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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민 / 질료로 연출된 조감의 풍경

박영택

김주민 / 질료로 연출된 조감의 풍경


인간의 몸은 지상에 저당 잡혀있다. 중력의 법칙에 완강히 묶여 있는 것이다. 그래서 창공을 나는 새와 하늘에 자리한 구름, 태양과 달은 이상적인 존재로 인간의 머리 위를 맴돌았다. 그것을 앙시의 시점으로 우러러보면서 그 세계, 존재를 꿈꾸어왔던 것이다. 대지에 사로잡힌 자들의 갈망은 그렇게 하늘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니 하늘의 시선은 인간의 시선이 결코 아닌 것이다. 그것은 신의 시선이고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자의 시선이다.

수평을 굽어보던 시선에서 벗어나 산과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 보는 시선은 단지 시점의 변화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나란 존재, 몸 자체를 다른 것으로 변이시킨다. 새로운 감각으로 돌변시키는 것이다. 비로소 새의 눈과 몸이 되어보는 것이기도 하다. 바람과 구름이 되어 보는 것이다. 그때 드러나는 지상의 모습은 발을 딛고 서 있던 때를 가물거리게 하면서 빠져나간다.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내 몸과 감각에서 멀어져간 저 대상, 존재가 신기하고 아름답다. 시점을 달리하는 순간 대상에 대한 미감도 바뀐다. 낯선 감각 속에서 일상의 시선에서는 도저히 알 수 없었던 비경이 펼쳐진 것이다.

김주민은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자연의 풍경이나 높은 곳에서 접한 도시의 풍경을 그림으로 그렸다. 수평선이나 지평선에 의해 세계를 가설하지 않고 새의 시선으로 조망한 것이다. 이른바 조감의 시선으로 내려다 본 세계가 화면 가득 펼쳐져있다. 일상적인 시점이 아닌 생경하면서도 흥미로운 시점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당연히 원근법에 의한 공간구성은 사라지고 전면적으로 일으켜 세워진 풍경만이 가득하다. 보는 이의 망막 가득 그 풍경이 일어나 다가온다. 세부적인 정보가 지워지고 크게 구획된 색 면으로 나뉘어진 땅은 집과 건물, 도로와 자동차 등이 보인다.

자연과 인공의 구조물이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는 퍽이나 아름다운 풍경이다. 자연 안에 인공이 개입되고 인공 안으로 자연이 들어오는 상황을 보여준다. 작가는 그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한다. 자연만이 혹은 인공의 구조물만이 단독으로 있는 것이 아름답기보다는 그 둘의 친연적 관계나 공모의 관계가 빚어내는 풍경이 더욱 아름답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그림은 자연풍경이나 도시 풍경이라기 보다는 그 둘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고 있는 상황을 보여준다. 그 모습이 공중에서 보았을 때 더욱 실감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매우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본 지상은 세세한 정보대신 색채덩어리를 안긴다. 다양하고 다채로운 색들이 일정한 선율 아래 촘촘히 배열되어 있는 것이다. 외형적으로 그 장면은 고스란히 추상화를 연상시킨다. 구체적이고 인지 가능한 정보를 지우고 오로지 색채를 지닌 물질들이 어우러져 있는 풍경, 그림이다. 작가는 그 장면을 차용했다. 그러니까 지표에서 벗어나 위로 올라간 시선에서 본 대상을 그린 것이다. 자연과 도시가 있고 강과 길, 나무와 자동차 그리고는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색들이 수놓아져 있다.

광활하고 거대하며 무한한 공간감이 느껴지는 풍경화다. 지상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패턴을 연상시켰다. 마치 조각보 같기도 하고 추상화가 리처드 디벤콘Richard Diebenkorn(1922-1993)의 회화를 떠올려주었을 것이다. 특히 디벤콘의 회화는 구체적인 자연풍경을 단순화시켜 추상적인 기하학적 패턴으로 환원하고 그 내부를 감각적인 붓질과 아름다운 색채로 마감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마도 작가는 그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김민주는 디벤콘이 즐겨 그린 샌프란시스코 풍경 대신에 위에서 내려다 본 이곳의 풍경을 그렸다. 그로부터 받은 자극과 영감, 놀라운 감동이나 희열을 강렬한 색채와 뜨거운 물성, 그리고 행위적인 나이프 터치로 표현하였다. 다분히 표현주의적인 그림이다. 아니 액션과 추상표현주의와 구상의 흔적들을 두루 아우르는 그런 그림이다. 우선 색채는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순수한 색채를 구사하면서 한색과 난색을 충돌시킨다.

색채의 스펙트럼이 무척 넓어서 우선적으로 그 색상이 압도하는 형국이다. 동시에 색을 머금은 물감의 물성을 극대화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분출, 발산한다. 작가는 붓, 모필 대신에 금속의 나이프로 그림을 그린다. 나이프로 물감을 듬뿍 떠서 화면에 밀착시키거나 부조처럼 덩어리를 만들어 붙인다. 그것은 주어진 평면의 화면에서 일정한 높이를 지니고 솟아올라 촉각적이다. 아울러 색채, 물감은 일정한 면적, 두께, 살을 지니면서 화면에 빠른 속도와 압력 등으로 인해 만들어진 흔적을 생생하게 노출한다.

따라서 우리는 주어진 그림을 보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그 그림을 이루는 물질의 과잉된 연출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이러한 물질감, 마티에르는 대상을 보고 파생한 작가의 내면의 감정이나 무의식적인 그 무엇인가가 외화되어버린 흔적이다. 매우 빠르고 격렬하게 치고 나간 흔적들, 꿈틀거리며 매달린 물성들이 그것이다. 물질감 위로 물감을 뿌리면서 감정의 누출이나 모종의 느낌을 산란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그 물성의 연출은 보다 정교하고 독자한 방법론으로 안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김주민의 그림은 세상을 보는 일반적인, 일방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색다른 시선 속에서 우리들의 세상을 다시 보게 한다. 보는 관점에 따라 사물과 대상은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그림은 그런 시각과 관점을 통해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로인해 우리는 미처 몰랐고 접하지 못했던 것들을 만난다. 조감의 시선 아래 보여지는 세상은 아름답다. 그것은 흔한 말로 한 폭의 그림 같다. 김민주는 그 ‘레디메이드그림’을 번안해서 다시 그렸다.

색채와 선, 리듬감을 증폭하고 물감의 물질성을 강화했다. 그렇게 탄생한 그림은 구상이자 추상이고 그림이자 물질이고 감정의 표현이자 즉물적인 물성의 연출이다. 자연과 인공이 연결되고 조화를 이루며 자리한 이 세계가 이토록 매력적인 이미지였던 것이다. 주어진 자연에 길을 내고 집을 만들어 살던 인간의 삶과 그것들을 품어주었던 자연의 그 흔적들을 보면 새삼 인간의 역사와 문화가 슬그머니 부감되기도 한다. 그래서 김민주의 이 풍경화는 인간의 자취를 뜨겁게 질료화 하는 그림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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