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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자연에 대한 화가의 경의-박지은

김종근

文房四友(문방사우) 라는 것이 있다. 선비의 방에는 네 가지 친구들이 있는데 붓, 먹, 종이, 벼루가 그것이다. 만약 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한 이 네 가지 중 붓과 벼루를 멀리하고 먹과 닥나무의 껍질에서 섬유 성분을 뽑아내 만든 한지(韓紙)만을 고집하는 작가가 있다. 그가 20대 후반의 젊은 여류작가 박지은이다.
그 나이면 이제 스스로의 작품세계를 찾아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하여, 그의 이 당돌함이 한편 걱정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그 용기를 높이 사기로 했다. 작업실이 모자라 복도까지 펼치고 쌓아 놓은 수십 여점의 대작들은 그가 단순한 치기와 열정만으로 이러한 모험을 벌인 것이 아님을 충분히 확인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는 미술작품의 재료에 있어 중요한 절반의 재료들로 작품을 만들어 데뷔전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아무래도 그의 첫 번째 희망은 채색과 먹 그리고 전통적인 수묵 산수의 화단 풍경에서 벗어나 좀더 그만의 독창적인 모습을 보이겠다는 야심에 찬 생각에서 출발한다. 그러한 용기와 노력은 물론 그가 처음은 아니다. 동양화에서 서양화에서 그러한 한지에 대한 실험과 조형적인 탐구들은 이미 그리고 어느 정도 추구되어 왔다. 예를 들면 권녕우에서 함섭까지, 원문자에서 젊은 작가 최무영까지 이들은 한결 같이 그리기보다는 한지를 매재로, 회화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려는 노력을 해 온 작가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 볼 때 박지은의 참신함은 무엇보다 세련된 감각을 바탕으로 한 조형성에 있다. 그는 기존의 동양화 작품들이 보여주던 채색과 그린다는 형태의 고정된 이미지를 거부한다. 뿐만 아니라 화면에서 일체의 색을 억제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서 종이의 재질과 그 자체를 변형시키지 않고 화폭 속에서 보존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낸다. 구체적으로 그의 욕심을 빌리자면, 종이야말로 그가 원하는 이미지를 정착시키고 보존하는 최종적인 재료이며 이 종이야 말로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그에게서 종이의 활용은 명백히 소재성이 우선되고 중시된다. 그는 평면을 완성하는데 가장 비중 있게 사용하는 이 종이를 쌓아 가는 밀도와 단계가 그 자신의 감정을 담아내는 훌륭한 그릇으로 생각한다.
우선 그의 작업 형식은 스티로폴에 표현하고자 하는 자연의 부분이나 풍경들을 인두로 녹여 그 부분을 한지로 떠내 화면에 붙이거나 겹겹이 쌓아 만드는 공정을 거쳐서 형성된다. 그가 떠내어 만든 그러한 모습과 형상들은 화면에 따라, 주제에 따라 때로는 크고 작게 , 가늘고 두껍게 그의 화면에 복합적으로 태어난다. 그 종이들의 덧붙임은 화면과 분리되지 않고 화면 속에서 조형성의 역할을 유지한다. 이것은 박지은 회화에 대한 커다란 유토피아적 이상이 가능하다는 그만의 방법이기도 하다.
그는 그의 그림에 주제가 '자연에서 일어나는 놓치기 쉬운 것들'에 크게 주목한다. 우리가 흔히 보이는 모든 것만으로 세상을 정의하는 것에 대하여 그는 견해를 달리한다. 오히려 땅속, 땅위 외진 어떤 곳에서 그 기운을 받아 일어나고 있는 무심한 것들에서 생동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는 이 세상을 움직이는 커다란 질서 속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생명력이 있음을 중시한다.

박지은은 그 생명력을 채색보다는 독창적인 무색의 형태로 절제된 그의 심경을 드러내는 것이다. 미술에 공통적인 요소들을 강조하기보다는 스며들게 하는 그들만의 담백한 색채, 부드러운 형태, 구성으로 그의 어법은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있다.
박지은의 이 내밀한 표현법은 서투르게 보이는 장지에 먹을 사용하여 배접한 그 색농도의 다층적인 밀도의 단계에서 절제 미의 한 형식에 도달하기를 시도한다. 그러한 시도가 아직은 완벽해 보이지는 않아 보인다. 아직 그 절제미의 순간들을 보여주기에 그 먹색을 통한 배접의 깊이가 원숙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의 독자적인 조형세계에 발걸음은 거침이 없어 보인다. 회화의 기본인 보여지는 미술이란 관습을 거부하면서 개별적인 작가의 의지로서, 형태와 선의 엄격함으로 무색의 동양미술의 가능성을 묻고 있다.
게다가 현재로서는 철저하게 색채를 배제함으로서 색채의 본질이 말의 언어보다 감정의 느낌들을 더 효과적으로 전달 할 수 있다는 생각도 그의 그림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그의 선의 유형은 위치에 따라, 형태에 따라 단순하고 규칙적이며 조형적으로 충실하게 화면 속에서 완성된다.
아직 구성은 차갑지만 그 선들의 어울림은 따뜻하고 자유롭고 친숙하며 아름답게 세련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박지은에게 있어 그림이란 그가 믿었던 모든 형태들을 발견하고 표현, 추적하는 과정에서 미술이 가능하다는 폴 클레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나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놓치기 쉬운 것들을 그가 만약 원한다면 '자연이 창조하는 방법을, 형태들이 만들어지는 것을 따르라. 그것이 가장 좋은 학교다. 그러면. 아마도 자연으로 출발하여 너 자신의 형성화를 성취할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엔 가는 너 자신이 자연과 같이 되어 창조할 수 있으리라.'고 한 잠언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의 회화는 젊은 시절의 경험들이 축적된 것이라기보다는 회화에 대한 그의 고집스런 관점에 산물로 보인다. 그럼에도 화폭 속에 나타나는 그 풍경들은 20대 후반의 그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감각적이고 조형성이 두드러지다. 이 훌륭한 풍경들이 자연적이며 선의 감정들이 살아나는 담백한 무색의 선으로 그려지고, 흰색의 형태들로 적절하게 표현된다면 그의 현재의 욕심은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여전히 박지은은 색채의 필요성보다는 한지와 조형성의 회화로 자신을 다듬고 있다. 그는 그 단계 단계에서 삶의 기쁨과 슬픔 그리움 , 희로애락이 함축되어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어쩌면 나는 이제 내가 본 것이나 심지어는 내가 느낀 것조차 그려서는 안 된다는 것, 단지 나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 영혼 속에 있는 것만을 그려야 한다' 는 것을 깨달은 러시아 화가 야블렌스키의 명상적 독백 같은 것을 그에게서 발견한다.
나는 박지은의 화폭에 마주하고 있는 한지의 세계가 세련보다는 거칠어도 그의 작품에 메시지가 분명해지는 것이 작업에 유익 할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한지를 배경으로 베어나는 그의 조용하고 명상적인 먹색의 감추어진 풍경의 연작들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형식주의에서 멀어져 이미지가 있는 추구의 세계로 열기를 더해갈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단순한 선과 형태의 감각적 구조로 놓치기 쉿은 것들을 위한 아름다운 명상의 세계가 펼쳐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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