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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미인을 아느냐?

김종근

인간은 만물에 척도이다 . 그런 인간은 본질적으로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을 가지고 있는 동물이다.
특별히 여자들은 이 아름다워 질수 있다 는 끊임없는 유혹에서 언제나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여자들은 아름다워지고 싶어하는 욕구와 갈등에 언제나 사로잡혀 있다. 이런 유혹이 성형수술을 가져오게 하고 화장술을 더욱 발전 시키며 또 다른 여자들의 아름다움을 낳는다.

그러나 가끔 우리는 아름다워지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하는 여자들의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날 정도이다.
아름다움이 뭐길래 .... 그 아름다움이 나를 위해서든 혹은 타인을 위해서든 아름다움은 미인이 가져야 할 하나의 중요한 덕목이자 요소가 되어 버렸다 . 불행은 그것이다 . 다분히 주관적이고 개별적인 미적 향수가 우리의 의지와 전혀 상관 없이 이제 신체적 외모에 따라 아름다움의 잣대가 되고 기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미에 대한 기준은 시대와 역사에 따라서 바뀌고 변화한다. 동서를 막론하고 고대인은 신의 형상을 통하여 이상적 인간상을 구현하려 했다. 서양사람들은 인간의 모습 중 특히 여자의 옷을 벗은 모습 즉 나상 (裸像)의 이모저모를 통하여 몸매의 아름다움과 근육구조의 조화와 활력성을 보여 주었다. 특히 그리이스 조각의 신상들의 이상화 된 완벽성에 표현은 이를 잘 말해준다.
이렇게 신체의 균형과 인체의 비례를 통하여 서양인들의 아름다움은 인체미의 규준이 되고 있다. 그러나 동양의 미는 육체를 떠나 초자연적 이상을 표현하고 실제적인 육체의 비례를 무시하고 있다.

인도미술의 주요한 특징이 되고 있는 裸像조각들, 중국서화에 보여지는 인체 표현은 인체의 아름다움 보다는 도덕미가 중시된 것들이다.
동서양 미술을 비교한 로랜드는 인도의 미술에는 신체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정신적인 이상의 표현으로 집중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예를들면 삼국시대의 불상은 종교미를 가진 예배대상으로서 뿐만 아니라 인체미까지 조화된 이념미와 인간미의 합일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기원전 7세기나 5세기 그리이스 조각에서 보이는 청년상 쿠로스 (Kouros) 또는 소녀상 코레 (Kore)의 모습은 그런 이집트의 인체비례의 영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소련의 건축가 졸토브스키 측정에 의하면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폴론과 밀로의 비너스 등 모두가 황금비례에 의했다고 밝히고 있다. 미켈란젤로나 알브레이트 뒤러의 작품들이 그러한 규범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티치아노의 잠자는 비너스, 15-16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봇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등에서도 여자들의 아름다움은 균형이 갖추어진 몸매와 신체의 비례가 잘 조화돠어 있음을 볼 수 있다 . 루벤스의 三女神 그림에는 육체의 풍만함이, 앵그르의 목욕에서는 잘다듬어진 이상적인 여인의 육체를 통한 아름다움이 그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공통적으로 변하지 않는것은 날씬한 몸매에 대한 관심이다. 모두가 신체의 새로운 이상형을 추구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한 때 오드리 헵번과 브리지도 바르도가 아름다움의 대명사처럼 무수한 남성들 사이에서 회자 된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소녀시절 발레의 경험이 아름다운 몸의 기초라인을 만들어 나이가 들어서도 세련 된 몸매를 유지 할수 있었다고 한다. 요즈음 여성들에게 있어 살빼기는 거의 육체와의 전쟁을 방불케 한다. 왜냐하면 날씬한 몸매를 꿈꾸기 때문이다.

그 날씬한 몸매를와 아름답기 위한 노력이 생각보다는 훨씬 폭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80프로 이상의 여성이 자신의 신체적인 미를 가꾸기 위해 다이어트를 한다는 사실이다.

어느 20대 후반의 인터뷰에서 여자들의 외형과 외모에 선호도가 그래도 이뻐야 한다고 대답한 경우가 70프로에 육박 했다는 것은 결코 충격적인 사실만은 아니다. 그리하여 이제는 IMF형 살빼기에서 부터 상상하는데로 살이 빠진다는 이미지 다이어트, 명상 요법까지 비만을 극복하기 위한 여성들의 훈련은 방법과 수단을 초월하고 있다.

여전히 쉽게 달궈지고 쉽게 식어버리는 냄비문화 패턴을 보이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미에 대한 집착과 유행이 생활리듬의 변화를 크게 바꿔 놓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의 배경에는 이미 페미니스트 철학자인 보르도가 서구문화의 근본적이고 전반적인 전제로서 몸과 자아에 대한 이원론적 형이상학을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상업적인 면이 결부되어 있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여성의 미나 아름다움 혹은 육체적인 몸매에 지극히 의존적인 경향을 보이는 것은 그것이 또한 몸의 문화적 이미지와 직접적으로 관계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문학 영화 예술 대중문화 광고 등에 아주 직접적으로 반영 된다. 마치 여자들이 힘에 넘치는 허벅다리와 튼튼한 근육을 가진 남성들을 선호 했다면, 18세기 남자들은 아이들을 위해 골반이 크고 유방도 풍만하고 단단하여야 하는 이른바 육체적인 이상미의 기준이 아름다운가에 대한 물음보다 목적성이 우선되어 육체적 미가 승리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세에는 화장을 못하도록, 살결이 투시되는 옷은 금하며, 다산도 금지되어 있고 여자는 욕망의 대상되어선 안되고 에로스로서 매력을 가지면 안되었다. 고대나 원시사회에서는 다산이 장려되어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상처럼 생식기 부분이나 가슴이 유달리 돌출 되거나 강조 된 인체의 표현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몰락, 영국의 산업혁명 그리고 18세기의 과학은 19세기의 기술과 공업을 탄생케 하고 이로써 자본주의 사회가 출현 되면서 매스커뮤니케이션이 탄생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여성의 육체는 매스 미디어에 의해 급격한 상품화의 중요한 대상이 되었다.

그리하여 최근 우리사회에 만연하는 육체를 통한 아름다움에 관한 표현이나 과시는 오히려 인간의 근본적인 아름다워지고 싶어하는 욕망이나 욕구 보다는 상품화가 가능한 목적적인 육체미에 기대고 있다.

그런점에서 여자들의 육체에 대한 욕망과 지독한 애착은 다소 천박하기 까지 하다. 개인의 특성이나 개성이 존중되지 않고 유니 섹스(Unisex) 화 되는 풍속을 보이고 있는것이 그렇다.

입술에 칠해진 똑같은 립스틱의 색깔들, 온통 햐얗게 덕지 덕지 바른 분과 눈썹의 마스카라, 쌍꺼풀 등등 적어도 이제 21세기 한국여자들의 아름다움은 아무런 특색도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나처럼 다양한 아름다움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거의 매일 똑같은 모습의 여자들을 본다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것인가. 그래서 나를 외롭게 하지 않는 것은 미술작품이다.
조각가 로댕은 그리이스 여성의 아름다움은 그것을 표현한 조각가의 눈에 있었다고 했다. 이것은 바로 그 시대의 아름다움이었기 때문이다.

여성들이여 부디 절망하지 말지어다. 보다 확실한 다음 세기에는 오늘의 아름다움이 내일 의 추함으로 또는 오늘의 추함이 내일의 아름다움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그 누가 미인을 알것인가 아무도 진정한 미인은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미인은 바로 당신의 가슴속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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