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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세인 박 / 케이블선으로 구현된 미디어 이미지

박영택

케이블선으로 구현된 미디어 이미지




작가는 화면 바탕에 케이블 선을 배열해서 부착했다. 수평으로 나란히 늘어선 선들은 균질하거나 평평한 표면이 아니라 굴곡과 깊이가 다른 피부를 만들어낸다. 인공의 오브제가 물감이나 붓대신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자개나 시퀸, 레고와 크리스탈 혹은 PVC 등의 물질로 회화적 공간을 점유하고 그 재료들을 통해 이미지를 그려보이는 경우가 최근 빈번해졌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전통적인 회화적 재료 대신에 인공의 오브제가 낯설고 흥미로운 차원에서 혹은 시각에 더욱 호소하는 지점에서 더욱 선호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런 재료의 차용에서 다분히 팝적인 기호를 엿보기도 하고 동시에 인공의 사물로 점유되고 있는 환경에 대한 일정한 반응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와함께 좀더 색다르고 흥미로우면서 노동과 기술의 정교함을 요구하는 회화의 갈망 내지는 더욱 기계적이고 인공적인 것으로 전이되는 탈신체적 회화에 대한 욕구의 차원과도 맞닿아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든다.

인세인 박은 케이블선을 회화적 재료로 다룬다. 원형으로 단단한 이 재료는 전자이미지를 소비하는 우리의 삶의 환경에서 너무도 흔한 재료이다. 이미지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는 재료를 가공해서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 이미지 역시 마치 텔레비전 화면에서 빠른 속도로 흔들리며 지나가는 주사선의 배열로 이루어진 영상이미지를 닮았다. 지지직거리는 소음을 동반하면서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이미지에 유사하다. 그 같은 이미지야말로 우리에게 각인된 이 시대의 보편적인 이미지다. 우리는 대중매체를 통해 발산되는, 전파되는 그러한 이미지를 과도하게 흡입해내면서 살고 있다.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을 현대인들은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한편 미디어가 가공시킨 이미지만을 생각하게 됨으로써 이를 받아들이는 현대인들은 주체성을 잃고 단편적인 사고만을 가지게 되었다. 자신의 능동적인 상상력, 사고에 의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미디어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적이고 가공적인 이미지만을 받아들이며 사는 것이다. 그 가공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텔레비전일 것이다. 동시대인들은 텔레비전이 제공하는 전파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그 이미지를 당연시하고 그로인해 지극히 맹목적인, 수동적인 존재로 변해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눈, 망각과 신경체계, 몸 자체가 아예 그러한 기계적 이미지의 수신에 적한합 것으로 바꿔어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케이블선이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는 화면위로 얼굴 하나가 커다랗게 떠오른다. 전선을 감싸고 있는 피복의 표면에 색을 입히고 다시 깊이가 다르게 그라인드로 깍고 갈아낸 흔적이 이미지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오브제 위로 구사되는 페인팅의 흔적은 기계적이 아니라 감정과 손, 마음의 굴곡들이 격렬하게 진동하는 편이다. 이른바 추상표현주의적인 제스처에 유사하다. 물감이 흐르고 튕기며 퍼져나간 자취들이 차가운 오브제와 주사선의 이미지를 마구 흔드는 편이다. 최근작에서 더욱 고조되는 이 표현적인 흔적은 기계적이고 수동적인 영상이미지(텔레비전이미지)의 획일성에 저항하는 듯한 몸짓으로도 읽힌다.

사실 이 작업에서 이미지를 드러내는 결정적인 수단은 물감의 토핑이 아니라 케이블의 피부를 깍아내는 행위에 있다. 강도와 압력에 의해 깊게 패이면 속이 드러나 금속성이 보이고 얇게 깍으면 고무질감의 외피가 패인 자취가 드러난다. 그것이 다른 깊이, 색상, 질감을 보여준다. 그리고 어른거리는 이미지를 연상시켜준다.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이다. 표면을 깍아나가면서 깊이의 층차가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이 조각적 회화는 아울러 서로 다른 색상의 케이블을 배열해서 그 위로 어두운 색을 전체적으로 입힌 후에 자동차 도료를 착색해나가고 지워나가고 깍고 다시 착색하는 여러 과정을 통해 주사선과 같은 이미지의 역동적인 상을 드러낸다.

그가 보여주는 이미지는 얼굴이다. 그 얼굴은 명료하기 보다는 흔들리고 왜곡되고 빠르게 스치면서 멈춰서있다. 작가 주변의 지인들이고 그저 평범한 일반인들이다. 그러나 화면으로 호명되어 얹혀지는 얼굴은 범죄자나 미아를 찾는 수배전단지의 인물상과 유사하게 보여지면서 선입견을 갖고 그 얼굴이미지를 보게 한다. 실제 사진이미지를 조작해서 영상이미지인 것처럼, 가상의 이미지로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텔레비전이란 매체가 대중을 조작하는 방식의 패러디다. 미디어는 이미지를 바꾸고 조작한다. 사실 텔레비전에서 방송된 이미지/사건은 현존하면서도 동시에 부재하고, 실제적이면서도 동시에 피상적이며, 존재하면서도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

일상생활의 실제세계와 텔레비전의 영상세계, 이 두 세계는 점점 더 뒤섞여 서로를 구분할 수 없을 때까지 나아간다. 미디어가 재생산되어 원본이 되고 반대로 현실이 복사물이 된다. 텔레비전 수상기가 자칭 세계 그 자체가 되었다. 이 같은 텔레비전의 이데올로기 기능에 따라 전적으로 환영과 모조품에 의해서만 양육된 인간 유형이 등장했다. 그것이 현대인이다. 인세인박의 작업은 오브제를 활용한 회화이자 조각적 방법론으로 이미지를 안긴다. 이 케이블선이란 결국 영상이미지를 전송시켜 보는 이의 망막에 이미지를 안겨주는, 제공해주는 결정적인 수단, 도구인 것을 생각해보면 흥미롭다. 케이블선 자체가 아예 이미지를 드러내버린 형국인 것이다.

사선으로 긁고 지나가는 힘들에 의해 강한 노이즈가 발생되는 것 같은 환청도 인다. 시각적인 이미지이자 다분히 청각을 자극하는 화면이다. 아울러 이 수평의 선으로 인해 감지되는 시간과 속도의 힘도 거론해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화면, 그 표면은 텔레비전 화면과 매우 유사하게 보여진다. 결국 작가는 우리에게 텔레비전이 제공하는 이미지를 케이블 선을 활용해 보여준 것이다.

인세인 박은 우리에게 보편적인 볼거리이자 광범위하게 편재되어 있는 텔레비전이란 매체의 이미지제공방식, 그 주사선의 흐름, 그리고 그러한 미디어가 제공하는 이미지의 폭력적인 편재성과 동질성으로서의 강제적 힘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선에서 그 같은 방법론과 재료를 구사하고 있다. 오늘날 미디어에서 송출되는 무수한 이미지가 우리에게 어떻게 수용되고 어떤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를 반성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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