고백한다. '전혀 무관한 일상의 사물들을 모아본다. 과거와 현재를 결합시켰다. 낯설다. 동양과 서양의 이질적인 정서가 교차하면서 현실도 이상도 아닌 낯선 세계에서 현실의 주위를 맴돌고 있다. ' 그의 이런 독백이야말로 그 자신의 그림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가까이서 본 한만영의 본질적인 내면의 모습은 사실 너무 쿨하고 재미없고 밋밋하다. 그는 타협을 잘 모른다. 불의를 보면 참지도 못한다. 그러나 담백하다. 트릭도 없고 꼼꼼한 ,절대 뒤돌아보지 않는 오직 한 길 , 화가의 길만이 갈 줄 아는 사람이 한만영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대단히 부드러운 사람이다. 문밖 , 아틀리에 앞에 꽃을 가꾸며 나무에 물을 주는 아주 가정적인 정원사라고 어느 제자는 말한다.
그러나 내가 묘사하고 싶은 한만영은 우리나라에서 세계최고의 명화들을 가장 그려내는 빼어난 묘사력과 표현력을 가진 작가이다.
그의 집에는 피카소, 고갱, 앵그르며 다빈치의 모나리자’,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 보티첼리의‘비너스의 탄생' 들이 원화보다 더 잘 그린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회화는 어린아이조차도 쉽게 볼 수 있는 명화 속의 인물과 풍경을 빌리기 때문이다. 그는 이것을 한만영식 기법으로 차용하여 작품으로 만들어낸다.
<홍익대를 졸업한 그는 일찍부터 1970년대 《공간의 기원》이라는 시리즈를 제작하면서 경쾌한 공간 안에 명화들을 인용하기 시작했다.
80년대에 들어서서는 <시간의 복제>라는 제목의 일련의 시리즈 작품에서 달력 등의 이미지를 이용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시간의 복제 시리즈에서 차용되는 고전의 명화들은 과거 라는 시간을 복제한다는 의미를 그림 속에 부여한다. 이를 다시 현재의 시간과 결합함으로써 초월과 상상의 초현실적 세계를 드러낸다.
80년대 초부터 정밀하게 묘사된 이 세계적인 거장들의 고전적인 이미지들은 그 부분의 표현에서 정교하고 완벽한 필치와 테크닉으로 명화 작가들의 감정을 훌륭하게 복제 해냈다.
그 명화들을 다시 입체적인 오브제들과 결합시켜 그는 90년대식 한만영만의 독자적이고 특징적인 세계를 이룩했다.
《시간의 복제》 연작을 발표하면서 그는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미 그는 마음만 먹으면 세계의 모든 예술가들을 불러들일 수도 , 모사 할 수 있는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 그이기에 여성잡지의 광고 포스터, 대중 연예인등 모나리자, 비너스, 고분벽화, 불 상등 존재하는 모든 오브제들은 그의 작품의 단골 소재들이다.
거장들의 이미지에서 역사성을 가진 오브제들은 언제나 그의 마음과 손이 가는 곳이면 인쇄등 복제물의 이미지에서 한만영 연출의 명작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이를테면 그가 채집해온 이미지들이 모두 시간의 복제나 공간의 기원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는 겸재 정선은 물론 혜원 신윤복이 그렸던 그림들, 고구려 고분벽화의 수렵도, 서양의 유명한 명화들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심지어는 마릴린먼로 사진까지 복제되어 나타난다.
아마도 그가 그의 황룡사 벽에 솔거가 그린 늙은 소나무를 그린다면 평창동은 물론 서울시내의 모든 새떼들이 진짜 소나무인줄 알고 앉으려다 부딪혀 떨어져 산더미를 이룰 것이다.

그는 근래 들어 훨씬 정교하고 아름다운 색채와 형태로 명화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선에 주목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작품들의 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기 전 어린 시절 그는 그의 모친과 사별을 기억한다.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만 모친을 상상할 수밖에 없었던 그에게 모친의 이미지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의해 만들어진 한낱 개념적인 형상일 뿐, 형상의 세계가 얼마나 개념적인 세계인가를 체험하게 되었다고 했다. 주변사람들의 이야기, 그 인습화된 사고에 도움을 얻어 내 뇌리에서 떠올려지는 모친에 대한 상식 내지 어떤 像들에 대해 그는 늘 심한 의구심을 일으켜 왔다고 했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 상이란 인습화된 이미지인 것이다.

한만영은 이렇게 중의적인 구성을 통해 과거와 현재, 시간과 공간, 창조와 모방의 대립적인 요소로 조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렇다. 그의 작품에는 마치 마그리뜨의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진 신비함의 이미지와 “현실과 초현실을 아우르는 관조이자 해탈”의 의지가 담고 있다.
예전과 다르게 그는 바탕색으로 청명한 하늘색을 즐겨 인용한다. 그는 그러한 이유로 가장 상상을 자극하는 심오한 색깔이라고 말한다.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되지요. 저는 작품을 통해 상상의 문을 슬쩍 열어놓고자 한다고 했다.'
한만영씨는 아직도 앵그르·피카소·겸재 정선의 유명한 그림들을 옮겨 그리고 있다. 과거를 현재로 불러들이기 위해서다. 결국 그는 시간의 문제에 관심이 있음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과거와 현재, 시간과 공간, 그 의미에 대해 그는 생각을 한다. 거리를 잴 때 어떤 이정표를 두듯이 작품에 있어 잘 알려진 명작이나 사물들은 시간에 있어서의 이정표라 부른다. 또한 그는 시간을 과거·현재·미래로 잘라 구분할 수 없다고 했다. 시간은 돌고 돌며 순환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간의 복제, 공간의 기원 등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그의 작품은 옛 고전과 현실적인 오브제들로 기억의 이쪽과 저쪽,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독창적인 상상의 공간으로 각인되어 있다.
분명 그가 그리는 그림 속에는 분명히 또 다른 하나의 그림이 오버랩 되어 있다.
이미 보아왔던 명화들은 그의 화면 속에서 한갓 장치물에 불과하다. 그는 이 장치물이 목적이 아니라 그것이 자리함으로서 생겨나는 공간성의 조화를 더 기대하고 있다.
그는 말한다. '나는 나의 감정이 그대로 전달될 수 있는 붓과 손으로써 그리고 있다. 만약에 내가 다빈치나 앵그르의 상식을 충실히 화면에 전달하려 한다면 나는 그저 단순한 복사가로서 전락할 것이다. .......나의 미학을 통해서 그 시대와 대치된 오늘날의 공간성과 시간성을 나름대로 환기시켜 보는 것이다. 화면에서 시간적 공간적 관계를 설정할 수 있다는 회화적 관심에서 名畵들을 선택' 한다고 했다.
그는 매우 정직한 사람이다. 그는 모든 미술가들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 희끗희끗 드러난 흰머리에도 청바지를 즐겨 입는 한만영.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청바지를 입는 사람 .
환갑을 앞두고 드럼을 배워볼까 고민하는 한만영의 꿈이 보인다. 두드리고 소리를 내는 동안 무척 신명날 것 같다는 생각을 꿈꾸고 있는 두얼굴의 한만영 .
종종 인생은 하룻밤 꿈’이라고 말하는 한만영 그는 술을 좋아한다. ‘술은 신이 만든 최고의 예술 작품’이라고 할 정도 .
그와 나누었던 야외 테라스에서의 샐러드와 치즈와 와인 . 그 풍경위로 미칠 듯 푸른 겸재 정선의 풍경과 선들이 자꾸 어른거린다.



국민은행 2004.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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